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뷰스타

(히카렌)falling twinkle

백오판다 2019. 10. 7. 09:01



"최종 오디션 비극의 레뷰를 시작합니다."

분명히 이겼을텐데..두명이서 제일 반짝였었을터인데..무언가 이상했다.

"톱스타가 되기 위해"

치솟는 무대장치와 함께 들려오는 기린의 목소리..히카리는 거기에 담겨있는 자신의 운명과 미래에 대한 절망보다 눈 앞의 현상에대해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노래하고 춤추고"

방금까지만 해도 드디어 두명이 이겨서 톱스타가 될 수 있다고 들뜬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온 카렌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

"경쟁합시다."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꾹 다물려진 입술..

"..카렌?"

"역시 오디션의 합격자는 단 한명뿐."

순식간에 사람이 달라진듯한 위화감의 결정체.

"둘이 함께는 스타가 될 수 없어."

그날. 스스로 말했던것을 전 부정하는 모순 가득한 말.

"고마웠어. 히카리짱. 날 믿어줘서. 여기까지 와줘서.. 히카리짱이 있어서 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평소의 카렌이 아니다.

히카리는 눈 앞의 절대 착각 할 리 없는 운명의 상대가 정말로 카렌인지 믿을 수 없었다.

"정말로, 정말로 나는 히카리짱과 두명이서 스타라이트 하고 싶었어."

몇번이고 들었던 맹세와도 같은 말.

하지만 어째서? 어째서 지금 카렌은 과거형으로 말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이제 누구도 잃고 싶지 않아."

번쩍 고개를 든 카렌은 결의에 찬듯한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이제 내가 지켜줄 차례야."

선언과 함께 휘둘러지는 검과 허공으로 튕겨지는 스스로의 몸, 저 높이 솟구치는 별을 담은 단추.

바닥으로 떨어지는 와중에도 믿을 수 없었다.

"안녕, 히카리짱..안녕, 나의 운명.."

눈을 꾹 감은 카렌이 휙 등을 돌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깊은 물 속에 가라앉으며 서서히 시야가 닫혀가는 히카리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반짝임을 빼앗는게 카렌이라면.. 어쩐지 배신당했다는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어차피 카렌과의 운명의 교환으로 연명된 무대소녀으로써의 삶이었으니 네가 바라면 돌려주어야지..다만 한가지 신경쓰이는게 있다면..


...


주역과 주연이 정해지고부터 본격적으로 모두 제 100회 스타라이트를 준비하느라 바빠졌다.

각본은 세세한 부분에 수정을 걸치고 의상은 배우들의 수치에 맞게 새로 만들고..B반 아이들은 매일의 바쁨에 비명을 지를 정도이다.

물론 그것은 카렌이 사라지고 혼란스럽던 A반도 다르지 않다.

배역이 나눠지기 전에는 대충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역할이 정해지면 좀 더 연습해야 할 부분이 명확해지는 법이니까.

그런 바쁘고 어지러워지는 일정에 기대어 모두는 카렌의 빈공간을 채워담으려는듯 연습에 열을 올렸다.

주역의 1인인 히카리는 그렇게 잊으려고 노력하며 다소 냉정해지고서야 이 상황에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카렌이 무슨 무대를 바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날 그자리에서 카렌은 어디에도 없었다는듯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 누구의 반짝임도 빼앗지 않고. 스스로가 말했듯이 아무도 잃지 않게.

이상한 일이었다. 카렌은 모를게 분명했는데.

이 오디션의 진정한 목적. 승자가 모두의 반짝임을 빼앗는 무대소녀로써의 목숨이 달린 데스매치.

"사라지지 않았어...아니, 늘어났어..?"

그 꺼림칙한 오디션의 무대가 아니라면 반짝임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음에도 동일하다.

하지만 잃어버렸던 빈 공간을 알고있는 히카리에게만은 그 차이가 명확하게 느껴졌다.

착각이 아니라면 나뿐만 아니라.. 그 오디션에 참여했던 모두는 그날로부터 서서히 반짝임을 늘려가는것처럼 보였다.

세이쇼제가 다가오면서 다들 한층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나날의 노력만으로는 설명 할 수 없는 무언가가.. 히카리에게만은 보이고 있었다.

"고민이 많아 보이네, 히카리짱."

대본을 든 채로 굳어있는 히카리에게 나나가 웃으며 다가왔다.

원래로부터 주변을 잘 살펴보는 타입인 나나는 마히루와 함께 카렌이 사라진 뒤에 히카리를 신경써주는측이었다.

"그저..조금 카렌이 걱정 될 뿐이야."

신경쓰고 있던것과는 다른 말이었지만 이것도 또한 사실이었다.

사라져버린 카렌을 걱정하는건 히카리 뿐이 아니었고 마히루도 쥰나도 교무실은 커녕 카렌의 친가에 전화까지 걸어보았지만 소득은 제로.

정말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듯이 카렌은 그날 사라져버렸다.

자신이 제일 충격 받았을거라고 생각하는 히카리도 놀랄만큼 카렌은 99기생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활기차고 밝은 분위기 메이커. 갑자기 사라지면 동요하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찾아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 상황에 모두는 지쳐버렸다. 7개월은 그만큼 긴 시간이었다.

"응, 응. 알고있어. ...카렌짱, 정말로 어디에 가버린걸까..."

뭐든 알고 있다는듯 웃음짓던 나나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의 무력함을 체감했는지 히카리나 마히루를 위로하다가도 문득 생각에 빠진 모습을 하곤 했다.

나나는 비교적 냉정하게 상황을 정리했었다.

마히루와 히카리를 위로하고. 자책하는 쥰나를 북돋우고. 자신이 카렌을 대신해 분위기 메이커가 되려고 억지로 밝은 행동을 하기도 했었다. 어딘가 책임감을 느끼는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로 어떻게 되버린걸까. 이번 재연...누군가, 나와는 다른 사람이 반복하기를 바랬던걸까..?"

작은.. 작은 속삭임이었다.

무의식 중에 깊게 생각에 빠져버려 실수로 읇조렸던것인지 말을 한 장본인인 나나는 새하얗게 질인 얼굴로 자신의 입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히카리의 불타도록 뜨거운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걸 알았는지 표정을 굳히고는 교실 밖으로 향하도록 고개를 까딱였다.

무엇을 듣게 될지 모른다..하지만 거기에 단 하나의 실마리라도 있다면...

"카렌.."

일방통행의 운명은 있는것일까?

이미 운명의 상대로부터 결별의 말을 들었는데 뒤를 쫓는것은 보기 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 자신은 카렌의 운명이 아닐지라도 카렌은 아직도 나의 운명이다.
나는 카렌과 스타라이트 하고 싶다.

히카리는 의자가 큰 소리를 내며 밀쳐지는 소리에 당황하는 다른 사람들도 무시하고 교실의 밖으로 뛰쳐나갔다.


...


"당신이 원하는것은 무대소녀의 반짝임. 그렇다면 아직 여기에 한가득 있지 않아?"

"..."

"다시 오디션을 열어. 예측 할 수 없는 레뷰. 무대소녀의 반짝임. 전부 보여줄테니까."

"...이해했습니다."


...


나나가 처음 위화감을 느낀것은 의외롭게도 99회 세이쇼제가 끝난 다음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몇번이나 재연을 반복하는 도중에 이런 일은 한번도 없었다.

분명히 돌아왔는데, 자신에게는 저번 오디션의 기억이 일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돌아왔다는 사실만을 아는채로..

다르다는 감각은 아니었다. 이상할수록 똑같았다.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분명 좀 더 완벽한 99회 세이쇼제를 위해 노력했는데 전혀 달라진게 없었으니까. 재연을 통해 나나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를 파악하는것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모든게 자신의 통제하에 있지 않으면 안됐다.

..아니면 모두가 지켜질 수 있는 자신의 재연이 끝이 날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히카리가 이 학교에 오고. 카렌이 무언가 변하고. 재연은 끝이 났다.

하지만 거기서 드디어 눈치채버렸다. 원래라면 눈치채선 안됐을 위화감.. 하지만 재연을 반복해서 거기에 익숙해져버린 나나만은 알아버렸다.

나는...이 모든 일을 이미 알고 있어..?

흔한 데자뷰와는 다르다.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시간을 돌린 또다른 재연의 세계를 지금 나나는 걷고 있었다.

이번이 처음인지, 아니면 자신이 눈치채지 못 한 사이 세지못할만큼 반복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이야기를 들은 히카리는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야 당연하다. 히카리가 아는 오디션의 승자는 두명뿐인데 한명은 소원으로 누구보다 빛나는 무대소녀가 되었고, 한명은 자취를 감췄다.

이런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 의심되는 이야기도 이룰 수 있다는걸 알게 된 충격 때문이겠지.

그리고 이번 경우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누군지는 대충 예상 할 수 있으니까..

"카렌이.. 시간을 돌렸다고 말하고 싶은거야?"

"그렇게는 말하지 않았어. 누군가.. 나는 아닌 누군가가 시간을 돌렸다고 생각해. 하지만 저번 오디션도 이번 오디션과 결과가 같았다면 소원을 빈 사람은 카렌짱이겠지."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지내고 있는것은 이상해. 시간은 돌아가지 않았고. 사라진것은 카렌뿐이야."

어쩐지 초연한 모습으로 나나가 힘이 빠진 미소를 보였다.

"히카리짱. 모든것은 추측이야. 나는 모를뿐 내가 시간을 돌렸다고 생각한 세상에서 나만이 사라진 모두도 또 존재하고 있는지도 몰라. 평행세계론..알고있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재연을 택해온 나나에게도 가장 최악인 일일것이다. 모두를 지키고 싶어서 한 선택이지만 사실은 자신만이 그 세계를 버리고 온 것이라니.

카렌은 사라져버린걸까? 이곳에 자신을 두고.

"...아니. 그럴리가 없어. 왜냐하면 카렌과 교환한 운명은.. 반짝임은 아직도 내 안에서 빛나고 있으니까."

사라져버렸다면 남아있는 반짝임도 또한 존재하지 않는것이 되었을터.
모든것을 잃었을때 기억해낸 그 약속은 아직도 자신이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었다.

몹시 안됐다는 표정의 나나를 두고 그 자리를 벗어난다. 모두 부정하더라도 나만은.. 나만은 카렌의 반짝임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걸 믿고있으므로.


...


힌트는 커녕 절망적인 예시의 하나만을 안고 돌아선 나는 두명의 추억의 하나, 내가 카렌에게 읽어주기로 했던 스타라이트의 원서의 표지를 쓰다듬었다.

미처 끝까지 읽어주기도 전에 내 앞에서 카렌은 사라져버렸다. 마치 잃어버렸던 반짝임을 타인에게 뺏겠다는 내 죄를 감싸안는것처럼..

아름답지만 잔인한 두명의 운명.....그래서 더욱 어렸던 우리의 눈에는 특별해보였던것일까.

카렌을 놀래켜주려고 알려주지 않았던 그 극과는 달리 이어지는 부분을 따라 손끝으로 훑으며 읽어내린다.

"....스타라이트. 이 스타라이트에서는 분명 클레르는 유폐당했어."

번뜩 알아챈다. 그런곳에 있었구나. 카렌....별따기의 죄를 지고.

우리 모두의 죄를 지고..

눈치채면 폐문시간도 지났을 시간에 밖을 내달리고 있었다. 어디서 가져온지 기억나지도 않는 쇠지레를 들고서 내리치고 있었다. 계단을 구르듯이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카렌이 있었다.

찰랑이며 발목까지 적시는 물의 무대는 끝에서는 폭포처럼 쏟아져내리며 한치 앞도 안보이는 수증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무대 위에는 숏소드부터 바스타드소드까지 길이가 제각각인 셀 수 없을만큼 많은 양의 검이 물의 흐름에도 한치의 흔들림 없이 무대바닥에 꼿혀있다.

공통점이라면 모든 검의 손잡이에 붉은 루비가 박혀있다는것 뿐인 검들을 사이에 두고 카렌은 무대 바닥에 꼿혀 있는 어딘지 익숙한 롱소드의 손잡이에 두손을 올려두고 서 있었다.

부분 경갑옷의 하얀 드레스를 입은 카렌은 냉정한 눈으로 나를 바라봐왔다.
감정이라곤 전혀 존재하지 않는것 같은 눈이었다.

"카렌...데리러왔어. 같이 돌아가자."

동요를 숨길 수 있었을까. 카렌이라면 눈치챘을까..중요한것은 돌아가자는 내 말에도 카렌은 한발자국도 무대의 가운데서 움직이지 않았다는것이다.

돌아갈 의지가 없다는 무언의 대답.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 한 것도 아닌데 가슴께가 저려왔다.

"안개의 섬 브리튼. 돌 재단의 선정의 검을 뽑아든 순간 개인으로서의 나는 사라지고 브리튼의 왕이 탄생했다."

그 순간 카렌은 한손으로 롱소드를 뽑아내 하늘에 처든다.

휘두르려는걸까? 순간 막으려고 내민 나의 검은 푸른 사파이어를 제외하곤 길이는 커녕 모습마저 오디션때 카렌이 들고 있던 커틀러스 그 자체였다.

"하지만 선정의 검은 부러지고. 왕은 바랬다. 새로운 검을. 브리튼의 모두를 지킬 힘을!"

안타까울정도로 힘없이 내려지던 롱소드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휘둘러진다. 바라는 힘의 강력함을 상징하도록. 막으려던 검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튕겨졌다.

펄럭이며 수면에 내려앉아 그 색을 진하게 해 가는 푸른 겉옷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나와 같이 이리저리 물의 흐름에 흔들린다.

"그러자 현자 멀린은 왕을 호수로 데려간다. 호수에서 나온 검을 뽑아들자 호수의 요정이 나타나 왕에게 말하길..소원을 들어준다면 그 검을 드리겠습니다. 성검 엑스칼리버를!"

하지만 카렌은 망연자실 하는 나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 다시 하늘 높이 검을 내지른다.
이것은 싸움이 아니라 1인극이기라도 하듯이.

흐름을 방해 할 수 없다. 카렌은 이렇게 강했던가? 분명 오디션의 승자는 카렌이었지만 그때는 좀 더.. 이런 압도적인 느낌은 아니었는데.

"카렌! 기린의 장단에 어울릴 필요는 없어. 연기는.. 오디션은 이미 전부 끝났으니까.."

"....왕의 손에 통일되어 평화로운 브리튼. 하지만 아아...인간의 감정이 없는 왕은 왕국을 내란으로 몰아낸다."

그때 하늘로부터 검은 인영이 내려선다. 그 손에는 검은 검. 가면으로 얼굴이 가려졌지만 모를 수 없었다.

완전히 색이 다른 두명의 카렌이 점점 더 현실감을 잃게 하고 있었다.
머나먼 전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것처럼.

"모드레드. 정녕 네가 나를 배반하느냐."

"왕이여. 당신의 나라는 이미 끝났습니다."

"잠, 카렌..!"

검은 인영은 총알처럼 쏘아져나가 카렌의 가슴에 푹 검을 꼿는다. 가슴에 검이 박힌 카렌은 무대에 스스로의 검을 박아넣어 그 힘을 버티려고 했으나 이윽고 무대 밖으로 떨어져 풍덩 물소리만을 남긴다.

"....안개의 섬 브리튼. 돌 재단의 선정의 검을 뽑아든 순간 개인으로서의 나는 사라지고 브리튼의 왕이 탄생했다."

어느새 무대의 가운데에 선 검은 카렌은 물감이 녹아 사라지듯 새하얀 드레스.

히카리는 수증기로 흐려진 무대 위의 검들이 묘비로 보여왔다.

"카렌! 구하러 왔어. 더이상 여기 있지 않아도 돼!"

이건 싸움이 아니다. 오디션이 아니다.

오디션의 티켓과도 같은 겉옷은 흐르고 흘러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나는 억지로 카렌의 검을 들고 있지 않은 쪽의 손을 잡아 끌었다. 여기에서 벗어나게 하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여기에 더 있으면 안될 것 같았다.

"히카리짱. 어째서 와버렸어?"

열리지 않을것 같던 카렌의 입이 뱉어낸 말은 의문이 아니었다. 왜 와버렸냐는 힐문.

"당연히 카렌을 데려가기 위해서야."

"데려가? 하지만 히카리짱은 알고 있잖아."

아. 내가 알던 카렌이다.

깜짝 놀란 강아지같은 동글한 눈매. 진심으로 카렌은 놀란것 같았다.그것뿐인데 아까와는 다르게 카렌이 내가 알던 카렌이라고 안심 할 수 있었다.

"알고있다니..무엇을? 카렌,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사라져서 마히루도 걱정하고 있어."

그런것 따위 카렌에겐 중요하지 않다는듯 카렌은 걱정한다는 말을 들어도 여전히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쏴아아. 물이 흘러 떨어지는 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오디션은 무대소녀가 레뷰를 통해 싸워, 이겨, 쟁취해내는 무대. 최후의 승자는 모두의 반짝임을 연료로 원하는 무대를 얻을 수 있다... 패자는 모든 반짝임을 잃고 무대소녀의 삶을 박탈당한다..."

"...카렌?"

카렌은 몰라야 할 사실이다. 알지 않길 바랬던 사실이다.

"히카리짱. 그런 무대를. 누구의 반짝임도 빼앗지 않고 혼자서 지탱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거라고 생각해?"

주변을 둘러본다.

검, 검, 검, 검.

온통 검 투성이다.

"히카리짱은 모르는 운명의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해줄게. 없어져버린 지금의 이야기를 해줄게. 아, 오래걸리지는 않을거야. 왜냐하면 대체로는 히카리짱이 아는 이야기거든."

카렌은 붙잡고 있던 내 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걸어 검 사이를 춤추듯 누빈다. 나에게는 그것이 어쩐지 불길하고 슬프게 느껴졌다.

"옛날, 그렇게 멀지 않은 옛날. 두 사람의 여자아이가 약속을 했어요. 클레르와 플로라. 무대 위의 별을 따러 스타가 되자고."

카렌과 나의 이야기였다.

"스타가 되기 위해 두 사람은 헤어질 수 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운명이 이끌듯 다시 별을 따기 위한 무대 위에서 두 사람은 재회했답니다. 두명이서 가장 빛나자. 그러면 두명이서 스타가 될 수 있을거야!"

카렌은 내가 뒤를 따라오는지 아닌지도 확인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가며 점점 무대 가장자리로 나아갔다.

"하지만 승자는 단 한명. 두 사람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아. 바보같이 희망에 차 있던 여자아이는 무대 밑으로 밀려 떨어졌어요."

카렌과 나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승자가 된 여자아이는 혼자서 모두의 몫의 반짝임을 채우기로 했어요. 마르고 거친 사막에서 모두의 죄를 갚기 위해 별을 따려고 했어요. 아무도, 누구도 여자아이를 구해주지 못했어요. 물이 전부 말라버릴때까지. 반짝임이 전부 사라져버릴때까지."

카렌은 쭈구려앉아서 무대 밑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표정인지 뒤에서는 알기 어려워서 나는 다가갔다. 카렌이 또 내가 모르는 얼굴일까봐 두려웠다.

"바보같은 여자아이는 그제서야 나타났답니다. 이미 운명은 그 손에서 떠나버렸는데 말이죠."

누구의 이야기지?

"나는 늦어버렸어. 되찾을 수 있었는데. 잃지 않을 수 있었는데. 할 수 있었는데. 두사람의 꿈은 이뤄질 수 있었는데!"

벌떡 카렌은 일어났다. 여전히 시선은 무대의 밑이었다. 도대체 뭘 보고 있는거지?

"그러니까 바꾸기로 한거야. 나의 운명을. 히카리짱의 운명과. 한번 한 것을 두번은 못할리 없어."

나와...히카리와 카렌의 이야기였다.

"잃어버린 선정의 검. 반짝임의 동력원. 나의 히카리짱. 운명을 지키기 위해. 나는 재생산된거야."

물살이 거쎄서 나는 조심조심 카렌에게 다가갔다.

"멀린이 알려줬지. 새로운 검을 얻을 방법을. 힘을 되찾는법을. 호수까지 인도해줬어. 호수의 요정은 반짝임을 바랬지 그래서 나는 요정이 바라는데로 모두의 반짝임을 빼앗았다."

그때 카렌이 번뜩 날 되돌아보고. 나는 무심코 그 시선을 피하다가 무대 밑을 봐버리고 말았다.

분명 무대에서는 끊임없이 물이 쏟아지고 있는데 밑에 쌓여있는것은 그 수위를 넘어설만큼 산을 이루고 있었다.

"무대소녀 아이죠 카렌은 매일 진화해. 매일매일 과거의 스스로를 부정해. 죽여. 새로 태어나. 그리고 반짝임을 재생산해서 모두를 지키는거야.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모두의 반짝임을 빼앗고 나아갈 수 있었던 미래를 없던것으로 해버린 스스로의 죄를 갚도록."

셀 수도 없을만큼 많은 '아이죠 카렌'이 거기에 있었다. 무대를 떠받치도록 산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에 힘이 빠져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만큼 카렌은 스스로를 죽여온건가?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스스로 죄를 갚기 위해서?

오디션은 강제참가가 아니다. 톱스타가 되기 위해서 모두가 선택한 일이었다. ...빼앗기를 스스로 선택한 자신의 죄였다.

"히카리짱. 여기는 왜 온거야? 이미 우리가 교환한 운명은 내가 바꾸었어. 우리는 더이상 둘이서 하나가 아니야."

카렌이 해준 이야기는 아마 전부 사실일것이다. 재연이라는 무대를 아는 나나와 반짝임을 바라는 기린. 그리고 우연히 끊임없이 반짝임을 재생산 할 수 있는 힘을 가졌던 카렌.

조각들이 모여서 아서왕의 무대를 만들어버렸다.

"...그래. 그날로부터 신경쓰였어. 카렌, 너는 왜 운명에 안녕을 고하면서 아직도 왕관을 쓰고 있는거야? 나에게서 왜 빛을 가져가지 않은거지?"

"..! 그건....단순한 머리핀이니까. 매점에서 어린애라도 용돈을 모아서 살만큼의 가치밖에 없는 단순한 장식이니까."

"그럼 당장 그 왕관을 벗어봐. 벗어서 과거의 자신을 부정한것처럼 저 밑으로 던져. 그걸로 나는 만족하고 떠나줄테니까."

카렌은 이를 악물면서도 왕관에 손을 뻗지는 않았다. 나는 추측 일 뿐이었던 스스로의 생각에 확신을 얻으며 일어섰다.

단추도 겉옷도 이미 없어져버렸지만 카렌에게 받은 검은 여전히 내 손 안에 있었다.

"이건...아서왕의 무대에는 필요한 소품이야. 그러니까 쓰고 있을 뿐이지 큰 의미는 없어. 왕관은 왕의 상징이잖아?"

"그래...그렇다면 그 왕관 내가 받아가야겠어. 운명은 교환했는데 나눠가진게 그대로라면 이상하잖아? 검을 들어 아서왕. 내란을 일으키는 모드레드를 그대로 둘 생각은 아니겠지?"

힐쭉. 스스로도 악역같다고 생각 할 정도로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드는 카렌의 앞에서 빈정거린다.

더이상 여기에 단추는 의미가 없었다.

이곳은 내란이 일어난 브리튼의 캄란언덕. 아서왕의 죽음의 무대.

여러가지 아서왕의 전설중에서도 유명하디 유명한 일화였다.

"...모드레드..정녕, 네가 나를 배반하느냐?"

상처받은 얼굴이었다.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를 죽일 정도로 카렌은 브리튼과 백성을 사랑했다.

"왕이여. 당신의 나라는 이미 끝났습니다."

하지만 지켜져야만 할 정도로 모두는 약하지 않다. 그리고 브리튼은..백성은.. 나는 카렌을 사랑했다.

휘둘러지는 검 끝에 걸려 빛나는 왕관은 아서왕전설의 끝. 브리튼은 평화를 잃었지만 아서왕은 아발론에서 안식을 얻는다.

카렌은 왕관을 잃자 그 자리에서 쓰러지듯 푹 주저앉았다.

"그래.. 맞아. 나에게 무대는 히카리짱. 히카리짱이 없으면 안돼. 그러니까 그날의 약속의 상징만큼은 놓지 못했어."

카렌은 울고 있었다. 아까까지만해도 내가 시선을 피하게 만든 왕의 기백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어째서 그것마저 빼앗아가는거야? 내 죄는 이정도론 충분하지 않다는거야?"

흐르던 물이 멈추고 무대에 박혀있던 검들이 하나하나 사라진다.

무대를 떠받치고 있던 '아이죠 카렌'들도 사라지고 있다. 여기에 남은건 모든걸 잃고 울고 있는 여자아이.

내 죄였다.

"카렌. 무대소녀 카구라 히카리가 살아있는 것은 너와 운명을 교환한 덕분이었어. 영국에서 스스로의 욕심으로 별을 따려던 여자아이는 이미 한번 구원받았어."

약속을 잊었던걸 카렌에게만큼은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어쩌면 그런 기만이 만들어낸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보다 전에 무대소녀 카구라 히카리가 태어난것도 카렌이 무대에 오르자고 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나의 무대도 카렌이야."

다른 아이들은 모르는 세계를 자랑하려고 데려갔는데 거기에 오르자는 생각을 카렌에 듣기 전까지는 생각도 못했다니 어른인척 하고 싶은 아이는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런 오만이 만들어낸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카구라 히카리에게도 아이죠 카렌은 전부야. 나를 전부 줄테니까. 카렌도 나에게 전부 주지 않을래?"

단순한 크라운의 머리핀으로 바뀌어버린 운명의 상징을 울고있는 카렌에게 내밀었다.

무대는 그날의 도쿄타워 매점과 같은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죠 카렌'이 남긴 붉은 겉옷은 도쿄타워의 붉은 철근같아보였다.
카렌의 희생 위에 새워진 운명의 재교환이라니. 끝까지 볼 품 있는것은 카렌에게 빼앗기는것 같다.

"...욱...흑...흐아아앙! 히카리짱은 바보! 맨날 밧카렌이라고 부르면서 나보다 더 바보야! 어째서 날 혼자 두고 가버린거야?"

카렌은 어린시절처럼 엉엉 울면 안겨왔다. 나도 어쩔 수 없다는듯이 카렌을 안아 다독여줬다.

"이제 혼자서 가버리면 용서하지 않을테니까..나도..히카리짱을 밧카리짱이라고 불러버릴거야...."

훌쩍이면서도 카렌은 그동안 마음에 품은 말은 다 뱉어냈다. 조금 괘씸한 발언이었지만 확실히 이야기 속의 히카리는 그런 취급을 당해도 될 것 같았다.

이런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를 혼자 놔두고 가버리다니.

"돌아가면 많이 혼날거야. 히카리짱, 위로해줘야해."

"응. 조금만 혼내달라고 말해줄게."

"밀린 공부도 잔뜩 있을거야. 히카리짱, 도와줘야해."

"영어는 모르는곳이 있으면 전부 알려줄게. 수학은....마히루가 노트 빌려줄거야."

"....계속 같이 있어줘야해. 혼자 사라지면 논논이야."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게."

그 말을 끝으로 안심한 카렌은 눈을 감더니 잠들어버렸다.

나는 그런 카렌의 손을 꼭 잡고는 같이 무대바닥에 누워버렸다. 우연히도 그곳은 무대의 중심. 포지션 제로의 위치였다.

이대로 한숨 자는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차피 돌아가도 기숙사는 폐문 시간이니까. 감겨오는 눈꺼풀에 순순히 응하며 생각했다.

카렌이 내가 찾던 스타.

히카리짱이 내가 찾던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