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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8.04.24 (코코미사카논)솔직하지못한 사람(상)

리퀘3

뱅드림/그외 2018. 6. 8. 13:47
같은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건 카논씨를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학년도 다르고 학부가 다르니까 만날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어머, 오쿠사와씨 대학교에서는 처음 만나네. 이 강의 듣는거야?"

싱긋 웃고있는 얼굴에 악의는 일체 느껴지지 않지만 벌써부터 무슨 관계인지 수근거리는 주변의 시선에 짖눌려버릴것 같아서 모자를 푹 눌러써 얼굴을 숨긴다.

인기있는 아이돌의 아는 사이라는걸 알려지면 소개해달라던가 무슨 관계냐는 질문이 비처럼 쏫아질게 뻔하니까 마주치더라도 아는척은 하지 않았으면 했는데.

시라사기선배도 그다지 나에게 친해지고 싶다같은 관심은 일체 없어보였으니까 서로 모른척 지나갔으면 오늘도 평온한 하루가 되었겠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라면 눈 딱 감고 인사만 한 후 얼른 빠져나가는게 건설적이겠지.

"안녕하세요 시라사기선배. 1학년 교양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 선배도 이 강의 들으세요?"

아차, 왠지 2학년이면서 왜 이 강의를 듣냐고 비꼬는것처럼 말해버렸다.

갑자기 유명인이 말을 걸어 곤혹한것은 사실이지만 후배에게 인사하는 사람이 잘못한것은 아니니까 이래서는 안됐는데.

얼른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마음에 너무 냉정하게 쳐버린것 같았다.

"흐음.. 작년에 촬영스케줄이 꼬이는 바람에 출석시간이 부족해버려서.. 안타깝게 재수강을 하게 되버렸어. 그러니까 잘부탁해?"

말실수에 얼굴이 파래진 나를 알아챘는지 부드럽게 남어가는 시라사기선배는 시선을 끄는걸 꺼리고있는것도 눈치챘는지 인사를 하고 바로 강의실을 떠났다.

앞으로 한 학기동안은 마주칠텐데 처음부터 큰 실례를 저질러버려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돌활동 때문에 바쁘다는것은 자주 들었으니까 이 교양강의는 신경써뒀다가 노트를 빌려드리는것도 괜찮을지 모른다.

하여튼 일주일에 두시간뿐인 교양이니까 노트를 빌려줄 정도로 대화를 나눌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하로하피 밴드에서 친해진 후배가 나와 같은 대학교라고 카논이 말했던것은 기억의 한켠에 남아있었다.

곰인형탈을 쓰고 디제잉을 하니까 걸즈밴드파티의 멤버이더라도 얼굴을 맞댄적은 손에 꼽을정도였고 그나마도 주로 카논이랑 대화를 할때에 마주쳤던것 뿐.

그러니까 이렇게 두명이서 대화를 한적은 없을지도 모른다.

"저기, 저번 시간에 강의 못들어오셨죠? 교수님이 저번 강의 시험에 출제될 문제가 여러개라고..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괜찮으시면 노트 빌려드릴게요."

이런 일이 아이돌활동을 하면서 대학교를 다니고있으니까 한두번은 아니었지만 이 아이가 이런 제안을 한다는건 예상밖이었다.

언제나 관련되고 싶지 않다는 일그러진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그래도 선배에게로의 예의를 지켜야한다는 고뇌에 시달리는 모습은 첫날 이후로 말을 걸지 않게된 이유였었는데.

사실은 미움받는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며 서투른 호의를 받아들였다.

"저번에 인사해주셨을때 냉정하게 대한건 죄송해요. 그냥, 여기서 마주칠줄은 몰랐으니까 당황한것뿐이에요."

그렇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감사의 말도 무엇도 기대하지 않았다는듯 바로 돌아서서 떠나버리는 모습은 지금까지 스케쥴로 빠진 강의에서 노트를 빌려주겠다고 다가오던 사람들과는 사뭇달라서, 관심이 갔다.

정성스럽게 쓰인 글씨는 공들여 정리한 티가 나는데 아무것도 바라지않고 단지 사과하고 싶은 마음 하나만으로 이렇게 마음을 쓰다니.

무덤덤하게 정적인 분위기의 속에는 다른것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자극된다.

"카논이 말하기로는 상냥하다고 했지만, 귀찮은건 기피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사소한걸 신경쓰는 성격이네."

사실을 말하자면 그러한 성격을 겉으로 파악했음에도 첫날엔 카논의 친한 후배에게 조금 심술을 부려 다가간것이었다.

굳이 싫다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러 갈 만큼 한가하지도 않고 괜히 사적인 관계에 반입하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조금 놀려주고 금방 잊어버리자고 생각했는데..

스윽 넘겨보면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현광펜으로 줄까지 그어진 아무리봐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게 전제인 노트.

그날로부터 몇주가 지났는데 사과할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니 참으로 귀여운 후배가 아닌가.

조금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남은 학기 동안에 신세를 지며 친해지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았다.





어째선지 빌려준 노트의 답례를 이유로 점심을 얻어먹은 이후로 자주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인기인은 혼자서 식사를 하기는 신경쓰이지만 함부로 타인과 친하게 지내는것도 경계를 해야하는지 이전부터 미약하지만 교류가 있다고 할 수 있는 내가 편했다는거겠지.

같이 점심을 먹는 친구들이 있긴 했지만 대학교의 유명인 시라사기 치사토가 권유하는 장면을 목격하자마자 등을 사정없이 두드리며 축하한다는 영문모를 말을 쏫아붇고는 사라져버렸다.

결국 나도, 혼자가 싫으면 시라사기선배와 점심을 함께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는것이다.

"이번에 찍는 드라마가 꽤 화제던데. 역시 시라사기선배는 대단하네요."

"흐음. 오쿠사와씨가 나에 대한것에 관심을 가지는것은 드문걸. 드라마, 원작이 유명한 소설이니까 내용도 재미있어. 괜찮다면 한번 봐보는걸 추천해."

언제나 대화의 내용은 가볍고 사생활이나 일에 깊게 관련되지 않을 주제만.

깊게 엮이기엔 너무 유명한 사람에게 관련되면 피곤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니까.

게다가 우리는 이해관계가 맞았을뿐이지 친하다고도 뭐라고도 하기 애매한관계라고 생각하니까.

교양강의가 종강을 맞이하는 순간에 이러한 교류도 사라질 얇은 관계성.

아마, 시라사기선배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러고보미 오쿠사와씨는 아직도 나를 선배라고 부르네."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말은 이 관계를 고정하는 호칭에 대한 자그마한 불만.

그러므로 예상치도 못 한 말에 당황하는 나에게 내려진 관계에 대한 정의를 수정하려는 제안은 지극히 평온하게 일상을 부수려고 한다.

"카논처럼 치사토씨라고 불러줄래?"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는 웃는얼굴로 당연히 그래줄거라고 의심치 않는 평온한 말투로.

하지만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제안을 거절하면 나름대로 마음에 들었다고 생각하던 이 조용한 점심시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게 안타까워서.

"네, 그럼.. 저는 미사키라고 불러주셔도 괜찮으니까요."

그래서 나도 허락해버린지도 몰랐다.



조용하고 적당한 거리감을 지켜주는 미사키와의 점심시간은 일과 학업으로 바쁜 와중의 치사토에겐 조금의 낙이었다.

쓸데없이 자신을 꾸미지 않아도 되고 헛점을 들어낼까봐 철저하게 준비할 필요도 없는 정말 편안한 시간이어서 자꾸 틈을 내주게 되버린것 같았다.

원래라면 이렇게 가까워질 생각은 없었는데.

"오쿠사와씨, 오늘도 점심 같이 어때?"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요. 죄송하지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반응은 예상외, 어째서 거절당한 나보다 거절을 한 당신이 더 상처받은 얼굴을 하는 걸까?

도망가듯 고개숙이고 스쳐지나가는 당신을 미처 잡을수도 없이 놓쳐버렸다.

내밀었던 손이 내쳐진것도 매우 충격이었지만 내가 무언가 상처 줄 일을 했었는지가 더 신경쓰였다.

항상 난감한 얼굴을 했어도 가끔 쑥쓰러운 웃음도 지어줬으니까 이 만남이 나만 즐거웠던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다던가? 아니면.. 이제 귀찮아진걸까."

원래부터 싫어하며 피하던 사람을 억지로 붙들었던거나 마찬가지였다.

거절당해도 상관없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끌었던 손에 다가와준것이 이상했던것이다.

그러니까 어차피 원래 이렇게 될 일이었다고 생각하면 괜찮을텐데 어째서 이렇게도 가슴 한 쪽이 텅 빈것같은 허무함이 느껴질까?

"생각보다 마음을 줘버린걸지도.. 하지만 곧 잊어버리겠지."

강의시간만 아니라면 원래 마주칠 일도 없었다.

우연이 겹쳐 올해 들을리가 없었던 교양의 재수강시간에 스쳐버렸을뿐.

다시 예전처럼 카논과 이야기할때 언뜻 소식을 묻는것만으로 충분한 남과 같은 관계로 돌아갈뿐이겠지.

내가 아쉽더라도 상대가 같은 생각을 할지는 알 수 없고, 눈에 띄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잔뜩 민폐를 끼친 후였으니까..

그러니까 놓아줘버리자고 살짝 찌릿하게 아픈 마음은 무시하고 뒤돌아섰다.




무심코 허락해버린 마음한자락이 성장해서 나를 온통 집어 삼킬때쯤에 그 소문은 들려왔다.

자랑은 아니지만 동기들이랑은 두루 친하니까, 소문에는 나름 밝은 편이었던게 원수로 돌아올지는 몰랐다.

"야, 오쿠사와. 그러고보니 시라사기선배 남친 생겼다던데 본 적 있어?"

그러니까 어딘가 기대했던것을 처부수어진건 전부 내가 얻을수 있늘리도 없는것을 탐낸 대가다.

언제부터 나는 내가 계속 옆자리에 있을거라고 믿게 되버렸지.

거긴 원래부터 내 자리도 아니었고 그저 내가 편한 상대였기에 잠시 빌려주듯 내어주었을 뿐인데.

지극히 일반인인 자신이 그런 유명인의 옆자리에 있을 수 있을리가 없잖아.

그런데도 잔인한 당신은 마치 아직도 내가 거기에 있어도 된다는듯 태연히 손을 내밀어와서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거절해버리고 말았다.

그럴줄은 상상도 못했다는듯 충격받은 얼굴에 조금 죄악감이 몰려들어도 먼저 쳐내는게 거부당하는것보다 마음이 편한 일이니까.

원래부터 못먹을 포도였다고 자기위로 하면서 돌아서는 내 자신의 용기가 없음에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이런 내가 한심하고도 안쓰러운지 기껏 지지해줬더니 차이고 왔냐면서 위로하는 동기들은 깊은 속사정까지는 하나도 모를테니까.

연신 들이키는 알코올은 쓰디 쓴데 고통스러운 현실에 둔하게 만들어주니까 무심코 자신의 한도를 넘겨버렸다.

"정말 혼자 집에 돌아갈 수 있겠어? 너, 지금 엄청 취한거같은데.."

어질어질한 시야에 비틀비틀 발을 내딛다가 푹 고꾸라진다.

몸을 스스로 못가눌정도로 마셔본것은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으니까 둥실둥실 반쯤 허공을 떠도는 기분을 체험하는것도 처음의 일이었다.

나.. 왜 이렇게 바보같은짓을 하고 있지.

벽에 기대 앉은 나의 손에 들려있던 스마트폰을 빼앗겨 어딘가 연락하는 소리를 듣는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자취를 시작했으니까 부모님에게 연락을해도 나중에 잔소리만 더 들을 뿐인데..

차라리 코코로라던가 카논씨라면 자취방의 주소도 알고있으니까 혼날걸 각오하더라도 맡기는편이 나으려나..

흐려진 시야가 어두워질때쯤에 다급히 달려오는 구두소리를 들었다.



"응. 아니. 오지 않아도 될것같은데.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 나중에 도착해서 연락할테니까 걱정않아도 돼."

카논에게 물어서 찾아낸 집주소를 택시기사에게 알리고 술에 취해서 곯아떨어진 미사키의 옆자리에 앉는다.

왠지 며칠새네 수척해진 얼굴을 손가락으로 쓸어보고 푹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어처구니없는 오해를 받고있었던듯, 나를 알아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애인도 있으면서 옆을 내줄것처럼 굴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을때는 난처하기보다 자신에게 화가 났었던것 같다.

오랜 습관으로 자기관리에 철저한것은 언제나 연예계에서 완벽한 시라사기 치사토를 만들어주었지만 사생활에서 정말로 전하고 싶은것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래선 안됐었는데.

언제나 관계의 우위에 서야 했던 버릇은 미사키를 불안하게 만들어버렸다.

"치사토씨...좋아해요.."

애달프게 부르는 소리를 모르는척하는게 나을까 아니면 내일의 당신에게 더욱 더 가까이 다가갈 계기로 만드는게 좋을까.

온기를 찾아서 안아붙는 체온이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아프고 괴로울정도로 나를 좋아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저절로 꾸미지 않은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취했을때가 아니라. 내일 미사키가 일어나서 나에게 똑같이 말해준다면 그때 대답을 줄게."

그때가 무척 기대된다고 어깨의 무게감에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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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미사카논)솔직하지못한 사람(상)  (0) 2018.04.24
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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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 밖에 모를것같은 단촐한 가게 이름만이 써진 나무 간판의 가게에 들어가면 은은한 분위기의 곡이 흐르는 바의 모습이 드러난다.
어째서 이런곳을 알고 있는지 궁금해지지만 하여튼 상대는 자신과 다르게 사람과의 교류가 능숙한 사람이니까 누군가에게 들었다던가하겠지.

바텐더 앞에 앉아 만나기로 한 사람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빈잔을 몇잔이나 두고 있는 그 사람의 옆에 앉는다.
분명 약속시간에 늦지 않으려 조금 빨리 나왔는데 이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빨리 온걸까.
철저히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이라해도 한번도 자신보다 늦어 약속장소에 도착한걸 본 적이 없다.

"아? 왔구나 이치가야씨. 미안 기다리기 지루해서 먼저 마셨어. 어떤걸로 할래?"

"...어째서 도수높은 칵테일을 몇잔이나 마셔도 멀쩔한거야. 당신 진짜로 술꾼이네."

아하하하고 웃어 넘긴다고해도 매번 어울리는 이쪽은 술이 그렇게 강한것은 아니니까 나름 필사적이다.
오늘도 각오하고 내일 일정을 비워두고 온 것이니까 내 어울려주려는 노력에 감사해줬으면 한다.

"이야-. 술이란것은 느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역시 많이 마시면 익숙해지는걸까? 처음엔 그렇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능글거리며 또 빈잔을 하나 만들어내고선 내 주문과 함께 한잔을 더 받는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들은 적은 없지만 만날때마다의 씀씀이를 보면 나름대로 돈은 벌고 있는것 같으니까 비싼 칵테일을 물처럼 마셔도 말릴 필요는 없겠지.

안주도 하나 안시켰냐고 팔을 퍽 치고서는 대충 가게의 시그니처정도를 부탁한다.
자랑스레 써져있으니까 실패는 하지 않겠지.
무엇보다 이 상대가 고른 가게에서 실패가 있던적은 없었지만.

"이치가야씨는 도야마씨랑 잘되어가는중~?"

"하앗?! 갑자기 무슨 소리야!"

딸그랑

잔 속의 얼음을 굴리며 태연히 이쪽의 깊숙한 영역에 발을 들인다.
다른 사람에게도 이러는걸까?
본인은 무엇을 묻던 빙글빙글 주제를 돌려버리는 주제에 남의 영역을 짓이겨오니까 당하는 이쪽으로써는 분할 뿐이다.

그보다 이러한 주제를 꺼내는건 본인의 사정을 말하기 싫어하는 상대로써는 특이한 일이다.
지금까지 몇번도 은연중에 그런 소재를 꺼내려고 하면 재빨리 차단당해와서 나로는 안되는걸까 싶어 다시 꺼내지 않았었는데.

"아~. 가끔 귀찮아 죽겠지만 동거를 시작하면 많이 침착해졌고.. 그래도 가사분담을 했으면 제대로 지켜줬으면 좋겠달까 정도의 고민은 있는데."

"흐응.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네. 다행이야."

"...그러는 오쿠사와씨는 어때? 그러한 이야기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꺼낸걸 보면 무언가 말할게 있는 거지?"

"아. 역시 그렇게 들렸구나."

슬쩍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기는 손짓에 무심코 눈이 가면 라이트의 빛이 반사해 반짝 빛나는 피어스가 두개.
차가운 은의 단촐한 디자인은 식어있는 평소의 오쿠사와씨와 무척 어울려서 오래 응시해버린다.

이러한 장소인데도 꾸미지 않은 복장과 크고 굳은살이 박힌 손, 무심한 표정과 자연스런 태도가 나하고는 천지차이인데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술친구같은것이 되어 있는지 모른다.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구나하고 말을 걸어왔던 처음의 오쿠사와씨는 나에게서 무엇을 본 것이겠지.
솔직하지 않은것?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

적어도 오쿠사와씨는 타인과의 교제가 골칫거리라던가 요령이 없지는 않아서 솔직하지 못하다는것도 티가 나지 않는다.
거리감같은것이 느껴지는때는 자주 있지만.

"뭐. 나는 누군가랑 사귄다거나 동거하는중이란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오히려 최근 나는 그러한것 역시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

"어째서? 인기있는편이잖아 오쿠사와씨. 고등학교 졸업식때 여기저기 불려가는거 봤는걸."

"그런걸 말하는게 아니란걸 알잖아. 그 아이들의 기분을 무시하는건 아니지만 꾸민 모습 밖에 보지 않은 사람이란 결국 실체를 알면 실망할 뿐 일테니까. 역시 나라도 미움받고 싶지 않으니 좋았던 기억으로 남는편이 그쪽도 이쪽도 윈윈 그렇겠지? 자, 건배-."

그런거 한번도 하지 않았었는데 느닷없이 내미는 잔에 못마땅하게 잔이 아닌 반대편 손을 주먹으로 만들어 가볍게 툭 쳤다.
정말 유쾌하게 하하하 웃는 모습이 내 최대한의 비꼼은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은 모양이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한 기분이 사라지진 않았다.

"다시 이야기를 돌려서. 이치가아씨와 나는 많이 닮았다고 말했지만 역시 아니라고 생각했어. 오히려 정반대이니만큼 통하는게 있었던거지."

"정반대? 그런거치곤 밴드활동때 오쿠사와씨랑은 항상 의견이 일치했던거 같은데."

"결과가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과정의 문제지. 더욱이 밴드활동에서의 사소한 다툼에서는 그렇게 다른 차이가 느껴지기 전 완결해버린다고 할까? 어차피 우리가 반대하든 싫던 답은 정해져있던 문제들이었잖아."

포핀파도 하로하피도 츳코미역의 우리들의 의견은 그다지 반영이 되지 않았었다.
꿈으로 향해 달리는 정열에 현실에 붙잡힌 우리들의 식은 말들은 닿기 전에 녹아버리는것 같아서 말의 반이나 도착했는지 우리는 알수없다.

"하지만 현실로서 지금 이렇게 극렬한 차이가 있지. 이치가야씨 나에게 하로하피에 대해서 묻지 않는건 왜야?"

"윽...그, 그건.. 말하고 싶지 않은게 아니야?"

"딱히. 손을 놓은건 나이니까. 다 내 잘못이지. 언제나 그랬어."

없어도 상관없지만 있으면 먹는 모양인 오쿠사와씨는 안주를 한입 먹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매우 지쳐보이는 얼굴이었다.
같은 고생을 나누는 사람이어도 일단 하게되면 제일 열심인 오쿠사와씨는 남에게 이런 지쳐보이는 표정을 보이는 일은 없었을텐데.

"실은 코코로와 카논씨 두명에게서 고백받았거든."

"에엑?! 뭐야. 나한테는 그런 이야기 다 털어갔으면서 왜 말 안한거야? 그래서. 사귀는건 누구?"

"아무도."

"하?"

순간 잘못들었나 하고 반문했다.
착각이 아니라면 오쿠사와씨는 분명 하로하피에 애정을 보내고 있었고 둘 중 누구를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그시절 카스미의 당당한 등을 보는 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을텐데.

"이게 나와 이치가야씨의 결정적 차이. 저기. 나는 도저히 나 자신을 좋아할 수 없었던거야. 누가 고백했는지는 상관없었어. 누구라도 똑같았겠지."

"무슨말이야."

자신을 좋아하지 못한다던가 금시초문.
그게 나르시즘같은 의미는 아니라고 알겠지만 그럼 나는 자신을 좋아한다는거? 그렇게 자존감 충만한 사람으로 보이는걸까.

"이치가야씨의 그것은 자신이 소중해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세우는 벽같은거지. 그러니까 상대가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하면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올 수 있어."

손가락 두개로 톡톡톡 앞으로 걸어가는 모양을 표현한다.
의외로 행동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네.

"나의 이것은 나 자신이 너무 싫은 나머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거랄까. 그러니까 이 어두컴컴한 벽에 문같은건 없어. 그것을 누군가 깨부수면 너무 밝은 빛에 점점 더 어두운곳으로 파고들어버리는거야."

앞으로 걸어가던 사람이 올때보다 더 빨리 뒷걸음질을 하곤 움츠러든다.

"어때 이해가 됐어? 참 한심한 사람이지. 타인은 그렇다쳐도 자신도 못믿는다니 엄청난 겁쟁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이야기를 다 듣고도 역시 아리사는 미사키의 말에 동의는 하지 않았다.

그도그럴게 쑥쓰러워 절대 말하진 않겠지만 상냥하고 남을 배려하며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 이런 사람이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니 그런 터무니없는 헛소리를 이해하라니 바보인 카스미도 안넘어갈 소리다.
터무니없는 겁쟁이에다가 거짓말쟁이인것은 분명한 사실인거같지만.

"오쿠사와씨는 자신보다 타인이 너무 너무 소중한것뿐이야. 항상 전력으로 타인을 도우려다보니 그만 애정의 총량을 넘어서 자신에게 미치지 않은것 뿐이지. 그런걸 헌신이라고 하는거 아닐까. 말하자면 자기희생."

"하아? 그런거 제멋대로인 에고로 두명이나 상처를 준 나한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그래. 오쿠사와씨 혼자만 악역이 된다면 두명은 그대로 사이좋은 사이로 남는다는 계산이겠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한테 그런 거짓말이 통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당신도 말했잖아? 사고방식은 하여튼 결과는 똑같은거라고."

츠루마키 코코로의 후계자수업을 위한 해외 장기체제에 따른 하로하피 활동 동결은 한동안 떠들썩했던 이야기였다.
하로하피의 활동내용은 모두를 웃는 얼굴로이니까 하로하피 동결이라기보단 밴드활동 동결이지만-하고 가볍게 말했었던 오쿠사와씨가 생각난다.

하지만..그런가.
지금이라면 이사람이 그것에 대해서도 후회하고 있다는것도 이해된다.
하로하피가 계속됐으면 했지만 다른 멤버들의 사정을 생각하면 자신의 기분따위 중요하지 않았던거겠지.
그렇지만 그렇게 소중히 아껴왔던것이 사라졌으니까 홀로 고통을 감내한다.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으니까.

"하하하. 역시 이치가야씨를 속이는건 무리네. 응. 실은 말이지. 나는 아직 고백에 답을 하지 않았어. 누군가가 나에게 옳았다는 말로 등을 밀어주기를 기다렸는지도."

하지만 틀렸다고 하니까.
다시 진지하게 고민해보도록할까.

미사키는 자신이 마신 칵테일과 안주, 지금 아리사가 마시고 있는것까지 전부 포함해도 남을 정도의 돈을 두고선 먼저 가버렸다.
가끔 매정하게 떠나버리는것도 곤란할때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비슷한 사람끼리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할거란걸 알기 때문이겠지.

하아.. 아리사는 괜히 안주를 뒤섰다가 남은 술을 원샷하고 일어섰다.
친구도 없이 이런곳은 미사키라면 괜찮고 어울릴지도 모르지만 자신은 괜히 초조해지기만 했다.

"그야 갑자기 눈이 멀것 같은 빛이 펼쳐지면 도망가고싶겠지. 하지만 등을 돌렸다가도 서서히 익숙해지면 직시할 수 있는거 아냐? 일부러인지 아니면 생각을 못한건지......분명 일부러겠군."

정말 솔직하지 못한 친구였다.
아리사는 픽하고 웃은 다음 일찍 자리를 떠난 친구 대신 지긋지긋한 인연의 동거인을 전화로 호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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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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