파판
극 프피스토 토벌전 (상)
백오판다
2017. 6. 29. 17:35
어두컴컴한 날씨는 사막의 도시 다날란에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쨍쨍한 햇볓에 그을리던 바위언덕들이 보랏빛요기에 휩싸여 마치 이계라도 된듯한 환경을 갖추고있었다.
뭐, 틀린말은 아니었다.
지금부터 싸울 대상은 유명한 소환사로, 타락한 이후에는 보이드의 요마들이 이쪽으로 넘어오는 게이트같은 역할을 하게 되 버렸으니까.
지금 이곳은 보이드라고해도 무방하다.
"정말, 이 방법 밖에 없는 거야? 억지로 변형된거라면 다시 돌아올 방법도 있지 않은거냐고!"
바짝 치켜올라간 꼬리가 평소에는 담담하던 백오가 얼마나 흥분해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비교적 어린나이에 모험가가 된 백오에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백오가 에오르제아에 오게 되었던 계기인 가루렌은 그것을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친한사이였던 것을 여기있는 누구도 모르지 않았다.
"설령 그런 방법이 있더라도 찾을 시간이 없어. 우리는 책임을 져야해. 제일 잘 알고있잖아? 부대장."
홀로 창가에 앉아 전투를 준비하던 아르가 속삭이듯 말하였다.
일순간에 가라앉는 백오의 귀와 꼬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알고있어.. 알고있다구!"
연성부대는 너무 명성을 쌓아버렸다.
친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작은 규모의 부대로 시작한 이 부대는 친목을 위해 결성 되었으면서 야만족을 몇이라도 토벌할 정도로 커져버렸다.
그것이 눈에 거슬렸던거겠지.
무엇을 원했는지 부대의 일을 제일 잘 알고있는 백오는 알고 있었다.
"이건 견제야. 대장이나 부대장을 노리지 않은걸 보면 알수있지. 연성부대의 주요멤버이면서도 무너지진 않을 정도로만 타격을 주려던거겠지."
"거기에다 그 토벌을 우리에게 강제하다니.. 정말 악질적이군."
조용히 활을 정비하던 체셔쿤이 한숨처럼 내뱉은 말을 끝으로 모두 무기를 들고 일어섰다.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란것을 백오도 잘알고있었다.
잘 다듬어져 선명하게 은빛으로 빛나는 지팡이를 꽉 쥐면서 백오는 모두가 나간 연성부대 하우스를 휙 둘러보았다.
그날 아침에 급히 의뢰라면서 놔두고 간 프마언니의 책이 탁자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이딜샤이어의 장터에서 우연히 구한 고대서적이라면서 그토록 좋아했는데 끝까지 읽지 못하고 프마언니는 여기서 사라져버렸다.
"..내가 좀 더.. 부대를 잘 관리했어야 했는데.. 어째서 그런 함정에 걸려버린거야.."
프마언니가 요마의 피를 흡수해버릴 당시에 백오는 본직이 아닌 전사였다.
그것만으로도 백오는 강한편에 들었지만 돌발적인 상황에 대처가 가능했냐면, 그건 아니었다.
피투성이로 쓰러진 백오는 절벽으로 떨어져가는 프마언니에게 손을 뻗을 힘조차 없었다.
"다 나 때문이야.."
백오는 책을 덥썩 집어들었다.
"내가 해결해야해."
그 눈에는 죄책감과 격렬한 분노가 담겨있었다.
정말 상냥하고 착한 언니였는데.. 더 쓰다듬 받고 싶었는데..
적어도 그들의 손에 죽는건 안된다고 생각했다.
"프마언니를 편하게 만들어줄게."
내손으로.
부대원들은 프마언니를 매우 좋아했었다.
그들의 손에 피를 묻히는건 백오가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일이 이렇게 될때까지 방치해버린 자기 자신의 죄였다.
그 죄로 너굴언니는 프마언니에게 활을 쏠 수 밖에 없었다.
이 모든 사실이 손이 하얗게 질리도록, 입술에 피가나도록 백오를 압박하고 있었다.
반드시 마지막은 내 손으로.
"모두는 나의 잘못이야."
싸늘한 눈으로 백오는 부대집의 문을 닫았다.
.
.
.
"백오는 두고 가는게 어때? 대장."
벽너머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끊기자 아르가 가루렌에게 물었다.
확실히 평소의 냉정함이 사라진 백오는 위태로워보였다.
하지만, 연성부대에 빠질 수 없는 위치였다.
"안된다는걸 알잖슴까. 가혹하지만 저걸로 각오한거라고 생각함다. 백오의 대체는 없슴다."
연성부대에 힐러라곤 백오와 느르흐뿐이었다.
어떤 방법으로 상대가 공격해오는지 모르는 이상 힐러는 두명인게 좋았다.
"오히려 이게 끝을 맺기에 가장 좋을지도 모르죠. 이대로 놔두고 간다면 백오한테 이 일은 평생의 죄책감으로 남을거에요."
그리고 나에게도.
체셔쿤은 조용하게 다짐하듯 마음으로 되새겼다.
그때에 맞춘 한발의 화살로 체려쿤은 이미 지금의 프마를 다른 존재로 정의했다.
자신의 언약자이자 친우는 이미 사라졌다.
저건 그저 요마일뿐이다.
"그렇다고 저대로 놔둬? 뭐라도 다 부셔버리겠단 눈인걸. 토벌이 끝나면 배후는 전부 끝장나겠네."
한손으로 하품하며 나타난 여우는 친구의 표변한 모습에 쯧쯧 혀를 찼다.
뭐든 쌓고만 있으면 무너지는 법인데, 적당히 부대일을 나눠가지라고 했것만.
"다행인건 토벌한다는 방향에 이의는 없는거 같단거지. 저래봬도 판단은 확실히 하고 있는거야. 여기서 프마언니를 두둔하기라도 하면 연성부대는 이단으로 몰릴테니까."
그 뒤에서 에크네페가 튀어나왔다.
이번일에 도와줄 필요는 없다고 전했지만 개인적인 친분이지 부대 사이의 일은 아니라고 밀고 들어왔다.
백오 놀려먹는데에 1등공신이긴 하지만 그만큼 같이 다니는 일이 많은 여우였다.
그런 백오가 얼마나 프마언니를 따랐는지 모를리가 없었고 걱정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타부대의 일인데..하며 고민에 빠져있던 여우의 꼬리를 붙잡아 온건 에크네페였다.
힛부대도 연성부대도 아닌 친구의 일이라며 질질 끌고 오는 모습이 잠깐 연성부대의 음울한 분위기를 풀어준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것이다.
"이단? 우리가 한 일도 아니고 당한건데 왜 이단이에요?"
현상황을 잘 모르는 상습이는 당혹해선 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부대의 일이고 친하던 프마언니의 일이라고 준비하던 이번 토벌전 전투원들의 이야기를 염탐하러 왔다가 들켜 여기에 앉혀졌지만 아직 에오르제아에 익숙치 못한 상습이가 당황하는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원인이 뭐던간에 그쪽편으로 보여지면 안돼. 안그래도 우리는 위태로운 상황이니까. 힘을 축소시키고 싶다면 근사한 단어지, 이단은."
정말 악질이야.
아르의 푸념과 함께 새카만 요기가 넘실대듯 힘을 더했다.
"으윽.. 정말 독하네. 위치는 발견했어.. 그런데, 정말로 이 8명만으로 가는거야? 그다지 좁은 장소도 아니고 연합파티라도 문제없을텐데."
익숙치 않은 소환사의 소울크리스탈을 던져버리면서 텐더가 말했다.
소환사의 힘은 소환사가 더 잘 아는 법이다.
극만신에 익숙치는 않지만 돕고싶었던 텐더는 프마의 위치특정을 돕겠다고 손을 들었었다.
"고마워. 변질된 에테르라서 측정하기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해냈네."
살기등등한 눈으로 나갔던 백오가 한손으로 도끼를 들고 들어왔다.
한바탕 부대집 앞 나무인형에 화풀이를 하고 온것인지 꼬리끝까지 털이 바짝서고 송곳니는 날카로워져 있었다.
하지만 광폭화의 후유증을 남기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 눈은 침착하기 그지 없었다.
"전사로 가는건 아니지? 우리는 만전을 기해야해."
시간신의 찬미가를 읇조려주며 체셔쿤이 말하였다.
부족한 딜러자리를 채우기 위해 쌍검을 든 가루렌도 본직은 아니라지만 중요한 메인힐러 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
"그럴리가 없잖아. 나는 놀때랑 안놀때 정도는 구분하거든? 그냥.. 조금 답답한 기분을 풀려고 했을 뿐이야."
슬쩍 치켜든 지팡이와 함께 이프리트를 본뜬 새빨간 갑옷은 사라지고 그 얼굴을 까마귀가면으로 가린 백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서브탱커 자리는 하온님이 도와주기로 했어.."
그다지 탐탁치 않은 모습이었다.
이렇게 위험한 일에 도움을 청하고 싶진 않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이야기를 듣고 돕겠다고 나서주었다.
분명 엄청난 전력이 되겠지, 하지만 오지 않길 바랬는데.
"안녕하세요. 이미 다들 모여있었네요."
애써 연성부대의 침체를 지워보려는듯 밝게 웃어보이는 담하온을 보면서 백오는 그 앞에서 프마언니를 죽여야 한다는 것에 갑자기 부담감이 솟아올랐다.
항상 즐거운것만 같이 하길 바랬는데.
내가 동료였던 사람을 죽일 때에 과연 어떤 모습을 하는 걸까.
결과만 중시하던 백오에게 처음의 망설임이었다.
"자, 이제 다 모인것 같네.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있다는 보장은 없고 나도 한번 더는 못 할것같아. 어디까지나 학자니까 말이야.. 제촉하고 싶진 않지만 어서 출발하는게 좋을거야."
극심한 과부하에 망가져버린 에테르계측기를 우울하게 보면서 텐더가 말하였다.
빌렸던 물건이니 어떻게 변명해야할지 고민하는것 같았다.
"게다가 프마님은 본직이 소환사잖아? 역추적 정도는 가능할거라고. 설마라곤 생각하지만.. 이성까지 요마의 피에 잡아먹히지 않았다고 확증은 없으니까."
적극적으로 공격해 올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텐더는 연성부대원들에게 다짐시켰다.
"준비는 다 끝났지? 지금 가는 곳에 공략같은건 없어. 그리고 어떠한 정보도 없지. 하지만 끝은 하나야. 프마언니를 죽인다. 그것에 대해 각오가 없다면 지금 그만두는게 좋을거야."
백오는 위협을 섞어 파티원에게 말하였다.
전부 어떤 전장에서도 믿을만한 전우이지만 이번만은 특별했다.
실력만으론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러가는 것이다.
"뭐야, 백오. 내가 또 평소처럼 힐 하나도 안할거같아서 겁주는거야? 나도 할때는 한다고-."
그런거치곤 벌써 성전을 킨 파트너 힐러를 백오가 노려보았다.
그런 의미가 아닌걸 다 알고 있을텐데.
"에오르제아에 이런 일이 한두번도 아닌데, 뭘 걱정하고 그래?"
여우가 시시한듯 고개를 괴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맞아요. 물론 괴로운 일이긴 하지만.. 편하게 해주는 방법이기도 하잖아요..?"
긴장으로 빳빳히 굳은 백오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며 담하온이 말하였다.
주변도 잠깐 조용했던것뿐 어느새 손에 무기를 들고 농담을 하거나 떠들고 있었다.
일부러란걸 모르면 정말 이상한 부대일것이다.
아무도 우리가 동료를 죽이러 간다는건 모를만큼 웃음이 넘치고 있었다.
정말 시끄럽고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좋아. 이제 출발하자."
그러니까 백오는 거기에 응석부리기로 했다.
백오 자신이 힘든데 누군가를 챙길 여력은 없었기에 모두가 떠드는 와중에도 조용히 활을 다듬는 체셔구리를 모른척했다.
이것이 얼마나 자신의 책임을 방치하는것인지 앎에도 불구하고..
.
.
연성부대에 토벌하란 반강제 명이 내려오긴 했지만 사실 프피스토는 존재자체의 죄 이외에는 어떠한 죄도 짓지 않았다.
요기에 의해 불러모아지는 요마무리와 빨아드리는 어마어마한 에테르 이외에 어떤 해도 없는 요마를 울다하 사람들은 존재조차 모를것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요기가 흘러나온대도 참 느긋한 사람들이네."
"요기? 뭔가 기분나쁘긴한데.."
이질적인 힘에 표정을 찌뿌린 느르흐를 보면서 이러한 힘엔 서먹한 투사계열의 에크네페가 의아해했다.
아직 울다하 전체에 깔린 요기랑 별다른 밀도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텐더와 마찬가지로 소환사와 근본이 상통하는만큼 느르흐는 파티의 누구보다 일찍 깨달은 모양이었다.
"근데 왜 하필 울다하일까? 그것도 여기는.. 그다지 좋지 못한 끝이었는데."
에테르의 흔적을 추적해 모래의 집이 존재하전 저녁별 만에 도착한 모두는 이런 요기의 기운에도 여전히 장사 하고 있는 상인들을 보았다.
직접 시체를 수습한다는건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었고 그런것에 신경쓰지 않는다고해도 벽지의 이곳은 일부러 방문할 이유가 존재치 않는다면 보통 오지않는 곳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가는 방향은.. 그 칙칙하고 습기찬 동굴 안 아닌가? 그런한 장소에 어째서.."
걸으면서 고찰을 멈추지 않는 체셔구리의 목소리를 들으며 모두는 아무것도 변하지않은 주변을 살폈다.
전투가 일어난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은 좋은소식이자 모두에겐 나쁜소식이었다.
"프마는...내가 쏜 화살을 맞고 절벽에서 떨어졌어. 텐더님에게 추적을 부탁하기 전에 변질된 에테르의 흔적을 추출하기 위해 다시 간 절벽 아래에는 분명 대량의 피가 있었다."
"다행히 치유술이 강력해지진 않은 모양이네."
과거를 고찰하는 체셔구리의 말에 여우는 이것 다행이라고 적의 정보를 정리했다.
그렇다면 눈을 맞은 상처는 프피스토의 약점일것이다.
"다쳤다.. 그럼 왜 저런곳으로 간거지? 습한 환경은 상처에 좋지 않아."
목적이 불명해. 함정이라도 준비하는걸까?
이성이 있는 건가.
주민을 해치지않았다면 적의는 없다?
가설과 추측투성이의 고찰은 결론에 가까워질수록 모두의 마음에 커다란 돌덩어리를 내던지는것과 같았다.
무엇보다 주변의 환경이 증거였다.
적인 제국군조차 죽지 않고 정찰하고 있는 모습은 에테르 관측 결과가 아니라면 여기는 허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혹시.. 이성이 남아있다면.."
그땐 어떻게 할것임까..?
떨리는 목소리와 확장된 동공은 동료애가 깊은 가루렌의 동요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의 누구도 요기에 잡아먹힌 프피스토가 아직 시간이 지나지 않아 피해가 없었던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사역마도 아닌 요마가 사람에게 흉포함을 보이지 않은 사례는 없다.
"우리가.. 먼저 공격할 것임까..?"
결국은 우리가 죽이겠지만 아무도 공격해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프피스토를 상정하지 않았다.
"참 끝까지 바보같은 사람이네. 이성따위 놓아버렸다면 좋았을 텐데."
한탄이 섞인 아르의 말을 끝으로 모두의 의견은 일치했다.
프피스토는 몸과 에테르는 요마가 되버렸어도 이성만큼은 아직 잡아먹히지 않은 것이라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일 수 밖에 없다고.
"정말 끝까지 정떨어지는 녀석이야."
.
.
.
백오는 지극히 효율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동료애는 강함을 자부한다.
죽어도 부활 할 수 있는 에오르제아에서 스스로의 실수로 다쳐 죽기 직전의 딜러는 자연히 버려진다.
그것까지 멱살을 잡아올려 살려내는 무리한 힐업은 자주 주변에서 그럴필요 없다고 좀 더 비정해지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말하자면 백오는 요마에 잡아먹힌 프피스토를 돌려낼 방법을 찾아다녔었다.
정력과 요마의 힘은 상반되고 백마와 흑마의 전쟁역사만큼이나 기피되는 지식을 스스로 찾아 다니는 경험은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게다가 연성부대 대외적인 운영을 맡고 있는 백오가 집중적으로 마크되고 있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프마를 따라 가본곳이 처음인 이딜샤이어 장터의 고문서까지 전부 뒤진 끝에 만난 고블린은 굽신 거리며 백오에게 빌었었다.
"서로 거래로 맺어진 인연인만큼 그리 깊지는 않지만고브.. 그래도 같은 종족에게 박해받는 나에겐 친구였다고브."
귀를 잡아채진 경험 때문인지 짧은 팔을 뻗어 귀를 감싸안으면서도 그 고블린은 백오에게 간절히 바랬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들은 프피스토의 소문에 무서워하던 백오의 앞에 나타났다.
"너는 엄청 구두쇠라고 알고 있는데 애써 모은 책을 보여줘도 좋은거야?"
하나같이 금서지정에 가깝거나 금서인 요마에 관한 책들이었다.
펼치는것만으로 요마가 소환될거같은 소환서조차 있었다.
"상관없다고브. 이런건 팔지도 못하고 취미생활로 모은것뿐이다고브. 그러니까 꼭.."
하지만 그런 금서들조차도 프피스토를 돌려낼 방법은 없었다.
그러니까 이 파티에서 백오만큼은 이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에도 불구하고 목적을 잃지 않았다.
어쨋든 프피스토는 돌아올 방법이 없었다.
우리가 죽이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가 죽일 뿐..
"그게 뭐가 어쨋다고? 우린 죽여야만해.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이성이 있다는건 부가적인 사항이고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순 없다는거 알잖아."
백오가 큰 목소리로 어느새 주저않은 가루렌을 다그쳤다.
변하지 않는 현실에 바꿀 수 없는 과거, 지켜야 할 건 미래와 자신.
그리고 모두였다.
백오의 등에는 아주 무거운것들이 짊어져있었다.
거기에 무언가 하나가 추가되더라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시시한 동정으로 모두의 발목을 이끌 생각이야? 물론 동료였던 사람을 죽여야하는건 무섭고 힘든 일이지. 하지만 각오했잖아. 이제와서 무릎꿇는거야?"
이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백오의 펼친 팔 뒤에는 백오를 빼고 유일하게 태연해보이는 아르가유라나 뒤돌아서 표정은 안보이지만 무언갈 중얼거리며 여전히 고찰중인 체셔구리, 필사적으로 어떤거라도 좋으니 필요한 정보를 달라며 치유서를 뒤적이는 느르흐가 보였다.
대장이라는 이름 아래에 가루렌이 보호해야 할 동료들이었다.
이번 일이 실패하면 분명 연성부대는 해체되는건 당연하고 역적, 이단으로 몰려 평온한 일상은 과거의 꿈이 되겠지.
그리고 그 뒤로 안절부절 못하며 백오를 말려야하는지 고민중인 담하온, 무서운 표정으로 열변중인 에크네페와 미코테의 감정을 대변하는 꼬리조차 흔들지 않고 이야기하는 진지한 표정의 여우가 있었다.
친구를 돕는다고 찾아와준 가루렌의 소중한 지인들이었다.
부대간의 관계보단 친구라서 도우러왔다고 해줬지만 과정보단 언제나 결과인 냉혹함이 이러한 사실조차 덮어가려 이단까진 아니더라도 지탄을 받을것이다.
"힐러로써 사람 목숨가지고 효율을 따지라곤 하지 않겠어. 그런걸로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정말 그걸로 괜찮겠어?"
또 못지켜서 모험가를 그만둘 생각이야?
그렇게 후회하고 결국 다시 돌아왔으면서 다시 잘못을 반복할거야?
과거 한번 모험가를 그만뒀던 가루렌을 백오는 알고있다.
진심으로 후회하는 모습에 이 사람을 따라서 모험가가 될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더 잘못을 반복하는것은 백오는 용납 할 수 없었다.
이번에 희생될지 모르는 사람들은 백오가 모르는 누군가가 아닌 백오의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하.. 그렇슴다. 나에겐 지켜야 할 것들이 이렇게 많은걸 잠깐 잊어버렸슴다. 전부 제가 원해서 만든 관계였는데."
한순간이라도 전부 포기하면 안될까라고 생각해버렸다.
나이트였던만큼 튼튼한 몸이지만 마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지키기로했을때 그 마음도 철벽같아진다는 것을 백오는 알고 있다.
눈물을 벅벅 닦고 일어나는 가루렌의 손을 잡아주면서 백오는 진한 요기에 흠칫 반응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시뻘건 한쪽눈과.
쨍쨍한 햇볓에 그을리던 바위언덕들이 보랏빛요기에 휩싸여 마치 이계라도 된듯한 환경을 갖추고있었다.
뭐, 틀린말은 아니었다.
지금부터 싸울 대상은 유명한 소환사로, 타락한 이후에는 보이드의 요마들이 이쪽으로 넘어오는 게이트같은 역할을 하게 되 버렸으니까.
지금 이곳은 보이드라고해도 무방하다.
"정말, 이 방법 밖에 없는 거야? 억지로 변형된거라면 다시 돌아올 방법도 있지 않은거냐고!"
바짝 치켜올라간 꼬리가 평소에는 담담하던 백오가 얼마나 흥분해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비교적 어린나이에 모험가가 된 백오에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백오가 에오르제아에 오게 되었던 계기인 가루렌은 그것을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친한사이였던 것을 여기있는 누구도 모르지 않았다.
"설령 그런 방법이 있더라도 찾을 시간이 없어. 우리는 책임을 져야해. 제일 잘 알고있잖아? 부대장."
홀로 창가에 앉아 전투를 준비하던 아르가 속삭이듯 말하였다.
일순간에 가라앉는 백오의 귀와 꼬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알고있어.. 알고있다구!"
연성부대는 너무 명성을 쌓아버렸다.
친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작은 규모의 부대로 시작한 이 부대는 친목을 위해 결성 되었으면서 야만족을 몇이라도 토벌할 정도로 커져버렸다.
그것이 눈에 거슬렸던거겠지.
무엇을 원했는지 부대의 일을 제일 잘 알고있는 백오는 알고 있었다.
"이건 견제야. 대장이나 부대장을 노리지 않은걸 보면 알수있지. 연성부대의 주요멤버이면서도 무너지진 않을 정도로만 타격을 주려던거겠지."
"거기에다 그 토벌을 우리에게 강제하다니.. 정말 악질적이군."
조용히 활을 정비하던 체셔쿤이 한숨처럼 내뱉은 말을 끝으로 모두 무기를 들고 일어섰다.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란것을 백오도 잘알고있었다.
잘 다듬어져 선명하게 은빛으로 빛나는 지팡이를 꽉 쥐면서 백오는 모두가 나간 연성부대 하우스를 휙 둘러보았다.
그날 아침에 급히 의뢰라면서 놔두고 간 프마언니의 책이 탁자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이딜샤이어의 장터에서 우연히 구한 고대서적이라면서 그토록 좋아했는데 끝까지 읽지 못하고 프마언니는 여기서 사라져버렸다.
"..내가 좀 더.. 부대를 잘 관리했어야 했는데.. 어째서 그런 함정에 걸려버린거야.."
프마언니가 요마의 피를 흡수해버릴 당시에 백오는 본직이 아닌 전사였다.
그것만으로도 백오는 강한편에 들었지만 돌발적인 상황에 대처가 가능했냐면, 그건 아니었다.
피투성이로 쓰러진 백오는 절벽으로 떨어져가는 프마언니에게 손을 뻗을 힘조차 없었다.
"다 나 때문이야.."
백오는 책을 덥썩 집어들었다.
"내가 해결해야해."
그 눈에는 죄책감과 격렬한 분노가 담겨있었다.
정말 상냥하고 착한 언니였는데.. 더 쓰다듬 받고 싶었는데..
적어도 그들의 손에 죽는건 안된다고 생각했다.
"프마언니를 편하게 만들어줄게."
내손으로.
부대원들은 프마언니를 매우 좋아했었다.
그들의 손에 피를 묻히는건 백오가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일이 이렇게 될때까지 방치해버린 자기 자신의 죄였다.
그 죄로 너굴언니는 프마언니에게 활을 쏠 수 밖에 없었다.
이 모든 사실이 손이 하얗게 질리도록, 입술에 피가나도록 백오를 압박하고 있었다.
반드시 마지막은 내 손으로.
"모두는 나의 잘못이야."
싸늘한 눈으로 백오는 부대집의 문을 닫았다.
.
.
.
"백오는 두고 가는게 어때? 대장."
벽너머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끊기자 아르가 가루렌에게 물었다.
확실히 평소의 냉정함이 사라진 백오는 위태로워보였다.
하지만, 연성부대에 빠질 수 없는 위치였다.
"안된다는걸 알잖슴까. 가혹하지만 저걸로 각오한거라고 생각함다. 백오의 대체는 없슴다."
연성부대에 힐러라곤 백오와 느르흐뿐이었다.
어떤 방법으로 상대가 공격해오는지 모르는 이상 힐러는 두명인게 좋았다.
"오히려 이게 끝을 맺기에 가장 좋을지도 모르죠. 이대로 놔두고 간다면 백오한테 이 일은 평생의 죄책감으로 남을거에요."
그리고 나에게도.
체셔쿤은 조용하게 다짐하듯 마음으로 되새겼다.
그때에 맞춘 한발의 화살로 체려쿤은 이미 지금의 프마를 다른 존재로 정의했다.
자신의 언약자이자 친우는 이미 사라졌다.
저건 그저 요마일뿐이다.
"그렇다고 저대로 놔둬? 뭐라도 다 부셔버리겠단 눈인걸. 토벌이 끝나면 배후는 전부 끝장나겠네."
한손으로 하품하며 나타난 여우는 친구의 표변한 모습에 쯧쯧 혀를 찼다.
뭐든 쌓고만 있으면 무너지는 법인데, 적당히 부대일을 나눠가지라고 했것만.
"다행인건 토벌한다는 방향에 이의는 없는거 같단거지. 저래봬도 판단은 확실히 하고 있는거야. 여기서 프마언니를 두둔하기라도 하면 연성부대는 이단으로 몰릴테니까."
그 뒤에서 에크네페가 튀어나왔다.
이번일에 도와줄 필요는 없다고 전했지만 개인적인 친분이지 부대 사이의 일은 아니라고 밀고 들어왔다.
백오 놀려먹는데에 1등공신이긴 하지만 그만큼 같이 다니는 일이 많은 여우였다.
그런 백오가 얼마나 프마언니를 따랐는지 모를리가 없었고 걱정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타부대의 일인데..하며 고민에 빠져있던 여우의 꼬리를 붙잡아 온건 에크네페였다.
힛부대도 연성부대도 아닌 친구의 일이라며 질질 끌고 오는 모습이 잠깐 연성부대의 음울한 분위기를 풀어준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것이다.
"이단? 우리가 한 일도 아니고 당한건데 왜 이단이에요?"
현상황을 잘 모르는 상습이는 당혹해선 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부대의 일이고 친하던 프마언니의 일이라고 준비하던 이번 토벌전 전투원들의 이야기를 염탐하러 왔다가 들켜 여기에 앉혀졌지만 아직 에오르제아에 익숙치 못한 상습이가 당황하는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원인이 뭐던간에 그쪽편으로 보여지면 안돼. 안그래도 우리는 위태로운 상황이니까. 힘을 축소시키고 싶다면 근사한 단어지, 이단은."
정말 악질이야.
아르의 푸념과 함께 새카만 요기가 넘실대듯 힘을 더했다.
"으윽.. 정말 독하네. 위치는 발견했어.. 그런데, 정말로 이 8명만으로 가는거야? 그다지 좁은 장소도 아니고 연합파티라도 문제없을텐데."
익숙치 않은 소환사의 소울크리스탈을 던져버리면서 텐더가 말했다.
소환사의 힘은 소환사가 더 잘 아는 법이다.
극만신에 익숙치는 않지만 돕고싶었던 텐더는 프마의 위치특정을 돕겠다고 손을 들었었다.
"고마워. 변질된 에테르라서 측정하기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해냈네."
살기등등한 눈으로 나갔던 백오가 한손으로 도끼를 들고 들어왔다.
한바탕 부대집 앞 나무인형에 화풀이를 하고 온것인지 꼬리끝까지 털이 바짝서고 송곳니는 날카로워져 있었다.
하지만 광폭화의 후유증을 남기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 눈은 침착하기 그지 없었다.
"전사로 가는건 아니지? 우리는 만전을 기해야해."
시간신의 찬미가를 읇조려주며 체셔쿤이 말하였다.
부족한 딜러자리를 채우기 위해 쌍검을 든 가루렌도 본직은 아니라지만 중요한 메인힐러 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
"그럴리가 없잖아. 나는 놀때랑 안놀때 정도는 구분하거든? 그냥.. 조금 답답한 기분을 풀려고 했을 뿐이야."
슬쩍 치켜든 지팡이와 함께 이프리트를 본뜬 새빨간 갑옷은 사라지고 그 얼굴을 까마귀가면으로 가린 백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서브탱커 자리는 하온님이 도와주기로 했어.."
그다지 탐탁치 않은 모습이었다.
이렇게 위험한 일에 도움을 청하고 싶진 않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이야기를 듣고 돕겠다고 나서주었다.
분명 엄청난 전력이 되겠지, 하지만 오지 않길 바랬는데.
"안녕하세요. 이미 다들 모여있었네요."
애써 연성부대의 침체를 지워보려는듯 밝게 웃어보이는 담하온을 보면서 백오는 그 앞에서 프마언니를 죽여야 한다는 것에 갑자기 부담감이 솟아올랐다.
항상 즐거운것만 같이 하길 바랬는데.
내가 동료였던 사람을 죽일 때에 과연 어떤 모습을 하는 걸까.
결과만 중시하던 백오에게 처음의 망설임이었다.
"자, 이제 다 모인것 같네.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있다는 보장은 없고 나도 한번 더는 못 할것같아. 어디까지나 학자니까 말이야.. 제촉하고 싶진 않지만 어서 출발하는게 좋을거야."
극심한 과부하에 망가져버린 에테르계측기를 우울하게 보면서 텐더가 말하였다.
빌렸던 물건이니 어떻게 변명해야할지 고민하는것 같았다.
"게다가 프마님은 본직이 소환사잖아? 역추적 정도는 가능할거라고. 설마라곤 생각하지만.. 이성까지 요마의 피에 잡아먹히지 않았다고 확증은 없으니까."
적극적으로 공격해 올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텐더는 연성부대원들에게 다짐시켰다.
"준비는 다 끝났지? 지금 가는 곳에 공략같은건 없어. 그리고 어떠한 정보도 없지. 하지만 끝은 하나야. 프마언니를 죽인다. 그것에 대해 각오가 없다면 지금 그만두는게 좋을거야."
백오는 위협을 섞어 파티원에게 말하였다.
전부 어떤 전장에서도 믿을만한 전우이지만 이번만은 특별했다.
실력만으론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러가는 것이다.
"뭐야, 백오. 내가 또 평소처럼 힐 하나도 안할거같아서 겁주는거야? 나도 할때는 한다고-."
그런거치곤 벌써 성전을 킨 파트너 힐러를 백오가 노려보았다.
그런 의미가 아닌걸 다 알고 있을텐데.
"에오르제아에 이런 일이 한두번도 아닌데, 뭘 걱정하고 그래?"
여우가 시시한듯 고개를 괴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맞아요. 물론 괴로운 일이긴 하지만.. 편하게 해주는 방법이기도 하잖아요..?"
긴장으로 빳빳히 굳은 백오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며 담하온이 말하였다.
주변도 잠깐 조용했던것뿐 어느새 손에 무기를 들고 농담을 하거나 떠들고 있었다.
일부러란걸 모르면 정말 이상한 부대일것이다.
아무도 우리가 동료를 죽이러 간다는건 모를만큼 웃음이 넘치고 있었다.
정말 시끄럽고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좋아. 이제 출발하자."
그러니까 백오는 거기에 응석부리기로 했다.
백오 자신이 힘든데 누군가를 챙길 여력은 없었기에 모두가 떠드는 와중에도 조용히 활을 다듬는 체셔구리를 모른척했다.
이것이 얼마나 자신의 책임을 방치하는것인지 앎에도 불구하고..
.
.
연성부대에 토벌하란 반강제 명이 내려오긴 했지만 사실 프피스토는 존재자체의 죄 이외에는 어떠한 죄도 짓지 않았다.
요기에 의해 불러모아지는 요마무리와 빨아드리는 어마어마한 에테르 이외에 어떤 해도 없는 요마를 울다하 사람들은 존재조차 모를것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요기가 흘러나온대도 참 느긋한 사람들이네."
"요기? 뭔가 기분나쁘긴한데.."
이질적인 힘에 표정을 찌뿌린 느르흐를 보면서 이러한 힘엔 서먹한 투사계열의 에크네페가 의아해했다.
아직 울다하 전체에 깔린 요기랑 별다른 밀도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텐더와 마찬가지로 소환사와 근본이 상통하는만큼 느르흐는 파티의 누구보다 일찍 깨달은 모양이었다.
"근데 왜 하필 울다하일까? 그것도 여기는.. 그다지 좋지 못한 끝이었는데."
에테르의 흔적을 추적해 모래의 집이 존재하전 저녁별 만에 도착한 모두는 이런 요기의 기운에도 여전히 장사 하고 있는 상인들을 보았다.
직접 시체를 수습한다는건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었고 그런것에 신경쓰지 않는다고해도 벽지의 이곳은 일부러 방문할 이유가 존재치 않는다면 보통 오지않는 곳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가는 방향은.. 그 칙칙하고 습기찬 동굴 안 아닌가? 그런한 장소에 어째서.."
걸으면서 고찰을 멈추지 않는 체셔구리의 목소리를 들으며 모두는 아무것도 변하지않은 주변을 살폈다.
전투가 일어난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은 좋은소식이자 모두에겐 나쁜소식이었다.
"프마는...내가 쏜 화살을 맞고 절벽에서 떨어졌어. 텐더님에게 추적을 부탁하기 전에 변질된 에테르의 흔적을 추출하기 위해 다시 간 절벽 아래에는 분명 대량의 피가 있었다."
"다행히 치유술이 강력해지진 않은 모양이네."
과거를 고찰하는 체셔구리의 말에 여우는 이것 다행이라고 적의 정보를 정리했다.
그렇다면 눈을 맞은 상처는 프피스토의 약점일것이다.
"다쳤다.. 그럼 왜 저런곳으로 간거지? 습한 환경은 상처에 좋지 않아."
목적이 불명해. 함정이라도 준비하는걸까?
이성이 있는 건가.
주민을 해치지않았다면 적의는 없다?
가설과 추측투성이의 고찰은 결론에 가까워질수록 모두의 마음에 커다란 돌덩어리를 내던지는것과 같았다.
무엇보다 주변의 환경이 증거였다.
적인 제국군조차 죽지 않고 정찰하고 있는 모습은 에테르 관측 결과가 아니라면 여기는 허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혹시.. 이성이 남아있다면.."
그땐 어떻게 할것임까..?
떨리는 목소리와 확장된 동공은 동료애가 깊은 가루렌의 동요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의 누구도 요기에 잡아먹힌 프피스토가 아직 시간이 지나지 않아 피해가 없었던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사역마도 아닌 요마가 사람에게 흉포함을 보이지 않은 사례는 없다.
"우리가.. 먼저 공격할 것임까..?"
결국은 우리가 죽이겠지만 아무도 공격해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프피스토를 상정하지 않았다.
"참 끝까지 바보같은 사람이네. 이성따위 놓아버렸다면 좋았을 텐데."
한탄이 섞인 아르의 말을 끝으로 모두의 의견은 일치했다.
프피스토는 몸과 에테르는 요마가 되버렸어도 이성만큼은 아직 잡아먹히지 않은 것이라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일 수 밖에 없다고.
"정말 끝까지 정떨어지는 녀석이야."
.
.
.
백오는 지극히 효율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동료애는 강함을 자부한다.
죽어도 부활 할 수 있는 에오르제아에서 스스로의 실수로 다쳐 죽기 직전의 딜러는 자연히 버려진다.
그것까지 멱살을 잡아올려 살려내는 무리한 힐업은 자주 주변에서 그럴필요 없다고 좀 더 비정해지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말하자면 백오는 요마에 잡아먹힌 프피스토를 돌려낼 방법을 찾아다녔었다.
정력과 요마의 힘은 상반되고 백마와 흑마의 전쟁역사만큼이나 기피되는 지식을 스스로 찾아 다니는 경험은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게다가 연성부대 대외적인 운영을 맡고 있는 백오가 집중적으로 마크되고 있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프마를 따라 가본곳이 처음인 이딜샤이어 장터의 고문서까지 전부 뒤진 끝에 만난 고블린은 굽신 거리며 백오에게 빌었었다.
"서로 거래로 맺어진 인연인만큼 그리 깊지는 않지만고브.. 그래도 같은 종족에게 박해받는 나에겐 친구였다고브."
귀를 잡아채진 경험 때문인지 짧은 팔을 뻗어 귀를 감싸안으면서도 그 고블린은 백오에게 간절히 바랬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들은 프피스토의 소문에 무서워하던 백오의 앞에 나타났다.
"너는 엄청 구두쇠라고 알고 있는데 애써 모은 책을 보여줘도 좋은거야?"
하나같이 금서지정에 가깝거나 금서인 요마에 관한 책들이었다.
펼치는것만으로 요마가 소환될거같은 소환서조차 있었다.
"상관없다고브. 이런건 팔지도 못하고 취미생활로 모은것뿐이다고브. 그러니까 꼭.."
하지만 그런 금서들조차도 프피스토를 돌려낼 방법은 없었다.
그러니까 이 파티에서 백오만큼은 이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에도 불구하고 목적을 잃지 않았다.
어쨋든 프피스토는 돌아올 방법이 없었다.
우리가 죽이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가 죽일 뿐..
"그게 뭐가 어쨋다고? 우린 죽여야만해.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이성이 있다는건 부가적인 사항이고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순 없다는거 알잖아."
백오가 큰 목소리로 어느새 주저않은 가루렌을 다그쳤다.
변하지 않는 현실에 바꿀 수 없는 과거, 지켜야 할 건 미래와 자신.
그리고 모두였다.
백오의 등에는 아주 무거운것들이 짊어져있었다.
거기에 무언가 하나가 추가되더라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시시한 동정으로 모두의 발목을 이끌 생각이야? 물론 동료였던 사람을 죽여야하는건 무섭고 힘든 일이지. 하지만 각오했잖아. 이제와서 무릎꿇는거야?"
이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백오의 펼친 팔 뒤에는 백오를 빼고 유일하게 태연해보이는 아르가유라나 뒤돌아서 표정은 안보이지만 무언갈 중얼거리며 여전히 고찰중인 체셔구리, 필사적으로 어떤거라도 좋으니 필요한 정보를 달라며 치유서를 뒤적이는 느르흐가 보였다.
대장이라는 이름 아래에 가루렌이 보호해야 할 동료들이었다.
이번 일이 실패하면 분명 연성부대는 해체되는건 당연하고 역적, 이단으로 몰려 평온한 일상은 과거의 꿈이 되겠지.
그리고 그 뒤로 안절부절 못하며 백오를 말려야하는지 고민중인 담하온, 무서운 표정으로 열변중인 에크네페와 미코테의 감정을 대변하는 꼬리조차 흔들지 않고 이야기하는 진지한 표정의 여우가 있었다.
친구를 돕는다고 찾아와준 가루렌의 소중한 지인들이었다.
부대간의 관계보단 친구라서 도우러왔다고 해줬지만 과정보단 언제나 결과인 냉혹함이 이러한 사실조차 덮어가려 이단까진 아니더라도 지탄을 받을것이다.
"힐러로써 사람 목숨가지고 효율을 따지라곤 하지 않겠어. 그런걸로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정말 그걸로 괜찮겠어?"
또 못지켜서 모험가를 그만둘 생각이야?
그렇게 후회하고 결국 다시 돌아왔으면서 다시 잘못을 반복할거야?
과거 한번 모험가를 그만뒀던 가루렌을 백오는 알고있다.
진심으로 후회하는 모습에 이 사람을 따라서 모험가가 될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더 잘못을 반복하는것은 백오는 용납 할 수 없었다.
이번에 희생될지 모르는 사람들은 백오가 모르는 누군가가 아닌 백오의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하.. 그렇슴다. 나에겐 지켜야 할 것들이 이렇게 많은걸 잠깐 잊어버렸슴다. 전부 제가 원해서 만든 관계였는데."
한순간이라도 전부 포기하면 안될까라고 생각해버렸다.
나이트였던만큼 튼튼한 몸이지만 마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지키기로했을때 그 마음도 철벽같아진다는 것을 백오는 알고 있다.
눈물을 벅벅 닦고 일어나는 가루렌의 손을 잡아주면서 백오는 진한 요기에 흠칫 반응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시뻘건 한쪽눈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