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드림/ㅁㅅㅋㅋ
미사코코)성격리버스-13
백오판다
2018. 5. 27. 19:13
입 밖으로 말을 꺼내고 갑자기 이거라면 오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같이 밤을 보낼래라니 집에 놀러오지 않을래도 아니고 오해할 여지가 너무 많은 단어선택에 스스로에게 당혹감을 느낀다.
"좋아! 하지만 우선 친구집에서 자고 간다고 어머니께 연락드려야겠어. 저녁에는 돌아간다고 말해놨었거든. 조금 기다려줄래?"
금방이라도 사라질것같은 흐릿한 그림자처럼 웃던 표정이 일변해서 함박웃음으로 가득 차버렸다.
말실수에 당황해서 굳어버린 내게 정정할 시간도 주지 않고 눈앞에서 전화하기 시작한 미사키는 동요하거나 망설이지도 않고 이 수상쩍은 제안을 수락해버렸다.
아직 사귀지도 않는데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받아들이는거야? 혹시 나만 이렇게 의식할뿐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은 말이었던걸까.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같이 밤을 보낼래는 이상하잖아?! 뭐라도 조금 물어보라고! 도대체 내가 물어보는대로 다 대답하는것도 이상하지만 왜 하나도 거절하지 않는건지..혹시 다른사람한테도 이러나? ..저 성격이면 그럴지도 몰라.."
카오루씨의 덧없는 라이브에 찬성표를 던지고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하구미가 미셸의 머리를 등반해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거나..
그러고보면 학교에서 반애들이 부탁하는것을 거절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그래도 이런..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미사키가 거절을 하는지 다 받아주는지 본적이 없으니까..애초에 내가 과도하게 해석할뿐 미사키는 평범하게 자고 가지 않을래?하는 친구사이의 제안으로 받아들였을지 모르고.
확실히 이쪽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 순간 안심함과 동시에 조금 아깝다는 기분이 들어서 스스로가 믿을 수 없었다.
"많이 기다렸지? 어머니께서 괜찮데. 그런데 왜 그렇게 노려보는거야? 내가 뭔가 잘못했어?"
"...아니. 잘못했다면 그건 나일지도..하아."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미소에 조금이라도 기대해버린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미사키에게 그럴의도는 아마 하나도 없겠지 쓸데없이 의식하는 내가 아니라면 친구가 놀러온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끝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백의 말도 할 수 없는 나도 아무렇지 않아야 한다는거니까 조금 실망한 기분을 내비치지 않고 친구집에 초대받아서 기쁘다는 기분을 전면에 내비치고 있는 미사키의 손을 잡아서 집으로 향한다.
이 와중에 손을 잡았다는거에 붉어지는 내 하얀피부가 원망스럽다.
항상 어딘가에서 대기하고 있는 SP에게 부탁하면 차를 타고 금방 저택에 도착할 수 있겠지만 느긋하게 천천히 미사키와 걸어서 돌아가는것은 언제라도 있는 기회는 아니니까 조금 욕심을 부리기로 했다.
도심의 별빛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을 바탕으로 가로등의 불빛에 그림자가 진 미사키의 뒷모습은 사라져 없어질것 같으니까 무심코 아까까지 잡고있었던 내 손보다 조금 큰 미사키의 손을 다시금 꽉 쥐었다.
뒤돌아보는 미사키의 눈은 지금이 새까맣게 어두운 밤이 아니라 밤과 새벽의 중간인 이른 아침의 시간이었더라면 진짜로 하늘에 녹아 사라졌을지 모른다고 생각할만큼 미사키의 눈동자에는 하늘이 새겨져있었다.
"코코로의 눈동자는 꼭 지금 하늘의 달빛을 담아놓은것 같아."
혹시 내 마음을 읽었나 싶을 정도의 타이밍으로 미사키가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갑작스런 찬사에 몸둘바를 모르게되어서 고개를 돌리면 내쪽에서 잡았던 손인데 도리어 미사키가 끌어 당겨서 시선을 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처음봤을때부터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어. 항상 지루한 표정인데도 흥얼거리는 콧노래나 창밖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빛나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하로하피에 끌어들인 지금이 너무 즐거워서 무심코 코코로에게는 응석을 부리는것 같아."
응석? 짐작이 가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돌연 설명도 없이 라이브를 하자고 하는 일은 지금도 가끔 있지만 그건 응석이라기보다 하로하피 활동 목적에 부합하는 일이니까 계속 밴드활동을 같이 하겠다고 정한 지금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응석이라고 할까.. 미사키에게 신세를 지는건 이쪽이 해야 할 말이 아닐까?
누군가에게 사양하지 않고 질문하거나 집에 초대하는 일 같은건 해본적이 없었다.
재력과 권위가 뒤따라붙는 츠루마키가의 차기 후계자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의도하지 않아도 상대에게 위압을 줘버려서 거절할 수 없게 만드니까 결국은 무엇을 말해도 강제적이 되버릴수 있다는게 너무 무겁게 다가왔었다.
"오히려 응석을 부리는건 내가 아닐까. 잔뜩 싫다고 했던 주제에 하로하피의 모두는 너를 돕고 싶어 한다느니 너같이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었으면 잔뜩 모순을 지적당했을거라고."
"나는.. 전혀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야 코코로."
의외롭게도 한번도 먼저 시선을 피한적이 없는 미사키가 고개는 커녕 몸전체를 돌려서 앞서 걸어갔다.
여전히 잡은 손은 놓지 않았지만 빠른 속도로 걷는 미사키를 뒤쫓는것만으로 힘에 부칠어서 그 얼굴을 보는 일은 할 수 없었다.
"나는 코코로가 생각하는것만큼 마냥 좋은 사람도 아니고 긍정적이기만 한것도 아니야. 상처도 받고 다른 누구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것도 있고 특별하다 여기는 사람도 있어."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너는 무슨 얼굴을 하고 있어?
어째서 내 앞에서 그렇게 폭력적일 정도로 솔직한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내가 바라는 둘만이 서로 세상에서 제일 특별할 수 있는 관계를 혹시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착각하게 하는 말을 계속 내뱉는건 기대해도 된다고 나를 안심시키려는거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가르쳐줘.
여러가지 생각이 빙빙 머릿속을 뒹굴어서 어느것도 꺼낼 수 없게 뒤엉켜서 혼란스러워졌다.
그런 내 마음을 대변하듯이 빠른 속도에 따라갈 수 없었던 내 발이 뒤엉켜서 휘청하고 앞으로 기울어졌다.
"미안. 미안해. 억지로 끌어당기면 안된다고 알고있는데.. 또 너한테 의지해버렸어. 왜 네 앞에서는 이렇게 충동적이 되버리는걸까."
넘어져서 바닥에 스친 무릎보다 내 앞에서 무릎꿇고 울고있는 너의 눈물이 신경쓰였다.
닦아주려고 다가가면 흠칫 무서워하는것처럼 뒤로 물러서는 네가 제일 경계하는건 스스로도 다칠정도로 제어하지 못하는 힘때문일까?
눈물을 닦는 대신에 나를 다치게 할까봐 막지도 못하는 너의 목에 감긴 초커를 낚아채서 떼어내버렸다.
"언제 생긴 자국이야 그거.. 왜 나에게 숨기고 있는거고."
"..걱정할까봐 그랬어. 정말 별거 아니야. 그냥.. 그냥 가끔 이렇게 무심코 힘을 주체 못할때는 있는데. 진심으로 목을 조른건 아니고.."
어머니가 준비해줬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가족도 알고있는 일이니까 조금 친할 타인일뿐인 나에게 참견할 자격이 없다는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상대가 이렇게 의도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목을 조른적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데 그런 와중에도 내가 걱정할까봐 숨겼다는게 슬퍼서 말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이런때마저도 타인과 같이 너를 나에게서 숨기려고 하지 말아달라고 하려면 내가 너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내가 너의 히어로라고 말하면서 왜 숨기려고 하는거야? 웃는 얼굴로 만들어주길 바라면 네가 그렇게 슬플 수 밖에 없는 이유라도 전부 나에게 보여줘야지. 제발 나한테만큼은 숨기지 말아줘.. 물어보기 전에 말하는걸 폐라고 생각하지 말아줘."
자신도 그럴 용기는 없으면서 미사키에게 요구하는게 얼마나 간사한 일인지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여튼 타인을 사랑한다는건 결국 소유욕이라든가 독점욕이 따를 수 밖에 없는 아주 이기적인 일이니까 말해버리기로 한 이상 나는 지금 이 순간은 세계에서 제일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로 했다.
받기 싫어하는 너에게 줄 수 있는걸 전부 떠안겨주고 주고싶어하기만 하는 너에게서 네 자신을 달라고 외쳐버릴거니까.
"왜.. 다들 지금까지 아무도 그렇게 말해준적이 없는데 코코로는 나를 웃는 얼굴로 만들려고 하는거야?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도 꿈을 같이 이뤄나갈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바보같은 생각이라고 나를 버리고 갔는데.. 그리고 누구보다도 내가 나 자신을 믿지 않는데.."
스스로의 목으로 가는 노력하고 땀흘려 거칠어진 손을 아무에게도 의지하지도 의지해지기도 싫어서 기피해온 깨끗하게 굳은살 하나 없는 내 손으로 잡아 멈춘다.
힘의 차이는 명확한데 상대를 상처주고 싶어하지 않는 미사키의 손은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여전히 눈물을 뚝뚝 흘리는 얼굴로 구제를 바라는.. 아니 자신을 희생 할 정도로 소중히 해 온 꿈을 부정당해와서 그것이 죄라고 생각해버리게 된 죄인의, 처단을 바라는 간절한 시선을 보내온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세상에서 제일 이기적인 사람이라서 다른 누구보다도 내 눈앞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소중했다.
"미사키가 바란다면 미사키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언제라도 세상을 웃는 얼굴로 가득 채운다는 터무니없는 소원을 진심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할거야. 무엇을 바라든지 그게 진짜라고 믿을 수 있고 전력으로 이루려고 할 자신이 있어. 이래봬도 바라지 않았지만 재력이나 권력은 넘치도록 가지고 있으니까 바보같은 일도 해낼 수 있다구?"
이미 사랑이란 독에 침범 당해서 이제까지 한번도 꺼려져서 해본적 없는 억지를 SP에게 명령한적도 있으니까 이제와서 고민할것도 없는 사실만을 전했다.
타인의 감정이 무엇인지는 모르면서 직시해버리는 미사키의 앞에서 거짓말은 오해만을 부르고 그랬다가는 일생일대의 고백 전부가 엉망으로 되버릴테니까 나는 지금 정말 필사적이었다.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일을 한다는건 정신력 심신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지 말을 하는것 뿐인데 숨이 차오른다.
그래도 밴드의 보컬을 하고 있는데 한심한 폐활량에 한숨이 나올뻔한다.
"그러니까 나는 미사키 네가 너를 사랑하는것보다 더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거야. 내가 가진 무엇을 줘도 상관없다고 생각할만큼.. 네 바보같은 꿈보다 더 바보같을지도 모르지만.."
기세좋게 말해버린거치고 끝이 얼버무리듯 끝난 고백에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이래서 단숨에 말해버릴려고 했는데 숨이 차서 중간에 멈춘 바람에 그 사이에 조금 식어버린 머리에 돌아온 이성이 소중한 사람이 스스로를 아끼지 않는다는 분함보다 부끄러움이 이겨버렸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넘어진 자세 그대로인 나는 말하는건 순전히 재력과 권력에 취해 오만한 아가씨인것 같은 말인데 나보다 키가 조금 큰 미사키를 올려다보면서 말하니까 하나도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애절하달까 필사적인 표정까지 합해져서 애걸하는 모양새가 심히 볼품없어 보일것 같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어가고 싶어진다..
"코코로가 이렇게 정열적인 고백을 해줄줄은 몰랐어.. 하게 된다면 내가 말하게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감격에 찬 목고리가 자책에 몰린 나의 귓가에 맴돌았다.
나보다 조금 높은 체온이 담뿍 안겨들어와서 그 무게에 뒤로 넘어질뻔 했지만 든든한 손이 머리를 받쳐 안아주었다.
"..그, 그게 무슨 뜻이야? 미사키도 나를 좋아한다는거야?"
꼬옥 안겨서 느껴지는 온기에 녹아버릴것 같은 기분에도 확실한 둘만의 연결을 느끼고 싶었다.
미사키의 입으로 토해낸 말을 듣고 싶었다.
"어라, 한번도 말하지 않았나? 오늘 코코로를 권한것도 밴드에 들어오길 바란것도 모두 내가 코코로를 다른 어떤 사람보다 특별하게 여겼기 때문이야. 그런 기분을 사랑이라고 말하는게 아닐까?"
거의 포기하고 있었던 꿈과 같은 전개가 눈앞에서 펼쳐지는것 같았다.
전심전령을 건 고백이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미사키라면 이런 심장을 강타하는 확답은 받을 수 없을거라고 미리 포기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한 미사키의 두눈에 흐르는 애정을 직접적으로 느껴서 어떤 귀중한 보물을 얻더라도 느끼지 못할 행복이 저절로 나를 웃게 만들었다.
"그럼.. 미사키는 처음부터 나를 좋아했다는거지? 이건 착각이라던가 오해같은게 아니지? 그런 기분을 가지고 같이 밤을 보내자는 말에 허락을 한거잖아?"
오해의 여지가 충분하다못해 넘쳐흐를 말에 흔쾌히 허락한 미사키가 오해도 착각도 아니고 진짜로 그럴 의도로 말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꽉 가슴을 두근거리며 조이게 만들었다.
초조감과 기대감이 뒤섞여서 당장이라도 그 입술에 입맞추고 싶었다.
누가 지나갈지 모르는 인도의 한가운데에 꿇어 앉은 나와 내려보는 미사키는 분명 누가 보더라도 이상한 광경이겠지만 지금 이 황홀하게 나를 매혹하는 행복감에 찬 순간만큼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쓰이지도 않았다.
그저 미사키의 얇은 입에서 나올 긍정의 답을 애타게 그리는 눈은 열정적이게 빛나고 있었다.
"코코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도 내가 코코로에게 거부 할 제안같은건 존재하지 않아. 무슨 말을해도 전부 들어주고 싶을거야. 전부 주고 싶을거야. 코코로가 나에게 주고싶은 마음만큼 나도 코코로에게 주고 싶어. 이걸로는..전해지지 않는걸까?"
눈물이 나올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다 말실수에서 시작되었지만 확실한 허락이 내려진 지금은 차라리 오해받은게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몇걸음도 남지 않은 저택까지의 여정이 정말 길게 느껴져서 역시 SP에게 부탁해서 차를 타고 이동하는게 나은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분명 지금처럼 미사키와 서로 사랑을 이야기하고 연인사이가 되어서 손을 꽉 잡고 걷는 일 없이 저택에 도착해도 꿈같은 밤을 보내기보다 그저 친구가 집에서 자고가는 평범한 하루가 되었겠지만 사람은 역시 가져도 가져도 끝없는 욕심쟁이인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코코로의 집에 오게 되서 갈아입을 옷같은게 없는데.."
곤란한 얼굴의 미사키가 혹시라도 그런 이유로 집에 돌아간다고 이야기할까봐 얼른 SP에게 이미 준비시켰다는 말을 해줬다.
긴장감으로 끈적한 땀이 흐르는것 같은 손이 미사키에게 들키진 않았을까 신경쓰이지만 잡은 손을 도착할때까지 놓아줄 생각이 없어보이고 땀흘린 손이 싫지않다면 나도 놓고싶지는 않았다.
"코코로네 집은 엄청나게 넓네. 분수가 있는 정원이 있다니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저택이야. 대단한걸?"
"봄에는 온통 벚꽃이 펴서 정말 아름다워. 내년 봄에는 같이 꽃놀이를 할까?"
"그것도 좋겠다. 모두 즐거워할거야."
실없는 이야기를 하는것만으로 행복으로 가득채워지지만 이후에 있을 일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않고 얼굴이 붉어지는것 같아서 가로등의 빛에 속여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쪽을 보고 활짝 웃는 미사키가 내 새빨간 얼굴을 눈치채고 웃는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마찬가지로 가로등의 빛에 물들어버린 미사키의 얼굴도 매우 발갛게 익은듯이 보였다.
같이 밤을 보낼래라니 집에 놀러오지 않을래도 아니고 오해할 여지가 너무 많은 단어선택에 스스로에게 당혹감을 느낀다.
"좋아! 하지만 우선 친구집에서 자고 간다고 어머니께 연락드려야겠어. 저녁에는 돌아간다고 말해놨었거든. 조금 기다려줄래?"
금방이라도 사라질것같은 흐릿한 그림자처럼 웃던 표정이 일변해서 함박웃음으로 가득 차버렸다.
말실수에 당황해서 굳어버린 내게 정정할 시간도 주지 않고 눈앞에서 전화하기 시작한 미사키는 동요하거나 망설이지도 않고 이 수상쩍은 제안을 수락해버렸다.
아직 사귀지도 않는데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받아들이는거야? 혹시 나만 이렇게 의식할뿐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은 말이었던걸까.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같이 밤을 보낼래는 이상하잖아?! 뭐라도 조금 물어보라고! 도대체 내가 물어보는대로 다 대답하는것도 이상하지만 왜 하나도 거절하지 않는건지..혹시 다른사람한테도 이러나? ..저 성격이면 그럴지도 몰라.."
카오루씨의 덧없는 라이브에 찬성표를 던지고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하구미가 미셸의 머리를 등반해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거나..
그러고보면 학교에서 반애들이 부탁하는것을 거절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그래도 이런..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미사키가 거절을 하는지 다 받아주는지 본적이 없으니까..애초에 내가 과도하게 해석할뿐 미사키는 평범하게 자고 가지 않을래?하는 친구사이의 제안으로 받아들였을지 모르고.
확실히 이쪽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 순간 안심함과 동시에 조금 아깝다는 기분이 들어서 스스로가 믿을 수 없었다.
"많이 기다렸지? 어머니께서 괜찮데. 그런데 왜 그렇게 노려보는거야? 내가 뭔가 잘못했어?"
"...아니. 잘못했다면 그건 나일지도..하아."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미소에 조금이라도 기대해버린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미사키에게 그럴의도는 아마 하나도 없겠지 쓸데없이 의식하는 내가 아니라면 친구가 놀러온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끝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백의 말도 할 수 없는 나도 아무렇지 않아야 한다는거니까 조금 실망한 기분을 내비치지 않고 친구집에 초대받아서 기쁘다는 기분을 전면에 내비치고 있는 미사키의 손을 잡아서 집으로 향한다.
이 와중에 손을 잡았다는거에 붉어지는 내 하얀피부가 원망스럽다.
항상 어딘가에서 대기하고 있는 SP에게 부탁하면 차를 타고 금방 저택에 도착할 수 있겠지만 느긋하게 천천히 미사키와 걸어서 돌아가는것은 언제라도 있는 기회는 아니니까 조금 욕심을 부리기로 했다.
도심의 별빛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을 바탕으로 가로등의 불빛에 그림자가 진 미사키의 뒷모습은 사라져 없어질것 같으니까 무심코 아까까지 잡고있었던 내 손보다 조금 큰 미사키의 손을 다시금 꽉 쥐었다.
뒤돌아보는 미사키의 눈은 지금이 새까맣게 어두운 밤이 아니라 밤과 새벽의 중간인 이른 아침의 시간이었더라면 진짜로 하늘에 녹아 사라졌을지 모른다고 생각할만큼 미사키의 눈동자에는 하늘이 새겨져있었다.
"코코로의 눈동자는 꼭 지금 하늘의 달빛을 담아놓은것 같아."
혹시 내 마음을 읽었나 싶을 정도의 타이밍으로 미사키가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갑작스런 찬사에 몸둘바를 모르게되어서 고개를 돌리면 내쪽에서 잡았던 손인데 도리어 미사키가 끌어 당겨서 시선을 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처음봤을때부터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어. 항상 지루한 표정인데도 흥얼거리는 콧노래나 창밖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빛나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하로하피에 끌어들인 지금이 너무 즐거워서 무심코 코코로에게는 응석을 부리는것 같아."
응석? 짐작이 가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돌연 설명도 없이 라이브를 하자고 하는 일은 지금도 가끔 있지만 그건 응석이라기보다 하로하피 활동 목적에 부합하는 일이니까 계속 밴드활동을 같이 하겠다고 정한 지금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응석이라고 할까.. 미사키에게 신세를 지는건 이쪽이 해야 할 말이 아닐까?
누군가에게 사양하지 않고 질문하거나 집에 초대하는 일 같은건 해본적이 없었다.
재력과 권위가 뒤따라붙는 츠루마키가의 차기 후계자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의도하지 않아도 상대에게 위압을 줘버려서 거절할 수 없게 만드니까 결국은 무엇을 말해도 강제적이 되버릴수 있다는게 너무 무겁게 다가왔었다.
"오히려 응석을 부리는건 내가 아닐까. 잔뜩 싫다고 했던 주제에 하로하피의 모두는 너를 돕고 싶어 한다느니 너같이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었으면 잔뜩 모순을 지적당했을거라고."
"나는.. 전혀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야 코코로."
의외롭게도 한번도 먼저 시선을 피한적이 없는 미사키가 고개는 커녕 몸전체를 돌려서 앞서 걸어갔다.
여전히 잡은 손은 놓지 않았지만 빠른 속도로 걷는 미사키를 뒤쫓는것만으로 힘에 부칠어서 그 얼굴을 보는 일은 할 수 없었다.
"나는 코코로가 생각하는것만큼 마냥 좋은 사람도 아니고 긍정적이기만 한것도 아니야. 상처도 받고 다른 누구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것도 있고 특별하다 여기는 사람도 있어."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너는 무슨 얼굴을 하고 있어?
어째서 내 앞에서 그렇게 폭력적일 정도로 솔직한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내가 바라는 둘만이 서로 세상에서 제일 특별할 수 있는 관계를 혹시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착각하게 하는 말을 계속 내뱉는건 기대해도 된다고 나를 안심시키려는거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가르쳐줘.
여러가지 생각이 빙빙 머릿속을 뒹굴어서 어느것도 꺼낼 수 없게 뒤엉켜서 혼란스러워졌다.
그런 내 마음을 대변하듯이 빠른 속도에 따라갈 수 없었던 내 발이 뒤엉켜서 휘청하고 앞으로 기울어졌다.
"미안. 미안해. 억지로 끌어당기면 안된다고 알고있는데.. 또 너한테 의지해버렸어. 왜 네 앞에서는 이렇게 충동적이 되버리는걸까."
넘어져서 바닥에 스친 무릎보다 내 앞에서 무릎꿇고 울고있는 너의 눈물이 신경쓰였다.
닦아주려고 다가가면 흠칫 무서워하는것처럼 뒤로 물러서는 네가 제일 경계하는건 스스로도 다칠정도로 제어하지 못하는 힘때문일까?
눈물을 닦는 대신에 나를 다치게 할까봐 막지도 못하는 너의 목에 감긴 초커를 낚아채서 떼어내버렸다.
"언제 생긴 자국이야 그거.. 왜 나에게 숨기고 있는거고."
"..걱정할까봐 그랬어. 정말 별거 아니야. 그냥.. 그냥 가끔 이렇게 무심코 힘을 주체 못할때는 있는데. 진심으로 목을 조른건 아니고.."
어머니가 준비해줬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가족도 알고있는 일이니까 조금 친할 타인일뿐인 나에게 참견할 자격이 없다는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상대가 이렇게 의도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목을 조른적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데 그런 와중에도 내가 걱정할까봐 숨겼다는게 슬퍼서 말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이런때마저도 타인과 같이 너를 나에게서 숨기려고 하지 말아달라고 하려면 내가 너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내가 너의 히어로라고 말하면서 왜 숨기려고 하는거야? 웃는 얼굴로 만들어주길 바라면 네가 그렇게 슬플 수 밖에 없는 이유라도 전부 나에게 보여줘야지. 제발 나한테만큼은 숨기지 말아줘.. 물어보기 전에 말하는걸 폐라고 생각하지 말아줘."
자신도 그럴 용기는 없으면서 미사키에게 요구하는게 얼마나 간사한 일인지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여튼 타인을 사랑한다는건 결국 소유욕이라든가 독점욕이 따를 수 밖에 없는 아주 이기적인 일이니까 말해버리기로 한 이상 나는 지금 이 순간은 세계에서 제일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로 했다.
받기 싫어하는 너에게 줄 수 있는걸 전부 떠안겨주고 주고싶어하기만 하는 너에게서 네 자신을 달라고 외쳐버릴거니까.
"왜.. 다들 지금까지 아무도 그렇게 말해준적이 없는데 코코로는 나를 웃는 얼굴로 만들려고 하는거야?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도 꿈을 같이 이뤄나갈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바보같은 생각이라고 나를 버리고 갔는데.. 그리고 누구보다도 내가 나 자신을 믿지 않는데.."
스스로의 목으로 가는 노력하고 땀흘려 거칠어진 손을 아무에게도 의지하지도 의지해지기도 싫어서 기피해온 깨끗하게 굳은살 하나 없는 내 손으로 잡아 멈춘다.
힘의 차이는 명확한데 상대를 상처주고 싶어하지 않는 미사키의 손은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여전히 눈물을 뚝뚝 흘리는 얼굴로 구제를 바라는.. 아니 자신을 희생 할 정도로 소중히 해 온 꿈을 부정당해와서 그것이 죄라고 생각해버리게 된 죄인의, 처단을 바라는 간절한 시선을 보내온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세상에서 제일 이기적인 사람이라서 다른 누구보다도 내 눈앞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소중했다.
"미사키가 바란다면 미사키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언제라도 세상을 웃는 얼굴로 가득 채운다는 터무니없는 소원을 진심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할거야. 무엇을 바라든지 그게 진짜라고 믿을 수 있고 전력으로 이루려고 할 자신이 있어. 이래봬도 바라지 않았지만 재력이나 권력은 넘치도록 가지고 있으니까 바보같은 일도 해낼 수 있다구?"
이미 사랑이란 독에 침범 당해서 이제까지 한번도 꺼려져서 해본적 없는 억지를 SP에게 명령한적도 있으니까 이제와서 고민할것도 없는 사실만을 전했다.
타인의 감정이 무엇인지는 모르면서 직시해버리는 미사키의 앞에서 거짓말은 오해만을 부르고 그랬다가는 일생일대의 고백 전부가 엉망으로 되버릴테니까 나는 지금 정말 필사적이었다.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일을 한다는건 정신력 심신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지 말을 하는것 뿐인데 숨이 차오른다.
그래도 밴드의 보컬을 하고 있는데 한심한 폐활량에 한숨이 나올뻔한다.
"그러니까 나는 미사키 네가 너를 사랑하는것보다 더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거야. 내가 가진 무엇을 줘도 상관없다고 생각할만큼.. 네 바보같은 꿈보다 더 바보같을지도 모르지만.."
기세좋게 말해버린거치고 끝이 얼버무리듯 끝난 고백에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이래서 단숨에 말해버릴려고 했는데 숨이 차서 중간에 멈춘 바람에 그 사이에 조금 식어버린 머리에 돌아온 이성이 소중한 사람이 스스로를 아끼지 않는다는 분함보다 부끄러움이 이겨버렸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넘어진 자세 그대로인 나는 말하는건 순전히 재력과 권력에 취해 오만한 아가씨인것 같은 말인데 나보다 키가 조금 큰 미사키를 올려다보면서 말하니까 하나도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애절하달까 필사적인 표정까지 합해져서 애걸하는 모양새가 심히 볼품없어 보일것 같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어가고 싶어진다..
"코코로가 이렇게 정열적인 고백을 해줄줄은 몰랐어.. 하게 된다면 내가 말하게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감격에 찬 목고리가 자책에 몰린 나의 귓가에 맴돌았다.
나보다 조금 높은 체온이 담뿍 안겨들어와서 그 무게에 뒤로 넘어질뻔 했지만 든든한 손이 머리를 받쳐 안아주었다.
"..그, 그게 무슨 뜻이야? 미사키도 나를 좋아한다는거야?"
꼬옥 안겨서 느껴지는 온기에 녹아버릴것 같은 기분에도 확실한 둘만의 연결을 느끼고 싶었다.
미사키의 입으로 토해낸 말을 듣고 싶었다.
"어라, 한번도 말하지 않았나? 오늘 코코로를 권한것도 밴드에 들어오길 바란것도 모두 내가 코코로를 다른 어떤 사람보다 특별하게 여겼기 때문이야. 그런 기분을 사랑이라고 말하는게 아닐까?"
거의 포기하고 있었던 꿈과 같은 전개가 눈앞에서 펼쳐지는것 같았다.
전심전령을 건 고백이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미사키라면 이런 심장을 강타하는 확답은 받을 수 없을거라고 미리 포기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한 미사키의 두눈에 흐르는 애정을 직접적으로 느껴서 어떤 귀중한 보물을 얻더라도 느끼지 못할 행복이 저절로 나를 웃게 만들었다.
"그럼.. 미사키는 처음부터 나를 좋아했다는거지? 이건 착각이라던가 오해같은게 아니지? 그런 기분을 가지고 같이 밤을 보내자는 말에 허락을 한거잖아?"
오해의 여지가 충분하다못해 넘쳐흐를 말에 흔쾌히 허락한 미사키가 오해도 착각도 아니고 진짜로 그럴 의도로 말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꽉 가슴을 두근거리며 조이게 만들었다.
초조감과 기대감이 뒤섞여서 당장이라도 그 입술에 입맞추고 싶었다.
누가 지나갈지 모르는 인도의 한가운데에 꿇어 앉은 나와 내려보는 미사키는 분명 누가 보더라도 이상한 광경이겠지만 지금 이 황홀하게 나를 매혹하는 행복감에 찬 순간만큼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쓰이지도 않았다.
그저 미사키의 얇은 입에서 나올 긍정의 답을 애타게 그리는 눈은 열정적이게 빛나고 있었다.
"코코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도 내가 코코로에게 거부 할 제안같은건 존재하지 않아. 무슨 말을해도 전부 들어주고 싶을거야. 전부 주고 싶을거야. 코코로가 나에게 주고싶은 마음만큼 나도 코코로에게 주고 싶어. 이걸로는..전해지지 않는걸까?"
눈물이 나올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다 말실수에서 시작되었지만 확실한 허락이 내려진 지금은 차라리 오해받은게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몇걸음도 남지 않은 저택까지의 여정이 정말 길게 느껴져서 역시 SP에게 부탁해서 차를 타고 이동하는게 나은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분명 지금처럼 미사키와 서로 사랑을 이야기하고 연인사이가 되어서 손을 꽉 잡고 걷는 일 없이 저택에 도착해도 꿈같은 밤을 보내기보다 그저 친구가 집에서 자고가는 평범한 하루가 되었겠지만 사람은 역시 가져도 가져도 끝없는 욕심쟁이인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코코로의 집에 오게 되서 갈아입을 옷같은게 없는데.."
곤란한 얼굴의 미사키가 혹시라도 그런 이유로 집에 돌아간다고 이야기할까봐 얼른 SP에게 이미 준비시켰다는 말을 해줬다.
긴장감으로 끈적한 땀이 흐르는것 같은 손이 미사키에게 들키진 않았을까 신경쓰이지만 잡은 손을 도착할때까지 놓아줄 생각이 없어보이고 땀흘린 손이 싫지않다면 나도 놓고싶지는 않았다.
"코코로네 집은 엄청나게 넓네. 분수가 있는 정원이 있다니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저택이야. 대단한걸?"
"봄에는 온통 벚꽃이 펴서 정말 아름다워. 내년 봄에는 같이 꽃놀이를 할까?"
"그것도 좋겠다. 모두 즐거워할거야."
실없는 이야기를 하는것만으로 행복으로 가득채워지지만 이후에 있을 일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않고 얼굴이 붉어지는것 같아서 가로등의 빛에 속여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쪽을 보고 활짝 웃는 미사키가 내 새빨간 얼굴을 눈치채고 웃는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마찬가지로 가로등의 빛에 물들어버린 미사키의 얼굴도 매우 발갛게 익은듯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