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ㅎㄴㅁㄹ

[하나메르]첫사랑

백오판다 2016. 10. 10. 18:23
첫사랑




격한 임무를 마친 이후에는 상처의 치료와 체력회복을 위해 오버워치 요원들에겐 한동안의 휴식기간이 주어진다.
물론 갑작스런 테러가 일어난다면 출격하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전에 입힌 피해가 상당한지 탈론도 잠잠해서 하나는 오버워치 내에 마련되어있는 휴게실의 요새 마음에 드는 쇼파에 반쯤 드러누워 게임기를 두드리는 중이었다.

"아~. 이거 뭐야. 전혀 안맞는걸?"

"흐음~. 그래도 꽤 유행중인 잡지라구? 혹시 솔직하게 체크하지 않은거 아냐?"

그동안 바빠서 미뤄뒀던 어렵다고 소문이던 게임이건만 하나에겐 너무 쉬워서 오히려 집중력이 흐트러질 정도였다.
집중력이 흐트러져 주변 대화가 들려올 정도라니 이 게임 리뷰 전혀 틀리잖아하고 궁시렁거리며 보스에게 막타를 날리고 게임을 꺼버렸다.
더이상 할 마음이 안들뿐더러 저쪽의 트레이서와 루시우의 대화가 더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두명 다 뭘 보고 있는 거야? 그렇게 진지하게."

"어.. 게임은 더 안해? 음.. 좋았어. 이리와봐. 잡지가 틀렸대도 루시우가 전혀 안믿는다니까?"

"하지만 이거 정말 정확도 높다고 유행중인 책이라구? 그래.. 하나 너도 해보면 이게 맞는지 아닌지 가릴 수 있겠네. 지금이 1:1이니까."

달리기 시합처럼. 이번에도 시합이야!

루시우가 큰소리로 트레이서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저번에 한 달리기 시합에서 진것이 아직도 분한 모양인지 장난스럽게 말하는 그 눈은 진지했다.
게다가 그 눈으로 하나를 보며 진지하게 답하기를 종용하기까지 하니, 하나는 시시한 싸움에 동참하는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시시한 게임이라도 내버리지 않고 그냥 계속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하~. 잠깐만이니까. 나 할 일 많은 사람이거든?"

"잠깐이면 되! 잠깐이면!"

그렇게 하나는 뭣도 모르고 루시우와 트레이서의 시합에 말려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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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작은 부분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의 행동에서 무심코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웃는 모습을 보고 싶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많은 질문이 지나가고 나온 결론은 하나에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런건 그냥.. 그냥 친한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느끼는 감정이 아니던가?

"아냐아냐~. 절대 아냐. 적어도 난 박사님이 오늘도.. 당직이 저네요..하는데에 연민을 느꼈지 귀엽다고 생각하진 않거든?"

"헤에. 이봐. 그럼 이번 내기는 내가 이긴거지? 트레이서."

"그래.. 이거 정말 맞는가본데.."

정말 멋대로인 동료들이다.
하나는 당혹에 빠져 멍해있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버렸다.

"아냐.. 이거 틀렸어. 내가 여자를 사랑하고 있을리가 없잖아."

"뭐? 그렇게 티를 내놓고 그렇게 말해도 아무도 안믿을걸!"

"저번에 메이씨는 너랑 박사님보고 훈훈하다더라!"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닌 두 사람을 설득할 기력도 없이 하나는 일어서서 휴게실을 나가버렸다.
놀림을 받는게 싫어서 삐졌다고 생각했는지 루시우와 트레이서는 귀엽다며 한바탕 웃을 뿐이지 그 뒤를 쫓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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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님을 사랑한다고..? 내가?"

도저히 납득이 안가서 하나는 방안을 이리저리 뱅글뱅글 맴돌며 같은 말만을 주절거렸다.
이날 이때까지 게임에 온 관심을 다 줘서 연애경첨치가 제로인 하나는 이게 정말일까 거짓일까 파악할 기준조차 가지지 못했다.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 아무 일이 없어도 박사님께 가긴 했지만.. 그냥 친한 사람이라면 있을 수 있는 일 아냐? 뭐.. 매일이긴 했지만.."

"임무중 총탄에 맞아서 죽을 뻔 했을때 박사님 생각이 나긴 했지..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런 상황에 의무관이 생각 날 수 밖에! 어.. 뭐. 의무관이 한명은 아니긴한데.."

말을 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누군가가 글이나 말로 생각을 정리하면 된다던데 순 엉터리라고 궁시렁거리며 토해낼 길이 없는 마음속 덩굴을 풀어낼 방법을 찾이 하나는 방 밖을 나섰다.

"아니.. 말이 되? 여자라고 여자.. 둘 다! 여자라고!! 박사님은 전혀 날 그렇게 볼 리 없잖아?"

수근대며 지나가는 오버워치의 다른 요원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유아독존으로 하나는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딱히 어디를 가자고 정하지 않고 그저 얌전히 방안에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주변 타인에게 전혀 시선도 주지 않고 하나는 속에서 분출되는 감정을 토해내는 기계화 해버리고 있었다.

"그야 여기가 외국이긴 하지만.. 한번도 누굴 좋아해 본 적이 없는데 그 상대가 동성?? 이거 100% 내가 차이는거잖아! 아니아니.. 잠깐 뭘 인정하고 있는거야.."

정리되던 생각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버렸다.
하나는 무심결에 인정해버린 것에 더욱 슬퍼졌다.
하지만 더욱 슬픈것은.. 그로인해 자신의 미래까지 상상해버렸단 것이다.
하나는 어떻게해도 자신이 차이는 미래밖에 생각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게임은 이겨야하는만큼 지는 게임에 도전하는 취미는 하나에게 없었다.

"하.. 돌아가자.."

그날부터 하나는 매일같이 들리던 박사님의 진찰실에의 발길을 뚝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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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거 가지고 싶어했지? 줄게."

"어? 음.. 가지고는 싶었지만.. 이거 애지중지 하던 인형 아니었어? 박사님이 주셨다던.."

"아아.. 음. 그냥. 방이 너무 좁아져서 이것저것 치우는중이야. 근데 버리기는 좀 그렇잖아?"

애써 시선을 피하며 토끼인형을 내미는 하나를 보며 트레이서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인형을 받아들었다.
인형에 욕심이 있는건 아니었지만 눈치가 빠른 트레이서는 자신이 이걸 받아들지 않는다면 인형이 버려질 처지라는 것을 알아챘다.
요새 들어 하나가 방에 있던 가구부터 예전부터 써오던 게임기기까지 전부를 처분하고 다시 사들이는것에 솔저가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토록 자랑하고 소중히해오던 박사님의 선물까지..

"저기.. 막 옵치 그만두거나 하는건 아니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럴리가 없잖아. 분쟁이 전부 끝난것도 아니고.."

"아니면.. 됐지만.."

그것도 아니면 도대체 무슨 일인거지?
2%부족한 트레이서의 눈치는 얼마전의 일을 전부 잊어버려 발동에 실패해버렸다.
하지만 이 인형을 버려선 안된다는 감만은 살았는지 방 한구석에 모셔두기로 결정하고 트레이서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냥 방을 새단장하려는 줄 알았는데.. 박사님은 알고 계시나?"

말씀드려봐야겠다하고 트레이서는 인형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메르시가 처음으로 하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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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하나의 소식때문에 메르시는 그렇나요?하고 말하길 수십번 반복했다.
그중에는 자신을 모르면서도 찾아온 사람도 있어서 조금 놀라긴했지만 그정도로 하나가 여길 찾아온다는게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는거 같아서 나름 기분이 좋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쉽게 볼 상황은 아닌거 같았다.
매일 찾아오던 하나가 안오길 며칠째에다가 오늘은 심지어 그렇게 애지중지 빨고 말리고 솜을 바꾸어넣던 보잘것없던 자신의 선물인 토끼인형을 타인에게 넘겨주기 까지 했다고 하니까.
이것은 분명 무언가 심정의 변화가 있었을거라고 책상에 턱을 괴며 메르시는 생각했다.

방치한것도 아니고 아무생각없이 내버려둔것도 아니었다.
메르시는 이것이 대충 어떤 상황인지는 예상이 갔다.
자신도 겪은 일이었기에.
하지만 살아온 세월만큼 인정도 빨랐고 적응도 빨랐던거 뿐이다.

"아무래도 하나는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거 같아요."

"그렇다면 왜 빨리 말해주지 않는거지? 이러다가 떠나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 아이는 소속 국가가 달라. 언제든 여길 떠날 수 있다는걸 잊으면 안돼."

오후의 티타임이라며 불러내온 아나를 눈앞에 두고 메르시는 픽 웃어버렸다.
아나까지 자신을 불러낼 정도로 하나의 동요가 심했던 모양이다.
하긴 하나에겐 얼마 안되는 돈일지 몰라도 이제 방의 내장까지 뜯어 고치기 시작했으니 눈치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다 알것이다.
하나는 무엇인가를 지워버리기 위해 주변을 새것으로 칠해 바꾸고 있다.
흔한 현실도피이지만 그만큼 모두에게 절실하게 보였다.

"하지만 전 그냥.. 선택권을 주고 싶었어요. 아시다시피 나이차도.."

"그건 책임을 떠맡겨버리는짓이야. 아무래도 그애는 첫사랑이던 모양인데.. 그렇게 부담을 줘서야 되겠니? 아니면 설마 너도 무서운거니?"

아나는 이것을 생각보다 큰 문제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최연소이다보니 솔저를 포함해서 몇몇 오버워치 요원들은 하나를 싸고도는 경향이 있었다.
안그래도 모든 요원들한테 돌아갈 수 있을거라 매번 격려하는 아나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하나를 방치 할 히 없지.
다른 요원들이 꽤나 찾아온 후에 온걸 보면 메르시를 배려하려 한 걸까.

"그래요. 저도 무서운거죠.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아요? 이렇게 뻔히 보여도 혹시.. 거절당할지 모르는데. 그러면 정말로 저에겐 다가갈 구실은 하나도 없어지는데.."

"오버워치에 의무관은 한두명이 아니고. 네가 거부해도 치료 할 사람은 많지. 두려워하는것도 이해해. 거부당하면 그 아이는 네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대로라도 바뀌지 않는다고 확신 할 수 있니? 지금 상황이 그걸 증명하고 있는걸."

"그러면.. 저에게 어떻게 하란 소리죠? 뭘 요구하시는 거냐구요!"

"그건 내가 말해도 되는 일인가? 아니란걸 잘 알고 있을텐데.. 흠.. 차 맛있게 마셨어. 다음 티타임엔 부디 다 해결되어있다면 좋겠구나."

그러고선 일어나 나가는 아나의 뒤를 메르시는 하염없이 쳐다보았지만 그 눈에 비치는 것은 아나가 아니라 하나였다.
이러다가 정말로.. 정말로 잊혀지는것은 아닐지.. 알고있는데도 왜 하나가 찾아오지 않는다는거 하나로 자신은 이리도 약해지는지..
어느새 하나가 여기에 오는 매일이 일상이 되어버렸는지..
하나뿐이던 컵이 두잔이 되어 오늘도 누군가가 썼지만 왜 그 대상이 하나가 아닌것인지..

답을 내리지 못했지만 이미 정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메르시는 일어섰다.
지금이 아니면 일어서지 못할거 같았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마시자마자 치워뒀을 컵들을 내버려둔채 방을 나서는 메르시는 일견 필사적으로 보였다.

"근데.. 하나는 평소에 어디에 있었죠..?"

첫단계부터 난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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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시는 첫번째로 트레이서의 위치를 알고 있을 윈스턴을 찾았다.
그는 누군가를 놀래키지 않으려고 항상 연구실에 들러붙어있다시피 했으니 가장 위치를 잘 알수 있는 인물 중 하나였다.

"트레이서? 아마 휴게실이지 않을까요. 저번에 루시우씨한테 시합에서 졌다고 분하다더니 리벤지라면서 달려갔거든요. 흠.. 잘됐으면 좋겠네요."

씨익 웃으면서 땅콩버터 빈병을 던져버리곤 다시 공구를 이것저것 들어올리는 모습이 이미 다 눈치챈 모양이다.
하여츤 이것으로 트레이서의 위치를 안 메르시는 서둘러 휴게실로 달렸다 트레이서는 여기저기 신출귀몰하게 옮겨가버리기에 메르시는 오랜만에 전력으로 달렸다.

"하나라면 이미 방에 갔어요. 또 말려들긴 싫다면서."

"이번엔 그냥 보드게임인데 말이지.. 같이하면 재밌었을텐데."

루시우가 틀어놓은 최신음악이 흘러넘치는 휴게실은 트레이서와 루시우의 보드게임 한판승부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오버워치 요원들이 한가득이었다.
아령을 들고 운동하는 자리야와 대화하는 라인하르트가 메르시를 눈치채고는 한손을 들어 간단히 인사하곤 고개를 돌렸다.

"드디어 결심이 서신거군요? 흠.. 그럼 이건 돌려드릴게요."

트레이서가 토끼인형을 내밀어왔다.

"도저히 제 방에 둘 수 없더라고요. 두명의 추억이 온전히 담긴 인형을 놓아둔다는게.. 그래서 휴게실에 두고 있었어요. 이것때문에 꼬맹이가 나가버린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보드게임을 시작하기 전까지 흘끗흘끗 계속 눈길이 가는게 엄청 신경쓰는 눈치였는데? 흠.. 잘되길빌어!"

루시우가 얼른가라며 훠이훠이 손을 흔들어댔다.
나온 주사위의 눈과 보드게임에서의 그의 위치를 보자면 이번에 그는 질 모양이었다.

"아! 걸렸다!"

"크읏.. 오늘은 운이 안따라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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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글러박사님. 드디어 찾아가는건가요?"

서둘러 걸어가는 길에 메르시는 메이를 마주쳤다.
일상복차림의 메이가 향하는 방향은 메르시가 가는 방향하곤 정 반대였다.
어디서 왔는지  힌트는 전혀 없지만 왠지 메르시는 메이가 하나를 만나고 왔다고 확신 할 수 있었다.

"그래요, 메이. 하나는.. 괜찮았나요?"

"흐음~. 제가 보기엔.. 전혀 괜찮지 않네요. 글쎄 저에게 마주치자마자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더라고요."

"대답은!?"

당황한 나머지 상냥한 메이가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을거라는 생각보다 먼저 부정을 원하는 물음이 튀어나갔다.
항상 냉정침착하게 치료하고 다니는 메르시가 그렇게 다급하게 물어볼 줄은 몰랐는지 메이가 눈을 댕그렇게 뜨곤 바라보더니 푸훗 웃었다.

"당연히 이상하지 않다고 했죠. 시대가 바뀐지 얼마나 되었는데! 한국은 아직도 동성애에 부정적인가 보더라고요. 그러니까 제말은.. 어서 가서 안정시켜 달라는거에요. 평소의 메이언니!하면서 달려오는 귀여운 동생같은 하나를 보고 싶으니까."

그리고 이번에 쓴 여행일지의 감상도 듣고 싶은데 상태가 영 아니더라고요 얼른 가서 치료해주세요 박사님~.
메이는 뒤꿈치를 들더니 메르시의 어깨를 격려하듯 툭툭 치고는 가버렸다.
그 뒤를 멍하게 쳐다보다가 메르시는 그제서야 왜 이렇게 하나가 불안해하는지 알았다.

"문화의 차이라니.. 내가 더 배려했어야 했는데.."

연하에게 너무 많은걸 맡겼었다는걸 알아채고 메르시는 더욱 다급해졌다.
이제 몇걸음 남지도 않았것만 괜히 마음이 앞서 뛰어가다시피 빠른걸음을 재계했다.
연상의 체면을 차릴 거 없이 지금 해야 하는 일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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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인테리어까지 전부 바꿔버린 방은 낯설고 차가운 느낌이 들어 돌아온 방안에서도 하나는 침착해질 수 없었다.
소품 하나하나까지 전과는 다른걸 추구하다보니 이전의 귀여움을 추구하던 디자인과 다르게 냉기가 흘러넘칠듯한 사무적인 양상을 띄는 방은 솔직히 말하자면 하나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이토록 바꾸어도 전혀 잊혀질 생각을 안하니 하나는 도리어 메르시가 원망스러워질 따름이었다.

"하지만.. 역시. 이렇게 난리법석을 떨고 만나러 가지도 않았는데 보러 오시지도 않다니. 고백하지 않는게 정답이었어..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더니."

하아~.
날이 추운것도 아닌데 한숨이 형태를 띄고 방안에 퍼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속이 허한 느낌이 자꾸 들어서 하나는 가슴을 탕탕쳤다.
그렇다고 나아지지 않는다는걸 이 며칠새에 머리에 새길정도로 알았지만 잠깐의 고통이 생각하기를 잠시 잊게 해주었다.

똑똑

"어? 다들 휴게실에 있고 찾아올 사람 없을텐데.."

심지어 말려들기 싫다며 도망가는 하나를 보며 웃기까지 했다라고 배려해서 혼자있게 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하나는 좀 야속하게 느끼고 있었다.
아니면 혹시..긴급임무라던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마자 하나는 얼른 누구냐고 묻기도 전에 문을 열어버렸다.
어차피 조심할거 없이 여기는 오버워치 내이다보니 의심없이 한 행동이었다.

물론 상대가 메르시인 줄 알았으면 쉽게 열진 않았을테지만..
문을 열고 메르시의 얼굴을 인식하자마자 하나는 얼어서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방심을 탓했다.

"아.. 하나. 요새 안찾아와서 걱정된 바람에.. 아니. 그게..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여기서 잠깐 대화를.."

쾅!

"하나?! 하나 갑자기 문은 왜 닫나요!"

눈앞에서 닫힌 문에 메르시는 콩콩 문을 두드리며 하나를 불렀다.
방안에 없었던것도 아니고 무슨 대화를 하지도 못했는데 거절부터 당한거 같아서 마음이 쓰라렸다.

"어째서 찾아오신거에요?! 바쁘신거 아니었어요?!"

돌연 문 저편에서 커다랗게 울음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꺼운 문너머라선지 둔하게 흐려졌어도 하나가 눈물을 참는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아무것도 상황이 나아진게 없는대도 메르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무래도 자신은 아직 지워지지도 거부당한것도 아닌거 같았다.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메르시에게 침착함을 돌려주었다.

"그래요. 아직 처리할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써야할 논문도 한.. 3~4개는 되네요. 이러고 있다간 오늘 밤도 야근일거같군요."

"그렇다면 빨리 일하러가시지 그래요? 어제도 당직, 야근, 당직의 연속이였을 정도니까요! 저는 내버려두고.."

"어떻게 그래요? 전 지금 서류보다 중요한 일이 이 너머에 있는데."

문너머에서 하나가 문에 기대오는지 툭 소리가 났다.
메르시는 거기에 따라서 이마를 문에 툭 기대고 두 손을 문에 짚었다.
두꺼운 문에 서로의 체온이 전해질리 없것만 괜히 따듯해지는 느낌이 들어와 살풋 웃었다.
아직 전하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전해진 기분이었다.

"중요한 일이요? 전 어디하나 아픈데도 없고 멀쩡해요. 가구를 다 바꾼거 때문에 걱정되신다면 그냥 기분전환이고요."

"흐음?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요. 알고도 모른척 하는건가요? 건강상태를 걱정한거 아니에요. 그냥.. 하나를 보고싶고 대화하고 싶었어요. 그게 지금 제게 제일 중요한 일이에요."

"어째서요?! 요 며칠새에 한번도 보러 오지 않으셨잖아요. 제가 찾아가지 않으면 끊길 관계가 아니었어요 우리들?"

갑자기 분에차서 크게 소리지르는 하나의 목소리는 억울함에 찌들어있었다.
차분하게 설명하는 어조의 메르시의 말에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모양새였다.

"그랬었죠. 전부 제가 너무.. 겁쟁이였던 탓이에요. 정말 죄송해요. 그러니까 제 말은.. 그 관계를 끊을 수 없을 정도로 굳건히 하고 싶다는 소리에요. 그러니까.. 저는.. 저는 하나랑 연인사이가 되고 싶어요."

오래도록 간직해와서인지 생각보다 쉽게 흘러나온 본심에 메르시는 후우 숨을 토해냈다.
긴장감은 어디 사라진건 아닌지 말에 나타나지 않은 대신에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 진동을 눈치 채이지 않게 메르시는 이마와 손을 떼어냈다.
갑자기 서늘한 공기가 닿는것은 달갑지 않았지만 안그래도 혼란스러울 하나에게 자신의 불안까지 얹어줄 생각은 없었다.

"아니.. 아니.. 농담이죠? 하지만. 저희 여자랑 여자고.. 아니 그전에 박사님이 절 좋아한다고요? 이거 누군가의 장난이라던가.. 사실 박사님이 아닌건.."

생각대로 하나는 대단히 혼란스러운지 말이 두서없고 횡설수설하게 변해버렸다.
지금이 전혀 납득이 안가는거 같았다.
이것은 메르시 본인이 잘못한것을 알기에 좀 더 여유를 가지자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거부당할까봐 눈치 챌 여지를 주지 않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몇번이나 되뇌었다.

"그러니까.. 저도 여자고! 박사님도 여자잖아요? 막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거라고요! 게다가 이게 진짜 사랑인지 그냥 친애인지도 모르겠고.. 지우려해도 전부 다 버려도 안바뀌고.. 그런데 아예 못보는거 참을수도 없어서 여기를 떠날 수도 없고.."

하지만 떠난다는 말에는 차분해져있던 메르시라도 참을 수 없어 벌컥 문고리를 돌려 당겨버렸다.
그 바람에 기대있던 하나가 쓰러지는걸 끌어당겨 품안에 숨기듯이 꼭 끌어안았다.
옷의 가슴께가 축축해져오는게 느껴지지만 메르시는 전혀 불쾌해하지 않고 왼손으론 도망가지 못하게 끌어안고 오른손으로 하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나는 꼼짝달싹 못하고 그대로 품안에서 훌쩍이길 반복하고 있었다.

"어째서 잊는다거나 떠난다는 생각을 하는 건가요? 하나가 저를 사랑한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거죠? 성별? 그걸 포함에 모든게 좋은거 아닌건가요?"

"아니 물론! 박사님이 여자라서 싫다는건 전혀 아니고 그냥-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없고.. 이상한거 아닌가.. 하는.."

"안이상해요. 전혀. 어떤 문제도 없고 저희 둘의 사이에는 두명의 감정만이 고려되야죠. 알았어요? 성별은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하나의 본심만을 말하는거에요."

다소 강압적으로 압박하듯이 메르시는 이게 전혀 문제가 없다는걸 강조했다.
어릴때부터의 인식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는걸 잘 아는 메르시는 그런 문제가 지금 이 순간을 방해하지 않도록 몰아내고 싶었다.

"좋아해요.. 사랑한다고요! 하지만 지금도 고민하고 있어요! 박사님이 저랑 연인이 되고 싶다니 그냥 절 위로하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거 아닌지 의심되는 지경이라고요!"

오늘 몇번일지도 모르는 후회를 하면서 메르시는 그나마 늦지 않도록 등을 밀어준 아나에게 속으로 감사를 표했다.
하나는 너무나 방치당한나머지 메르시의 말조차 믿지 못하는거 같았다.

그래서 메르시는 강경한 수단을 취하기로 했다.

머리를 쓰다듬던 오른손으로 확 끌어당겨 며칠사이의 스트레스로 거칠어져버린 하나의 입에 입을 맞춰 메르시는 자신이 얼마나 하나를 사랑하는지 그것의 10분지 1이라도 알도록 감정이 전해지직 빌었다.

자신도 그다지 경험이 있는건 아니지만 그냥 맞댄것만으로 메르시는 잔뜩 고양되는 감정을 느꼈다.
괜히 얼굴이 홧홧해져 무심결에 감았던 눈을 뜨고 하나를 내려다보았다가 자신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른채 미처 눈도 감지 못하고 이쪽을 바라봐오는 하나를 보고 살풋 웃었다.
말하지 않아도 같은 감정이란게 전해지고 있다고 알 수 있었다.
대단히 놀란걸 알지만 메르시는 사심을 담아 방향을 바꿔 가볍게 촉소리 나도록 마주치고 얼굴을 떼었다.

거기엔 뺨의 타투의 분홍빛 따위야 눈에 띄지 않을수록 빨개진 얼굴의 하나가 남아있었다.
메르시는 벌개져서 쓰라려보이는 눈가를 쓸어내리며 물어보았다.

"이래도 안믿겨져요? 제가 하나를 사랑하고 있다는거요."

"아.. 아니요.. 그러니까 이건 지금.. 우린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거죠?"

"그렇네요. 하나가 저를 사랑한다면 말이죠."

그제서야 하나는 애써 참으며 훌쩍이던 눈물을 왈칵 터트렸다.
부운눈이 안타까워 등을 토닥이며 달래려해도 도저히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좋아해요! 진짜. 정말. 제가 잘해드릴게요! 흐엉엉.."

울면서도 메르시의 등을 끌어안아 잡은 손이 잔뜩 힘을 담아서 하나의 마음의 크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메르시는 가슴이 따뜻해져와 눈물을 닦으려던 시도를 멈추고 마주 안았다.
조금의 간격도 두지 않고 마주대한 심장의 고동이 격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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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버릴려고 바꾸어버린 인테리어에 새로운 기억이 입혀져 메르시를 데리고 들어온 방안이 훈훈하게 느껴졌다.
괜히 추운거같아 입었던 가디건을 벗어 던지고 하나는 세심을 기울여 별로 맛이 달라질것도 없는 인스턴트 커피를 끓여왔다.
좀 더 제대로 된 커피라던가 찻잎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매일 음료수나 마시는 자신의 방에서 인스턴트라도 커피가 발견된것에 하나는 감사했다.

"음? 그러고보니 그 인형.."

"아. 트레이서가 다시 돌려주라고 쥐어줬어요.. 흠. 혹시 이거 다시 누군가에게 줘버리거나 버릴건가요?"

"아, 아뇨! 이리주세요!"

재빨리 메르시의 손에서 토끼인형을 낚아채곤 혹시 어디 실이 뜯어지거나 때묻진 않았는지 후다닥 살핀 뒤에 품에 안고 하나는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죄다 버리고도 이것만은 버리지 못하고 차라리 타인에게 넘겨버리자고 줬지만 다시 돌아온게 정말 기뻣다.

"이거.. 결국 버리지 못했어요.. 박사님에 대한 감정처럼 말이죠."

"버리지 못해서 다행이네요.. 유일하게 남은건가요?"

메르시가 주위를 둘러본 결과 대충봐도 전부 새거란듯 생활기스 하나 없었다.
심지어 매일 손에 잡고 놓질 않던 게임기조차 새걸로 바뀌어있는데 고작 얼마 하지도 않는 토끼인형만이 아무리 관리를해도 막을 수 없는 천의 해진부분을 보이고 있었다.

"네. 이거 말고는 다 버릴 수 있더라고요. 마치 가장 소중한것이 뭔지 알려주는 것처럼.."

"흐음.. 제가 준 것은 절대 버릴 수 없었다는거네요."

만족스럽게 커피를 한모금 넘기곤 메르시는 좋은게 생각났다며 손바닥을 짝 부딫혔다.

"좋아요. 그러면 하나가 절대 절 잊어버릴수조차 없게 앞으로 하나하나 제가 선물해 줄게요. 아무것도 버릴 수 없게. 지울 수 없게요."

"네?!"

"대신. 하나는 저에게 똑같이 되돌려주는거에요. 그러면 되겠죠? 일단. 자, 주고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기까지 저도 너무나 겁쟁이였군요."

메르시의 하얀 의사가운 주머니에서 꺼내어진 그것은 언제부터 거기에 들어있었는지 알 수 없는 반지케이스였다.
일견 약속과 구속의 증거와도 마찬가지인 반지는 메르시가 생각하기에 하나가 제일로 필요로하는 물건이였다.

지나가다 본 선명한 분홍빛 핑크다이아가 빛나는 반지는 부담스러워할까봐 사두고도 미처 주지 못하고 주머니 손에만 간직했었는데 이제야 주인을 찾아가고 있었다.

"으으.. 알았어요! 하지만 저도 박사님이 잊지못하게 주신거보다 많이 줄거니까요. 각오하셔야해요!"

우선 반지!
내일 반지를 맞추러가자고 외치는 하나와 거기에 웃는 메르시는 내일의 첫데이트의 계획에 대해 얘기하며 며칠간의 고뇌와 원망의 감정을 전부 날려버리고 앞으로의 서로에 대한 선물계획에 기대감에 가득 차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