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만이 가득 찬 학교는 져 가는 태양의 잔향을 불태우는 주홍색으로 물들어있다.

불은 꺼져가는 마지막이 가장 밝다고 하지만 서서히 타들어가 부질없는 잿더미가 되어가는 한순간이 아름답다고해서 그 결과가 전부 의미있지는 않을것이다.

그러니까 괴롭고 처절해지는 끝을, 바래지 않을 빛으로 들어찬 눈에 비추기 싫다면 눈이 부셔 화상을 입을것 같은 이 사랑의 절정부분만을 찢어내 선물하는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인지도 모른다.

"응, 코코로. 나 실은 너를 좋아해."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것 같은 말투로 타들어가 부서져, 무너져버린 부분을 숨겨 보여준 불꽃의 겉부분을 예상과 한치도 다르지 않게 기뻐 받아드는 모습은, 나와는 다른 온도.

이해하니까 같기를 바라지 않는 나는, 역시 겁쟁이인지도 모르지만 틀리지는 않았다.

"기뻐 미사키! 나도 미사키를 정말 좋아해!"

순수하게 맑은 빛은 너무나도 밝지만 온도를 띄지 않아서 언제까지라도 밝을, 나따위는 묻혀 눈에 띄지 않을게 분명한 영원의 광원.

거기에 무엇이 더해지든지 바래지 않을것을 아니까 나약한 나의 그을림이 미치더라도 괜찮을거라고 욕심을 품는다.

"그래, 나도 기뻐."

이것은 내가 다 타올라 자연히 소멸해버릴때까지의 연정.

아마 인생의 제일 화려하고도 가혹한 슬픔의 시작이다.




순조롭게 시작된 교제에서 어떤것을 해야하는지 하나도 모르는 코코로에게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것을 선택했다.

그저 내가 지금 가진 제일 소중하고 빛나는것들을 전하기에도 시간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보답을 바라지 않고 내 몸을 태우는것이 주는 고통은 더욱더 이 감정이 크고 격렬함을 느끼게 만들어주니까.

허기를 사랑스럽게 여겨버렸으니까.

"미사키-! 라이브에서 폭죽을 터뜨리는건 어때? 축제처럼 신날거야!"

"으음.. 그렇게 큰 규모로 터뜨리면 주위에 폐가 되겠지만.. 일단 되는지 물어볼게."

"와아! 다들 웃는얼굴이 되어줄까?"

헌신으로 충족되는 자존감이 가슴을 울려도 돌아오는 소리는 없는데, 이것에 행복을 느낀다니 나날이 하는 무리가 불러오는 피로도 너는 알수없길 바란다.

보이지 않게 흘린 한숨은 불과 함께 솟아오르는 뿌옇고 덧없는 연기.

그야말로 너의 눈에 비추지 않아도 될 더러운 그을음이었다.

"그럼 코코로, 돌아갈까?"

슬슬 내 주위에서 떠드는것에서 흥미를 잃었는지 밖을 내다보는 모습을 보고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남아있던 용무도 이미 없던것으로.

안보이는곳에서 하는 노력은 알아주지 않아도 라이브가 성공하면 항상 웃는얼굴로 포옹을 해주니까.

그게 비록 속에서 뜨겁게 타올라 문드러지는 겁쟁이가 아닌, 아무 온도도 품을 수 없는 빈껍질일지라도 나는 그것이 나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전하지 않는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나한테는 이정도의 가면이 어울렸다.

"저기, 미사키. 우리는 연인이 되었지만.. 그전과 아무것도 다르지 않은거 같아. 히나한테 들은것과는 다른걸?"

즐거움을 주체하지 못하는 빠른걸음은 여전히 나와는 맞추지 못하고 항상 앞을 달려나간다.

뒤돌아본 코코로가 내 동요를 눈치채지 않길 바래도 숨기는건 언제나 간파당했으니 미적지근한 진실을 담은 연기로 그 눈을 가린다.

"코코로가 언제나 말했잖아. 정해져 있는건 없다고. 우리도 다른 연인이랑은 다른거겠지."

"흐음.. 그것도 그렇네!"

안타깝게도 고백의 연기는 형편없는 모양이지만 둘러대는것은 꽤 재능이 있는지 약간 불만스런 표정을 짓고도 코코로는 도로 나에게서 눈을 돌려 앞을 쳐다본다.

어슴푸레한 밤의 기운이 침범하는 애매모호한 시간, 얼룩덜룩하여 사진으로 남기기에도 아까울 하루의 찌꺼기 같은 찰나를 보물같이 끌어모아 안도하며 자신을 태울 의지를 얻는건 내 그릇이 작은탓이겠지.

좀 더 반짝거리고 가치있는것이 바란다면 손에 들어올지도 모르는데, 삼켜져 완전히 꺼져버리는건 아닐까 쓸데없는 걱정에 그 손조차 잡지 못하는걸 코코로의 빠른 걸음속도의 탓으로 돌린다.

앞에서 흔들리는 흰 손의 감촉이 얼마나 부드럽고 매끄러운지.. 그러한 기억들은 이미 연소하여 사라진듯 떠오르지 않았다.

"코코로, 방금 떠오른거지만. 연인끼리는 같이 걸을때에 손을 잡기도 해. 한번.. 해볼래?"

내민 손은 조금, 떨리고 있는데다가 더위에 땀을 흘렸을지 모른다는게 생각났다.

반짝이며 이 볼품없는 굳은살이 박힌 손을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가 무슨 평가를 내릴지, 코코로는 그런 아이가 아니란건 알고있는데도 모르는새에 손이 점차 아래로 침전하고 있었다.

순간의 충동으로 욕심을 내버렸다.

나의 더러운 부분.. 욕망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고백하기 이전부터 결심했는데.. 삐꺽이며 부러진 불속의 장작이 재투성이의 바닥을 구른다.

"하지만 그런건.. 연인이 되기 전에도 했는걸? 뭐가 다른거야?"

말랑한 감촉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양손으로 내 손을 잡고 고개를 기울이는 코코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시선으로 순수하게 호기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내가, 무슨 욕심을 내어도, 그게 영향을 줄 수 없는 존재라고 재차 인식하도록.

어떤 뜨거운 감정의 자락도 내비추지 않는 온도가 없는 빛의 덩어리.

모르는건 아니었다.

그냥. 내가 너에게 영향을 미칠수 있었으면 한 바램의 삐뚤어진 발로였다.

"연인이면, 이렇게. 손가락을 교차하도록.. 어때? 좀 더 특별한것 같아?"

"그렇구나.. 미사키! 이거 정말로 연인이란 느낌이네! 가슴이 두근두근거려."

심장을 쏘아 맞춰진 기분이었다.

기쁜듯 콧노래를 부르며 잡은 손을 당기는 모습에 얼핏 온기가 스민것도 같았다.

그럴리가 없다고 눈을 부비고 다시 쳐다보아도 잡은 손과 손으로 이어진 거리는 아까보다 훨씬 가까워져서 코코로의 귀가 석양에 물들어 붉어진게 아니란것을 알아버리게 된다.

보면 안되는것을 봐버린 기분이었다.

해선 안되는짓을 저질러버린 기분이었다.

"오늘도 즐거웠지만 미사키와 함께라면 어디서도 즐거우니까. 내일은 한층 더 미소가 될 수 있을것 같아."

온도가 없는 광원이라고 생각했던게 사실은 너무나도 투명한 물방울과 같아서 검은 욕망에 쉽게 흐려져 탁해버릴걸 알았다면 나는 욕심내지 않았을것이다.

그때서야 알아채버렸다.

내가 사랑한것은 나를 보아주지 않는 코코로였다고.

코코로가 보아주지 않아 텅비어가는 내 자신이었다고.

착각이 불러온 비극에서 눈을 돌려도 완전히 저물어 컴컴해지는 지평선은 답을 주지 않는다.





놀라울것도 없는 결론이었을지 모른다.

하는건 달라지지 않으니까.

나는 이대로.. 내가 가진 가장 뜨거운 감정을 불태워, 쓸모없는 부스러기로 만들어 그 하얀가루를 아름다운 금빛의 바다에 뿌려 흔적도 없이 가라앉히면 된다.

그러면 중간에 눈치채버린 추악한 내 모습이거나, 시간이 흐르면 잊혀질 빛나는 조각은 추억이란 이름의 심해에 묻혀 잊혀질테니.

"미사키. 오늘도 작곡 하는거야? 라이브가 끝난 직후인데."

코코로의 콧노래가 녹음된 레코더를 반복해서 들으며 악보에 옮겨가는 나의 등으로부터 덮쳐 안은 코코로가 어딘가 심기가 불편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언제 해도 상관없는 작업이었지만 코코로와 사귀기 시작하고 난 이후로는 코코로의 앞에서 하는 빈도가 늘어갔다.

달콤한 코코로의 향기라던가 밀접한 거리에서 느껴지는 숨소리나 체온, 살갗의 매끄러움도, 익숙해졌다고는 하나 누군가에게 배운것도 아닌 독학의 작곡을 할때엔 신경쓰이지 않았다.

"요새, 코코로가 더 자주 콧노래를 부르잖아? 그러니까. 밀려버리지 않게 해둘려고."

주루룩. 재생목록을 내려보면 이상할정도로 늘어난 곡의 숫자는 알고싶지 않은 것들을 상기시킨다.

코코로는 명백히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라이브도. 곧 방학이 되니까 자주 할 수 있잖아. 내년이면 카오루씨나 카논씨는 대학교에 가버리니까, 올해가 아니면 역시.. 달라지겠지."

공부와 병행하면서도 하로하피활동을 진심으로 즐기는 그들은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나도 저렇게.. 미래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 순간을 더 즐길 용기도 가질 수 있었을텐데.

공허히 비어가는 감각을 사랑하는것은 갈구하며 무언가를 얻어 채워갈 여력이 더는 없기 때문이다.

"어째서 달라진다고 생각해? 카논도, 카오루도 하로하피를 좋아하는데다가 아직 세상은 미소로 가득 차지 않았는데."

 "물론 두명은 절대 하로하피를 그만둔다거나 하지 않겠지. 하지만.. 코코로 우리도 내년에는 3학년이야."

"3학년이 되는게 무언가 달라지는 이유가 되는거야?"

"...글쎄. 어쩌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지도 모르지."

같은반, 옆자리.

운명같은 우연이 만들어낸 기적을 코코로는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믿고 있는것 같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것을 진작에 멈춰버린 나는, 홀로 먼 미래를 상상하며 지금을 필사적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코코로가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을 향유하도록, 카논씨와 카오루씨에게 최대한 서포트하겠다며 간절히 애원한 나의 작은 뒷모습은 알려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당연하게 꿈을 꿀 수 있는 그 모습이 아름답기에 지키고자 했던 내가 그 옆자리에서 사라지면, 너는 어떻게 변할까?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거야. 네가 말하는데로 이뤄질테니까."

내 자리를 누군가가 채우고 네가 그 사람의 옆이면 어디든 즐겁다고 말하는 장면이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떠올랐다.

치이익.. 어디선가 떨어진 물방울이 부질없이 기화해서 사라졌다.

아쉽게도 이정도로 꺼질 불이었으면, 타오르지도 않았겠지.

"미사키는.. 연인이 되고 나서가 오히려 멀어져버린것 같아."

꽈악.

나를 껴안고있던 팔에 힘이 들어가 나를 조여왔다.

따뜻한 체온이 옮겨와 나를 물들이는 감각이 왠지 무척 아이러니라고 생각했다.

심장이 굳어버린것처럼 차갑게 얼어붙어서 욱씬욱씬 전해지는 애정에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가슴팍에 걸쳐진 코코로의 손을 잡아 치우면서 뒤를 돌아보면 내가 제일 보고싶지 않았던 코코로가 나를 보고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전보다 좀 더 같이 있는 시간도 늘어났는데."

"하지만...하지만.....미사키, 최근 나를 봐주지 않잖아. 나와.. 이야기 하지 않잖아."

"내가? 전처럼 눈을 피하지도 않고 코코로의 말을 부정하지도 않았는데."

요즘 내 모든것은 코코로를 생각하여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 정도로 나는 내 의사도 구부려서 코코로에게 맞추고 있었다.

코코로가 싫어하지 않게 거짓아닌 부족한 진실로 감추고, 말리기보다 내가 무리하는 편을 선택했다.

원하는것을 들어주고, 좋아한다는 말을 빼먹지도 않았다.

내가 줄 수 있는 애정을 다 쏟아내고 있었다.

"그런걸 말하는게 아니야! 그런게.. 아니라구.."

숙여진 고개에 떨리는 말꼬리.. 부슬부슬 떨어지는 물방울이 화염에 집어 삼켜진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것도.

나는.. 가슴 속 어딘가에서는.. 나로 인해서 코코로가 정말로 바뀐다면 내가 스스로를 불태우는걸 멈출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놀라울정도로 나에게 아무 감상도 느끼게 하지 못했다.

눈치채면 이미 가슴 속에는 회색과 검정으로 점칠된 잿더미뿐.

"코코로. 뭘 말하고 싶은거야?"

"모르겠어.. 이 감정이 무엇인지 전하고 싶은데.. 미사키, 알려줘. 언제나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어줬던 마법을 다시 한번 부려줘."

"..미안. 코코로는 모르는게 좋다고 생각해."

예상보다 빨리 연소한 감정의 잔재가 눈에서 흘러 나오는데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가 희열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절망에 찬 코코로의 얼굴이 이렇게 아름답다고 느끼는건 이제 내 안에서 지켜주고 싶다는 맹세도 바램도 하얀가루가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응. 코코로. 나 실은 너를 싫어해."

웃으면서 내뱉은 이별의 말은 처음에 다짐했던것들을 전부 어겼는데도 불구하고 매우 만족스런 억양을 띄고 있었다.

누군가를 향한 감정이 타고 남은 자리에는 비로소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이기심이 싹터 꽃을 피웠다.

바닥을 기며 스스로를 태울 연료를 찾던 나날이 바보같을 정도로, 지쳐버려 모든것을 버릴 각오를 하고 나서야 가벼워졌다.

모르는새에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미사..키?"

놓아버리자고 생각하자 미움받는것도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싫어해서 원망한다면 전부 잊어버릴테니까 좋다고 생각했다.

미움받고 잊혀져 나를 모르게된다면 더욱 가벼워지겠지.

"그러니까. 헤어지자. 코코로는 나같은걸 잊고 더 좋은 사람을 찾는거야. 아직 모르는 그 감정은 그때에 이름붙이면 지금 이 시간도 어렸을적 치기로 남을 수 있겠지."

"미사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몰라도 괜찮아. 다 잊어버려도 돼. 내일부터 다시, 나를 인형옷 입는 사람으로 봐도 좋아. 아... 아니면 역시 그냥 다른 사람이 나을까?"

"미사키..미사키, 내가 무언가 잘못한거야?"

뚜욱 뚜욱.

떨어지는 물방울은 잿더미의 열기까지 식혀간다.

이대로 그 액체에 잔재를 실어서 먼 바다까지 흘려보내면 흔적도 남지 않고 내 목끝까지 치달았던 사랑의 이야기도 끝이 나겠지.

"코코로는 아무 잘못도 없어. 네가 옳아. 내가 나쁜거지. 그러니까. 잊어버리자, 코코로. 이렇게 널 아프게만 하는 사람은 잊어버리는게 나아. 좀 더 반짝반짝하고 두근거리는것들이 세상에는 잔뜩 있잖아?"

책상 위에 코코로의 콧노래가 담긴 레코더를 남긴채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쓰다만 악보도, 미셸의 장식이 붙은 샤프펜슬도 그대로 둔채 홀가분한 몸만을 일으키면 지나치게 가벼워져 깡통같이 울릴것 같은 가슴이 시큰거렸다.

하지만 더이상 열기도.. 빛나는것도 잃어버린 잿가루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 아픔이 혼자가 된다는 느낌이라면 매우 감미롭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가 외롭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모든것에 관대해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 작곡해서 모아둔 악보는 전부 주고 갈게. 작사는 원래 카논씨랑 같이 했었으니까 두명이서 하면 될거야. 라이브 장소를 구하는법이나.. 내가 알고있는 사람들에게도 사정은 설명해 둘테니까.."

자리를 떠나려는 나의 옷자락을 코코로가 붙잡고있어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코코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도 아무말없이 그 머리를 쓰다듬고 힘이 풀린 손을 떼어놓았다.

내가 없어져도 괜찮을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망설이지 않고 문을 닫을 수 있었다.
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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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로와 만나고, 인형탈을 쓰고 DJ를 하거나 작사작곡을 하는 적당에서는 벗어난 활동을 하게 되었지만 내가 먼저 라이브를 제안한다던지 예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할만큼 많이 바뀌었다.

전보다 웃는얼굴이 되는걸 망설이지 않게 되고, 좋아하는것을 숨기지 않고, 사랑한다는 감정까지도 네가 받아들여줬을때에 나는 너에게 받은것이 너무나도 많다고 생각했다.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동화속의 파랑새가 현실에 존재한다면 나에게 그런 존재란 바로 너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제 충분히 너에게서 많은것을 받았으니까 더이상 나라는 좁은 새장에 갇히는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새장을 열어 놓아줘버린건 내가 너를 사랑해서였다.

네 꿈인 세상을 웃는얼굴로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는 이런 작은세상을 지키는데에도 필사적이어야하는 나의 옆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들테니까.

나는 나의 행복보다 더 네가 중요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너에게 후계자교육의 이야기가 나올즘에 이별을 고했다.

"코코로, 너를 싫어하게 되었다거나 이제 좋아하지 않는건 아니야. 하지만 나는 너의 덕분에 충분히 웃는얼굴이 될 수 있었으니까."

나 때문에 코코로가 외국으로 오라는 부모님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검은옷의 사람들에게 전해들었을때에 코코로를 욕심내선 안됐었다고 후회했다.

내가 독점욕으로 붙잡지 않았더라면 코코로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노래를 부르며 온천지를 날아다녀 진작에 세상을 웃는얼굴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코코로와 함께라서 3년동안 행복했고 앞으로도 행복할것이다..하지만 코코로는?

꿈을 이룰 힘을 가지고도 새장에 갇혀버린 파랑새는 철장밖을 영원히 바라보면서 어쩌면 모두를 감동시켰을 노래도 독점해버린 나 때문에 알려질 수 없다니.

그런 슬픈 이야기로 끝내기는 싫으니까.

"코코로가 다른 사람들을 웃는얼굴로 만들러 떠나더라도 나는 웃을 수 있을거야. 코코로가 준 행복한 기억들이 남았으니까. 그러니까 코코로는 이제 코코로의 행복을 찾으러 가. 지금까지 정말 고마웠어.. 안녕."

새장을 열어 훨훨 날아가버린 파랑새를 나는 영원히 그리워하겠지만 어디선가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뽐내고 있을거라고 확신하고 있으니까 나는 텅 빈 새장속에 들어찬 추억만으로 행복할 수 있을것이다.

제멋대로 혼자 내버린 결론이라도 훌룡한 미담.

그러니까 원하는곳으로 즐거운일을 찾아 날아가라고 나는 코코로를 놓아주었던것이다.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해서 평범하게 회사를 다닌다.

글로 서술하면 그정도의 세월을 보내왔지만 나는 한번이라도 하로하피를 잊은적이 없고 나름 내 좁은 세계라도 웃는얼굴로 만들어 이제 깃털조차 보이지 않는 나의 파랑새의 꿈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빌어왔다.

물론 좌충우돌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던 그 시절에 비하면 훨씬 지루할지도 모르는 일상이지만 공연히 외로워질때마다 추억속에서 여전히 자라지 않은 코코로가 오늘도 어디선가 즐거운것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연히 노력할 마음이 들어왔다.

떠나보낸지는 한참인데도 여전히 나는 너에게서 많은것을 받고있으니까 분명 평생분의 행복의 마법에 걸렸던걸까.

하긴 바로 옆에서 사랑의 말을 전해받았던 내가 행복하지 않을리가 없지.

아직도 그때가 그리운것은 내가 지금도 너를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와 헤어졌던 봄이 돌아올때마다 그날 이후로 보지못한 네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이번해의 벚꽃도 아름답네. 1학년때 저택에서 꽃놀이를 한 날이 생각나는걸.."

"그렇네. 정말 즐거웠는데."

그러니까 퇴근 후에 돌아가는길, 괜한 감수성에 빠진 사고를 환기시키려고 꺼낸 혼잣말에 대답이 돌아올줄은 네 기행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나도 미처 파악 할 수 없었다.

언젠가 네가 세상을 웃는얼굴로 만들고 일본에 돌아온다면 한번쯤 멀리서라도 보고싶다고 생각했던, 내가 모르는 시간을 보내고 어른스러워진 네가 보였다.



조금 더 키가 컷고 옷차림도 어른스러워져서 마치 처음본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도 그리운 기분이 들어서 신기했다.

다시 만난다면 놓아줘버렸던 주제에 다시 욕심을 내지않을까 걱정했던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웃으면서 예상외의 만남에 반가워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이미 멀어져버린 나와 너의 격차를 알고있기 때문이고, 하늘 높이 날고있을 네 모습이 자랑스러워서 욕심을 낼 엄두도 나지않아서였다.

"오랜만이네, 코코로. 일본에 돌아온거야?"

"응, 어제 돌아왔어."

그 이후로 연락을 한번도 하지 않았던 코코로가 내 앞에 나타난것은 생각도 못 한 일이었지만 잊지 않고 있어줬다는건 기분좋은일이었다.

헤어지면서 소식이 끊겼으니까 혹시 멋대로 이별을 말 한 바람에 미움받아서 기억속에서 잊혀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하지만 이렇게 찾아올정도라면 연락 정도는 해줘도 좋지않았을까 하며 자격도 없는 주제에 원망의 감정을 가지려는 찰나에 뜻밖에도 눈앞에 흩날리는 금빛의 머리칼과 함께 무게감이 느껴졌다.

"우..앗! 코코로, 갑자기 무슨짓이야?"

확 피어오르는것 같은 달콤한 향기는 헤어지자고 말을 한 주제에 여전히 사랑하고있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강렬한 자극이어서 떼어놓으려고 하면 허리에 돌려진 팔이 더 강하게 조여왔다.

축축하게 젖어가는 감촉이 가슴팍에서 느껴져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미사키는 그동안 잘지냈어?"

훌쩍이는 소리가 남은 목소리로 물어보는 안부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경종소리처럼 들려서 나는 한마디도 말 할 수 없었다.

코코로는 내가 말하길 기다리지도 않고 고개를 들어서 당황을 숨기지 못하는 나를 정면으로 응시해왔다.

차오른 보름달과 같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왔던 눈은 지금은 슬픔에 잠겨서 투명하게 사라져버릴것만 같고 꽉 다물린 입술은 상상했던 그 어떤 경우의 수에서도 없었던 표정을 짓고 있었다.

행복해지길 바래서, 꿈이 이뤄지기를 응원하며 놓아준 추억속의 파랑새는 새장 밖에서 자유롭게 즐거운것들을 찾으며 홰치고 있다고, 힘들때마다 상상한것들이 전부 부서져가는 느낌이었다.

"어, 음.. 그냥저냥 잘지내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코코로는?"

손을 어디다가 둬야할지도 모르겠어서 코코로의 어깨를 붙잡은채로 조금이라도 거리를 벌리려고 하면 오히려 꾸욱 밀어붙여져 어느새 등이 벽에 부딯쳤다.

맹수에 추적당하는 으슬으슬한 기분이 들어서 왜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의문만이 맴돈다.

"미사키는 내가 없어도 잘지내는구나. 나는 전혀.. 그러지못했는데."

덮쳐누르는 입술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결핍된 무언가를 되찾듯이, 필사적이라고 느껴질정도로 강압적인 키스는 전혀 배려가 없어서 헐떡이며 숨을 고르려는 나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두번, 세번 연달아 이어졌다.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도 산소가 부족해서 흐릿해진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폭력적으로 쏟아지는 스킨쉽에 허덕이는것은 나인데도 오히려 코코로가 괴로워보여서 조금이라도 상처입히지 않길 바라는 나는 거절할수가 없었다.

"헉,..흐읏.. 이게 무슨짓이야, 코코로? 어째서 나에게 이런.."

"미사키는 충분하다고 했지만 나는 부족해. 헤어지자고 했지만 그러고싶지 않아! 하지만.. 미사키가 그러고 싶다고 했으니까.."

끓어오르는 감정을 담은 주먹이 몇번 가슴을 두드려서 숨을쉬기 어려웠지만 지금 코코로가 하는 말들에 비하면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몇년동안이나 듣지 못했던 그날의 헤어지자는 말의 답을 지금에서야 듣는 기분이었다.

내가 놓아주기만 하면 망설임없이 하늘로 돌아가버릴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때 아무말도 하지 않는 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그대로 돌아서버렸다.

충분하다고 더이상 바라는건 사치라고 알고있어도 역시 눈물이 났으니까.. 그런 얼굴을 코코로에게 보인다면 떠날 수 없을테니까.

"하지만 코코로는 나를 붙잡지 않았잖아. 그리고 떠나버렸지. 연락조차 한번도 하지 않았는걸."

행복한줄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걸 듣고 기뻐하고 싶지 않았다.

손에 닿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코코로가 내것이 되었을때 언제가 끝이 될것인가 항상 불안에 떨면서도 코코로에게 좀 더 좋은 미래를 주고 싶었던 어릴적의 순수한 감정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나의 에고인걸 잘 알지만 너는 계속 웃는얼굴이었으면 했었다.

"미사키는 내가 모르는걸 항상 가르쳐줬잖아. 그러니까 싫었지만.. 이번에도 내가 모를 뿐 미사키가 말하는게 맞는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세상을 웃는얼굴로 만들려면 코코로는 나를 벗어나서 좀 더 큰 세상으로 가는게 좋아. 이 말이 틀렸다는거야?"

나 하나의 가치가 그정도로 클리가 없었다.

츠루마키가의 후계자 자리나 더 큰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같은 그런 한 눈에 봐도 대단하다고 느낄 수 있는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걸 스스로도 잘알고있으니까.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자신 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코코로에게 최고의 선택이 될수는 없다.

포기한다던가 하는 그런 가벼운 마음이 아니었는데, 나보다 코코로가 우선이 되어버릴 정도로 좋아해서 내린 결론이었는데.

"모두는 미사키의 말이 맞다고 할거야. 그런데 그게 나에게는 정답이 아니었던거지. 세상을 웃는얼굴로 만들려면 내가 우선 웃는얼굴이어야 하는데.. 나는 전혀 웃을수 없게 되었는걸."

꼬옥 안겨서 기대오는 코코로가 작아보여서 더이상 밀쳐낼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간절히 나를 원하는 모습은 비현실적이어서 지금 꿈을 꾸고 있는것은 아닌가 싶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코코로에게 더좋은것을 줄수도 없고 원하는걸 모두 이뤄줄 능력도 없어. 게다가 무심코 도망쳐버리거나 부정해버리는 말도 해버리는걸."

"그런 미사키가 나에게는 제일 필요하다고 말하고있잖아!"

덥썩 붙잡힌 멱살에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지금껏 이렇게 격정적으로 나를 몰아붙이는 코코로를 본적이 없어서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과연 정말 코코로가 맞는걸까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물기를 띈 눈은 힘이 들어가 날카롭고 전보다 큰 키로 내려다봐오는 태세는 위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있는 힘껏 끌어당기고 있는 손은 내 거칠어진 손보다 가늘고 상처 하나 없이 부드러워 보이는데 내 힘으로는 전혀 풀리지 않아서 울것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도 도망가고 싶어졌다.

"그런, 그럴수는 없어. 코코로가 돌아왔다면 지금은 츠루마키가의 당주라거나 거기에 가까운거지? 평범한 회사원이 어울릴리가 없잖아. 우린 이미 너무 달라졌어."

상식적으로, 평범하게 생각해서. 이런 말들에 코코로가 납득하지 않는 것은 알지만 이제 우리는 고등학생이라는 어떤 의미로는 꿈을 꿀 수 있는 시기를 지났다.

원래부터 사회의 시선을 의식해야하는 동성끼리의 연애였는데, 나는 그런 장애물을 코코로의 앞에 두고 싶지 않았다.

"미사키, 나는 애원하고 있는 거야. 재력이라던가 권력, 명예 이런것들을 전부 포함해도 네가 없으면 난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데. 어째서 알아주지 않는거야?"

참고 견디던 눈물샘이 결궤해버렸는지 흘러넘치는 감정의  분류가 아프도록 선명했다.

나는 내 멋대로인 판단으로 코코로의 행복을 재단해버렸고, 새장이라고 생각했던것은 코코로에게는 소중했던 보금자리였을지도 모른다고.. 내 옆자리가 코코로에게는 제일 행복할 수 있는 장소였다고.

코코로에게 직접 듣고서야 깨달은 나는 간사하게도 웃음을 멈출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코코로가 울고있는데도 바보같은 옛적의 자신을 비웃을 수 밖에 없었다.

"나도야. 나도 코코로가 없으면 사실 별로 행복하지 않았어. 너와 함께있어서 즐거웠던때를 제일 행복했어."

"그럼 이제 헤어지자는 말같은건 하지 않는거지? 나, 미사키가 그 말을 했을때에 춥고 괴로워서.. 붙잡고 싶은데 무서워서.. 외로웠어."

꽉 마주끌어안으면 아직 밤은 겨울의 기운이 남아서 서늘할텐데도 하나도 춥지 않았다.

코코로가 나를 필요로해서 돌아와줬다는게 너무 고맙고 나때문에 마음고생을 하게 해버린게 너무 미안해서 울면서 떨리는 등을 도닥여 달래주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에서야 돌아온거야? 나는 날 잊어버렸다고, 훨씬 즐거운것들에 둘러쌓여서 생각할 틈도 없는걸까했는데."

코코로가 일본에 돌아왔다는것조차 모르던 내가 퇴근길에 만나게 된 것은 코코로가 나를 찾지 않았다면 불가능과 같은 확률이니까 나를 만나고 싶어서 왔다는걸텐데.

참을 수 없이 그리워서라는 이유만으론 즉흥적인면이 있는 코코로가 지금까지 참았을리도 없고 누군가가 가르쳐줬다던가 깨달은 계기가 있을게 분명했다.

"실은 당주자리를 물려받자마자 혼담이 들어오고 모르는 사람이랑 결혼을 하란 말을 들으니까..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죽을때까지 함께하는거잖아?"

"호..혼담.. 결혼은.. 아무튼 예외도 있지만 그렇지..?"

역시 이렇게 미인이고 부자에다가 권력까지 있는 집안의 영예에게 그런 이야기가 없을리가 없지.

방금전까지 행복했던 기분이 다 무산되고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자각당하는 느낌은 불안감을 늘려간다.

전세가 역전되어 이번에는 내가 코코로를 꽉 끌어안는 차례가 되었는지 싶을 정도로 내 쪽에서 달라붙으면 후후 웃는 목소리가 간지러웠다.

"물론 다 거절해버렸지만 어쩐지 마음이 콕콕 아프고 자꾸 그날 미사키의 얼굴이 생각나는거야. 점점 웃을 수 없게 되어가고, 계속 함께 있어야 한다면 미사키가 좋다고 생각하니까. 만나고 싶어졌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이 기분 좋아서 뺨을 부비면 여기가 어딘지도 잊고 잠들어버리고 싶어진다.

코코로는 내가 말한대로 거기서 세상을 미소로 만드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전력을 다하는 사람이니까 분명 거기서도 눈에 띌만큼 화려한 성과를 내고 있었겠지.

"그래! 미사키도 나와 함께라면 행복하고 나도 미사키가 없으면 웃을 수 없어. 그럼, 결혼하면 되잖아?"

"엣?! 잠깐, 코코로. 일본은 동성결혼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해야 할것이 너무나도 많은 발언이었지만 우선 현실적인 부분을 집어내는건 내 버릇이었다.

깜짝 놀랄정도로 익숙한 웃음을 지은 코코로는 확 내 손을 잡아당겨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도 듣지 못한채로 끌려가는 느낌이 그리워서 나도 저절로 웃는얼굴이 되었다.

"그럼 다른 나라라면 되는거네? 후후후 기대된다!"

코너를 돌면 바로 익숙한 검은옷의 사람들이 보이고 차에 태워지면 갈색의 종이봉투가 여러개 건내진다.

아마도 코코로가 바라는걸 이룰 계획들이 들어간 봉투들은 즉시 코코로의 손에 개봉되어서 무엇을 고를지 머리가 아프도록 고민하게 되겠지.

그때 문득 내가 코코로를 나의 파랑새라고 생각했던것처럼 코코로도 나를 그런 존재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걸 깨달았다.

파랑새와 마법사라니.. 정말 동화같은 조합의 우리는 옛날이야기에서나 나올 터무니없는 해피엔딩을 같이 맞이하게 되겠지.

그것이 무척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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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분해서 주체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을 이유로 혹시 거절당할기라도 할까봐 대답을 듣기도 전부터 미리 포기했던건 나의 나쁜 버릇이 발동했던것일터였다.

잊고 싶다고 모른척하고 있었던것들은 전부 분명히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마음의 파편들이었는데.

아플것이 틀림없는데도 웃어주는 얼굴과 좋아라는 허락의 말. 거절된적은 한번도 없었다.

내가 마음대로 그렇다고 믿어버릴려고 했을 뿐.

오지도 않은 미래에 걱정을 했을 뿐.

"코코로가 그럴리 없다는건 아는데 불안한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혹시 나보다 더 조건이 좋은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잖아?"

내 눈앞에서 코코로가 눈물을 흘리며 가져간 미사키의 인형 대신에 앞에 둔 코코로의 인형은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지만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코코로의 표정도 마찬가지로 화가 난다는 느낌보단 매우.. 외로운것 같은.. 그런 슬픔이 담겨있어서 나도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이 가만히 듣고만 있었을것이다.

코코로가 누군가를 특별하게 여겼을때에 놓아주기로 했지만 그럴 마음이 없다는건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있었다.

알파와 오메가의 문제가 아니다.

"정-말, 나도 내가 한심한것은 아는데..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빌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잖아. 비록 내가 상처받아도 네가 행복하면 상관없다는 그런.. 이기적인건 나도 알아."

물어보지도 않고 멋대로 소망을 떠안기는건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일이란걸 알아도, 아는데...

차라리 이대로 눈앞에서 사라질 수 있다면 더이상 코코로도 나도 고민 할 필요도 상처받을 필요도 없을텐데.

나에게 밖에 통하지 않게 된 페로몬이라면 더이상 코코로가 하로하피로 활동하는데 지장을 끼치지도 않을것이고, 히트사이클은.. 억제제로 노력하는 수 밖에는..

어느새, 또 나는 도망가는길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아?

그런 정열적인 고백을 들은 후에야 자신이 얼마나 바보같은 일들을 해왔는지 눈치채면 자연히 사라지고 싶어지는 법이다.

붉게 타오르는 얼굴은 얼마나 강하게 맞았는지 부어오르는 뺨의 열기조차 잊어버릴만큼이라 어째서 지금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놀라웠다.

눈치채면 이미 자신은 어디로도 도망가지 못하게 둘러싸여 붙잡혀, 신체에라도 코코로의것이라는 증표가 눌러붙어있는데 무엇을 그렇게 걱정했지.

이미 딱지도 떨어져 흉터로 남은 목덜미의 증거를 손가락으로 쓸어보면 더욱 더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코코로를 쫓아가서 껴안고 놓아주고 싶지 않아졌다.

지금 이게 나의 기분이든 알파의 기분이든 신경쓰는게 바보같아졌다.

왜냐하면 이렇게도 격렬하게 코코로밖에 생각 할 수 없는데 다른것을 신경쓸 여유가 있을리 없잖아.

눈앞에 외로워보이는 코코로의 양모펠트인형을 집어들고 나는 울면서 나가버린 내가 외면해서 상처입혀버린 코코로를 찾으러가기로 했다.


코코로가 어디로 갔을지 찾는것은 본능에 의지했다.

안전하고, 편안하고, 그리고 나의 냄새가 나는것들로 가득채운 보금자리를 만들고 있었던것을 어딘지 모르게 파악하는 짐승의 감각은 익숙해질 수 없었지만 이제는 무섭지 않았다.

나는 알파의 기분에 휘둘려도 코코로를 상처입히지 않을것이니까. 그때에도 그랬으니까.

"미사키, 들어오지마!"

문을 열자마자 확하고 전에도 느껴본적이 있는 공기가 질척이도록 달달한 코코로의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고보면 들은적이 있었지 오메가가 보금자리를 만드는것은 히트사이클의 전에 많이 일어나는 징조라고.

코코로의 주변을 둘러싼 나의 옷가지나 물건, 그리고 아까 가져간 내 모습을 한 양모펠트가 몹시도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코코로가 나로 둘러싸여 안심한다는게 매우 기분좋고 사랑스러워서 지금 뒤로 물러서면 벗어날 수 있다는것을 알면서도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괜찮아. 이제 도망가지 않으니까.."

한발자국씩 천천히 다가가는 나에게 코코로가 배개를 던졌다.

아마도 히트상태의 코코로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거부반응.. 나는 놀라서 막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서 망연히 배개를 내던지고 숨을 내쉬며 괴로워하는 코코로를 바라봤다.

이제는 나 하나만을 뒤흔드는 페로몬의 감각에도 막을 수 없는 슬픔이 나를 망부석처럼 가만히 굳어있게 만들었다.

거절당했다. 코코로에게.

왜? 어째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 역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아니, 혹시..

내가 싫어졌나.

흉포하게 울려퍼지는 가슴속의 고동이 나를 최악의 행동을 하도록 재촉한다.

"어째서. 아까는 나를 좋아한다는듯 말해놓고는 이제는 내가 싫은거야? 그러면 어째서 기대하게 만들었어!"

히트에 당해서 반항할 힘도 없는 코코로의 팔을 찍어 누르고 다그치듯 으르렁거렸다.

어차피 힘으로는 나를 밀쳐낼 수 없으니까 이대로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서 절대 나를 벗어날 생각도 할 수 없게해서..그래서?

하얗게 핏기가 사라질정도로 몸은 이 앞으로 진행하면 원하는것을 얻을 수 있다고 힘이 들어가는데 고통스러운 갈증에도 나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전신으로 쏟아들어져오는 페로몬을 직통으로 느끼면서도 참을 수 있는것은 다시는 내가 도망칠 구실을 만들지 않으려는 각오와 너를 좋아하니까 지키고싶다는 연심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웃는얼굴을 보여주지도 나를 보듬어 안아주지도 않는 너의 모습이 가슴을 찢어진것처럼 아프게 만들어서 뒤로 물러날수도 없게 만들었다.

"미사키가..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울테니까.."

작게 헐떡이는 숨과 함께 토해진 코코로의 목소리는 떨리고 잘게 끊겨서 흥분으로 극대화한 내 감각이 잡아채지 않았다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걸로도 나에게는 충분해서 사랑스러운 걱정을 해 준 작은 입에 몇번이고 입맞춤을 해준다.

처음에는 나를 생각해서 거부하던 코코로도 내가 전혀 키스말고는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으니까 페로몬에 휘둘려서 하는 일이 아니란것을 알아챘는지 목에 팔을 둘러 받아들여주었다.

그것이 나의 모두를 긍정해주는것 같아서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나도, 타인의것을 빼앗기만 한다고 생각했던 나도 코코로를 좋아하는건 죄가 아니라고 생각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이런걸로는 허기진 속을 채울 수 없다는걸 알아챈 본능은 더욱 더 많은것을 바라게 되어서 녹아서 몽롱해진 코코로에게서 허락을 구한다.

"미사키, 전에.. 소원을. 흐읏.. 하나 빌기로 했잖아..하.. 그렇다면, 지금 미사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줘.."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어 초조해진 내가 여기저기에 키스를 해 재촉하는데도 꽉 껴안는 힘을 강하게 할 뿐 나보다도 다급 할 코코로는 언젠가 달리기시합에서의 소원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뜻밖이라 놓아버렸다고 생각했던 이성까지 돌아와 멍하니 코코로를 내려다볼 수 밖에 없었다.

"그것만으로 괜찮은거야?"

코코로는 말을 할 기운도 사라졌는지 가쁘게 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의 기분을 확인하고 싶다는 감정은 내가 이때까지 애매한 위치에서 코코로에게 확신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어쩐지 그만큼 나를 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은 귀에 입을 맞춘채로 속삭여주었다.

"코코로를 좋아하고있어. 세상을 웃는얼굴로 만들려고 하는것도 즐거운것을 찾자고 나를 이끄는것도 너의 태양같은 웃는얼굴도 전부 좋아해. 고백하기도 전에 알파와 오메가로 억지로 붙든것같아서 나 자신을 원망할 정도로.."

내가 망설이던 사이 영원히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했던 기회가 찾아온것은 기적과도 같아서 나는 계속 이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그렇지만 코코로를 상처입히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억지로 붙들어맨 몸은 이미 한계라서 당장이라도 덮쳐버려 코코로의 모든것을 가지고싶다고 온몸으로 외치고있었다.

차라리 지금, 검은옷의 사람들을 불러서라도 나를 막는것이 나은것이 아닐까.. 이런 제2의 성별따위가 아니어도 사랑한다고 고백했는데 그 직후 휘둘리는것은 원하지 않았다.

뜨겁게 익은 뇌로 간신히 그런 생각을 한 내가 힘겹게 뒤로 물러서며 내 등 뒤로 둘러진 코코로의 팔을 떼어내려고 하면 히트가 온지 꽤 시간이 지나 기력의 소모가 심하다고는 생각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으로 끌어당겨졌다.

"우윽.. 코코로, 제발. 더이상은 나도 참을 수 없다고.. 나중에 더 말할테니까. 지금은 억제제 좀 먹고.."

"미사키가 원하는데로 해도 돼."

코코로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어 몇번이고 머리속에서 되새기는 동안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척추를 녹이는것 같다.

"저기, 코코로.. 그것은 어떤..?"

"나도 미사키를 좋아해. 알파라던가 오메가라던가 상관없이. 이걸로는 답이 안되는걸까?"

올려다봐오는 코코로의 눈은 가늘게 휘어져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 붉은 입술을 어루만지면 아무렇지도 않게 핥아오는 모습이 독과 같이 망막에 스며들어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휘저었다.

"미사키, 이번엔 소원이 아니라 부탁이야. 나에게도 미사키랑 같은 미사키의것이라는 증거를 남겨줄래? 이번에는 사라지지않도록, 확실히."

아직도 다가가길 망설이는 나에게 코코로는 슬쩍 손가락의 끝으로 나의 목덜미에 선명히 남아있는 각인의 흔적을 매만졌다.

그 낯간지러운 감촉과 가슴깊이 푹 박혀오는 의미에 눈에서 눈물이 나올것같은 기분이 되어서 나는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하로하피의 활동도 관계의 진전이라도 전부 나와 코코로는 내가 코코로에게 손을 잡혀 끌려가는 형태가 제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참고 견뎌 쌓이기만했던 감정을 이번에는 하나도 가감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울 늦은 시간까지 서로를 껴안은채로 잠들어있었던것 같았다.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면 여전히 둘러싸고 있는 옷가지나 인형같은것은 그대로였지만 난잡하게 벗어서 던져버린 옷들은 새것으로 놓여져있어서 부끄러움을 늘렸다.

"으음, 미사키.."

몸에 부담이 엄청났을 코코로는 여전히 꿈의 나라에서 헤어나올 기미는 없었지만 꽉 껴안고 있던 온기가 사라진것을 불안으로 생각했는지 팔을 뻣어 나의 빈자리를 찾고 있었다.

이런 사소한것이 이렇게도 사랑스럽게 보이다니 어떻게 떠난다던가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던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과거의 나는 정말 어리석었지..

그토록 싫어했던 알파의 본능을 실컷 발휘한 뒤여서인지 거부감이 많이 사라진 나는 그 기분에 몸을 맡겨 나를 요구하고 있는 코코로를 보살피기로 하였다.

공주님안기로 들어올리면 그럴리없지만 잘챙겨먹고 있는지 걱정이 될 정도로 가벼워서 식사의 문제까지 생각해버릴 정도로 스스로가 코코로에게 얼마나 빠져있는지를 실감 당한다.

하여튼 알파로써는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누군가를 보살피는것에 만족감을 느끼는건 원래부터도 있던 일이고.. 그래도 느끼는 행복감의 크기가 다른것같았다.

"미사키? 어쩐지.. 매우 행복한 웃는얼굴을 하고 있는걸."

아무래도 옮겨지는 도중에 공주님이 깨어나버린것 같아서 그 콧잔등에 아침의 키스를 해주었다.

스스로도 놀라울만큼 자연스럽게 카오루씨같은 행동을 해버리는데에 조금 너무 마음을 놓아버린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코코로라면 허락해줄거라고 생각했다.

"그야, 코코로도 알고 있잖아? 알파는 자신의 오메가가 품안에 있을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그런거야."

"으음.. 그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인데. 미사키는 알파이든지 오메가이든지 관련이 없다고 했잖아?"

부끄러움에 얼버무린 말을 사람을 관통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꽤뚫어보는데에 재능이 있는 코코로가 눈치채지 못할리가 없다.

"..부끄러워 하는건 이해해주지 않을래? 코코로가 나랑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게 너무 기뻐서, 그래서 웃는얼굴이 된거야."

"후훗. 나도 미사키랑 같은 마음이라서 기뻐! 그런데, 미사키 부탁은 확실히 들어준걸까나?"

스윽 자신의 목 뒤로 손을 돌린 코코로는 따끔한 감촉에 흠칫 몸을 떨고도 흡족한 표정이라 내 소유욕의 발로인 상처에 기뻐하는 모습이 심장을 떨리게 했다.

그러고보면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서로의 표정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빛 한점 없던 한밤중이었으니까 나는 내가 남긴 증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던걸 깨달았다.

조금 코코로의 등에 돌린 팔에 힘을 주어 확인한 상처는 내 잇자국이 적나라하게 남아서 어서 치료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알고있는데도 어째선지 매우 매혹적으로 보여왔다.

가만히 그곳에 쪽 입을 맞추면.. 잊었던 그 날의 아침에 코코로가 보였던 이상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깨달아 부끄러워져 괜히 고개를 숙였다.

"후후후. 미사키도 나랑 같은 마음인거구나. 기뻐."

의미가 달라지지 않은 같은 말을 한번 더 꺼낸 코코로는 얼굴을 숨긴 나의 표정도 이미 다 알고 있다는듯 매우 심술궃은 표정이라서 공연히 여기서 사라지고 싶어져버렸다.

역시 나는 영원히 코코로의 손에 이끌리는 처지가 될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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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성을 잃어 짐승같은 긁힌 신음을 내면서 비틀대던 내가 자신에게 다가가오는것이 무서웠을텐데 어째서 웃는얼굴로 마주 안아준다는 선택을 할 수 있었는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모르겠다.

이미 히트사이클에 당해서 흐릿해진 정신이 평소의 행동을 반사적으로 나타냈다던가? 아니면.. 우는얼굴의 나를 달래기 위해서라던가..

결국 답은 누구에게도 얻을 수 없는데 후회만이 몰려든다.

폭주하는 내가 배려같은 일을 할 수 있었던건 오히려 사냥감이 반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로, 만약 네가 싫다고 나를 때리거나 걷어찼으면 더 처참한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게 무서웠다.

그래서 더욱 더 네가 바란다고해도 내가 그런 기분에 빠져드는것은 죄악감을 느끼게 되어서 지킨다고 하면 그 무엇보다 나에게서 너를 떨어뜨리는게 최고의 방법이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내가 아는 한 제일 너를 상처입힐 수 있는건 나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나에게 너의 애정 한자락이라도 허락하는걸 참을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어머, 미셸. 미사키는 어디로 가버린거야? 지금부터 하로하피 협의가 있는데."

"미사키는 오늘 바쁜일이 있나봐. 그래서 내가 대신 왔어."

"그렇구나.. 왜 나에겐 말해주지 않은걸까? 나는 무엇이라도 알려주는데 미사키는 숨기기만 하니까 치사해."

시무룩한 네 얼굴이 안타깝지만 하루종일 미혹에 시달린 나는 더이상 서로의 페로몬을 느끼는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너는 다르더라도 나는 알파가 아닌 부분이라도 너에게 매혹되어있으니까 쉽게 이리저리 흔들려버린다.

더워서 조금이라도 덜 입고 싶었던 미셸 인형탈이 이렇게 그리웠던건 처음일지도 몰랐다.

뜨거울만큼 두꺼운 인형탈의 두께가 답싹 달라붙은 코코로의 체온도 부드러움도, 향기도 전부 차단해주어서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

"네에, 네에. 적당히 즐겼으면 이제 협의하러 가자. 라이브를 하자고 했었지?"

"흐음.. 라이브, 하고 싶었지만 그건 미사키와 함께 이야기하고 싶으니까 다음으로 할까? 오늘은 연습만으로 좋아."

"어라, 어째서? 미사키가 없어도 나라면 전해줄 수 있는걸."

혹시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었나 생각해도 방금까지 꼬옥 안아붙어있던 코코로가 미셸에게 마음이 상할 일은 없었다.

라이브에 내가 필요한것은 작곡, 작사나 사전협의니까 미셸이 전해준다고 하면 이 자리에 없어도 어떻게든 할 수 있는것 뿐일텐데.

하지만 찌뿌둥하게 볼을 부풀린 코코로는 전혀 그러고싶은 마음이 없는것 같았다.

학교에서는 금방이라도 검은옷의 사람들을 호출해서 라이브를 시작해버릴것 같은 기세였었던것 같은데.

"미셸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번 라이브는 미사키와 함께이니까 하고 싶어진거야. 그렇다면 미사키랑 생각하는게 제일 웃는얼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자, 연습하러가자!"

휙 돌아서서 나가버리는 코코로는 미셸에게 이런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단호하게 거절을 나타냈다.

뻣어진 손은 허무하게 털썩 내려가고 닫힌 문은 무엇보다도 내 실수를 나타내는것 같아서 의문만이 남아 떠돈다.

"도대체 무엇을 바라는거지? 라이브를 하고 싶은거 아니었나.."

언제나 그렇듯이 고민해도 코코로의 의도를 알아채는건 나에겐 힘든 일이었다.

다만 지금 코코로가 필요한건 미셸이 아니란것뿐.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미셸의 머리부분을 옆의 테이블에 올려두고 털썩 의자에 앉으면서 무의식적으로 코코로의 잔향을 쫓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혹시 유난히 소유욕이 강한 타입인지도 모른다고 깨달을만큼 코코로와 잠시라도 떨어질 일이 있으면 금새 불안해지고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를 파악하려고 해버린다.

혐오하던 알파의 부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되버린다니 지극히 모순적인 자신의 행동에 차라리 여기서 사라지는게 나은 일이 아닐까 고민한다.

언젠가 나타날 코코로의 특별한 사람을 눈앞에 뒀을때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질러버릴지 나조차도 알 수 없어서 신체가 떨린다.

나는 도대체 코코로를 어디까지 상처 입혀버리는건지..

"그런데도 붙어서 지키겠다던지.. 그냥 내가 떨어지고 싶지 않은거면서.. 솔직하지 못하고 겁쟁이에다가 스스로조차 통제하지 못하다니 어울리지않아."

적어도 내가 싫다던가 그땐 왜그랬냐던가 원망이나 거절의 말을 듣는다면 아프더라도 금방 포기하자는 생각을 할 수 있을텐데.

나약한 나는 확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편한쪽으로 생각하려고 하니까 더욱 더 실증이 난다.

누군가, 나를 벌해주기 바라는것도 실은 용서받고 싶은 소망의 다른 말.

"이기적이고 나약하고.. 도대체 내 어디가 알파라는거야. 아니, 알파가 아니었으면 이런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하아, 차라리 내가 베타였으면 좋았을텐데."

태어나서 몇년, 몇백번은 말했던것 같은 쓸데없는 희망을 늘어놓고 다시 미셸을 뒤집어쓴다.

최근의 코코로는 정말 사정없이 나에게 달콤한 페로몬을 부딯쳐오니까 이러한 방어막이라도 없으면 또 무슨 죄를 저지를지 모른다.

어서, 조금이라도 빨리. 내가 여기에 있으면 안된는 이유가 생겼으면 좋은데.

그러면 내가 한계에 처하기 전에 너는 행복해질테니까.

"..라이브가 끝나면 잠시, 떨어져있을까."

문득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짠! 미사키, 어때?"

"엑. 왜 내 옷을 입고 있는거야? 게다가.. 후드티만.. 바지는?!"

코코로의 저택에서 한가롭게 양모펠트를 만들고 있으면 돌연 어딘가로 사라졌던 코코로가 나의 옷을 입고 돌아왔다.

뜬끔없는 행동을 서슴치않고 저지르는 코코로라도 거기에 누군가의 웃는얼굴이라던지 하는 목적은 분명히 존재하니까 이번도 아마 그런일이겠지만..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나의 옷따위를 입은걸까..

"으음.. 이렇게 하면 미사키가 웃는얼굴이 될거라고 카오루가 말했지만 전혀 아니구나. 오히려 열이 나는걸까? 얼굴이 매우 빨간걸."

"아니, 아니아니. 지금 가까이 오지마. 나 엄청 위험하니까."

누군가 내 인내심을 칭찬했으면 좋을 정도로 각인을 맺은 좋아하는 오메가의 내 페로몬 투성이의 옷에 감긴 모습은 폭력적으로 나를 공격해오는데도 나는 침착하게 뒤로 물러설 수 있었다.

도대체 이걸로 내가 웃는얼굴이 될 수 있다던가.. 카오루씨는 분명 지금의 상황을 깊게 이해하지 못하고 이런짓을 저질렀겠지.

분명 서로 사랑해서 각인은 맺은 알파와 오메가에게는 서로를 충족시켜주는 상황이 되긴 했을테니까 무조건 원망하기도 어려웠다.

"미사키는 전혀 위험하지 않은걸? 아하! 혹시 양모펠트를 하는 도중이라 바늘을 들고 있어서야? 어머, 거의 완성했구나."

당황했어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테이블에 둔채로 벗어난 나를 두고서 코코로는 마무리중이었던 나의 양모펠트를 집어들었다.

하지만 코코로가 무엇을 하던간에 보이는지 아닌지 아슬아슬한 차림새에 정신을 차리질 못하겠는 나는 당장 여기서 뛰어서 달아나면 어떨까 생각할 지경이었다.

그랬다가는.. 저 차림으로 뒤쫓아 달려올테니까.. 그냥 내가 참는 수 밖에 없겠지.

"미사키와 똑같이 귀엽네! 완성이 기대되. 얼마나 걸려?"

"곧 완성되니까! 옷을 제대로 입고 오는게 어떨까! 그렇게 입고있다가는 감기걸릴거야!"

"그렇게 큰소리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잘들려, 미사키."

"됐으니까 얼른 갈아입고 와!"

꾸욱꾸욱 어깨를 잡아 밀어도 코코로는 전혀 떠날 마음이 없는지 되려 이쪽으로 체중을 맡긴다.

까르륵 웃는 소리는 이것이 꽤나 필사적인 행동인지도 모르고 즐거운듯하다.

결국 포기하고 의자에 다시 앉으면 그 상태로 내 무릎에 앉아버렸다.

"카오루씨.. 용서하지 않을거야.."

"카오루가 미사키에게 뭔가 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닌데.. 그런데, 그 옷 없어진줄 알았는데 코코로가 가지고 있었구나. 섞여들어가버린걸까.."

저택에서 빨래를 해주니까 코코로와 나의 옷이 바뀌어 들어갈수도 있다고 납득했다.

하여튼 언제나 같이 씻자고 난입하는 코코로에게 당황해서 도망나오지만 빨래통에는 제대로 두명분의 옷이 겹쳐 들어갔을테니까.

저건 또 심장이 멈출것같은 사건이었다..

"미사키의 옷장에서 가지고 온건데? 어째선지 이렇게.. 기분이 안정되는 냄새가 나는것같아서 좋아해."

"아-. 그런 부끄러운짓 눈앞에서 하지 말아줄래! 음.. 하구미가 저번에 잠들어버린거랑 같은걸까.. 도대체 나한테서 무슨 냄새가 난다는거지.."

"조금 두근두근하고.. 졸려질거같기도 하는데 신나고 행복한 기분이 되니까 언제라도 맡고싶어져."

말하면서 몸을 돌려 정면으로 마주안는 코코로가 내뿜는 숨결이 간지러웠다.

이런한 태세가 되면, 이제 양모펠트를 할려고 해도 집중이 안되서 내 손가락만 잔뜩 찌를테니까 잠자코 하던것을 내려두고 코코로의 등을 도닥였다.

기분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코코로는 레코더를 가져온다도해도 놓아주지 않을것 같으니까 나는 잠자코 나와 코코로만이 있는 이 시간을 즐긴다.

하지만 언제나 행복한 기분이 들면 그 반대의 감정도 응시하게 되버려서 외로운 기분이 들게 되버린다.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 있을까.

"미사키? 또 고민이 있는 표정을 하고 있어."

"으응.. 그냥, 조금 추운것같아서."

"그렇다면 꼬옥 서로 안아주는건 어떨까. 분명 따뜻해질거라고 생각해."

웃으면서 제안하는 내용은 경계해야 마땅한대도 달콤한 유혹에 빠져들어 나도 그 가녀린 허리에 팔을 돌려 밀착한다.

귀에 들리는 심장박동소리가 너의것인지 나의것인지 모르겠지만 조금 빠른 느낌이 드는것은 분명 착각일것이다.

"미사키는 그날 이후로 원래도 많았지만 어딘가 더욱 걱정이 많아졌어. 무엇이 그렇게 무서운거야?"

날카로운것에 찔린듯 따끔했다.

코코로가 물어보지 말았으면, 알아채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찔러들어오는건 슬슬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나보다.

어차피 숨길 수 없다면 전부 털어놓는게 어떤가 하는 기분도 들지만 나는 그날로부터 죄인이니까 피해자인 너에게만큼음 절대 약한소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원래부터 겁쟁이니까. 별로 달라진건 없어."

"거짓말. 미사키, 언제나 이럴때 나를 봐주지 않잖아. 혹시 내가 싫어진거야?"

내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아 시선을 피하지 못하게 한 채로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는 네가 말했다.

상처입혔다.

또.

미숙한 내가 나를 능숙하게 숨기지도 못할거면서 과분한 마음을 품어버린 바람에 일어난 일이었다.

"전혀, 그럴일은 없어. 나는 코코로를 싫어하지 않아. 맹세할 수 있어."

"그렇다면 왜, 그날처럼 해주지 않는거야? 나는 미사키와 내가 특별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미사키 오히려 항상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는것 같아서.. 내가 억지로 붙들고 있는걸까?"

증가한 스킨쉽은 코코로 나름의 불안함을 감소시키려는 행동이었던걸까.

코코로의 잘못은 하나도 없는데 내가 내 죄책감에 취해서 너를 또 상처입혔다는게 안타까웠다.

코코로는 자기 자신의 기분에 매우 솔직하니까 오메가의 호르몬의 영향도 곧 스스로의 감정이라고 생각할게 분명하니까 이것도 또한 특별하다고, 사랑이라고 생각했을것이다.

나는 내가 괴롭더라도 그 부분을 확실하게 코코로에게 설명해줘야 하는 역할이었을텐데.

코코로가 모르는것을 언제나 내가 가르쳐왔으면서 괴로우면서도 달콤한 애정표현에 욕심이 나서 시선을 피해왔던걸지도 모른다.

"코코로, 그건 진짜로 특별한게 아니야. 전부 오메가와 알파라는 제2의 성별이 멋대로 우리를 휘두르기 때문으로.. 그러니까 코코로는 나를 붙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

"그럼, 이 가슴의 두근거림도. 미사키를 보면 사랑스러워서 꼭 끌어안고 싶은 기분도. 다른 누구도 아닌 미사키와 별을 보고싶다는 바람도 전부.. 가짜라는 말이야?"

어째선지 꼬옥 안겨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코코로의 말에 노기가 느껴졌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까지 만들어버렸는지 알아채면 당연 분노도 끌어오르겠지.

혹은 이제와서 그날이 후회되고 화가나는걸지도 몰랐다.

드디어 바라던 단죄의 시간이 나에게 찾아온지도 모른다고 조금의 기대와... 후회, 슬픔, 불안함..그외 온갖것들이 섞인 표정으로 얼굴을 들어올리면 강한 충격이 얼굴을 강타했다.

"미사키는 정말, 바보구나. 구제할 수 없는 바보. 그렇게 영원히 도망치고 있으면 나도 질려서 떠나버릴지도 몰라?"

눈물을 뚝뚝 흘리는 코코로의 얼굴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으면 코코로는 미완성인 나의 모습을 한 양모펠트를 휙 집어서 방을 나가버렸다.

이제와서 열기가 오르는 뺨이 매우 쓰라려왔다.
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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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로하피의 연습을 한 후에는 항상 미셸의 속에 있던 나는 땀투성이가 되버린다.
이대로 집에 가기에는 찝찝하고 이왕 준비해준다는 욕실을 굳이 사양하기에는 너무 매력적인 제안이어서 염치불구하고 스튜디오가 아닌 코코로의 저택에서 연습 할 때는 샤워를 하고 집에 간다.

"코코로 욕실 빌려준거 고마..워...?"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건 사고같은거였다.
제2 성별 검사 이후로 왜 알파가 그런걸 챙기냐는 이상한 시선에도 들고다닌 억제제는 맡겨버린 짐 속.

내가 씻고 오는 사이에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는지 코가 삐뚤어질것 같이 달디 단 페로몬으로 꽉 차있는 방.
안타깝게도 주변에 오메가가 없었던 나.
그 이후의 전개는 뻔하디 뻔한걸로..

처음 하로하피에 권유되었을때 페로몬의 향으로 이미 오메가란것을 알고 있는 같은반의 코코로를 피하기 위해서 거절하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말려들게 된 이유인 미셸의 인형탈이 답답한 밀폐력으로 페로몬을 차단해줬으니까 곤란해하는 카논씨를 위해서 떠나지 않았었는데.

"코코로는 오메가들이 차고 다니는 목걸이를 안하네?"

"그런걸 하고 있으면 보는 사람들이 웃음이 되지 못하는걸. 안타깝다고 슬퍼하는 얼굴은 보고싶지 않아."

"하아.. 위험하다고. 뭐, 아직 히트도 온 적 없다하고 주변에서 지키는 검은옷의 사람들도 있으니까 괜찮으려나."

굴지의 명문가라는 성장배경 때문에 치명적일 정도로 무방비했던 코코로를 아직 히트사이클도 오지 않은 오메가라고 방심했던 내가 나쁜거겠지.

게다가 언제든 주변에 있는 검은옷의 사람들이 내가 폭주하더라도 절대 코코로만큼은 지킬거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그러한 무력함이 오히려 평가되어서 코코로의 옆에 붙여놓기 좋은 알파로 남게되다니.
씁쓸한 약이라도 먹은것같은 기분이 되었다.

"미사키 오랜만에 학교를 가니까 즐겁네!"

"빠졌던 수업 보충할 생각하면 기쁘지만은 않는데.. 아, 코코로 혼자서 뛰어가지마!"

갑작스레 찾아온 히트사이클에, 이성을 잃은 나와 각인을 맺은건 아무리 코코로라도 몸에 부담이 갈 테니까 우리는 당분간 학교를 쉬었었다.

코코로라도 본능의 영역인 알파, 오메가라는 굴레는 벗어날 수 없다는게 내심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나라도 통제하지 못하는걸 기대하는건 바보같은 생각이겠지.

그래도 다행히 코코로가 재벌가 아가씨라서 저택에 기거하는 의사가 즉시 처치해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지금 이렇게 학교에 올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그런 아가씨가 아니었다면 최소한의 방어기구인 목걸이도 하지 않은채 언제 덮쳐질지 모르는 알파와 같이 밴드같은거 할 생각도 안했겠지만.

"그런데 코코로 차를 타고 가도 될텐데 왜 굳이 오늘은 걸어가자고 말 한 거야?"

츠루마키 저택으로부터 하나사키가와학교까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도심에서 조금 멀어져도 송영해줄 운전기사도 있으니까 갑갑한 콘크리트 건물로 둘러싸이기보다 저런곳에서 사는 걸까.

코코로에게는 확실히 그런곳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후후. 하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미사키와 같이 등교하는거잖아? 조금이라도 이 순간을 길게 즐기고 싶다고 생각했어."

즐거운 기분을 주체못해서 다시 뛰어나가려던 코코로는 뒤로 돌더니 순식간에 내 옆으로 다가붙어서 손을 잡아왔다.

태연하게 남의 손을, 가볍게도 아니고 이렇게 꽉 잡는건 스스럼없는 코코로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나란히 속도를 맞춰서 걷는건 코코로에게는 느리게 느껴져서 지루할텐데 활짝 웃는 얼굴은 정말 나랑 같이 학교에 간다는게 즐겁다고 느끼는것같다.

"미사키랑은 하교는 자주 같이 하지만 등교를 하는건 처음이니까 신기한 기분이야. 언제까지라도 같이 걷고 싶어."

"그랬다가는 일찍 나온것도 의미없이 지각확정일거라고. 안그래도 우리, 희귀한 알파랑 오메가여서 눈에 띄는데 이번에 갑자기 학교를 안나왔으니까 시끄러울거야.."

게다가 한창 코코로에게 끌려다니는 불쌍한 사람으로 알려지는중이었으니 눈치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다들 알아차렸을거다.

이 세상에서 각인이 맺어진 알파와 오메가가 부부나 마찬가지인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실컷 놀림받을지도.. 여차하면 이상하다는 시선까지 따라다닐것이다.

심지어 코코로는 숨길 생각같은건 하지도 않고 거의 다 나았으니 필요없다고 말하고선 붕대를 풀어버렸다.

물론 그날의 나에게 칭찬을 날리고 싶을 정도로 자제해서 물었긴하지만 각인을 맺을 정도면 당연 며칠가지고 나았을리가 없으니까 코코로의 목덜미에는 내 실수의 흔적이 검붉은 딱지로 남아있다.

아마 목걸이를 하지 않았던거와 같은 이유의 행동이겠지.

바람에 샴페인골드의 머리칼이 흩날려서 그 사이로 내가 남긴 자국이 보이는걸로 본의아닌 알파의 본능이 충족감을 얻으니까 나도 숨기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머, 그럼 하로하피를 알릴 좋은 찬스잖아! 미사키 우리 라이브를 하자. 모두가 세상을 웃음으로 만들자는 우리의 목표를 알아줄 기회야."

"이런때까지 참.. 하아. 알았어. 준비해볼테니까 너무 성급하게 행동하지는 말고. 나눠줄 포스터라던가도 만들어야겠네."

"후후 미사키도 할 마음이 들었구나! 학교가 끝나면 모두를 불러서 이야기하자. 카논도 하구미도 카오루도 기뻐할거야."

밝게 웃는 코코로를 보면 학교에서 떠돌아다니고 있을 소문도 누군가의 뒷담도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느껴져서 신기했다.

들떠서 속도를 맞춘다는것도 잊었는지 빠른걸음이 되어버린 코코로를 따라 나도 빨리 걸어가면서 의외로 각인을 맺는다던가하는 알파와 오메가의 관계는 우리 사이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사회통념대로면 오메가에게 휘둘리는 알파라는것도 굉장히 웃기는 일이니까.

"미사키! 학교까지 달리기 시합하자! 먼저 도착하는 사람 소원들어주는거야!"

"아앗! 먼저 출발하고 말하는게 어디있어! 기다려 코코로-!"

결국 참지 못한 코코로가 엄청난 속도로 뛰어가는걸 뒤쫓아가면서 나에게 도대체 무슨 소원을 들어달라고 할지 조금 걱정한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이미 들어줄 마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걸 알아채고 적당히 코코로의 뒷모습을 놓치지 않을 만큼의 속도로 달렸다.

아무리 코코로라도 진심인 알파의 신체능력에는 이길수가 없겠지만 나는 코코로가 바란다면 뭐든 해주고 싶으니까 영원히 이길 일은 없겠지.

다른 알파가 앞에 나타날때까지 코코로는 내가 진심을 다 해서 달리지 않았다는걸 모를테니까 지금은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 언젠가 나타날 알파가 코코로에게 소원을 빌 권리를 얻어낸다고 생각하면 무언가 부글부글 끓는거 같지만 그때는 나도 옆에 없을테니까 진심으로 시합하지 않았다고 투정부릴 코코로를 볼 일은 없겠지.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무슨 소원을 빌건데? 미리 말하지만 터무니없는 말을 해도 못들어주는건 못하니까."

"으음.. 아직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니까 나중에 말해도 될까? 미사키가 들어줄 수 있는것으로 할테니까!"

자기가 시합을 하자고 해두고선 빌 소원이 없다니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코코로다운 결말인거 같기도했다.

무슨 소원을 빌지 걱정되지만 진짜 할 수 없는건 말한다면 이해해주는 정도로는 되었으니까.

여차하면.. 미셸을 뒤집어쓰고 선처를구하자..

"나중에 말하는건 상관없지만.. 아, 일찍 도착해서 그런가? 반에 아무도 없어."

"와아! 미사키, 우리가 1등으로 도착했네!"

일찍 나오긴했지만 원래라면 평소 시간대에 도착했을텐데 알파인 나는 그렇다치고 코코로는 그 가녀린 몸의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를 체력으로 쉬지도 않고 학교로 달려 너무 빨리 도착해버렸다.

이대로 교실에 있으면 도착하는 애들에게 조례시간까지 계속 질문세례를 받게 되겠지.

대충 넘겨버릴수 있는 나랑 다르게 하나하나 대답해주려고 할 코코로가 도대체 어떤 폭탄발언을 할지 모르니까 나는 등교시간 아슬하게 교실에 들어오기로 결심했다.

"코코로, 이대로 교실에만 있기에는 아깝지 않아? 아무도 없는 학교를 둘러볼 기회인데. 같이 산책이라도 하지 않을래?"

"왠일로 미사키가 즐거울것 같은 일을 제안해줘서 기뻐! 이대로 두명뿐인 교실을 즐기는것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미사키가 바란다면 물론 같이 산책을 하자. 어디에 가는 걸까?"

학교에서 제일 사람이 없을만한곳이며 우리가 접근하기도 쉬운 장소가 딱 한군데 생각이 났다.

나는 천문부소속이 아니지만 코코로가 있으면 그다지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호위대상이 되버린 바람에 근처에 숨어있는 검은옷의 사람에게 시선을 주자 바로 끄덕하고 허락이 떨어졌다.

"이왕이면 한번도 안가본곳에 가고 싶어져서 옥상에 올라가보고 싶은데.. 코코로 같이 가줄래?"

"좋아! 나 천문부소속이니까 열쇠가 있어. 같이 올라가도록 하자."

짤랑거리며 주머니속에서 나온 열쇠에는 미셸의 열쇠고리가 달려있었다.

보통은 옥상열쇠같은 중요한건 올라갈때마다 허락받고 빌리는거겠지만 상대는 코코로니까 깊이 생각해봤자 지치기만하겠지.

아무도 없는 옥상은 아침의 햇빛으로 눈이 부셨다.

보통이라면 이렇게 정리되어있지는 않겠지 싶을 정도로 깔끔함 옥상에는 바닥에 앉아도 괜찮도록 매트까지 깔려서 꽤나 쾌적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것 같았다.

"여기서 보는 별은 정말 아름다워! 지금은 아침이라서 하나도 보이지 않지만 나중에 미사키도 같이 보러오자."

아침햇살보다 눈부신 미소를 보이는 코코로는 어째선지 앉아있는 나의 무릎을 차지하고 내려가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보면 코코로라도 오메가의 부분에 이끌리는게 있는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을 하게 되지만 원래부터 미셸에게는 곧 잘 달라붙었고 다른 동료들에게도 포옹을 할 때가 많았으니까 그저 스킨쉽을 좋아하는것 뿐일지도 모른다.

반짝반짝 빛이나는 머리칼을 쓰다듬어주면 더욱 기뻐하는 표정으로 빤히 올려다보는 표정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아버린 이 며칠 사이의 내가 원망스럽다.

그리고 그런 코코로에게 어쩔 수 없게도 매우 약한 나는 그 입술에 입을 맞췄다.

"우후후, 미사키 오늘도 매우 좋은 하루가 될거 같네!'

"하아.. 나는 벌써부터 지친것같은데.. 뭐, 됐나."

네가 기뻐하는 모습만으로 행복해지니까 나도 참 중증이란걸 깨닫는다.

키스를 나누는게 기분 좋은 일이라고 알아버린 코코로는 가끔 하고 싶게 되면 이렇게 나를 올려다보게 되어왔다.

그럴때마다 과연 나에게 해도 되는 자격이 있는건지 아니면 알파와 오메가의 관계를 맺었으니 의무로라도 만족시켜줘야 하는 건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이러면 어떻할지.

그러한 것들을 고민하다 계속 나를 기다려주는 코코로를 보면 나도 그러고 싶은 기분이 되어버려서 또 나는 나에게 져버린다.

가끔 언제까지 내가 이 역할을 하고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에 휩싸일때가 있다.

당장이라도 나보다 어울리는 적당한 알파가 나타나서 코코로의 약혼자라고 소개된다던가 하는 그런 만화같은 전개가 일어나지 않는지 하는.. 그런 오기를 바라는지 바라지 않는건지 복잡한 기분이 드는 상황을.

계속 생각해버리니까 온전히 너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져버렸다.

"미사키, 또 어딘가 아픈거야? 그럼 얼마든지 내가 마법을 부려줄게!"

그리고 그럴때마다 이 위험한걸 모르는 아가씨는 내 찌푸린 미간에 애정과 걱정을 담은 키스를 해준다.

네가 행복해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내 속을 알고는 있는건지, 원망스러울 정도로 밝은 얼굴은 명백히 이 시간을 즐기고 있는것 같아서 한숨을 쉬며 껴안는다.

꺄아하고 간지럽다는듯 웃는 너는 또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건지 너처럼 부드럽지도 좋은향기가 나지도 않을 나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는다.

맞닿은 서로의 신체에서 옮겨지는 체온이 뜨거워져서 떨어지고 싶은 기분과 행복이 가슴을 끓어오르도록 넘처나는 기분이 교차해서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게 되어버린다.

"미사키.. 이상한 기분이 들어.."

그런건 단순한 미혹이야.

오메가와 알파의 페로몬에 휘둘린 결과.

그러니까 나는 네가 더이상 나에게 물들여지지 않게 매달려오는 너의 어깨를 잡아 떼어내곤 벌떡 일어선다.

"코코로, 이제 돌아가자. 곧 수업이 시작할거야."

그렇게 말하는 나의 목소리도 뜨겁게 흐려져 떨리고있는건 단순한 착각이다.

호르몬이라던가 페로몬이라던가 어려운 말들이 엮어져 만들어진 환상같은 기분이니까 멋대로 나에게 좋은쪽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되뇌인다.

안타깝게 나를 올려다봐오는 너를 지키기 위해서 이번에는 언제나 조금 사욕을 담았던 키스도 하지 않았다.
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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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끝이 찾아와도 괜찮게 둘러싸둔 겹겹의 껍데기를 사정없이 벗겨낸것은 당신인데 정작 내가 무서워하던 끝을 예고하는것도 당신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마지막 라이브가 끝날때까지도 울지않겠다는 결심은 그중에서도 제일 필사적이었을텐데 이 또한 당신에게 처참히 무너져내려 멈추지 않게 되어버린다.

"어째서..! 계속 된다고 믿고 있었는데..!"

그래서 사양하지 않고 전력으로 노력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런데 어째서 내가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말 할 수있게 된 장소를 그렇게 만들어준 당신의 손으로 부수는거야.

대학의 일로 바빠졌던 카오루씨나 카논씨가 있더라도 열심히 모두가 노력해서 유지해온 하로하피였었잖아?

아직 세상은 모두 웃는얼굴이 되지도 않았는데 왜 도중에서 멈추는거야.

진심으로 당신의 꿈이 이뤄지기를 바라게된 나는 또 멋대로 휘둘렸을뿐인 희생자가 되는거냐고.

"이렇게 좋아하게 되어버렸는데. 어째서 그만두자고 해버리는거야.. 그리고 왜 모두 순조롭게 받아들여버리는거야.."

그러는 자신도 해산하자는 코코로의 말에 누군가가 반대의 말을 해줄거라고 타인에게 맡겨버렸으면서 이제와서 후회한다고 바뀌는게 있는것도 아닌데.

그래서 울지않으려고 했는데.

어째서 항상 너는 그렇게 나의 밑바닥까지 추적해서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지 알 수 없다.

"뭐라고 말 좀 해줘.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던거야? 바빠진다는 이유만으로 그만둘만큼 너에게 하로하피는 아무것도 아니었냐고."

돌연 치솟은 화를 너에게 쏟는것은 잘못된 일이라는것을 알고 있는데도 멈출 수 없었다.

내동댕이쳐져 멀리 떨어져있는 미셸의 언제나 웃는얼굴도 지금은 원망스러울 정도여서 발로 걷어차려다가 등뒤에서 팔을걸어 붙잡는 당신의 손에 막힌다.

"미사키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해서라도 슬픈기분이 나아진다면 상관없지만 미사키의 소중했던 추억까지 가벼운취급을 하는것은 안돼."

나를 붙잡은 팔은 부들부들 미세하게 떨리고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떨쳐낼 수 있을텐데도 갑자기 탈진이라도 한듯이 온 몸에 힘이 빠져서 주저앉았다.

아무말 없이 내 원망을 받아들이던 당신이 처음으로 꺼내는 말이 나에게로의 걱정이라니 끝까지 당신은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최저최악이 된 기분으로 자신의 손으로 망쳐버릴뻔 했던 가장 소중했던 추억의 편린을 눈앞에 두고 흐르는 눈물을 막을 힘도 없어서 뚝뚝 넘쳐흐르게 둔 채로 나는 내 사랑스러운 기억들을 되새긴다.

"처음 하로하피에 이끌렸을때 곰범위는 도대체 뭐야?라고 생각했지만 디제잉하는 기분은 나쁘지 않아서..아니 솔직히 즐거워서.. 혼자 공부까지 했었어."

"응, 알고있어. 미사키는 노력하는 사람이니까."

나를 막으려고 힘을 주던 팔은 어느새 쓰러질거같던 나를 지지해 품안에 기대게 만들고있었다.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것만 같은 슬픔의 바다속에서 코코로에게 매달려불어 간신히 가슴속 깊은곳까지 털어놓으며 간헐적으로 울음을 토해낸다.

"교실에서 나처럼 보지도 않은채에 편견을 가지는 애들이 하로하피에 대해서 알고 라이브 즐거웠다고 말해줬을때는 정말 기뻤는데.."

"그렇구나. 미사키는 상냥한 사람이니까."

토닥토닥 등을 부드럽게 두드려주는 손길이 매우 따뜻해서 영원히 멈추지 않을것같은 울음까지도 달래버렸다.

이렇게 쉽게 풀어질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코코로가 듣고 이해해준것만으로 보답받은 기분이 되어간다.

사실은 나는, 그저 나에게 하로하피가 이렇게 소중해서 놓고싶지 않았다는걸 누군가가 들어줬으면 했을뿐인지도 몰랐다.

"코코로의 세상을 웃는얼굴로 만든다라는 꿈도 믿을 수 있게 되어서 지지하자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미사키는 분명 나만큼이나 모두가 특별하구나. 그러니까 이렇게 슬퍼져버렸어.. 곤란하네. 미사키가 웃는얼굴이 아니면 나도 도저히 웃는얼굴이 될 수 없는걸."

말한대로 코코로는 조금 곤란한듯한 안타까운걸을 보는듯한 그런 다정한얼굴로 나를 보고있었다.

누가봐도 코코로가 더 가녀리고 보듬어 지켜줘야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코코로는 나를 잘못건드리면 부서지기라도 한다고 생각하는지 울어서 부은 눈매에 살그머니 그 하얀 손가락으로 훑는다.

"그러니까 미사키. 같이 가자! 하로하피의 모두는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가기 위해서 잠시 헤어질 수 밖에 없지만 미사키의 꿈은 나와 같잖아? 그럼 우리 둘이서 세상 모두를 웃는얼굴로 만들러 가는거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듯 돌연 벌떡 일어나 내민 손은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인 내가 웃는얼굴이 될 수 있는 방법.

여기까지 같이 갈어온 동료들은 각자의 행복을 찾아 집으로 가버렸지만 너와 나 둘이서 브레멘을 찾으러 떠나는 끝나지 않는 해피엔딩.

"무엇을 망설이는거야? 내가 질릴때까지.. 어울려주기로 약속했지? 나는 언제 어디서도 미사키가 함께라면 즐거우니까 결코 우리가 끝을 맞이 할 일은 없어."

그말에 조금의 망설임도 녹아서 사라져버려 나는 눈물을 거칠게 슥슥 닦고 벌떡 일어나 그 손을 놓치지 않게 굳게 잡아 굳힌다.

강하게 들어간 힘에 놀라 눈을 둥글게 뜬 코코로는 활짝 웃으면 내 손을 잡아당기며 앞서서 걸어간다.

이 앞에 무엇이 있는지 무엇을 할건지 아무것도 들은것은 없지만 이 손을 놓치지 않는 한 결코 끝나지 않을테니까 나는 마음 속 깊이 안심해서 솔직하게 좋다고 말 할 수 있겠지.

그 말을 들은 너는 어떤 얼굴을 할까?

그것만큼은 보지 않았어도 이미 알고있는 기분이 들었다.
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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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퀘1

뱅드림/ㅁㅅㅋㅋ 2018. 6. 6. 06:21
세상 모두를 웃는얼굴로 만들겠다는 장대한 포부를 차례차례 이뤄나가는 황제의 사상에 모두가 찬사를 보내는것은 아니라는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이러한 옛날이야기를 실현하려는 순수한 꿈을 미력한 나만큼은 언제까지나 곁에서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일개의 가난한 병사를 이 자리까지 오르도록 손을 잡아준 당신에게 이정도의 보답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뚜욱뚜욱 떨어지는 핏방울의 양만큼 정신이 몽롱해져간다.

하지만 지금 무릎을 꿇으면 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었던것까지 잃어버리게 되는것을 알고 있으니까.

비척비척 피투성이의 손으로 날이 빠져버린 검을 들어올린다.

"이 앞은 황제의 어전이다. 허가를 받지않은자는 들어갈 수 없어."

이미 많은 군사가 쓰러져 피웅덩이로 가득한 공간에 서 있는 황제의 호위기사가 귀족들에게는 하찮게 보였겠지.

당장 툭 치기만해도 쓰러져 영원히 잠들것같은 안색으로 으름장을 놓아도 비웃을 수 밖에 없을것이다.

"결국 황제에게 버려진 개일 뿐 아닌가. 그러게 진작 우리에게 협력했으면 많은 재물을 얻고 평화롭게 살 수 있었을텐데..쯧쯧."

비열한 매수에 넘어가지 않은 것은 자존심이나 의무감 이전에 그들의 탐욕에 젖은 얼굴이랑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맑게 빛나는 희망의 상징인 너를 사랑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도망갔으면 살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네가 떠난 이 자리를 지키는것은 전부 내가 너를 사랑하기에 판단력을 잃은것 뿐이다.

터무니없는 꿈에 데여 다시 그 전대로 불의에 고개 숙이며 살아가는 삶은 상상할수도 없게 되버려서, 내가 없더라도 너와 동료들이 이뤄줄거라고 바라며 온몸을 불태워 맞서기로 했다.

"그 정도의 군사로 과연 나를 밟고 넘어갈 수 있다고? 이래봬도 실력으로 호위기사 자리를 맡아낸 몸. 그렇게 방심할 상대는 아닐텐데."

푸른 망토는 울면서 카논씨의 손을 잡고 끌려 도망치는 너를 가리기 위해 돌아선때에 맞은 화살로 너덜너덜하고 붉게 물들어버렸다.

평소에도 너에게 혹평을 받는 미소였지만 제발 내 상태를 눈치채지않길 바라며 활짝 웃어보인 얼굴은 제대로 너에게 웃는얼굴로 보였을까.

참혹하게 일그러졌었던 너를 생각하면 역시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까지 마음에 안드는 녀석이로군.. 평민따위를 등용한 황제가 멍청한거지. 죽여라! 그리고 어서 황제를 찾아!"

단숨에 달려들어오는 사병 두명을 베어내는 감각은 이미 둔해질대로 둔해져서 망설임도 사라졌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건 알고있지만 최대한 숫자를 줄여두면 네가 무사할 확률도 올라갈테니까 그냥 쓰러질수는 없다.

타국과의 전쟁을 통한 무기장사를 원하는 귀족들과는 달리 상호교류를 통해 인정을 얻어온 코코로라면 원군을 데리고 돌아올 수 있을것이다.

그 자리에 나는 없겠지만 너는 다시 영광의 관을 얻고 다시 세상을 웃는얼굴로 만들어갈 수 있겠지.

그 길의 밑바닥을 깔아줄 수 있다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익.. 괴물같은놈.. 이상한 탈을 쓰고 광대노름으로 황제를 매혹하더니 끝까지 방해만하는군.. 상대는 어차피 혼자다! 멀리서 화살을 쏟아부어!"

나에게 베여넘겨진 사병들 중에는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라도 있을텐데 그 위에 화살을 쏘다니 역시 옳은건 코코로가 아닌가.

짧은 비소와 함께 쏟아지는 화살의 비.

어차피 더이상 움직이지도 않는 팔을 축 늘어뜨리고 마지막으로 코코로가 사라진 방향으로 시선을 향한다.

이미 거기에 당신은 없지만 그 잔향만이라도 느끼고싶어서 무방비한 등을 내보이고 황제의 의자로 향해 쓰러진다.

뒤는 카오루씨와 카논씨, 하구미가 노력해줄것이다.

불화살에서 번진 불길이 시야를 가리고 이미 감각이 사라진 몸을 감싸 타오른다.

"하..하하. 이렇게 태워버리면.. 비밀통로도..찾을 수 없을텐데..그리고 나도 찾을 수 없겠지."

네가 다시 영광을 되찾고 이 자리에 섰을때에 부디 나를 찾을 수 없기를.

다른 병사와 귀족의 사병들과 섞여서 타올라 내가 누군지도 모른채에 어딘가에서 살아있다고 믿으며 웃을 수 있기를.

그래서 내가 내 목숨을 불태워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너의 웃는얼굴이 계속 될 수 있기를.

열기와 함께 무너져내리는 기둥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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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욕실에 들어가서 씻겨주겠다는 미사키를 겨우겨우 뜯어 말리고 근육통에 앓으면서 간단하게 샤워만을 끝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는길에 지나가는 저택의 일꾼들의 시선이 괜히 신경쓰인다.

말단들이라면 당연히 저택 아가씨의 사생활은 숨겨져있겠지만 그래도 왠지 혹시 다들 알고있는건 아닌가하는 부끄러움에 주눅이 들었다.

어제는 여러가지 평소에는 못할 일들을 저질렀지만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미사키의 얼굴을 멀쩡한 표정으로 볼 자신이 없었다.

스스로도 애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마사지를 해주는 미사키에게 행복으로 잔뜩 풀린 표정을 해버렸다는것은 자각하고 있다.

예전에는 이 쓸데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재력과 권력 때문에 들러붙는 기분 나쁜 권유들에 절대 이럴 일은 없다고 생각했을텐데 미사키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아니까 다 터무니없는 걱정이었던 기분이 든다.

정말 그렇게 길게 살아온것은 아니지만  평생을 걸친 고민을 아무것도 아닌걸로 만들어버리다니..

"아, 코코로. 빨리 왔네? 느긋하게 반신욕이라도 하는게 근육통에 도움이 될텐데."

"..그냥. 미사키가 기다리고 있는데 혼자 이 넓은 방에 두는건 신경쓰인다고 할까."

사실 그럴생각이 없었던것은 아니지만 샤워를 하는동안 보이는 몸 여기저기의 흔적들이 어젯밤의 기억을 불러일으켜 도저히 오래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넓은방에 혼자 두는게 신경쓰인것도 사실이긴 하다.

넓고 화려한 방은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코코로는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도 없이 혼자서 이런 공간에 있으면 정말 외롭고 추운 기분이 들어서 어릴때는 밤이 무섭기까지 했었던 것이다.

"어째서? 코코로의 좋아하는것들이 보이니까 매우 즐거웠는데. 저 천체망원경이라던가, 내가 준 선물도 소중히 보관하는것 같고."

순간 얼굴이 새빨개진것 같았다.

미사키에게 받은 책갈피를 미처 쓰기에도 아까워서 얌전히 장식장에 둔 것을 잊고 있었다.

알았어도 숨길틈도 없이 갑작스레 초대해버렸으니까 바뀔것은 없을텐데 그래도 과거의 나를 원망해버렸다.

그러고보니 방을 여기저기 고개를 휙휙 돌리며 둘러보는 미사키의 앞에는 오선지와 레코더가 놓여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작곡을 하고 있었던거야? 그러고보니 내 콧노래를 곡으로 만들고 있다고 했지.. 한번도 본 적 없었지만."

"음. 봐도 재밌지는 않을텐데. 그냥 녹음한걸 듣고 오선지에 옮긴 다음에 피아노로 좀 쳐보고 다시 고치는걸 반복하는 보기에는 지루한 작업일거야. 코코로가 이렇게 빨리 돌아올지는 몰랐으니까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매우 아날로그인 방법인데다가 시간도 많이 걸릴거 같다는 감상을 안았지만 그 작업시간 동안 내내 내가 아무생각없이 흥얼거려버린 콧노래를 반복해서 듣는다는걸 깨달아버려서 부끄러워진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터무니없는짓을 저지르는 천재인지 하나하나의 말이 나에게 주는 충격이 대단했다.

게다가 왜 그런 반응인지 모르겠다는 순수한 눈망울을 보면 도리어 내가 아무 말도 못하게 되버린다.

레코더를 꺼버린 미사키는 귀에서 이어폰을 빼내면 서있지 못할 수준은 아닌데도 나를 부축해서 자리에 앉혔다.

본인은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근육통이 마치 큰 불치병이라도 되는듯한 호들갑스러운 반응이지만 아껴주는 행동은 솔직히 사랑받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의자를 당겨 앉혀주고 어깨를 조물조물 주무르는 손이 따스해서 사실은 어젯밤의 기억을 상기해버린 바람에 긴장됐었던 몸이 서서히 풀려가서 저절로 감탄의 한숨이 나온다.

꾸욱꾸욱 딱 시원한 느낌이 드는 곳을 정확히 집어내는 지압이 추욱 몸을 늘어지게 만들어서 이대로 다시 잠들어버릴것 같았다.

이미 다시 한번 잠들어서 해가 중천에 떳는데도 분명 침대 속에서 미사키에게 안겨서 잠들면 좋은 꿈을 꾸겠지..하는 나태한 욕구로 가득하게 되버린다.

미사키의 살뜰한 보살핌이 사람을 안되게 만들어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조금 위기감을 느끼지만 이제 사귄지 1일 된 두꺼운 콩깍지가 뀐 상태니까 용서해주겠지.

"아아.. 언제까지나 이러고 있고 싶은데.."

"그럼 그러면 되지 않아? 오늘은 쉬기로해버렸고 하로하피의 연습도 없으니까. 일단 식사를 하고 생각해봐도 좋고."

검은옷의 사람들에게 배우기라도 했는지 어느새 준비된 식사가 담긴 트레이를 끌어온 미사키가 레코더와 악보를 치워두고 그릇들을 올려두었다.

그다지 큰 테이블도 아니었으니까 꽉꽉 들어찬 접시들에는 어울리지 않는 팥찰밥이 놓여있어서 슬슬 놀리려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고 있지만 태연히 먹고있는 미사키를 보면 정말 나만 과민반응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든다.

"뭐 먹고 싶은거 있어? 뭐든 부탁해도 된다던데. 아까 보양식같은걸 올릴까요라고 물어보긴 하던데 그냥 식사로 달라고했어. 근데 코코로가 원하면 가서 전하고 올게."

그냥 미사키는 모르는걸지도 모르는것뿐 역시 검은옷의 사람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분명 내가 무엇을 시키지 않으면 있는듯 없는듯 가만히 삼가하고 있는 평범한 SP였을텐데 그들도 미사키의 영향을 받았는지 시키지도 않은 일을 나를 위해서란 명목으로 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대부분이 미사키와 연관되어있어서 화를 낼 일이 아니게 되는 철저함까지.. 지극히 사무적인 대화밖에 하지 않던 사이가 이렇게 극변하다니 고민뿐 아니라 내 삶까지 온통 미사키로인해 바뀌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전혀 싫지 않다는거지만.

"아니. 나도 그냥 평범한 식사로 괜찮아. 그보다 밥을 먹고 나서 미사키가 작곡하는 모습을 구경해도 될까?"

샌드위치 하나를 집어서 먹고있는 미사키는 고수풀이 아니면 딱히 가리는게 없는 모양이었다.

우물우물 삼키고 나서 의아한 얼굴로 갸웃 이쪽을 쳐다보는 모습은 의도하지 않았다는걸 알기 때문에 더 귀여워서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게 되버렸다.

하로하피에 들어가기전 나에게 이런 모습을 알려주면 믿어주기는 할까?

분명 질이 나쁜 장난이라 치부하고 의심할게 뻔했다.

"상관없지만.. 평소에는 학교 음악실의 피아노를 빌려서 작업하는데 오늘은 없으니까.. 그래! 저번에 여객선을 탔을때의 곡을 다 완성한 참이었어. 가사를 붙여야하는데 도와주지 않을래?"

"뭐?! 그때 내가 언제 콧노래를 불렀지.."

"음..확실히 히어로님이 나를 구해주고 돌아가는길에 연회장에서 식사도중 빠져나가는걸 쫓아가면 테라스에서 부르고 있었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흥얼거리는 가성이 너무 아름다워서 말을 걸면 멈출거같았으니까."

그러니까 그대로 지켜보았다는 말이 붉어진 얼굴을 들 수 없게 만들었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서 하는 일들이나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것들을 왜 미사키만이 발견하고 소중하게 여겨주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여러차례 수정을 거듭한듯 지운자국이 남은 악보에는 누군가에게 배운게 아니라 독학했다는 작곡실력으론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보였다.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이렇게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는 음표들로 바뀌는것은 다시봐도 신기한 일이었다.

"미사키는 보통 작사는 어떻게 해? 작곡과 다르게 그건 옮기는것만으론 안돼잖아."

음은 어쨋든 콧노래에 의미가 붙어있지는 않으니까 밝고 희망찬 가사들은 미사키가 스스로 생각하고 있을것이다.

내가 모르는 미사키의 모습을 알고싶어서 혼자 작사를 할때에 어떤 방식을 취하는지 듣고 싶어졌다.

"그때 이 곡을 들려주고 싶은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넣는것 같아. 음.. 이 곡은 하로하피를 위한 곡으로 할까? 그날 나에게 용기를 준 보답을 하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즐거운 곡으로 하자고 싱긋 웃음지은채로 완성한 곡은 음표만 붙어있을때랑은 확실히 달라서 말한대로 즐거운 기분이 될것 같았다.

"다음 하로하피 연습날이 기대되네! 모두 기뻐해주면 좋겠는데."

"미사키가 열심히 만든 곡이니까 다들 좋아할거야. 나도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정말? 기쁜걸.. 코코로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어."

과하게 기뻐하며 안겨들어오는 미사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마치 커다란 개라도 된것처럼 얼굴을 부벼와서 조금 간지러웠다.

하지만 문득 오늘은 미사키가 집에 돌아간다는걸 깨달으면 또 이 넓은 방에 나 혼자 남는다는 사실만이 맴돌았다.

이것을 말해버리면 미사키는 억지로라도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서 하루 더 묵어줄테니까 무리하지 않길 바래서 말 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뭘 할지 생각은 해 봤어? 늦지 않으려면 몇시간 뒤에는 집에 가야하는데."

벌써부터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싶지 않았다.

정말 아무생각도 없이 억지를 부려버리고 싶은 마음이 절반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절반을 차지해서 미사키를 두고 싸우는것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원해서 이뤄지지 않은 일이 없었으니까 누군가에게 민폐가 될 부탁을 하는 일을 극도로 조심하게 되버린 버릇이 스스로의 목을 조르다니.

물론 내일 학교에 가야하니까 교과서가 있을 집에 돌아가는게 편하겠지.. 하지만 옆자리니까 내가 보여줄 수 있잖아.

그래도 갈아입을 교복을 가져와야 할 텐데.. 그것도 잠옷처럼 여기에서 준비해버리면 문제가 없는게 아닐까?

그리고 사실은.. 정말은.. 미사키가 혹시 곤란한 얼굴을 하면 어떻게 할거야? 거절당해버리면?

그래도 어떻게든 이뤄줄테지만 나 때문에 힘들게 부모님을 설득하는건 바라지 않는걸.

"코코로, 왜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 거야? 작사를 도와주느라 피곤해다면 놀기보다 낮잠이라도 잘까? 아니먼 역시 근육통 때문에 많이 아픈거야?"

좀 더 자제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시무룩하게 한손으로 가장 아프다고했전 허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무척 걱정스러워하는게 느껴져서 견딜 수 없어졌다.

당연히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간동안 나았을리가 없으니까 지릿지릿 아프기는 했지만 그렇게 비맞은 강아지같은 표정을 하지 않아도 솔직히 말하면 나도 좋았으니까 괜찮은데.

무의식적으로 슬퍼하는 미사키를 달래고 싶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프긴한데 미사키가 마사지해줘서 많이 괜찮아졌어. 음, 딱히 별거 아니야.. 그냥 당신이랑 있으면 너무 행복하니까 계속 이렇게 같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것뿐이야."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연기하며 사실은 정말 간절히 바라는 꿈을 털어놔버린다.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지만 전부 말한것도 아닌것같은 씁쓸함이 맴돌지만 얼마나 좋아하고 깊게 사랑해도 아직 학생이니까 이정도의 가벼움이 적당하겠지.

언젠가는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행복에 푹 절여져버린 뇌의 착각일지도 모르니까 보류해두자.

미사키가 자신만큼 사랑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정색할지도 모른다는것도 현실에서 실현하려면 너무나도 많은 장애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것도 전부 내가 말을 할 수 없는 이유였다.

"그럼 코코로도 나랑 똑같구나! 하지만 내일은 학교를 가야하고.. 부모님도 걱정하시니까.. 그래, 우리 약속을 하자."

무거운 사랑의 일부분을 부정당하지 않은 기쁨을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도 뜬끔없이 나온 약속의 이야기에 기대하는것은 어쩔 수 없다.

하여튼 미사키는 가끔 실패하는 일이 있더라도 상대가 웃는얼굴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니까.

"이번주의 주말에 밴드 연습이 끝나고 묵으러 올게. 평일은 학교가 끝나고 같이 즐거운것을 찾으러 가자. 그러면 밤에는 외로워도 아침을 기대할 수 있잖아?"

환상적일정도로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학생의 한계로 당장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좋아! 그럼 점심은 같이 먹자. 나, 천문부이니까 옥상의 열쇠를 가지고 있어. 날씨가 좋으면 그곳에서 먹는것도 괜찮을것 같아."

"코코로는 천문부에 들어가 있구나. 그러고보니 방에 천체망원경이 있었어. 평소에도 별을 보는거야?"

별은 좋아하지만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던게 떠올랐다.

새카만 밤하늘 아래는 혼자라면 춥고 외로워서 밝은 별이 몇개나 같은 공간에서 빛나는걸 멀리서 보고있을때 공연히 더욱 쓸쓸해졌던 것이다.

사실 옥상의 열쇠를 이용한것은 딱 한번뿐이라는 말은 미사키에게 할 수 없었다.

언젠가 생일에 선물받은 가정용 플라네타리움에 먼지가 쌓인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혼자서 보는 별은 고독이란 감상밖에 받을 수 없던 어느날 방치하고 들여다보지 않았던것 같았다.

"오랫동안.. 보지 않았을지도. 분명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오랫동안 방치해뒀을까."

고등학생이 되어서 동아리를 들어야했지만 다른 학생들이 많은 동아리는 분위기만 망칠게 뻔했으니까 하나사키가와에 천문부가 없다는걸 알아채고 순간의 발상으로 신청했었던것 같다.

츠루마키가의 이름이 없었다면 통하지 않았을 억지이지만 따로 엉뚱한 기대에 어울려줄 생각은 없으면서도 조금 그날만큼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던것 같았다.

전부 지루하고 적당했던 빈껍데기의 나에게도 남아있는 좋아하는것은 있다는걸 발견한것은 혼자가 외롭다는걸 몰랐다면 옥상에 발길을 끊지 않았을 정도로 나에게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검은옷의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예전에 썼던 천체망원경같은걸 방안에 다시 들여놨던거겠지.

결국 그날 이후로 혼자 옥상에 올라가서 별을 본 일은 없었지만..

"방치한게 아니야. 간직하고 있었던거지. 코코로는 자신이 좋아하는것을 버리지 않고 전부 보물상자 안에 넣어뒀지만 열어보기를 망설이다 잊어버렸을 뿐일거야."

나보다 크지만 따뜻한 손이 위로하듯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자신의 좋아하고 특별한것을 모두 손에쥐고 놓지 않은 사람의 노력과 고난이 담긴 거친손은 기대하기를 포기하고 안온한 지루함을 선택한 내 깨끗한 손과는 비교됐다.

언제든 미사키는 소중한것이 생기면 그 단단한 손으로 잡고 놓치지 않게 끌어당겨 안을 수 있겠지.

하지만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또 다시 소중하다는 이유로 어딘가 눈에 보이지 않는곳에 숨겨버리는게 아닐까.

"그럼, 언젠가 같이 별을 보러가자. 미사키와 함께 보면 그때의 즐거운 기억은 아무것도 아닐정도로 행복할거야. 그럼 다른 좋아하는것도 기억해낼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나의 이 응석부린 제안에 미사키는 반짝이며 빛나는 눈으로 끄덕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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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오판다(@tnals1055



"코코로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될거야. 함께 갔던 모든 장소가 소중한 의미로 반짝거릴거야. 지금조차도 그러고 있는걸."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꿈결처럼 속삭이는 말에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되고 말아. 부끄러운건지 상기되어 있는 얼굴이 창문의 역광에 반사되어 금세 보이지 않게 되었다.

 " 그러니까, 나는 코코로와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

팔을 뻗어 손을 들어올린 미사키가 굳게도 제 손에 깍지를 끼며 잡아왔다.

 "누군가에게 양보하고 싶지 않아. 다른사람과 함께 있는 코코로를 보고싶지 않아. 내 곁에만 있어줬으면 좋겠어."

떨리는 손끝을 모르는 척 할 수 없었다. 분명 이건 미사키의 전력이었다. 어쩌면 너의 음험한 이면일지도 모를 말을 최대한 솔직하게 말하고 있을터였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도, 사람이 이렇게 빛날 수 있다니 거짓말 같았다.

오쿠사와 미사키는 마치, 언젠가 보았던 외로운 밤하늘 아래 가장 환하게 빛나는 별 같았다.

 "그치만 그 이상으로 코코로가 즐겁고 행복하고 웃음으로 가득하기를 바래. 그걸 위해서라면 나는 최대한 코코로의 웃음을 보기 위해 노력할거야."

평소와 같이 덤덤하게 즐거운 미사키의 텐션일텐데, 이상하게 목이 꽉 조이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코코로는 모두 잊어버려도 괜찮아. 보물상자의 열쇠를 잊어버렸대도 다시 보물을 만들면 돼. 함께 계속, 계속 좋아하는 걸 기억하러가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미사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내 가장 소중한 것. 마지막 말을 듣고서야 미사키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들을 한건지 알아챘다. 마음의 크기가 선명히 다가왔다.

절대, 절대로. 널 잊어버리는 일은 없을테니까.

미사키의 어깨가 젖어가고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응, 응... 계속 함께...."

한심하게도 그 이상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내 소중한 사람. 내 가장 밝은 별. 날 이끌어주는,

 " 사랑해, 코코로. "
 " 사랑해, 미사키. "

내 가장 찬란한 북두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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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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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튼다.

오쿠사와 미사키는 눈을 깜빡였다. 점차 밝은 빛을 투영하는 얇은 커텐을 멍하니 바라보다 제 품에 얌전히 잠든 연인의 머릿결에 얼굴을 묻었다. 최고급 시트에 은하수처럼 늘어진 빛깔이 어여쁘다. 멈추고 있던 숨을 천천히 내쉬기 시작했다.

미사키는 계단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정확히는 밀쳐지는 꿈을 꾸었다. 밀친 사람의 얼굴을 떠오르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은 미사키가 일부로 잊어버린 유일한 것이었다.

 - 누가 네 허황된 꿈에 자발적으로 어울려주겠어?! -

오랜만에 꾸는 꿈이라, 더욱 선명했다.

 - 앞으로도 평생 나타나지 않을거야!! -

아직도 난 당신이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모른다. 어떤 머리를 했는지, 어떤 외형이었는지, 어떤 얼굴이었는지. 다만 반복되는 꿈에서 그 사람이 했던 것은 내 목표에 대한 부정.

 날카롭게 찢어지는 분노는 화살로 변해 제 심장을 찔렀고, 모자이크 된 그 사람은 꼼짝도 못하는 내 어깨를 밀쳤다. 중심을 잡지 못한 나는 계단 밑으로 느리게 떨어졌다. 당신은 비명을 질렀던가. 꿈은 항상 떨어져 부딪히는 순간 끝이 났다.

눈을 뜨면 벅찰 정도로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막연히 기뻐서 이루고자 했던 목표는 맹목적이 되어 내 목을 졸랐다. 이유는 몰랐다.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이 웃음을 지으면 즐겁고, 행복하고, 반짝반짝거린다는 원 이유가- 무언가를 덮어 가리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무언가를 항상 외면해왔던 오쿠사와 미사키는 몇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게 무언지 직시할 수 있었다.

 " 우응... "

이름도, 얼굴도- 이젠 떠오르지 않는 가장 친했던 내 친우.
 난 네 말을 부정할 이유를 찾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미사키는 몸을 꾸물거리며 제 품에 더욱 안겨오는 코코로의 등을 천천히 쓸어주었다.

네게선 깨끗하게 빤 빨래를 햇볕에 말린 향이 났다. 들판에 화려히 피며 뽐내던 꽃의 향도 났다. 불편한지 이불을 걷어내는 몸짓에 미사키는 좀 더 꼼꼼히 코코로에게 덮었다. 아, 더운걸지도. 계속 끌어안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미사키는 그녀가 느끼는 불편함을 모른 척 하기로 했다. 살짝 찌푸려진 미간에 입을 맞춘 미사키는 살짝 미소지었다.

 " 으응... 아. "

 " 잘잤어, 코코로? "

네 말이, 네가 틀렸어.
 뭐든 이루어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어.

 " ... 나 언제부터 잠든 걸까. "

 " 응, 코코로가 내게 세번째로 사랑한다고 했을 때? "

 " ... ... "

 이런 나라도 좋아해준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어.

몽롱한 눈을 비비던 코코로가 몸을 딱 굳히곤 제 품에 얼굴을 묻었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귀가 새빨갛다. 잠들기 전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걸지도. 미사키는 심술궂게도 보이는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걸쳤다. 

 " 코코로는 하늘 높이 붕 뜬 기분일때밖에 사랑한다 해주지 않았으니까, 확실하게- 읍. "

 " ──아아아아! 말하지 않는 매너라는 걸 모르는 걸까, 미사키는! "

코코로가 제 입을 막으며 왁, 하고 소리쳤다.
대리석처럼 하얀 피부가 페인트칠을 한 것처럼 붉다. 미사키의 눈꼬리가 사르르 휘었다. 제 입을 덮은 손등 위로 내 손을 덮어 깊숙히 어여쁜 손가락 위에 키스한다.

코 끝 가득 사람의 냄새가 가득했다. 청회색 눈에 애정이 뚝뚝 흘러 넘쳤다. 이불 속 어렴풋 보이는 코코로의 어깨에 잇자국과 가슴팍에 선명히 남겨진 제 흔적에 가슴이 뭉클했다.

입을 열어 지금 느끼고 감정을, 가득 넘쳐 흐르는 애정을 말하려던 미사키는 데구르르 눈을 굴리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반쯤 뜬 눈꺼풀 아래 코코로를 담은 눈이 사랑스러운 듯 깜빡여진다.

 " ... 좋아한다는 말까지, 말하지 않고 눈으로 표현하라는 소리는 아니었으니까. "

심통난 얼굴로 화난 기색 없이 속닥이는 목소리가 무척 달았다. 입 안 가득 초콜릿과 사탕- 설탕을 뿌린 과자를 잔뜩 머금어 삼킨 것 같았다.

머릿속이, 세상이 행복으로 가득 찬다면 이런 기분일까. 미사키는 확답을 내리지 못한 채 코코로의 손을 끌어내리고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떨어트렸다.

 " 그치만 참을 수 없는 걸. 무엇을 해도 받아주고 어울려주는 코코로가 나빠. 마음을 확인한지 하루만에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다니 너무해. "

넌 내 신뢰였고, 그 사람의 말을 부정할 근거였으며, 길 잃은 나의 길잡이였다.
 무엇보다 내 가장 특별한 사람이라.

표현하지 않고선 버틸 수 없다. 끓어 넘기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게 만든 건 너니까.

 " 그런식으로 말하는 건 치사하네. 미사키야말로 잔뜩 나를 어리광 부리게 한 주제에. "

 " 흐응,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

 " 모른 척이겠지? "

업악적이게 눈썹을 찌푸린 코코로에게, 미사키는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주체할 수 없는 행복한 기분에 휩싸여서 코코로를 꼭 안고 그녀의 체향을 한껏 들이마셨다.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기색이 느껴졌지만 곧 크게 숨을 내쉬며 껴안아왔다. 아직 맨몸인 상태라 피부가 부드럽게 스쳤다.

그러자 결국 누운 상태로 화들짝 놀란 코코로의 고개가 급히 멀어졌다. 찬 기운이 그 사이를 메꾸었다. 한 차례 눈을 깜빡인 미사키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코코로를 볼 수 있었다.

 " 왜 그래? 혹시 어디 아파? "

 " 아, 아니... 아니... 아.. "

코코로는 끙끙 앓았다.

 " 말해줘. 나는 의사가 아니지만 그냥 보고만 있기에는 괴로운 걸. "

코코로가 결국 이불보에 얼굴을 파묻었다. 난감한 기색으로 잠시 앓던 코코로는 그녀가 잠들었을 때부터 쭉 베개로 사용하고 있던 팔을 조심스레 잡아왔다.

 " 정말로, 단순한 근육통이니까. "

 " 아. "

잠시 침묵을 지키던 미사키는 천천히 근육통이란 단어를 받아들였다. 평소보다 무리한 운동을 했을 때 오는 근육의 통증. 무리한. 무리한? 아주 오랫동안 그 단어가 미사키에게 통용되지 않았으니 떠올리는 게 느릴만도 했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체력의 차가 미사키를 조금 위축시켰다. 무언가의 충격받은 개처럼 표정을 굳히던 미사키는 급박하게 몸을 일으켰다. 덮고 있던 이불이 스르르 내려간다.

 " 미사키?! "

 " 코코로, 잠깐만 기다려. 적신 수건이랑 같이 마사지하면 금방 나아질거야. "

 " 아니 잠시만... "

 " 코코로의 검은옷 사람들에게 온습포가 있는지 물어봐야겠어. 오늘 학교에 가니까 휴식할 틈이 없잖아? 붙이고 가면 도움이 되겠지. "

우선 수건부터.
쭉 자신의 경험과 언젠가 찾아본 치유방법을 떠올리며 중얼거리던 미사키는 코코로가 말릴새도 없이 침대에서 빠져나가 문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 넓디 넓은 저택에서 검은옷 사람들을 찾아나설 작정은 아니었다. 그 정도로 무식하게 행동하기엔 안 될 일이 더 많다는 걸 여러가지 경험으로 깨닫고 있다. 그 사람들은 항상 코코로의 주변을 맴도니까 그냥 부르면 나올지도 모른다.

만약에 나오지 않는다면.

 " 아, 정말...! "

이어지던 생각이 멈추고, 등 뒤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등에 무언가가 부딪혔다. 의아한 얼굴로 뒤를 돈 미사키는 바닥에 떨어진 베게와 씩씩거리며 얼굴을 붉힌 코코로를 볼 수 있었다.

 " 갈거면, 옷, 입고가! "

아.

 
.


바닥에 잔뜩 구겨진 잠옷들을 서둘러 주워입은 미사키가 나가려다 말고 던져버린 베게를 주워 옆에다 놓아주고 콧잔등에 입 맞춰주며 다녀오겠다는 말에, 한없이 풀어지려는 얼굴을 베개에 꼭 묻고 굴러다니다 침대에서 떨어져버린 건 작은 헤프닝이었다.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 이불을 똘똘 말았다. 그러자 급히 다녀온건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온 미사키는 품 안 한가득 무언가를 안고 있었다.

 " 검은옷 사람들을 만났는데. 어쩐지, 아무말도 안했는데 가득 챙겨줬어. "

검은옷 사람들, 전부 알고 있다는 걸 이런식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될텐데.

침대 가까이로 다가온 미사키는 하나씩 물건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대야와 수건, 갈아입을 속옷과 교복. 붕대와 습포 파스 같은 것들. 붕대를 내려놓았을 때 코코로의 시선이 무심코 미사키에 목 근처에 머물렀다.

어제보단 확실히 멍이 빠진 것 같지만, 그럼에도 그냥보면 시선을 돌리기 힘들 정도로 파랗다.

 " 미사키. 오늘 학교 가는 걸까나? "

 " 응? 코코로가 빠지고 싶다면 같이 빠질건데. "

 " ... 그런 얘기가 아니야. "

의아스럽게 고개를 기울인 미사키는 대야에 물을 받아와 수건을 적셨다. 능숙하게 수건을 짜고 머리만 빼꼼히 나와있는 코코로의 팔을 밖으로 빼낸다. 살짝 뜨끈할 정도의 수건이 팔을 감싸, 그 위로 상냥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주무른다.

집중하는 눈에 괜시리 잠들기 전의 기억이 떠올라 혼자 부끄러워졌다. 미사키의 리벤지 1차전은 정말 배운대로 느낀대로 행동해 보내버리더니, 쌩쌩한 얼굴로 2차전을 시작해버렸다.

미사키의 눈은 어두운 빛깔을 띠면서도 한없이 맑아서, 들여다보면 무엇을 담고 있는지 선명히 보였다.

 " 목 말이야. "

계속, 계속 뭉근히 애정으로 풀어진 눈 안 속에서 쾌락에 허덕이며 갈구하는 츠루마키 코코로가 보여서 부끄러움에 힘들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어느덧 3차전까지.

손목에서 어느덧 어깨까지 오른 미사키가 아주 잠깐 멈추었다. 모양새가 꼭 지금에야 알아챈 것 같았다.

 " 확실히, 다른 애들이 보면 무서워할지도. "

그건 아니지 않을까.
 반박이 바로 떠올랐지만 코코로는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당신이 해주는 마사지가 의외로  굉장히 기분이 좋은 것도 있고, 실제로 물어봤을 때 정말 다른 애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는 것도 있었다.

나른히 눈을 감은 코코로는 반대쪽 팔을 잡는 미사키에게 순순히 몸을 돌려 팔을 내어주었다.

 " 근육통 많이 움직이기 힘들어? "

 " 걸려본 적 없는 사람처럼 말하네 미사키. "

 " 오래되서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어. "

 " 항상 미셸 안에 들어가 있거나 격렬한 퍼포먼스도 하면서, 정말로? "

정말로.
 조금 끊어 말하는 것처럼 어눌한 목소리에 코코로는 눈을 떴다. 골몰이 생각하는 기색으로, 그럼에도 끊임없이 팔을 주무루는 언밸런스한 모습에 꽤 다른 사람의 시중에 능숙하다는 생각을 막을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또 이런 정성스런 간호를 한 걸까. 삐죽- 하고 튀어나오려는 까만 감정을 나중으로 미뤄둘 생각으로 우선 꾹꾹 눌러담았다.

 " 땀투성이가 될 정도로 더워서 끈적끈적해서 지치거나 힘들거나 하긴 하지만. 다음날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아픈 건 없어. "

 " 그 말, 어쩐지 당신이 초인이라고 말하는 거랑 뭐가 다른걸까 싶은데. "

 " 설마. "

난 이미 쓰러지고도 남을 체력차인 것 같은데.

 " 만약 정말로 내가 초인이었다면 코코로는 이미 병원이었을거야. 이렇게 마사지를 하는 것보단 병원에 가서 의료적 찜질을 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거라구? "

 " 업고 가겠다는 말일까? 미사키라면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

 " 할 수야 있겠지만, 승차감이 불편한 걸. "

그게 어떻게 들리는지 알고 있을까.
옆으로 누워있던 코코로는 미사키가 갑작스레 이불을 들춰 내리는 것에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이불보를 꼭 잡고 다리를 움츠렸다. 미사키의 움직임이 멈췄다.

 어째서? 내려다보는 미사키의 눈이 집요해서 코코로는 결국 제 몸 전부를 이불에 감췄다.

이성을 차리고 생각해보자면, 어제는 심하게 분위기를 탔던 경우고. 이제와 이렇게 밝은 곳에서 몸을 보이는 건 굉장히 부끄럽다. 상대방이 그런 의도는 없다고 해도.

 " ... 코코로? "

 " 아... 그 꼭 들출 필요는 없잖아...? "

 " 그치만 전체적으로 아픈 게 아니었어? "

아픈 건 아픈거고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니까!

이불에 덮혀 까맣게 변한 시야에서, 미사키의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코코로, 코코로~. 하며 목소리를 길게 늘어트려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도 들렸다. 꿋꿋하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있던 코코로는 어느순간 모든 소음이 멈췄다는 걸 알아챘다.

아무리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해도, 이 정도면 미사키도 포기하겠지.

조심조심 머리 위까지 끌어올린 이불을 내리던 코코로는 갑자기 제 위를 덮치는 무게에 작게 비명을 질렀다. 무겁지 않은 무게가 제 옆구리 위에 내려앉아 있다. 눈을 크게뜨고 아래를 내려다본 코코로는 몸을 베게 삼아 대 자로 누워버린 미사키와 눈이 마주쳤다.

 " ... ... 뭐하고 있어? "

 " 에. 코코로가 탈피를 하고 나를 봐주길, 하고 기다리고 있었어. 지금 당장은 마사지도 사양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우선 잠이라도 잘까 하고. "

그리 말하며 웃는 미사키는 퍽 사랑스러웠다.

그래, 나쁜 생각으로 가득 차서 부끄러워 하는 건 나뿐이겠지. 어쩔 수 없단 생각으로 가득차서, 이불 밖으로 손을 꺼내 미사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감각이 좋은지 눈을 감으며 내맡긴다. 그 경계없음에 따스함이 물씬 올라왔다.

커텐 사이로 밝은 빛이 투영되어 침대 근처를 방황한다. 그게 손에 잡힐듯 선명했다.

코코로는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막지 않았다. 고요한 숨소리와 작은 웃음소리가 같은 공간에서 퍼져나갔다.

아, 그래. 코코로는 인정했다. 지금 시간이 더없이 만족스럽고 행복했다. 모든 색체는 반짝거리고, 침대 옆 화분의 꽃 향기가 달하며, 평범하게 지내오던 츠루마키 코코로의 방이 아주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 모든 게 당신 덕분이란 걸 알아. 지금 이 시간이 특별한 이유가 오로지 당신에게 있었다.

내게서 모든 색을 내리쬐어준 당신과 둘이서 보내는 나른한 월요일의 아침. 그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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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공책님(@Fox_nullnote)님이 써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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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과 동시에 마지막인사도 짧게 끝마칠 수 밖에 없을만큼 재빨리 품안에 가둬져버린 나는 코코로가 말한대로 정말 내가 바라는것은 전부 얻을 수 있는, 누군가가 본다면 부럽다고 생각할 환경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목걸이가 걸쳐져 항상 코코로만을 보도록 끌어당겨지는 생활은 짖무르고 덧나서 조금씩 조금씩 수렁화 할것은 예상 할 수 있어서 행복하게 자는 코코로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대로는 좋지 않다는 결론을 냈다.

상처입히길 바라지 않는만큼 나는 네가 행복하길 바랄때는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둘러싸인 검은옷의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그 낌새가 보인다면 코코로에게 전해져서 조금 더 강력한 무언가로 묶여버릴지도 모르지만 내가 바라는건 그저 나를 통해서 코코로의 세상이 넓어질 수 있길 바라는거니까.

"그러니까 탑에 갇힌 공주님. 이 밖의 세계도 관심을 가지게 도와줄테니까. 나를 좀 믿어주면 좋겠는데."

코코로는 언제나 믿음이 조금 격렬한면이 있는게 아닐까.

결혼은 일단 인생 최대급의 사랑고백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걸로도 안된다니 욕심도 많고 의심도 많아져버린것 같았다.

자고 있을때마저 안심이 안돼는지 배에 꽉 둘러진 팔은 소중하고 소중한 보물을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신의 비밀장소에 숨겨 보이고 싶지도 않은 어린아이의 독점욕같지만 하고 있는 일의 스케일이 남다르니까 문제였다.

"..하로하피의 활동이 재개되면 어쩔 수 없이 코코로도 사전교섭역인 내가 다른사람이랑 접하는걸 막지 못할테니까 결국 이 새장의 끝은 정해져있는거나 마찬가지인데."

내가 코코로를 상처입힐까봐 망설이는것처럼 코코로는 내가 바라는것을 막지 못하고 그저 애원할 뿐이다.

끝이 정해져있는 유토피아에 집착하는건 그것밖에 꿈을 이룰 방법이 없기 때문일까?

코코로가 바라는건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확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확신이 없으니까 안락하고 평온한 안식처를 만들어, 둘밖에 없는 세계를 만들어 내가 자신의 손밖에 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려고했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코코로의 손을 놓치않을거라는건 어떻게 하면 전할 수 있지. 하아.."

나도 빨리 자지 않으면 몇년사이에 실력이 얼마나 유지됐는지 한번 5명이서 맞춰보기로 한 연주에서 장렬한 실수를 할지도 모른다.

안그래도 요새 코코로가 점점 옛날의 체력괴물로 돌아가는 중이라서 피곤한 몸인데 어서 쉬고 어차피 한가해서 넘쳐날 시간에 마저 고민해보기로 정했다.




눈을 뜨면 어쩐지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사랑스러운것들에 둘러싸여있었다.

실제로 구름에 촉감이 있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둥실둥실한 느낌의 구름카페트의 위를 걸어 여긴 어디인지 둘러보면 천장으로부터 매달린 별들은 장미향이 감도는 쿠키로 만들어져있는것 같다.

자꾸자꾸 앞으로 나아가면 어쩐지 본 기억이 있는 토끼의 인형은 마리-안드로메다의 봉제인형에, 손을 잡은 곰인형은  폭신캐 결정전에서 썼던 단추로 눈을 만든 미셸의 데포르메일까?

하늘을 날아다니는 해파리인형은 두둥실 무게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라고 손을 흔들며 응원하는 두마리..일지 두개의 인형을 뒤로하면 양모펠트와 형형색색의 인형들에 어울리지 않은 모던한 흑백의 테이블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안녕. 오랜만이구나, 미사키. 이곳은 마음에 드니?"

"어쩐지 익숙한것 투성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기분일까.. 그립고 따듯한 기분이 드는걸."

눈 앞에 앉아있는 등신대 크기의 분홍곰, 미셸은 아마 이 세상은 꿈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해주었다.

가지각색 라이브용 옷들과 여러 모자를 가지고 있을 미셸이지만 오늘은 미셸은 한번도 쓴적이 없을 미카엘의 가면을 오른쪽의 귀에 비스듬히 걸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미사키는 지금 매우 행복하단거구나. 하지만 이 공간은 어떻게 생각해?"

인형이 안내해주지 않았다면 이곳을 발견하진 못했을거라고 생각 할 정도로 테이블 위에서 은은한 불을 피우는 은제촛대가 아니라면  이곳은 매우 어두웠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 이유는 명확해져서 하늘에는 어느새 별도, 달도 없어져서 햇님조차 보이지 않았다.

"외롭고.. 무서운게 아닐까? 딱딱하고 가시돋힌 기분이 드는걸."

"그렇다면 미사키는 매우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있구나. 원인은 사라져버린 태양인걸까? 하지만 자, 자세히 보면 사라지지 않았어."

미셸은 언제 꺼내들었을지 모르는 등불이 매달린 지팡이를 번쩍 들어 하늘을 비추었다.

바닥을 이루는 폭신하고 하얀구름과는 다른 어두운 검은구름으로 감싸인 햇님은 언젠가 코코로가 만든 태양의 양모펠트를 닮아있었다.

"이 장소는 혹시 내 심상이라거나 그런거야? 그러니까 미셸도 미카엘도 살아있고 코코로도 원래대로 밝게 돌아올거라고 바라는게 반영된건가."

그렇다면 저 검은 구름이 혹시 나라든가.

냉정하게 생각하면 처음부터 나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코코로는 여전히 모두가 특별하고 모두가 소중해서 웃음을 잃는다는 슬픈 일도 없이 세상을 미소로 만들기 위해서 활력적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저렇게 태양을 가려버린 구름이 자신이라는 일도 납득이 가능해서 그래도 저렇게 둘러싸고 싶을 정도로 지금의 나는 떠난다는 일은 생각도 하기 싫었다.


"비슷하지만 이 장소는 달라. 반대방향을 보고있던 코코로와 미사키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뒤돌아보면서 마주잡은 손과 같이 겹친 공간이랄까? 그래서 두명은 마주보게 됐지만 여전히 보는곳은 반대이니까 이렇게 되어버렸지."

태양이 떠있는데 밤과 같이 어둡고 달이 떠있는데도 낮과 같이 밝은 이상한 뒤죽박죽인 공간은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이것저것이 반대로 바뀌어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아무것도 없잖아. 저쪽에는 이것저것 잔뜩 있어서 어지러울 정도였는데."

"왜 없다고 생각해? 봐봐. 나도, 미카엘도 미사키도 있어. 그리고 저쪽과 여기는 이어져있으니까."

내가 걸어온 어두운길은 찾기 어렵지만 확실히 거기에 존재하고 있었다.

게다가 자세히 살펴보면 미셸의 지팡이 끝에 달린 등불로 밝아진 주변에는 같이 갔던 아름다운 해변의 모래를 담아왔던 작은 유리병이라던가 둘이서 나눠서 끼고 음악을 들었던 이어폰같은것들이 바닥에 널려있었다.

"자꾸 자꾸 흘러들어오고 있어. 하지만 태양이 스스로를 감싼 구름을 걷어내지 않는 한 이것들을 볼 수 없겠지. 자, 이제 답을 알아내는건 미사키의 몫이야."

언제나 웃는얼굴의 미셸은 인형탈이라 스스로 온기를 가질리가 없는데도 안아주는 품은 확실히 체온을 품고있어서 따뜻했다.

역시 아직 미셸과 미카엘은 없어지지 않고 세상을 웃는얼굴로 만드는 활동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더 용기를 얻어 힘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강제라고는 말해도 코코로는 언제나 나에게 애원하고 있을 뿐이다.

계속 이대로 내가 주는 사랑만을 받으며 나만을 봐달라는 간절한 사랑고백은 본질은 결코 달라지지 않은 부끄럼쟁이의 나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직통으로 가슴을 울리니까 나는 계속 이대로는 안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도 결국 잡은 손을 잡아당기지도 놓을수도 없이 머물렀다.

우는 코코로의 얼굴이 그것이 본심이 아닌것을 알려주더라도.

"미사키님, 혼자 밖을 돌아다니는것은 곤란합니다. 지금은 츠루마키가에 속하신 몸이니 SP를 한명이라도 대동하시는게.."

"그냥 카논씨랑 찻집에서 만나는데도 필요해요? 하아.. 그럼 어쩔 수 없지만.."

눈치채지 못하게 숨어서 경호하는것은 그냥 근처에 서서 경호하는것보다 신경을 써야하는 일이겠지만 검은 정장차림의 사람들을 대동하고 상점가를 걷는 일은 주변의 시선이 대단해서 암울할 정도니까 부탁했다.

코코로랑 같은 정도로 지켜지게 된것은 어쩔 수 없다는걸 알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않는다.

딸랑이는 입점의 종소리와 함께 그다지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찾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절부절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카논씨가 보였다.

"카논씨, 많이 기다렸지? 코코로가 꽤 놓아주지 않아서 늦어버렸네."

만나러가는 사람이 카논씨라고 몇번이나 말해도 상당히 경계가 심했다.

순순히 붙잡혀서 꼼짝도 안하고 있던 내가 평소랑 다른 행동을 했다는것 만으로 이정도니까 왜 이렇게 믿음을 잃었나 고민해도 고등학교 시절에 무엇이든 이뤄진다고 생각했던 코코로가 처음 잃은게 나이니까 그럴만도 했다.

"으응. 그다지 기다리진 않았어. 그런데.. 상담할게 있다고 했었지?"

커피와 오늘의 추천메뉴를 시키고 맞은편 자리에 앉으면 흠칫흠칫하는 느낌으로 카논씨는 용건을 물어왔다.

카논씨의 마음에 드는 가게인것 같은 이곳은 안타깝게도 그날 나를 잡혀가게 하는게 일조해버린 죄책감 가득한 기억때문에 오늘 이때까지 다시 온적이 없다는듯 하다.

하지만 누구라도 보통 그런식으로 순수한 호의로 도운 일이 범죄에 협력하게 될거라고 알수있을리 없을것이다.

"음. 코코로와 관련된 일인데 말이야. 카논씨가 보기에 지금 코코로가 제일 무서워하는게 뭐라고 생각해?"

내가 없어지는것을 불안해하는건 이해하지만 츠루마키가의 당주가 된 이상 예전과 달리 내가 코코로를 피해 은둔하는 일이 성공하는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한다.

나도 모르는새에 저번에는 코코로의 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모양이라 그때의 코코로라도 손댈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은퇴해서 여가를 즐기시는 중인 코코로의 아버지는 곤란한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셨지만 저번같은 일은 불가능할거라 넌지시 말해줬다.

말하자면 내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만에 하나 생기더라도 할 수 없는 환경이니까 굳이 이정도로 경계를 할 필요가 없다는것이다.

그렇다면 코코로가 진짜로 불안하고 두려워하는건 다른걸지도 모른다.

"코코로짱이 무서워하는것? 글쎄.. 미사키짱이 다시 없어져버리는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간단한 답을 원하는건 아니지?"

당연하게 그런 말을 들으면 역시나 부끄러워진다.

코코로의 팔불출상은 저번에 하로하피의 밴드연습날에 이미 널리 알려져버린것 같아서 그 이치가야씨조차 능글능글한 웃음으로 축하한다고 놀려올정도다.

"단한번을 빼고 저는 한번도 코코로가 원하는것을 어긴적이 없는데다가 이제는 그럴수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을텐데 심할 정도로 의존하고 있어. 게다가 착각이 아니라면.. 하로하피에조차도.."

내가 바란다면 계속 꿈을 꿔주겠다는 말이 진심일거라고 생각 할 수 없었다.

세상을 모두 웃는얼굴로 만들고 싶다는 코코로의 꿈이 이렇게 가볍게 져버리는것은 아무리 코코로라도 용납 할 수 없었다.

나의 삶의 가치관까지 바꿔버릴 정도로 강렬한 영향을 남겼을 만큼 코코로의 열망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는데 단한순간에 엉망으로 무너졌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미사키짱, 그때는 미처 말 할 시간이 없어서 전하지 못했지만 그날 미사키짱이 커피를 마시고 내 눈앞에서 쓰러져 잠들었을때에 코코로짱은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었어."

어렴풋이 그러한 말이 들린것 같았지만 카논씨가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달랐던것 같았다.

그보다 코코로가 그 이후에 나에게 했던 행동들을 생각하면 뜻밖의 일이었다.

"사실은 코코로짱은 이러고 싶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래야만 했던 이유는 있는거지. 나는 그게 코코로짱이 스스로를 믿지 못해서가 아닐까하고 생각해."

"어째서요?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던 코코로인데.."

"길을 잃은 내가 항상 그런 얼굴을 하니까. 코코로짱은 지금 자신을 제일 믿을 수 없어. 그러니까 미사키짱이 정해주길 원하지만 그래선 안된다는것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어. 그러니까 자신을 속이는게 아닐까?"

그것은 마치 정말로 예전의 나처럼 되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아닌가하고 생각 할 수 밖에 없는 말이었다.

아니, 사실 코코로는 외로움을 느끼는것 같은 말을 한 적도 있고 하로하피 밴드를 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별로 없었던것 같았으니까.. 게다가 날 잊던 것도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면 납득이 된다.

코코로는 카논씨가 하로하피에서 제일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던적이 있으니까..그건 자신도 용기를 잃을때가 있다는걸 말하는거겠지.

"코코로는 제가 갑자기 사라져서, 자신에게서 떠나버린 그 이유가 스스로이기 때문이란걸 아니까.. 그러니까 바라는 것에 거짓말을 해서 잊고 싶은걸지도 모르겠네요."

그야말로 예전의 나였다.

거꾸로 돌아서버린 코코로는 아직도 같은 꿈을 꾸고 있지만 예전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스스로가 나를 상처입히지 않을까 걱정하는거겠지.

나랑 코코로는 정반대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매우 닮아있었다.

"카논씨, 오늘은 상담해주셔서 고마워요."

"후후, 아니야. 그러고보니 그때 코코로짱이 한 부탁을 이번에 들어준셈이 됐네? 이번에는 도움이 됐을까?"

평소에는 자주 여기저기 휘둘릴것처럼 보여도 강단이 있는 카논씨는 내가 주체를 못 할 때에는 나서서 용기를 주는 사람이었다.

예전에도 줄곧 격려를 받아왔고 지금이라도 나와 코코로 두명이 서로 엇나갈때에 제3자의 도움이 필요하단 결단에 제일 먼저 생각난건 카논씨였다.

이래저래 한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도 인생의 선배는 선배인지 이번에도 중요한 실마리를 남겨주셨으니까 나머지는 내 노력 나름이겠지.

"물론이죠. 이정도면 충분해. 나는 스스로를 믿지는 못하지만 남을 위할 때에는 전력을 다할 수 있는것 같거든."

어쩐지 매우 쑥쓰러운 말을 해버린것 같아서 무심코 버릇처럼 모자챙을 내려 얼굴을 숨긴다.

제멋대로 달려나가는건 원래 코코로의 특기였지만 움츠러들어 슬픈표정의 하로하피를 웃는 얼굴로 만드는건 항상 내가 하는 일이었으니까.

이번은 그 방법이 조금 내가 지나치게 제멋대로가 되어서 돌아선 코코로의 손목을 강제로 잡아당겨 이쪽을 바라보게 하면 되는거니까.

이미 내쪽의 소중한것들이 조금씩 흘러들어가고 있으니까 언젠가는 변하겠지하는.. 그런 느긋한 방법으론 세상을 웃는얼굴로 만들겠다는 너의 터무니없는 동화를 이룰 시간이 부족해질테니 어쩔 수 없다.

"미사키짱은 미셸에 들어가있어도 미셸이 아닐때도 언제나 하로하피의 수호신이었어. 가까이서 지켜봐 온 내가 말하는거니까 틀림없다구?"

상쾌한 웃는 얼굴로 한손을 흔들며 개찰구 너머로 사라지는 카논씨에게 마주 인사한 뒤에 생각보다 늦어져버려 해가 지고 있는 하늘을 바라본다.

코코로는 이미 본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잊어버린걸까?

아니면 미안하다는 그 말을 아직도 속에서 되새기고 있는걸까.

들렸을지도 모르는 그 말에 실은 수많은 감정을 전부 알수는 없겠지만 단 한가지 확실한것은 나는 사과해주길 바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버리고 간 것들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때 전부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쓰라린 부분은 여전히 모른체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고등학생때의 나라도 혼자서는 나아갈 수 없었으니까. 절대로 불가능할거라고 생각하고 포기했던 코코로도 옆에 있는데 이제 나한테 불가능한게 뭐가 있겠어?"

지금의 나라면 할 수 없는건 존재하지 않는게 아닐까라고 생각될 정도로 솟아오르는 용기는 거짓말로 숨겨져있어도 변함없는 너는 아직 존재하고 있을거라는 실감 때문일것이다.

지금도 나쁘지는 않다.

사랑받는 기분은 확실히 따뜻하고 포근해서 마음응 충족시켜주고 계속 머물고 싶어진다.

하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미래는 더욱 더 즐거울텐데 지금으로 만족하는건 너무 아깝지 않을까?

그래서는 브레멘에 도착하기도 전에 정착해버린 동물들의 이야기하고 달라지지 않는다.

이대로도 충분한 해피엔딩. 누구나 납득할만한 훈훈한 동화.

"몇년동안 포기하고 갈망하고 있었던 굶주린 내가 이정도로 만족한다고? 그럴리가 없지. 아직 보여주지 못한게 얼마나 많은데, 반년정도로 충분할리가 없잖아. 아직도 승부의 대가는 끝나지 않았어."

이유는 그걸로도 충분.

전심전령의 정면승부에 이긴 대가로 반년은 너무나도 짧지 않은가?

고작 받아들인게 모래가 든 유리병과 같이 들은 노래정도라니 주고싶고 보여주고싶고 들려주고싶은건 온세상에 가득가득한데 좁은 새장에 갇혀있는건 너무나도 아깝다.

세상모두를 웃는얼굴로 만들자고 하는 꿈을 숨기기에는 너와 나는 고개를 돌리기만 해도 같은 방향을 볼 수 있는 같은 위치에 서 있으니까 숨기려고해도 무리이다.

저택에 돌아가면 하로하피의 파격적인 데뷔를 계획하자.

네가 원하는대로 우선은 내 꿈인것처럼 꾸며서 이것저것 즐거운것은 전부 구겨넣어버리자.

그래서 네가 이제는 못어울리겠다고 지친다고 화를 내며 뒤돌아보면 거기는 이미 내가 보여주고 싶은 온갖 즐거운것들이 펼쳐진 세계이겠지.

나와 네가 꿈꾸는 세계를 같이 바라볼 그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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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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