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나는 긴장같은건 잘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몇년째 하고 있는 하로하피의 곰인형 DJ도 예전과 달리 유명세를 타서 어디를 가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이지만 난처하긴해도 긴장한적은 없고 최근의 우리가 했던 라이브 중 가장 규모가 컸었던 라이브를 하기 직전에도 오히려 카논씨를 진정시키는 여유까지 보였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손이 덜덜 떨리는지 알 수 없다.

"미사키, 야경이 정말 아름다워! 이런 좋은곳에 데려와주다니 고마워!"

"으응.. 평소에 너에게 받는거에 비하면 이정도쯤은.."

사귀기 시작하고 나서도 코코로의 상식이 무너질것같은 금전감각에는 여전히 놀라는일만으로 조금 잘보이려고 분발해 본 이 장소도 코코로에겐 별거 아니겠지.

커다란 유리창 밖의 야경은 카오루씨가 추천해준대로 환상적이었지만 그 역시도 은은한 조명에 비치는 금사같은 코코로의 머리칼에 비하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성인이 되면서 더욱 요염함을 늘린 지체는 매혹적인 붉은 벨벳에 휩싸여 외국의 피가 섞여서인지 뒤늦게 맞이한 성장기로 이제는 나보다 키도 커서 아직도 나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란 생각이든다.

"미사키, 또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어. 오랜만에 둘만의 데이트인데 다른 생각이라도 하는 거야?"

어느새 창문에 딱 붙어서 밖을 구경하던 코코로가 내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서 볼을 부풀린채로 코코로는 검지손가락만을 내밀어 슥슥 내 미간을 문질러 폈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행동에 어린아이같은 순수함이라던가 귀여움이 묻어나오는것 같았다.

하지만 우선은 심통이 나면 꽤 곤란한 장난을 저지르는 코코로를 달래는게 우선이었다.

특히 이렇게 자신 앞에서 다른것을 생각한 후에는 한계까지 짖궂은 방식으로 한계까지 몰아붙이니까 안그래도 휘둘리는 미사키는 매회 이런때에는 필사적일 수 밖에 없다.

"그냥.. 나는 상당히 솔직하지 못했구나하고 새삼 깨달아서. 과거의 내가 지금 이렇게 너랑 함께 있는 장면을 본다면 분명 부정했을거야."

"그렇네. 하지만 나에겐 지금도 미사키는 상당히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지금도 말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서 이렇게 멋부린 장소를 준비한거겠지?"

싱긋 웃으면서 미간을 문지르던 손가락으로 코끝을 툭 친다.

철저하게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것도 코코로는 이미 전부 알고 그럼에도 전부 괜찮다고 받아들여준다.

하지만 그런 코코로와 몇년을 같이 있으면서 용기를 받아도 좀 더, 조금 더 달라고 강청하니까 코코로에게 나는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어리광쟁이로 보이는걸까.

"..그런 이유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에는 무드도 중요하다고 할까.. 최대한 멋진 장소에서 하고 싶었어."

언제 눈치챈지 모를 검은옷의 사람들이 훨씬 대단한 장소도 많이 제안해줬지만 역시 누군가를 의지하면 의미가 없으니까.

아쉬워하는 그녀들에겐 미안하지만 전부 거절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인기있는 장소라서 예약을 차지하는것도 꽤나 곤란했지만 기뻐할 코코로를 생각하며 노력했는데 가혹한 평가를 받아버렸다.
아까부터 긴장해서 떨리는 손이 식은땀으로 차게 식어가는것 같았다.

"흐음-. 미사키가 무슨 말을 해도 어떤것을 하자고해도 안된다거나 못한다거나 하는 말이 아니면 나는 한번도 거절한적이 없는데 어째서 그렇게 겁을 먹는거야?"

"그러니까 더 무서운걸지도.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코코로는 받아들이니까 혹시 그로인해서 코코로가 상처받거나 슬퍼진다고 생각하면 말 한마디조차 너무 무거워서.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코코로에게 용기를 받지 않고 내 힘으로 말하고 싶은거야."

"..미사키가 그렇다고 말하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미사키의 슬픈 얼굴을 보면 가슴이 꾸욱하고 조여서 괴로워져.."

울상이 된 얼굴로 가슴을 한손으로 누르고있는 코코로는 절대 오늘만큼은 웃게만 해주고 싶었던 나에게 치명적인 정신적대미지를 줘서 역시 나는 자격이 없는게 아닐까하난 자책을 되풀이하게 만들었다.

"그렇지.. 미사키. 우리 술을 마시자. 술을 마시면 솔직해지거나 좀 더 대담해지잖아? 그렇다면 미사키는 혼자 힘으로 말 할 수 있을거야!"

"엣..? 아, 아니! 그정도로 마시면 좀 곤란해지는데?!"

좋은 생각이 났다고 생각하면 순식간에 실행해버리는 코코로답게 이미 중후한 인상의 웨이터를 호출해서 이곳의 와인셀러를 털어버릴 기세로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여러곳을 물어봐서 제일 적당한 가게였기 때문에 너무 비싼 와인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두명이서 그렇게까지 마실 수는 없다고할지 취할때까지 마시면 오늘까지 노력한게 전부 물거품..
아니 저렇게 즐거워하는 코코로를 봤으니까 조금 호화로운 데이트를 했다고 생각하면 될까..

절반 정도는 목적을 포기해버린 나는 코코로가 멋대로 시킨 와인과 여러가지 칵테일들의 화려한모습에 조금 질려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까지 마실 수 없을텐데 나머지는 전부 어떻게 되는 걸까?

"정말 종류가 많네! 미사키는 어느걸 마셔보고 싶어?"

"나, 그다지 술은 잘몰라서.. 너무 쓴건 싫지만.."

이미 술을 마시자고한 이유는 머릿속에서 사라졌는지 코코로가 쓴건 싫다는 내게 화이트와인을 권유해왔다.

딱히 거절 할 필요도 없으니까 건네받아 한입 마셔보면 달달한맛이 거부감없이 술술 넘어갔다.

평소 가끔씩 마시는 값싼 맥주랑은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느낌이 어쩐지 술에서조차 급의 차이를 느끼는거 같아서 조금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미사키가 마음에 들어하는것 같아서 다행이야. 좀처럼 술은 마시지 않으니까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걸까 했는데."

"그러고보면 코코로는 상당히 다른사람이랑 모임에서 마시는편이지. 취해서 돌아오면 달라붙으니까 조금 곤한한데요-."

"어머, 미사키 싫진 않잖아?"

활짝 웃는 표정이 거짓말은 용서하지 않을 분위기를 풍겨서 나는 아무말도 못했다.

술에 취해서 검은옷의 사람들이 데려오는 코코로는 안전의식은 어디갔는지 무서울정도로 걱정되지만 그런 코코로를 보살피는것은 꽤 마음에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물을 주면 후와악 꽃이 피는것 같이 웃어준다던가 안아올려서 옮길때에 목에 팔을 걸어 의지해준다던가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을 코코로의 모습을 보면 내가 코코로에게 정말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좀 더 소중히 하고 싶어진다.

"음. 싫진 않은데.. 걸즈 밴드 파티 모임 때에 폭주하는것은 멈추자. 이치가야씨 저번에 좋은 위장약 아냐고 나한테 물어봤으니까."

"그걸 왜 미사키에게 묻는 걸까? 미사키는 의사가 아니잖아."

정말로 모르는건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건지 모르겠지만 코코로가 다음에 만날때도 자제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은 이해했다.

미사키는 조용히 아리사의 위건강에 묵념을 했다.

거침없이 술잔을 비우는 코코로는 결코 술에 약한것은 아니다.

하지만 즐거운것을 정말 좋아하는 코코로는 맛있는것도 알코올에 취하는 기분도 좋아하기 때문에 참을 생각을 하지 않을 뿐이다.

정말 자신의 기분에 솔직한것은 부럽지만 자신은 절대 저렇게는 살 수 없겠지.

"그러고보니 미사키가 취한 모습은 한번도 본 적 없는것 같아. 미사키는 술에 강한 걸까?"

"생각해본적 없는데. 그렇게 많이 마셔본적도 없고.."

"미사키의 술주정도 한번 보고 싶은데! 저번에 카오루가 취해서 치짱을 찾는 모습은 정말 귀여웠어요. 미사키, 취해 보지않을래?"

"하아? 취한다는거 일부러 하는 행동은 아니지.."

흥미진진 이쪽을 쳐다보는 코코로에게는 미안하지만 언제나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는 미사키에게 취한다는 무방비인 일을 한다는건 어려운 일이었다.

뭐, 내가 술에 취했을때 어떤 주정을 부리는지는 좀 흥미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코코로는 우리가 왜 지금 술을 마시게 됐는지 이유는 기억하고 있을까.

이번에는 붉은 와인의 향을 음미하는중인 코코로가 여길 보고있진 않은지 흘끗 확인하고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반지곽을 만지작거렸다.

건네줄 반지와 생각해둔 프로포즈의 말도 막상 행동에 옮기려면 역시 용기가 나지 않는다.

역시 아직 나는 코코로와 함께가 되는건 이른게 아닌지 침울해져도 이미 코코로의 관심은 다른데도 가버려서 미사키는 괜히 분한 마음에 근처에 있던 술잔을 집어 확인도 하지 않고 벌컥벌컥 들이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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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미사키는 수척해져 있었다. 기울이는 잔을 든 손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일렁이는 붉은 액체 너머로 보이는 하얗게 질린 얼굴에 마음이 편하지 않아, 저절로 미간이 좁아졌다. 잔에 시선이 쏠린 상대방은 알아차리지 못했겠지, 알아차려도 술이 쓰다하고 넘기면 되는 일이였다.

빙글, 잔을 돌리는 데로 안의 액체는 요동쳤다. 테이블 위에 즐비해있는 병과 잔들을 보며 너무 많이 시켰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다 마시지 않을 거지만 말이다. 잔 끝 모양을 따라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딱히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잘 취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지만 마시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아마 어릴적부터 칵테일이나 샴페인들을 파티가 있을때마다 마셔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가끔 선물로 와인이 들어오기도 하니깐, 술을 마시면 가져다 줄거라 생각하는 고양감은 내게는 즐겁지 않았다. 술을 즐길려고 마시는 사람들을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는 거겠지, 탕, 청명하지도 탁하지도 않은 울림이 컵안에 작에 일렁였다. 울림을 따라 손톱이 잘게 떨린다.

그렇다고해서 술자리는 마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마실 필요가 없는 자리라면 더욱이 거부할 필요는 없다. 사람을 만나는건 싫어하지 않으니깐, 오히려 좋아하니깐, 가끔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시다보면 주체를 하지 못해서 날뛰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주로 카스미랑 하구미 일까, 그때마다 챙겨주는 아리사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술을 마셨다는 핑계를 델 수있으니깐...

아, 얼굴에 열이 올라올까 손등을 볼에 데어본다. 생각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인상 쓰다 웃다가 아무래도 제정신은 아닌거 같다. 술기운때문일까, 움직임에 따라 요동치는 액체를 보다 시선을 앞으로 옮겼다. 부루퉁한 모습으로 연거푸 술을 거머넣는 미사키가 보였다.

사귀는 동안 미사키가 술을 마시고 취하는걸 본 기억이 없어서 반쯤 농담으로 취해보라고 권했지만...저렇게 마시면 걱정이 된다. 가끔 미사키 집에 가면 부엌 한켠에 찌그러진 은색의 알류미늄 캔을 보면 술을 즐겨 마시지않는 거 같았다. 그런 미사키에게 다양한 술을 알려줄 수 있다는 들뜬 마음에 여러 종류를 시켰다. 지금의 미사키를 보면 맛을 보는게 아니라 억지로 마시고 있는 거 같았다.

정말로 취할 생각인걸까, 마주 앉은 미사키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탁, 천이 깔린 테이블 위에 작은 소음이 생겼다. 연노랑을 띠는 투명한 액체가 잔 안에서 요동쳤다. 지금 미사키는 무슨 생각일까, 눈꺼풀에 가려져있던 청회색의 눈동자가 빛을 받아 반짝인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애틋한 시선이 얽혔다.

알 수 없는 울렁임이 느껴져 입술을 꾹 다물었다. 마주친 시선에 담긴 의문에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이며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방금...조금..., 검은 색이 완연한 하늘에 창은 거울이 되어 안을 비추고 있었다. 수많은 빛들이, 동공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시큰한 느낌에 눈꺼풀을 내려 빛을 가렸다. 흐릿한 시야에는 거울 너머가 보였다.

가로등에 만들어진 주황 빛의 길이 보였다. 그 길 주변을 가득채운 건물들과 그 위를 달리는 붉은 차들이 자아내는 모습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이런 곳을 예약할려면 꽤나 힘들었을 텐데, 노력한 흔적이 보여 작게 웃었다. 내가 웃는 모습에 의아한 눈동자가 이쪽을 스치고 지나갔다.

'왜 그래?'

'아무것도'

입모양으로 물어보는 것에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금새 다른 곳을 향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창문을 보는 척하며 미사키의 흔적을 쫓았다. 얼핏 한숨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내가 추천한 화이트 와인 외에도 테이블에 놓인 칵테일로 손을 뻗는 게 보였다. 술을 마셔서 얼굴이 붉어졌을 줄 알았는데...하얗게 질린 얼굴이 보였다. 흠...턱을 괴고 자세히 들여다봤다. 숨이 가쁜지 호흡을 고르며 눈을 감는 게 보였다. 속눈썹이 잘게 떨렸다. 괜찮은 걸까ㅡ,

"미사키, 너무 급하게 마시는거 아니야?"

"...어?"

"취하라고 했다고 정말로 취할 생각이였던거야?,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돼"

별 말 없이 고개를 숙여 본인의 손에 들린 분홍색의 액체를 본다. 멍하다, 본인이 얼마나 마신건지 자각하지 못했던 걸까, 살짝 웃었다. 황급히 잔을 내려놓는 손이 보였다.

"아...미안, 나 잠시...자리 좀..."

드륵, 불쾌한 마찰음이 일었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녀는 정돈되지 않은 걸음으로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걸까, 금새라도 쓰러질거 같은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검은 옷입은 사람이 따라가는게 보였다. 불편하게 뻗었던 몸을 의자에 묻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빈 잔을 드니, 언제온 것인지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와인을 따라주었다.

빠른 속도로 일정량을 채워진 와인은 잔 안을 배회했다. 손 안에서만 잔을 가지고 놀다 도로 테이블 위에 놓았다. 식어버린 흥미에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 창문 위에, 미사키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떠올랐다. 문득 그 위로 자는 미사키의 얼굴이 덧씌워졌다.

언제였더라, 술을 마신채로 억지부려 미사키의 집에서 잔적이 있었다. 갈증으로 새벽에 잠이 깼을 때, 옆에 누운 미사키를 바라봤었다. 하얗게 질린 채로 잠든 얼굴은 위태로워보였다. 일이 힘든 걸까... 끙, 소리를 내며 미간을 구겼다. 안좋은 꿈이라도 꾸는 걸까, 좁혀진 미간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미사키가 잠에서 깨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톡하고 눌렀다.

미사키 주름생겨, 작게 속삭였다. 잠을 자면서도 들은 건지 주름은 이내 사라졌다. 그 모습에 작게 웃었다. 손가락이 닿은 김에 천천히 미사키의 얼굴을 손끝으로 어루었다. 가끔 이렇게 지친 모습을 볼때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 못한다는 점도 불만이였다. 하지만 미사키가 일을 하는 걸 내가 막을 수는 없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니깐...

미사키가 나와의 차이에 부담을 느낄때 마다, 그녀의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콧대를 따라 손가락이 움직였다. 사귀기 전부터 두려움에 본인을 숨겼던 미사키때문일까, 사귄지 오래되었음에도 불안감은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녀도 마찬가지겠지, 그런 그녀에게 반지를 선물 한적있었다. 본인은 원하지 않아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시선이 가끔 내 손에 자리잡은 반지를 쫓는 걸 안다. 손을 잡을 때마다, 반지의 감각에 살짝 웃는 것도 안다. 만날때 마다, 나랑 같이 있는 게 꿈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것도 안다. 참, 그렇게 보면 미사키도 바보다. 괜한 마음에 코를 꾹하고 눌렀다. 작게 오물거리며 불평하는 입에 살짝 웃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위안을 얻는 건 나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너를 싫어할리 없잖아, 답을 바라고 말한건 아니였다. 얼굴을 쓸던 손을 내려 비어있는 미사키의 손을 맞잡았다. 손 안에 퍼지는 체온에 작게 웃음지었다. 손가락을 만지다 느껴지는 이물감에 알 수 없는 만족감이 쏟아났다. 미소지었다. 오늘은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것만 같았다. 아, 이럴때 하는 말이 뭐더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응? 음... 그냥 미사키 생각?"

아... 내 말에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언제 돌아왔던걸까, 민망한지 목을 풀며 앞에 놓인 물을 마시는게 보였다. 아까보다는 혈색이 돌아와있었다. 머리에서 기억 속의 미사키가 지워지지 않아 멍하니 앞에 앉은 미사키를 바라보았다. 미사키도 적은 양을 마신게 아니지만 술이 쎈걸까,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리는게 보였다.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나는 믿고 있다. 미사키가 두려움에 눈을 감고 피하더라도 언젠가는 답을 들고 올거라는 걸, 항상 그렇게 해왔고 그게 미사키를 강하게 만든 다는 걸 알고 있으니깐 말이다. 테이블 위를 방황하던 손가락들이 멈추고 굳게 다물어졌던 입이 열리는 순간이 온다는걸,

"코코로, 할 말이 있는데..."

알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화려한 곳보다도 더 아름다운걸 내게 선사할거라는 걸,

"어머, 드디어 미사키가 말해주는 걸까? 기대되는 걸"

결심에 찬 청회색의 눈동자가 나를 올곧이 바라본다. 울림이 더욱 커져만 간다. ...아, 생각났다. 이럴때 하는 말, 가볍게 입맞추며 속삭였던 말

"나, 오쿠사와 미사키는..."

미사키, 사랑해
.
.
.
너가 마주한 나는 어떻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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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안, 나 잠시…자리 좀…”

코코로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술을 마시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상당한 양을 마신 듯 얼굴이 뜨겁고 균형을 잡기가 힘들다.
맞지 않는 초점을 두 손가락으로 미간을 눌러 맞추고 코코로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게 최대한 괜찮아 보이도록 걸어 나오려고 했지만 내가 봐도 내 발걸음은 이 사람은 금새라도 쓰러질 것 만 같이 보였다. 발걸음 조차도 내 뜻대로 안되는구나. 그게 괜히 서러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방금 전과는 다른 목적으로 미간을 눌렀다. 평소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데 역시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신 걸까

야경이 아름답다고 유명한 곳이기 때문인지 레스토랑은 한 쪽에는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테라스가 존재했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테라스로 통하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의자에 앉아 숨을 내쉬자 속에 고여 있던 열이 입을 통해 밖으로 내보내지는 것 같았다. 새하얀 입김이 공중에 천천히 흩어지다가 강한 바람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알코올에 의해 뜨겁고 멍한 머리가 차가운 바람을 맞고 점점 식혀지는게 느껴졌다. 힘없이 반쯤 감고 있던 눈이 떠지고 알코올에 의해 멈춰 있던 사고가 움직이며 열기에 흐려진 이성이 돌아왔다. 냉정한 사고가 가능해진 나는 머리를 쥐어 잡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뭐하는 거야 오쿠사와 미사키…”

오늘이 어떤 날인데 긴장을 했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이렇게 중요한 날에 과음하고, 코코로를 걱정시키고, 술 깨기 위해 코코로를 혼자 두고 자리를 비우다니. 아, 최악이다.
머리를 쥐고 있던 손으로 얼굴을 쓸어 내리고 의자 등받이에 완전히 몸을 맡기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 속에 넣어 둔 정사각형의 반지 케이스가 만져졌다. 눈을 감으며 손에 닿은 반지 케이스를 만지니 이 날을 위해 준비했던 일들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힘들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조언해주는 사람들이,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무엇보다도 나의 말을 들었을 때 기뻐하는 코코로의 모습을 떠올랐기에 힘들어도, 지쳐도, 도망하고 싶어도 버틸 수 있었다.
그래, 무엇을 걱정하고 있던 걸까. 정말이지 나는 아직도 겁쟁이인 모양이다.

“미사키님, 머리를 식히는 것은 좋으나 찬바람이 강합니다. 슬슬 안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비틀거리며 자리를 벗어난 내가 걱정되었던 걸까 어느새 따라와 내 뒤에 자리 잡아 서있던 검은 옷의 사람이 말했다. 솔직히 좀 놀랐다. 따라오고 있다고 느끼지 못 했는데… 아까 전의 나는 정말 많이 취해 있었구나. 과음하고 있는 걸 멈춰준 코코로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뭐, 그렇게 된 원인도 코코로지만.
크게 심호흡을 하고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자리에서 일어난 몸은 테라스에 오기전과는 다르게 비틀거리지 않았고 초점도 똑바로 맞으며 발걸음도 평소와 같이 반듯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추운 것보다는 코코로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으니까.
테라스에서 돌아오니 홀로 와인을 마시고 있는 코코로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빛의 두 눈은 먼 산을 보는 것처럼 어디에도 시선을 두지않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응? 음… 그냥 미사키 생각?”

의자에 앉으며 묻자 내가 온 것을 눈치챈 코코로가 눈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너는 항상 그렇게 부끄러운 말을 휙휙 내뱉는구나. 알코올에 의한 열과는 다른 열이 올라와 겨우 식혀 놨던 얼굴이 다시 뜨거워지는게 느껴졌다. 민망함과 부끄러움에 꽉 조여 놨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빈 컵을 내려놓고 코코로와 시선을 마주치자 마자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손이 덜덜 떨리고, 입술이 바짝 마르는 게 마치 처음 레스토랑에 들어왔을 때로 되돌아온 것 같다. 테라스에서 다짐을 했는데도 막상 코코로의 앞에만 서면 이렇게 긴장되고 손을 가만히 놔두는게 불가능 했다. 침착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입을 열려고 할 때마다 심장이 거세게 뛰고 숨이 막혔다. 깍지를 낀 손에서 땀이 나는 것 같아 무릎에 문지른 뒤 주먹을 꽉 쥐고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놔두고 다시 코코로와 눈을 마주치기 위해 고개를 들어보지만 상냥한 황금빛이 보일 때 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해버린다. 잠깐이지만 보인 부드럽게 웃으며 가만히 나를 보는 코코로의 모습에서 의심 없는 신뢰가 전해져 오는 것 같아 이대로 자리를 피하고 싶어 졌다. 하지만 그래도 피하지 않아 도망가지도 않아. 그렇게 다짐했으니까.

“코코로, 할 말이 있는데….”

아래로 내려가 있던 시선을 올려 겨우 시선을 맞췄다.

“어머, 드디어 미사키가 말해주는 걸까? 기대되는 걸”

기대감에 반짝반짝 빛나는 너의 두 눈. 눈부시고 아름다워 나 같은 사람이 계속 눈을 맞추고 있어도 될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봤다. 부드럽게 웃는 표정이 잘 했다고 말한 기분이 들었다.

“나, 오쿠사와 미사키는…”

진심을 전할 때는 상대방의 눈을 보고.
어디선가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주머니속을 몰래 확인하고 심호흡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생각하지만 해보지도 않았는데 걱정부터 하는 버릇은 여전하고,”

내가 일어난 것에 의해 같이 자리에서 일어난 코코로의 곁으로 한 발자국 내딛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겁먹어 미리 도망가려는 틈을 만드는 겁쟁이지만,”

심장이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다.
마른 침을 삼킨 후 한 박자 쉬고 심호흡.
힘이 풀릴 것 같은 다리에 다시 힘을 주고 한 발자국 내딛었다.

“당신을, 츠루마키 코코로를, 사랑합니다. 당신의 옆에 나란히 서서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을까, 혀를 씹지 않았을까, 말을 정확히 했는지 불안해졌다.
하지만 크게 뜬 눈망울이 나의 불안은 필요 없는 불안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당신과 같은 길을 걸어가는 건 자신에게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 바보같은 사람입니다만”

긴장에 덜덜 떨리는 손을 한 번 꽉 쥐고 한 쪽 무릎을 꿇고 주머니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냈다.
다시 한 번 심호흡. 마른 침을 삼키고 숙여지려는 고개에 힘을 줘 코코로를 올려다보았다.

언제나 용기를 주는 너에게
언제나 기다려 주는 너에게
언제나 나를 이끌어주는 너에게
언제나 사랑스러운 너에게 전하고 싶은 말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코코로는 나와 시선을 마주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 말이 없는 코코로에 계속 억누르고 있던 불안이 점점 커졌다. 고개가 점점 내려가고 손이 작게 떨리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역시 너무 서두른 걸까.
등 뒤로 식은 땀이 흐르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일단 뭔가 말을 해야

“코코…로…!?

쿵-하고 몸에 충격이 왔다. 한 쪽 무릎을 꿇은 상태라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충격에 의해 손에서 날아간 반지 케이스를 검은 옷의 사람이 서둘러 잡으려는 모습과 시야 끝에 비단같이 흩날리는 금발이 보였다.
딱딱한 바닥에 넘어진 것 때문에 엉덩이는 물론이고 내 몸의 무게를 버틴 양 손도 저릿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그것보다 내 품에서 나를 꽉 끌어 안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코코로의 모습이 더 중요했다.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지만 기쁨이 묻어나는 웃음을 지은 상태로 나를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고 있다.
커진 불안감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지금은 그 입에서 나올 말이 너무나도 듣고 싶어졌다. 저릿한 손을 들어 한번 주먹을 쥐었다 피고 코코로를 끌어 안았다. 다른 손으로는 눈물을 닦아주고 볼을 쓰다듬었다.

“괜찮아. 천천히 코코로가 느낀 걸 말하면 돼. 코코로의 말을 듣고 해석하는 건 내 전문이니까.”

코코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두 손을 모으며 입을 열었다.

“있잖아, 미사키. 나 너무나도 행복한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와. 이건 슬픈 걸까? 하지만 슬프다고 하기에는 계속 원하던 걸 얻었을 때와 같이 세상이 반짝이고 웃음이 나와”
“코코로, 눈물은 기쁠 때도 나오는 거야. 그러니까 코코로는 지금 너무나도 기쁘다고 생각해”
“그렇구나 역시 이건 기쁨이구나! 고마워 미사키! 사랑해!”

꽉 끌어 안아오는 코코로를 나도 끌어안으며 슬슬 올라오려는 입고리를 숨기기 위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코코로, 나 아직 제대로 된 답변을 못 들은 것 같은데”

“어머, 그랬던가?”

“코코로….”

“후후, 농담이야! 미사키, 다시 한 번 더 말해줄래?”

“한 번 더 라니….”

뭐, 괜찮으려나.
전과는 다르게 많이 긴장되지 않았다.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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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합작
초반-백오판다(@tnals1055)
중반-sigma/냐흠 (@ sigma_ow)
후반-가루렌 @garuren_FGO
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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