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깔 비웃는 소리와 질척한 피냄새가 진득한 이상한 총천연색의 공간 안에서 이로하는 숨을 쉴 때마다 손끝, 발끝으로부터 힘이 빠져나가는걸 느꼈다.

살기 위해 호흡하는데 숨을 쉴때마다 생명이 흘러 사라지는 무력한 느낌.

그것은 이 손으로 붙잡지 못한 가여운 그 아이를 생각나게 했다.

"아직 늦지 않았어. 소원을 빌고 마법소녀가 되면 넌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어. 자, 마녀에게 죽고 싶지 않지? 어서 소원을 말해줘, 타마키 이로하."

봉제인형 같이 생긴 이상한 하얀 생물이 하는 말은 이 공간만큼이나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소원? 무슨 소원을 빌라는걸까. 조금만 더 빨리 왔다면 좋았을텐데.. 이미 모든걸 다 잃었는데 도대체 뭘 바라라는걸까.

괴롭지만, 무섭지만.. 이대로 죽어서 그 아이가 기다리는곳에 가는것이 행복이지 않을까?

"그걸로 만족하는거야?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쉬운 일이네. 아주 작은 소원이라도 괜찮아. 지금 당장 살고 싶다는 어때?"

살아서? 살아서 뭘 하는데?

이미 소중한것들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 영원히 주울 수가 없는데.

아아..그 아이도, 나도 무슨 죄가 있었던걸까?

"무엇이라도 괜찮아. 원한이라도 행복이라도 바라는게 있다면 단 하나만 이뤄질거야."

원한..?

몽롱한 정신이 그 순간 뚝 둑이 터진듯 휘몰아쳐왔다.

그 아이는 왜 그렇게 죽었어야 했나. 나는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 아무것도 잘못한게 없는데.

전부 다 죽어버렸으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우이가 죽고 장례식도 끝나 우이가 땅속에 잠들게 된 이후였다.

모두 슬퍼했었는데, 이제는 미래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우이는 미래를 꿈 꿀 기회를 영원히 잃었는데.

우이에게는 나 뿐이다.

어머니도 아버지고 이미 추스리고 일어서 버렸다. 우이를 기리는건 나만이다.

세상은, 사람들은 우이가 죽었는데도 아무렇지 않다. 다들 웃고 떠들고 기억하지 않는다.

우이가 죽어도 변함없는 세상따위 필요없다.
이런 세상따위 전부 없어져버렸으면.

"어서 소원을 빌어. 빨리!"

"이런 세상따위 필요없어.. 전부 다 부숴버리겠어.. 그때까지 나는 죽을 수 없어!"

산소가 부족해 일하지 않는 뇌는 정리되지 못 한 바램들을 뒤섞어 흩뿌려 놓았다.

"이로하, 네 소원은 엔트로피를 능가했어."

그것이 마법소녀 타마키 이로하의 기원이었다.

.
.

카미하마시에는 주변보다 마녀가 많지만 월등히 강력하다. 보통 마법소녀로는 사역마를 잡는것도 힘들 수 있고 숙련된 마법소녀도 고전 할 정도다.

나나미 야치요는 그런 카미하마시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아온 베테랑 마법소녀로 동료가 없어도 단독으로 마녀사냥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에 자신이 있다.

그러니까 다른곳에서부터 온 마법소녀가 눈앞에서 죽는것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조금 위협을 담아서 도와주는 김에 밖으로 쫓아내기도 하고 있었다.

대학생, 모델, 마법소녀를 겸임하는 야치요가 언제나 주시 할 수 있을리도 없고 늦은 경우도 많지만 여유가 있을때는 언제나 패트롤을 하고 있다.

"..늦었나?"

피웅덩이 위, 골목의 벽에 기대 앉아 있는 본 기억이 없는 교복 차림의 여자아이는 그리프시드를 손으로 그러안은채로 눈감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녀와 서로 마지막일격을 주고받았는지 마녀의 결계도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다행히 죽지는 않은것 같지만.. 미타마에게 데려가야겠네."

야치요는 치유가 특기는 아니므로 이만큼 중상을 입은 마법소녀는 조정상에 데려가는게 빨랐다.

이번은 살아남았지만 강한 마녀와 또 싸울지도 모르니 향후를 위해서라도 조정상을 만나는건 이 아이에게 좋은 일이기도 하다.

방침을 정하고 소녀를 안아올리기 위해 다가가려고 하는데 야치요의 발치에 분홍빛 화살이 박혔다.

"다가오지 마."

변신이 풀렸을 정도로 다쳤는데도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는지 노려보는 시선이 날카롭다. 그 짧은 순간에 교복을 검은 로브로 바꿔낸 마력은 소름끼칠 정도로 적의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역시 일어설 힘도 없는 신체를 억지로 움직인건지 석궁을 매고 있는 팔이 스르륵 바닥을 향한다.

"당신, 그대로 있으면 죽을거야. 처음보는 마법소녀를 경계하는건 이해하지만 도우려는 사람이랑 적 정도는 구분하는게 어때?"

"내버려둬.."

눈을 뜨고 있을 힘조차 잃었는지 스르륵 감기는 눈꺼풀은 통각차단을 할 여유도 없는지 고통에 떨리고 있었다.

예상외의 반항이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움직임을 멈춘 소녀에게 다가가서 야치요는 마녀화 직전처럼 보이는 새까매진 소울젬에 자신이 가진 여유분의 그리프시드를 가져다 대었다.

맑게 정화된 소울젬은 밝은 분홍색. 들어올린 신체는 지나칠 정도로 가벼웠다.

바르작대며 벗어나려는 몸짓은 새끼고양이와 다를 바 없이 허약해서 꽉 힘을 줘 안으면 얌전해져버렸다.

"어차피 안죽으니까 내려놔.."

"이런 신체로 그런말을 해봤자 아무도 믿지 않아. 용케 마녀를 이겼네."

"나랑 상관도 없잖아."

"누구라도 이런 상태의 사람을 보면 처음봤든 아니든 도우려고해."

"도우라고 한 적 없어."

티격태격 말다툼을 하면서도 최대한 부담이 안가게 편한자세로 안아들고 다른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이동하는건 꽤 힘든 일이었지만 이런 상태에서 환자가 정신을 잃는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미타마. 응급환자. 부탁할 수 있어?"

"어머, 야치요. 지금 손님은 없지만..그 아이 어디도 다친데는 없어보이는데? 피투성이지만.."

"응..? 그럴리가. 분명히 피를 엄청 흘렸는데?"

"그러니까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잖아. 나는 이제 가야겠어."

턱 야치요를 밀치더니 비틀비틀한 발걸음으로 걸어간다. 치유마법을 쓴 흔적도 없는데 그 어디에도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따라가지 않아도 돼? 다친곳은 없지만.. 또 마녀라도 만났다가는 이번에는 죽을지도 모르는데."

"..실례했어."

히죽히죽 웃는 미타마의 표정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지만 확실히 아직 경고도 하지 못했고 저 상태로 보냈다가는 어딘가에서 또 쓰러질것 같았다.

비척비척 걸어가는 모습이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인데 소녀는 집에 돌아갈 생각이 없는지 또 다시 어스름한 뒷골목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디 가는거야? 집은? 그러고보니 이름은?"

"..."

대화해봤자 쫓아낼 수 없다는걸 알자마자 소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날도 저물어가고 지하철도 곧 끊길 시간인데 사람이 없는 뒷길만 헤매고 다니는 모습은 집에 돌아갈 마음이 없어 보였다.

결국 야치요는 가출을 했던지 아니면 돌아갈곳이 없던지 이 혼자두기 불안한 소녀를 데리고 돌아가기로 했다.

물론 이번에는 기운을 꽤 차렸는지 반항이 거칠었지만 이래봬도 카미하마시 마법소녀들의 최연장자. 밖에서 온 것 치고 이상할수록 강했지만 제압해냈다.

"놔! 놓으라고! 납치범으로 신고할거야!"

"네.네. 할 수 있으면 해보면? 가만보니 스마트폰도 없는것 같은데.."

옆구리에 끼인채로 바동바동 움직이는 모습이 꽤 귀엽지만 머리치장 바로 밑 관자놀이를 스치고 지나간 화살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사나운 성격같다.

서슴없이 소울젬을 노리는 모습을 보건데 험악한 지역의 마법소녀였을까? 아니면 계속 따라다니는 야치요가 음울한나머지 위협한걸지도 모른다.

신고해보라곤 했지만 이런 모습이 눈에 띄어서 좋을건 하나도 없으므로 야치요는 일단 소녀를 집에 데리고 들어갔다.

사람 한, 둘은 커녕 서너명도 재울 수 있는 하숙집이므로 오늘 하루 재우고 사정을 탈탈 털어볼 생각이다.

"왜 나따위를 신경쓰는거야? 곤란한 마법소녀는 지천에 널렸고 마녀에 죽을뻔한 사람은 그보다 더 많은데."

야치요가 이 소녀를 책임 질 필요는 물론 하나도 없다.

집이 없든 가출을 했든 지금까지 구해주고 쫓아내버린 마법소녀들을 데리고 집에 간 적도 물론 한번도 없다.

"삶을 포기한것 같은 눈이 마음에 안들어서..일까?"

"하? 쓸데없는 참견이야."

그러면서 앞머리를 헝클어트려 눈을 감추는 모습이 기세등등한 말과는 다르게 소동물 같았다.

가만보면 신체도 지나치게 가볍고 눈 아래에 기미도 진하다.

"내가 죽더라도 당신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잖아."

"당신이 아니고 나나미 야치요. 상관없을지 아닐지는 내가 정하는거야. 그래서, 당신의 이름은?"

"...타마키 이로하."

날이 선 말들을 내뱉으면서도 욕은 하나도 하지 않고 이름을 들으면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꽤 성실한 성격인것일까.

"씻고 나면 늦은 저녁을 먹고 자고 가도록해. 이미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까. 연락해야 할 상대는 있어?"

"없어. 그 사람들은 어차피 나한테 관심 없으니까."

보호자는 있는 모양이지만 없느니만 못한 상태인것 같다.

이래서는 내일 풀어줘도 카미하마시에서 나가지 않고 또 돌아다니다가 같은 일이 벌어질것 같다.

"교복을 입고 있던데 학교는? 돌아갈곳은 있니?"

"왜 그렇게 나를 신경쓰는지 모르겠지만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참견 끝났으면 내려줘."

어차피 이미 집에 도착했으니 씻으려면 내려줄 수 밖에 없다. 이로하의 말대로 과한 참견인것은 알고있는 야치요는 조용히 이로하를 내려줬다.

당장 도망갈 생각은 버렸는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이곳저곳 둘러보는 모습이 마치 길고양이 같은 이로하는 야치요가 씻으라고 수건을 던지면 반사적으로 잡아채더니 한숨을 푹 쉬고는 야치요가 손으로 가르킨 욕실로 향했다.

말로는 실컷 반항하는 주제에 꽤 순응적인 태도였다. 나쁜아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야치요는 무심코 오늘 처음 만난 마법소녀에게서 경계를 풀어버렸던것이다.

그것을 후회한것은 주변이 침묵으로 가라앉은 새벽.

목에 느껴지는 시리도록 차가운 감촉과 몸을 짖누르는 무게에 눈을 떴을때였다.

"역시 베테랑은 다르네..지금까지 한번도 죽이기 전에 눈치챈 마법소녀는 없었는데.."

창밖에 훤히 빛나는 달에 음영이 진 얼굴은 형형한 눈동자 밖에 보이지 않았다. 웃고있는것인지 울상을 짓고 있는것인지 야치요는 판단 할 수 없었다.

단지 하나 알 수 있는것은 이로하에게 이것은 일상이고 아주 익숙해진 일이라는것. 방심하고 있었다고는 하나 야치요는 오래 살아남은 마법소녀다. 이렇게 쉽게 급소를 내어준적은 단연코 한번도 없다.

"뭐야. 겁먹지 않아? 울어도 외쳐도 살려줄 생각은 없지만. 혹시 누군가 도우러 올지도 모르잖아?"

"글쎄. 이 주변에 사는 마법소녀는 없어서. 그리고, 바로 죽이지 않았다는건 무언가 용건이 있는거겠지, 암살자씨?"

"..하, 마법소녀 경력이 긴 당신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날 죽여줘. 아니면 날 죽일 수 있는 마법소녀를 소개해줘."

처음부터 요구조건을 듣게 하려고 위협했는지 의문에 고개를 까딱하는 야치요에게 오히려 이로하가 동요해서 나이프를 살짝 치우는게 보인다.

"엉뚱한 자살지망자를 주워와버린 모양이네. 죽고 싶다면 적당한 마녀를 찾아서 특공해보면 되지 않아? 아까도 거의 다 죽어가고 있었으면서."

"말했잖아. 나는 죽지 않아. 소울젬이 부서져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뿐.. 이 세상이 없어질때까지 죽지 않을거야. 그게 나의 소원이었으니까."

"..보통 그렇게 소원을 남에게 알려주는 마법소녀는 별로 없는데. 경솔하구나."

"죽지 않으니까."

소원은 곧 마법소녀의 고유마법.

그리고 기원이다..

마법을 알려진다는건 곧 전투할 때 약점을 찔리기 쉬워진다는것이고 소원 자체가 마법소녀의 가장 소중한게 뭔지 알려주는거나 마찬가지이므로 마음의 약점이기도 하다.

"못믿겠으면 확인해도 좋아. 자, 여기. 이대로 찌르면 내 소울젬은 부서지고, 죽겠지? 누르기만 하면 돼."

야치요가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이로하는 나이프를 야치요의 목에서부터 자신의 목을 향해 바꿔들고는 야치요의 한손을 꾹 나이프의 손잡이에 밀어붙여 그 위에 자신의 손을 얹는다.

날 끝으로 사람의 영혼에 닿는것은 소름끼치는 감각이었다. 자신의 손짓 하나로 한사람의 운명을 부숴버릴 수 있는 위치는 마치 자신의 소원과도 같이 불쾌감을 느끼게 했다.

"왜 망설이는거야? 눈 앞에서 사람이 죽는 모습은 마법소녀라면 수도 없이 봐왔을텐데. 당신, 혹시 사역마까지 다 잡는 타입의 마법소녀?"

업씬여기듯 목소리를 낮게 깔고 물어보는 이로하는 야치요가 부정하지 않자 하, 하고 기가막힌 소리를 내었다.

"그럼, 이건 어때. 당신이 나를 죽이지 않는다면 나는 이 거리의 마법소녀들을 죽이고 다닐거야. 그러면 마녀를 잡을 사람이 없고 결국 사람들이 죽어나가겠지. 마지막으로 마녀를 사냥하면 간단하게 이 세상은 무너져. 어때? 죽일 마음이 들었어?"

"읏.."

꾹. 무심코 힘을 주고 만 나이프의 끝이 이로하의 소울젬을 긁어 내렸다. 마법소녀에게는 이것만으로 치명상이다. 금이 간 소울젬 때문에 영원히 깨어나지 않은 마법소녀도 있다.

야치요는 자신의 실태에 숨을 들이키며 서둘러 손을 떼어놓아버렸다.

"인내심이 강하네. 부숴뜨리는게 더 확실한 증명이 됐을텐데..봐. 끔찍하지? 잔혹하지 않아? 누구에게나 평등히 내려질 영혼의 안식을 빼앗긴 모습이 어때."

분홍빛의 희미한 빛이 감돌며 서서히 소울젬이 회복되어가는 모습은 이로하의 말과는 다르게 오히려 눈앞에서 기적을 선보이듯 성스러워보였다.

하지만 어두운 방 안에 생긴 희미한 광원의 덕분에 보이게 된 이로하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뚝뚝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어서 아, 그녀에게는 이것이 저주구나라는걸 말해주고 있었다.

"타인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자신의 소망만 우선한 사람의 말로야. 죽음에게도 거절당하고 추악하게 세상의 멸망을 뒤쫓아야만해."

"그런 소원을 빌것같지 않은데..."

"사람은 벼랑 끝에 몰리면 본성을 들어낸다고 하잖아. 난 그런 사람인거야."

더이상은 듣지 않아도 알것 같았다. 분명 이 아이도 큐베의 희생자겠지.

여유가 없어진 사람은 그 순간 가장 최악의 선택을 한다. 소중한 사람도 가지고 있는 꿈도 희망도 떠올릴 수 없을때 떠오르는것은 절망 뿐이니까.

그것을 본성이라고 칭하기에는 너무 가혹하고 인간미가 없다. 사람들은 대체로 상황이 허락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생각하니까.

"죽지 않는다는건 정말? 혹시 재생능력이 높은걸지도 모르잖아."

"영혼이 더러움에 물들어 버티다못해 산산조각이 나도 되살아나면 그 능력이 재생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잖아. 어쨋든 죽지 못하니까. 그래서 대답은?"

"그렇다면..제안이 있어. 나의 소원은 리더로써 살아남고 싶다..즉 동료를 희생해서 나만은 살아남는거야. 타마키씨, 내 동료가 되는건 어때? 당신과 내 소원..어떤게 더 간절한지 시험해보자."

절대 죽지 않는 동료.. 야치요는 이로하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선 내심 바라마지 않던 구원을 얻은것 같았다.

그게 이로하에게는 절대 기쁘지 않은 저주였다고 하더라도 이 외롭고 고독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제가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내려온것을 놓칠 수 없지 않은가.

이로하는 지금 당장이 아닐 미온수같은 제안에 탐탁치 않은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변신을 풀고는 야치요의 위로부터 비켰다.

"어차피 시간이라면 많고 당신이 죽기 전까지 누가 더 최악인지 비교해보는것도 나쁘지 않겠네. 분명 내가 이기겠지만."

"어머, 얼굴도 모르는 타인의 불행을 바랬던 사람이랑 서로 목숨걸고 같이 싸운 사람들에게 불행을 준 사람을 비교하면 당연히 이쪽이 승리이지 않겠어?"

"양보다 질? 사람의 목숨에 경중을 붙이는건 그다지 좋지 않은것 같은데."

"타마키씨는 세상의 멸망을 바란것치고는 꽤 박애주의네."

말의 이모저모에서 상냥함이 베어나와서 도리어 안쓰러워졌다. 목숨을 위협당한 상황에서 느낄 감정은 아니지만..

"..동료니까 그냥 이름으로 불러도 돼."

"그럼, 이로하. 앞으로 잘부탁해."

대답을 하지 않고 등을 돌려 나가버리는 이로하의 최대한의 반항을 보며 야치요는 씁쓰레 웃어버렸다.

어디까지 자신은 야비해질 수 있는 것일까. 언뜻보면 평등해보이는 계약이지만 야치요는 이 내기에서 잃을게 없다고 확신했다.

이로하는 이기기 위해, 죽기 위해 야치요를 지키려고 할 것이다. 동료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할것이다. 소울젬이 부서져도 살아남는다면 그 몸을 희생해서 야치요를 구하더라도 죽지 않을것이다.

야치요는 이미 충분히 오래 산 마법소녀다. 언제 미후유처럼 약체화 할지 모른다. 그리고 죽고 싶어하는 이로하에게는 미안하지만 죽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다. 야치요가 죽는다면 이로하는 혼자 남을것이고 그때서야 속은걸 알겠지.

아마도 먼저 죽는것은 야치요일것이다.
야치요는 이로하가 듣지 못할 사과의 말을 내뱉고 새로운 동료와 맞이 할 아침을 기대하며 다시 잠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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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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