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드림/ㅁㅅㅋㅋ
(미사코코) 성격리버스-2
백오판다
2018. 4. 29. 12:14
계기라면, 울고 있는 아이를 보았던 것이 그 이유.
슬퍼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거라면, 차라리 즐겁게 만들어서 웃게해주자.
그렇게 된다면 분명 행복할거야.
.
코코로의 눈이 또르르 굴러간다.
재빠르게 도망친 분홍색 곰인형이 아직도 눈에 아른아른했다. 어떻게 그 무거워 보이는 걸 뒤집어 쓰고도 민첩했는지의 문제는 뒤로 넘겨두고 집으로 돌아와, 확실하게 추궁해보자고 생각한 어젯밤. 끝까지 모른 척 하던 기색을 보아 어떤 방식으로 찔러도 능글능글하게 피해갈 것 같았다. 검은옷 사람들에게 말을 해볼까~ 까지 생각했으나 기각. 편하겠지만 이 정도의 문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그 사람들에게 굳이 말하고 싶진 않았다. 물론 다 알고야 있겠지만.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계속 교실 문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검은 잔상을 눈으로 쫓았다. 얌전히 내려앉은 검은 머리카락, 단정한 얼굴하며 균형잡힌 신체. 또 누군가의 부탁을 받는 건지 이름 모를 동급생과 대화하는 그녀는 꽤 상냥한 얼굴이었다. 인기 많구나ㅡ 하고 깨달은 지 3분. 다른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감상만으로 눈을 돌리며 신경을 끌텐데, 그럼에도 여전히 눈을 굴리며 쫓고 있는 자기 시야에 코코로는 조금 기가 막혔다.
믿고 싶지 않았고 믿을 수도 없었지만 인정하자. 코코로는 오쿠사와 미사키를 의식하고 있었다. 나쁜 의미는 아닌채로.
그녀, 오쿠사와씨는 수업시간엔 착실한 모범생 같이 수업을 듣다가도 꾸벅꾸벅 졸고 쉬는시간만 되면 어디론가 사라지기 일수였다. 선생님의 프린트를 가져와 나눠주거나 반장 일지를 대신 써주거나 교실의 꽃병을 당번 대신 갈아주거나, 교실에 안 보인다 싶으면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다거나. 아침엔 오후 체육시간이 들어 있음에도 체육복까지 빌려주는 모습에선 당황스럽다 못해 감탄해버렸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정의를 내리자면 터무니 없는 호인, 나쁘게 말하면 여기저기 이용 당할 호구. 원래에도 여기저기 불려 다닌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모습은 어린아이의 동화책 같은 세계로 다짜고짜 끌고 간 미셸이라곤 생각할 수 없어.
어느새 놀러나간 오늘의 당번 대신 칠판 지우개를 털고 있는 모습을 미간을 찌푸리며 보고있던 코코로는 문득 고개를 돌린 미사키와 눈이 마주쳤다.
돌연 생각나는 아침 조회시간의 대화.
- 저기, 미셸. 어젠 잘 들어갔어?
- 응? 미셸이라니. 츠루마키씨, 내 이름은 미사키인데.
- ... ... 아예 모른 척 할 생각이야?
- 모른척이라니. 아, 미셸이라면... 상점가 마스코트가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네.
시원하게 내리꽂은 속구라고 생각했는데 번트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줄은. 코코로는 어제와는 다른 기묘한 괴리감과 몰래 보고 있던 걸 들킨 기분에 무심결에 고개를 휙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그리고 아차했다. 이렇게 싫어하는 모션을 취하려고 하던 건 아니었는데. 눈을 슬쩍 흘기면 이쪽으로 다가오려다 멈춘 듯한 발이 보였다. 상처 받았을까.
아침 안개가 쳐진 하늘빛. 그녀의 눈은 딱 그랬다. 힘 없는 눈꼬리가 희미하게 휘어졌었더랬다, 시선을 빗겨나가기 전에. 오늘 하루종일 보고 있었으니까 모두에게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 걸 알지만, 코코로는 분하게도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게다가 분명 발견한 게 확실한데 오쿠사와씨는 그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대신 조금 먼 거리에서.
" 츠루마키씨. "
" 응? "
" 지루해하고 있었어? "
아?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돌리면 그녀가 어색하게 볼을 긁적였다. 무해함이 덕지덕지 묻은 행동이다.
" 하지만 표정이 안 좋았는 걸."
" 착각인 걸. 지루해하고 있지 않았어. "
왜냐면, 당신을 관찰하고 있었는 걸. 겉으로 말하지 못한 속마음이 입속을 맴돌아 다시 들어갔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기울인 오쿠사와씨는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책상이 몇 개나 있는 조금 먼거리를 단번에 다가와 바로 앞에 선다. 빨라.
순식간에 다가온 오쿠사와씨는 어느샌가 뒤로 감추었던 손을 들어내 아기자기한 꽃잎이 들어있는 책갈피를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 ... 이건? "
" 츠루마키씨가 종종 책을 읽는 걸 봤어. "
아니, 그러니까 이걸 왜.
코코로는 책갈피를 내려다보았다. 노란색의 개나리, 분홍색 벚꽃, 푸른 녹음의 잎. 꼭 봄을 옮겨 놓은 것 같았다. 매끄러운 표면을 쓸어 손에 쥐고는 다시 오쿠사와씨를 올려다 보았다.
" 쉬는 시간은 짧고, 점심엔 밥을 먹어야 하니까. 책을 읽더라도 자주 끊기는 게 아닐까. 책갈피는 쓰지 않는 것 같았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더니 어느샌가 만들어져 있었어. "
" 어느샌가 만들어져 있었다니... 혹시 직접 만든 걸까? "
" 이상해? 손재주가 좋다는 얘기는 자주 들었는데. 으음, 역시 꽃잎을 좀 더 모아야 했어... 츠루마키씨는 이것보다 더 화사하고 아름다운데. 츠루마키씨 생각이 나서 하나씩 모으던 걸 넣은 거였거든. "
아.
" 아... 아니야, 맘에 들어. 정말 고마워. "
오쿠사와씨, 부가설명 너무 지나치다구요.
눈이 쨍하다. 분명 채도 낮은 계열의 빛깔일텐데.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코코로는 그 눈 가득 담긴 호의가 어쩐지 눈부셨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주면 거절하기 힘들지. 그저 책상 위에 펼쳐놓고만 있었던 책 위로 고이 책갈피를 놓았다.
" 정말, 잘 쓸게. 그런데... 왜 갑자기 주는거야? "
" 그야, 츠루마키씨가 기뻐해줬으면 했으니까... 깜짝 선물에 웃는 걸 보고 싶었어. 미안, 그 외에는 생각해둔 게 없네. "
읏. 오쿠사와씨, 이렇게 파고드는 사람이었어?
방어할 것도 없이 순식간에 들어오는 기습공격에 코코로는 말문이 막혔다. 어제까지랑은 너무 다르잖아. 분명, 분명 그거지? 그거 때문이지?
헬로 해피월드인가 뭔가! 그 하이텐션 인형탈이랑 캐릭터 뒤섞였어요, 오쿠사와씨! 아침엔 그렇게나 매정하게 회피해놓고 이제와 미셸처럼 행동하지 말라구.
깜짝 선물에 기뻐해서 웃는다니, 이 무슨 어린애 같은 발상이란 말인가. 역시 이상한 사람이다. 그러나 정말 그러면 좋겠다는 다정한 음색의 울림이 문제였다. 솔직하기 전해져오는 진심이 울렁였다. 들어본 적 없는 말은 묻고 싶었던 질문들과 예상답안 모범지가 이리저리 찢어지게 만들었고, 가벼운 패닉상태에 한동안 빠져있던 코코로는 쉬는시간 종료를 알리는 학교벨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오쿠사와씨는 옆자리에 앉아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있었다.
.
검고 둥들고 반짝이는 눈을 한, 웃고 있는 분홍곰.
미셸. 오쿠사와 미사키는 돈을 벌 겸 재밌을 것 같아서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이런 식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인형옷은 무겁고, 덥고, 움직이기도 힘들고, 심지어 말하기에도 벅찼다. 그치만 미사키는 웃는 얼굴을 좋아했다. 조금 우스꽝스럽고 힘들다고 하면 어때. 모두가 웃어주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아이들의 웃음소리, 왁자지껄 활기찬 시내, 걷고 있는 길은 그런것들로 가득 차 아름다워졌다. 눈이 부셔서 행복해졌다. 다 네 덕분이야, 미셸. 미사키는 인형탈의 이마에 제 이마를 조심스레 대었다. 네가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거야.
확실하게, 미셸은 오쿠사와 미사키로서는 힘들었을 선택지들을 단번에 끌어내어 보도블럭을 놓아버린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에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그럼에도 편한 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걸어가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 좋아, 갈까. "
서서히 자신감이 붙어가는 카논씨의 드럼, 앞서나가다가도 든든히 받쳐주는 하구미의 베이스, 톡톡히 시선을 끌어모으는 카오루씨의 기타, 독특한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자신의 디제잉.
완전체야.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기 전까진.
태양처럼 환히 녹아내린 목소리. 광활한 해바라기 밭을 모두 모아 담아낸다면 그러할까. 밤하늘의 유성우를 본다면 그런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으려나. 보컬 없이도 충분한 밴드란 생각은, 그녀의 흥얼거림을 들은 순간 깨어져 목이 매었다. 터무니 없는 자만이었다. 멜로디가 귀에서 떠나지 않아 언제까지고 머릿속에 맴돌았다. 뇌를 무자비하게 강타한 영감이었다.
오쿠사와 미사키는 츠루마키 코코로에게 반했다.
그건 사랑의 의미이기 이전에 독실한 신부의 종교와 같은 의미였다. 아니, 그게 사랑인가? 무엇이든 츠루마키씨가 아니면 안될 것 같아. 흘러나오는 흥얼거림은 환희이며, 가벼히 튀는 발음은 격정이었다. 통통 제멋대로 들리는 멜로디가 얼마나 즐거운지. 미사키는 모두가 웃기를 바랬고, 그 모두는 츠루마키 코코로도 포함되는 모두다. 그래도 싫어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츠루마키씨가 우울해하지 않았다면 영입의 영자도 꺼내지 못했겠지. 새롭고 즐거운 일을 해요, 저희와 부디.
막무가내 제안이었던 건 알지만 우리의 밴드로 당신 또한 웃어주면 좋겠어. 안에 아무도 없는 미셸에게 누군가를 향해 속삭인 미사키는 천천히 탈을 썻다.
츠루마키씨가 웃게 된다면 좋겠어. 카논씨도, 카오루씨도, 하구미도 모두.... 그리고 나도.
그럴 수 있다면 무엇인들 하지 못할까.
---------------
릴레이로 소설쓰기로 했습니다.
2편은 여우공책님이 써주셨어요.
@Fox_nullnote
슬퍼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거라면, 차라리 즐겁게 만들어서 웃게해주자.
그렇게 된다면 분명 행복할거야.
.
코코로의 눈이 또르르 굴러간다.
재빠르게 도망친 분홍색 곰인형이 아직도 눈에 아른아른했다. 어떻게 그 무거워 보이는 걸 뒤집어 쓰고도 민첩했는지의 문제는 뒤로 넘겨두고 집으로 돌아와, 확실하게 추궁해보자고 생각한 어젯밤. 끝까지 모른 척 하던 기색을 보아 어떤 방식으로 찔러도 능글능글하게 피해갈 것 같았다. 검은옷 사람들에게 말을 해볼까~ 까지 생각했으나 기각. 편하겠지만 이 정도의 문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그 사람들에게 굳이 말하고 싶진 않았다. 물론 다 알고야 있겠지만.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계속 교실 문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검은 잔상을 눈으로 쫓았다. 얌전히 내려앉은 검은 머리카락, 단정한 얼굴하며 균형잡힌 신체. 또 누군가의 부탁을 받는 건지 이름 모를 동급생과 대화하는 그녀는 꽤 상냥한 얼굴이었다. 인기 많구나ㅡ 하고 깨달은 지 3분. 다른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감상만으로 눈을 돌리며 신경을 끌텐데, 그럼에도 여전히 눈을 굴리며 쫓고 있는 자기 시야에 코코로는 조금 기가 막혔다.
믿고 싶지 않았고 믿을 수도 없었지만 인정하자. 코코로는 오쿠사와 미사키를 의식하고 있었다. 나쁜 의미는 아닌채로.
그녀, 오쿠사와씨는 수업시간엔 착실한 모범생 같이 수업을 듣다가도 꾸벅꾸벅 졸고 쉬는시간만 되면 어디론가 사라지기 일수였다. 선생님의 프린트를 가져와 나눠주거나 반장 일지를 대신 써주거나 교실의 꽃병을 당번 대신 갈아주거나, 교실에 안 보인다 싶으면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다거나. 아침엔 오후 체육시간이 들어 있음에도 체육복까지 빌려주는 모습에선 당황스럽다 못해 감탄해버렸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정의를 내리자면 터무니 없는 호인, 나쁘게 말하면 여기저기 이용 당할 호구. 원래에도 여기저기 불려 다닌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모습은 어린아이의 동화책 같은 세계로 다짜고짜 끌고 간 미셸이라곤 생각할 수 없어.
어느새 놀러나간 오늘의 당번 대신 칠판 지우개를 털고 있는 모습을 미간을 찌푸리며 보고있던 코코로는 문득 고개를 돌린 미사키와 눈이 마주쳤다.
돌연 생각나는 아침 조회시간의 대화.
- 저기, 미셸. 어젠 잘 들어갔어?
- 응? 미셸이라니. 츠루마키씨, 내 이름은 미사키인데.
- ... ... 아예 모른 척 할 생각이야?
- 모른척이라니. 아, 미셸이라면... 상점가 마스코트가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네.
시원하게 내리꽂은 속구라고 생각했는데 번트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줄은. 코코로는 어제와는 다른 기묘한 괴리감과 몰래 보고 있던 걸 들킨 기분에 무심결에 고개를 휙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그리고 아차했다. 이렇게 싫어하는 모션을 취하려고 하던 건 아니었는데. 눈을 슬쩍 흘기면 이쪽으로 다가오려다 멈춘 듯한 발이 보였다. 상처 받았을까.
아침 안개가 쳐진 하늘빛. 그녀의 눈은 딱 그랬다. 힘 없는 눈꼬리가 희미하게 휘어졌었더랬다, 시선을 빗겨나가기 전에. 오늘 하루종일 보고 있었으니까 모두에게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 걸 알지만, 코코로는 분하게도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게다가 분명 발견한 게 확실한데 오쿠사와씨는 그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대신 조금 먼 거리에서.
" 츠루마키씨. "
" 응? "
" 지루해하고 있었어? "
아?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돌리면 그녀가 어색하게 볼을 긁적였다. 무해함이 덕지덕지 묻은 행동이다.
" 하지만 표정이 안 좋았는 걸."
" 착각인 걸. 지루해하고 있지 않았어. "
왜냐면, 당신을 관찰하고 있었는 걸. 겉으로 말하지 못한 속마음이 입속을 맴돌아 다시 들어갔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기울인 오쿠사와씨는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책상이 몇 개나 있는 조금 먼거리를 단번에 다가와 바로 앞에 선다. 빨라.
순식간에 다가온 오쿠사와씨는 어느샌가 뒤로 감추었던 손을 들어내 아기자기한 꽃잎이 들어있는 책갈피를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 ... 이건? "
" 츠루마키씨가 종종 책을 읽는 걸 봤어. "
아니, 그러니까 이걸 왜.
코코로는 책갈피를 내려다보았다. 노란색의 개나리, 분홍색 벚꽃, 푸른 녹음의 잎. 꼭 봄을 옮겨 놓은 것 같았다. 매끄러운 표면을 쓸어 손에 쥐고는 다시 오쿠사와씨를 올려다 보았다.
" 쉬는 시간은 짧고, 점심엔 밥을 먹어야 하니까. 책을 읽더라도 자주 끊기는 게 아닐까. 책갈피는 쓰지 않는 것 같았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더니 어느샌가 만들어져 있었어. "
" 어느샌가 만들어져 있었다니... 혹시 직접 만든 걸까? "
" 이상해? 손재주가 좋다는 얘기는 자주 들었는데. 으음, 역시 꽃잎을 좀 더 모아야 했어... 츠루마키씨는 이것보다 더 화사하고 아름다운데. 츠루마키씨 생각이 나서 하나씩 모으던 걸 넣은 거였거든. "
아.
" 아... 아니야, 맘에 들어. 정말 고마워. "
오쿠사와씨, 부가설명 너무 지나치다구요.
눈이 쨍하다. 분명 채도 낮은 계열의 빛깔일텐데.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코코로는 그 눈 가득 담긴 호의가 어쩐지 눈부셨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주면 거절하기 힘들지. 그저 책상 위에 펼쳐놓고만 있었던 책 위로 고이 책갈피를 놓았다.
" 정말, 잘 쓸게. 그런데... 왜 갑자기 주는거야? "
" 그야, 츠루마키씨가 기뻐해줬으면 했으니까... 깜짝 선물에 웃는 걸 보고 싶었어. 미안, 그 외에는 생각해둔 게 없네. "
읏. 오쿠사와씨, 이렇게 파고드는 사람이었어?
방어할 것도 없이 순식간에 들어오는 기습공격에 코코로는 말문이 막혔다. 어제까지랑은 너무 다르잖아. 분명, 분명 그거지? 그거 때문이지?
헬로 해피월드인가 뭔가! 그 하이텐션 인형탈이랑 캐릭터 뒤섞였어요, 오쿠사와씨! 아침엔 그렇게나 매정하게 회피해놓고 이제와 미셸처럼 행동하지 말라구.
깜짝 선물에 기뻐해서 웃는다니, 이 무슨 어린애 같은 발상이란 말인가. 역시 이상한 사람이다. 그러나 정말 그러면 좋겠다는 다정한 음색의 울림이 문제였다. 솔직하기 전해져오는 진심이 울렁였다. 들어본 적 없는 말은 묻고 싶었던 질문들과 예상답안 모범지가 이리저리 찢어지게 만들었고, 가벼운 패닉상태에 한동안 빠져있던 코코로는 쉬는시간 종료를 알리는 학교벨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오쿠사와씨는 옆자리에 앉아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있었다.
.
검고 둥들고 반짝이는 눈을 한, 웃고 있는 분홍곰.
미셸. 오쿠사와 미사키는 돈을 벌 겸 재밌을 것 같아서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이런 식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인형옷은 무겁고, 덥고, 움직이기도 힘들고, 심지어 말하기에도 벅찼다. 그치만 미사키는 웃는 얼굴을 좋아했다. 조금 우스꽝스럽고 힘들다고 하면 어때. 모두가 웃어주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아이들의 웃음소리, 왁자지껄 활기찬 시내, 걷고 있는 길은 그런것들로 가득 차 아름다워졌다. 눈이 부셔서 행복해졌다. 다 네 덕분이야, 미셸. 미사키는 인형탈의 이마에 제 이마를 조심스레 대었다. 네가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거야.
확실하게, 미셸은 오쿠사와 미사키로서는 힘들었을 선택지들을 단번에 끌어내어 보도블럭을 놓아버린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에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그럼에도 편한 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걸어가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 좋아, 갈까. "
서서히 자신감이 붙어가는 카논씨의 드럼, 앞서나가다가도 든든히 받쳐주는 하구미의 베이스, 톡톡히 시선을 끌어모으는 카오루씨의 기타, 독특한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자신의 디제잉.
완전체야.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기 전까진.
태양처럼 환히 녹아내린 목소리. 광활한 해바라기 밭을 모두 모아 담아낸다면 그러할까. 밤하늘의 유성우를 본다면 그런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으려나. 보컬 없이도 충분한 밴드란 생각은, 그녀의 흥얼거림을 들은 순간 깨어져 목이 매었다. 터무니 없는 자만이었다. 멜로디가 귀에서 떠나지 않아 언제까지고 머릿속에 맴돌았다. 뇌를 무자비하게 강타한 영감이었다.
오쿠사와 미사키는 츠루마키 코코로에게 반했다.
그건 사랑의 의미이기 이전에 독실한 신부의 종교와 같은 의미였다. 아니, 그게 사랑인가? 무엇이든 츠루마키씨가 아니면 안될 것 같아. 흘러나오는 흥얼거림은 환희이며, 가벼히 튀는 발음은 격정이었다. 통통 제멋대로 들리는 멜로디가 얼마나 즐거운지. 미사키는 모두가 웃기를 바랬고, 그 모두는 츠루마키 코코로도 포함되는 모두다. 그래도 싫어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츠루마키씨가 우울해하지 않았다면 영입의 영자도 꺼내지 못했겠지. 새롭고 즐거운 일을 해요, 저희와 부디.
막무가내 제안이었던 건 알지만 우리의 밴드로 당신 또한 웃어주면 좋겠어. 안에 아무도 없는 미셸에게 누군가를 향해 속삭인 미사키는 천천히 탈을 썻다.
츠루마키씨가 웃게 된다면 좋겠어. 카논씨도, 카오루씨도, 하구미도 모두.... 그리고 나도.
그럴 수 있다면 무엇인들 하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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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로 소설쓰기로 했습니다.
2편은 여우공책님이 써주셨어요.
@Fox_null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