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에 가득 노란빛이 일렁였다.

이미 난 너의 것인 걸. 

 입이 막혀 완전히 끝맺지 못한 말이 나오지 못하고 입속을 돌아다녔다. 서로의 것처럼 빈틈없이 맞물린 입술에 몸 속 어딘가 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워서 어정쩡히 벌리고 있던 팔을 굽혀 코코로를 꽉 끌어안았다.

 머릿속을 울리는 쿵쿵 소리가 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키스는 처음이야. 정확히 말하면, 네가 해주는 입맞춤 자체가. 그저 맞물리고 있던 코코로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걸 깨닫고 미사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많은 생각을 했다. 같이 밤을 보내자는 그 말에.

같이 재밌는 카드 게임을 할까, 오래도록 이야기를 할까, 창밖으로 밤하늘을 보는 것도 좋겠어.

그 반대의 이면 속.

널 내 품에 끌어안고, 달콤한 향을 맡아, 진득하게 눈을 맞추고, 사랑스러운 네 이름을 부르고, 그렇게 잠에 들어싶어. 생각만 해도 놀라우리만치 달았다.
그러나, 잘 모르겠지만 코코로가 그 이상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건 알았다.

코코로. 내 코코로. 나의. 나의.
 나만의. 오쿠사와 미사키는 치사한 욕심쟁이가 되어, 너를 독차지하고 싶었다. 마음 속 가득 들어찬 황금나비가 아름다운 날개를 뽐내며 비행하고 있다.

미사키는 아주 작게 눈을 떴다. 긴장으로 굳은 그녀의 등을 느리게 쓸어내렸다. 이대로 영원히 입을 맞추고 밤을 지새워도 완벽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네가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을 것 같았기에.

 " 응... "

오물거리는 그녀의 입술을 충동적으로 입을 벌려 삼켰다. 코코로가 말하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여자들의 스킨십은 모르겠어. 내겐 너무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으니까 알아볼 생각은 없었다.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가장 가까이서 끌어안아.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어떻게 하면 좋아할거야?

코코로의 옆에 있는 미사키와 미셸은 이성적인 척 하면서, 항상 감정에 휘둘리고 있었다. 애초에 이성적이었던 적이 드물었다. 단추를 푸르려 하는 작고 고운 손이 계속 헛손질을 하는 걸 알아, 코코로의 손을 덮어 정확하게 하나씩 같이 풀어갔다.

 " 하아... "

전부 풀어 헤친 단추에 숨통이 트이듯 숨을 뱉어냈다. 코코로가 몸을 떨었다. 미사키는 기묘한 갈증에 허덕이며 떨어지려는 코코로의 뒷목을 살짝 눌러 다시 입을 맞붙였다. 

응석을 부리듯 여린 살끼리 부벼, 살짝 부어오른 그녀의 입술을 할짝였다. 목이 말라, 코코로.

 " 잠, 미사... "

코코로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입을 벌린 그 잠깐 사이로 혀가 들어서 치아를 건드렸다. 고른 치아를 쓸어, 뾰족한 송곳니에 스치듯 밀고 들어가 그녀의 살덩이를 붙잡았다. 매끄럽고 작고, 소름끼치도록 연약해. 

미사키는 충동의 괴물이 제 머릿속을 끊임없이 노크하고 있는 걸 알았다. 날 이성적이지 못하게 만드는 그것. 날 괴물로 만들게 하는 그런 것.

그나마, 아직도 코코로가 무엇을 하려는지 모른다는 게 일종의 브레이크였다.

코코로의 얇은 살덩이를 간지럽히다 입술을 아프지 않게 물며 거리를 두었다. 제 앞섬을 구겨지도록 붙잡고 제 어깨에 기대는, 목에 닿아오는 거칠어진 그녀의 숨이 등허리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 하, 하아... 당신, 진짜. "

숨을 고르는 코코로의 등을 느리게 쓰다듬어, 그 행위에 놀랐는지 그녀는 한 차례 몸을 떨었다.

 " 또 내게... 거짓말했지, 미사키. "

 " 에. 그렇게 말해도. 오늘은 전부 사실대로만 말했는 걸. "
 
 " 거짓말. "

 " 진심이야. "

힘겹게 고개를 든 코코로는 잔뜩 억울한 얼굴로, 붉은 피부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 눈물에 정말 제 자신이 저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을수도 있겠다고 생각해버린다. 등을 쓸어내리는 손에 스치는 황금빛 머릿결을 문득 손에 쥐었다. 의심어린 시선은 여전했고 미사키의 눈이 슬쩍 옆으로 향했다 다시 되돌아온다.

 " 정말인데. 혹시 뭔가 거짓말 같았어? "

 "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으면서 지나치게 능숙한 건 알고 있는걸까?! "

왁, 하고 소리친 코코로는 비틀비틀 고개를 숙여 제 목에 얼굴을 묻었다. 그 황금자락에 입을 맞추고 미사키는 나지막이 소리내 웃었다.

 방금 전의 키스를 말하고 있는 걸 알았다.

몇 번이나 본 적이 있는 걸 따라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리미와 같이 보는 공포영화에서도 진득하게 키스하는 러브씬은 있었고, 어머니가 보는 드라마에서도 단골처럼 나오는 행동이었다.

다만, 이렇게까지 감정에 잡아 먹힐 것 같은 느낌을 몰랐다.

 " .... 아. "

흣. 울렁이는 가슴을 관조적으로 느끼다 돌연 코코로에게 목이 물린다. 상대적으로 약한 피부에 전해져 오는 따끔함에 흠칫 몸을 떤 미사키는 가만히 그녀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코코로의 손이 제 몸을 휘감았다. 아까의 제 행동을 따라하듯 뒷목을 가만히 누르다 옷 안으로 집어 넣은 손이 등을 쓸어내렸다.

뭘 하려는거야? 의문을 밖으로 꺼내는 일은 없었다. 뭘 하든 좋아하지만.

선명히 느껴지는 잇새와 숨이 뜨거웠다. 빨아들이는 힘과 소리가 적나라하게 머릿속을 파고 든다.
 너의 향, 너의 체온, 너의 애정. 네가 주는 모든 것들.

 " 읏, 응... "

아찔했다.

몽롱한 기분에 사로잡혀 코코로의 잠옷자락을 붙들었다. 쪽쪽, 하고 분명 일부로 내는 소리일 게 분명한 소음에 발가락이 움츠러들었다. 해소하지 못한 무언가가 응어리져 뱃속에 가득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뜨겁지 않은 곳이 없어. 멍한 머리로 너를 안고 있는 탓일까 생각했다.


.


꿈에서조차 상상해본 적 없던 현실이란 이리도. 

코코로는 맹세컨데 미사키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거라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관계가 될 수 있으리라조차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의 상처, 당신의 과거, 당신의 행동하는 의미.
 모조리 파헤쳐서 낱낱이 들춰내 보고싶다고 갈망하는 건 이상한 일일까나.

끙끙거리며 내게 매달리는 당신의 모습에 더할나위 없는 만족감이 빠듯이 차오른다. 어깨에 걸쳐진, 당신이 입은 내 잠옷을 목깃을 잡아 끌어내렸다. 미사키의 목덜미에 새긴 제 증거가 선명했다.

미사키의 등줄기를 따라 올라간 손이 목을 감싸듯, 제것이란 증거에 손가락을 짚었다.

 " 여기에, 미사키는 내 것이라는 증거를 새겼어. "

 " ... 증거? "

 " 응, 키스마크. "

평소라면 부끄러워 꺼내지 못할 말을 거리낌없이 뱉을 수 있는 건 당신의 정열적인 키스를 받은 탓일지도 모른다. 

오쿠사와 미사키는 무엇도 하지 못하고 외면하기 바쁜 현실을 단번에 꿈과 동화같은,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비현실적인 세상으로 바꾸는 재주가 있었다. 

 그건 기적과 같은 마법이었고, 미사키는 마법사였다.

당신 스스로를 희생해 일으키는 누군가의 세계를 바꾸는 처절한 마법. 미사키의 드러난 몸을 바라보는 코코로의 눈이 일렁였다.

 " 코코로. 너무 뚫어지게 보면 부끄러워... "

 " ... 그치만 미사키의 몸, 굉장히 엉망진창인 걸. "

이런 분위기에서, 이런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는 말이란 걸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고선 버틸 수 없었다.

하얀 면 속옷 아래로, 크고 작은 흉터가 한 가득. 곤란한 듯 웃는 당신의 마법같은 삶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몸이 안타까웠다. 방치해 남은 아주 자잘한 흉을 눈으로 더듬다, 가슴 아래 도드라진 갈비뼈를 손으로 훑었다. 접촉에 놀란 몸이 한차례 떨린다.

 " 저기, 여긴 어떻게 생긴 상처야? "

잘못보면 튼 걸로 착각할지도 모를 기다란 상흔이었다. 갈비뼈 사이를 가로지른. 주시하고 있던 몽롱한 청회빛이 기억을 더듬듯 잠겨든다. 제 잠옷을 꼭 잡고 있던 손에 스르르 힘이 풀리는 게 뻔히 느껴졌다.

안 돼, 미사키. 날 잡아야지.

 침대로 떨어지려는 손을 붙잡아 머리 위로 올려 내리 누른다. 의아하게 깜빡이는 눈에 내려앉듯 버드키스를 한 코코로는 미사키의 반듯한 콧잔등에, 불그스름한 뺨에, 부어오른 입에, 마른 턱에 차례대로 입술 세례를 쏟았다.

간지러운지 작게 웃음을 터트린 미사키는 한없이 무방비해서 빈약한 인내심이 한없이 짧아져간다.

당신 지금 무슨 꼴인지는 알고 있어? 웃음꽃으로 들썩이는 몸은 미사키의 마른 선을 부각시킨다. 툭 튀어나온 쇄골은 만지면 뼈가 고스란히 느껴질 것 같다. 위로 향한 팔 사이로 단정한 얼굴이 한없이 풀어져 있어서 위기의식으라곤 전혀 없다.

 " 아, 생각났어. 초등학교 고학년 때 고아원에 봉사활동을 갔었어. "

평이하게 나오는 어조가, 그럴 생각 만만인 건 나 혼자인 것만 같아 괴씸해졌다.

 올려다보는 눈이 잔잔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자존심에 자그마한 스크래치가 간 코코로는 허리를 숙여 쇄골 밑에 존재하는 작은 흉터에 입을 맞췄다. 말이 멈췄다. 숨마저 멈춰버린 건지, 미사키의 몸이 미동도 없었다. 고개를 살짝 드니 눈을 크게 뜨고 놀란 얼굴의 미사키가 보였다.

 " 응, 그래서? "

 " 어, 아니. 코코로...? "

 " 계속 얘기해줘 미사키. "

잠시 입을 달싹거린 미사키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 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들어온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애가 자주 울었었어. "

지금은, 중학생인 아이야.
덧붙이는 말엔 이유를 알 수 없는 애정이 들은 것 같아, 코코로는 손에 힘을 주어 그녀의 늑골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쓸어올렸다. 허리가 살짝 떠, 옆으로 휘었다.

코코로는 딱히 멈추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입에 댄 흉터를 진득하게 빨아올려 잇새로 간질인다. 헛바람을 집어 삼키는 소리와 함께 배에 힘이 들어갔다.

 " 아, 그, 그러니까... 우니까 달래, 주고 싶어서... "

미사키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았다. 꼼지락 꼼지락, 내리 눌렀던 손을 어쩌지도 못한 채 제 손을 몇 번이고 건드려오는게 사랑스러워. 사실 당신의 힘이라면 지금 이 못된 짓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텐데.

참을 수 없는 기분으로 고개를 좀 더 내려, 부드럽게 부푼 언덕을 짓씹었다.

 " 아! 으... 그치만, 잘 안되서... 밀쳐, 져서... 책상에엣... "
 
 " 그렇구나. "

문답이 계속 된다.

쇄골 밑의 상처. 어깨에 작은 화상자국. 골반에 짓물린 흔적. 날개뼈를 가로질러 꿰맨 커다란 상흔.

 미사키의 순진한 반응은 꼭 스스로가 범죄자가 된 기분을 맛보게 했다. 어디서 솟아난건지 모를 의지가 꺼져갈 때마다 미사키는 칠칠치 못한 얼굴로 상반신을 굽혀 키스해왔다.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질 때마다 막연하게, 아주 막연하게 코코로는 미사키의 입을 막고 싶었다. 자기가 물어본 주제에. 나름 필사적으로 이어지는 흉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마법사가 마법을 일으키는 대가로 얻은 것이었다. 얄궂은 일이었다.
 너무 얄궂어서 분명 동화책 소재로도 써먹지 못한다.

그렇구나.

여섯번째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을 때 가까스로 뱉어낸, 덤덤해야할 목소리가 볼품없이 떨렸다. 몸에 남은 마법의 흔적들에게 하나하나 정성스레 입을 맞췄다. 이건 어떻게? 저건 어떻게? 모든 흉터들의 이유를 알아볼 것처럼 집요하게 물어봤다. 미사키는 생소한 감각에 몸을 떨면서도 착실하게 답을 풀어주었다.

미사키는, 어느새 자유를 되찾은 손으로 이불보를 그러쥐고 있었다. 눈가가 붉었다.

코코로는 어리석은 생각임을 알면서도 오쿠사와 미사키를 더 빨리 만났더라면, 하는 상상을 했다.

 -왜.. 다들 지금까지 아무도 그렇게 말해준적이 없는데 코코로는 나를 웃는 얼굴로 만들려고 하는거야?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도 꿈을 같이 이뤄나갈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바보같은 생각이라고 나를 버리고 갔는데.. 그리고 누구보다도 내가 나 자신을 믿지 않는데.. -

당신은 누구도 의지할 수 없는 이유로 그렇게 둘러댔지만, 그건 그저 마지막 결정타였다는 걸 알아버렸다.
 상처 하나하나가 믿음에 대한 누군가의 배반이었다. 밀쳐지고, 거부당하고, 외면받고, 떨어지고, 구르고, 속임당하고. 미사키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저 바보같을 정도로 원대한 목표가 있을 뿐이었다.

당신을 좀 더 빨리, 만났더라면.

 " 코코로. "

좀 더 빨리, 당신의 편이 될 수 있었다면.

 " 울지마. "

밀쳐져서 책상에 살결이 찢어지고. 거부당해 계단에서 구르고. 외면받아 외톨이의 기분을 느끼고. 구하려고 뛰어들어도 의심받고. 속임당해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그 모든 게 남아 있었다. 잊을 수 없게 선명히도.

당신이 살아온 삶을 제 흔적으로 덮을수록 눈물이 앞을 가려서 무엇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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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공책님(@Fox_nullnote)님이 써주셨습니당!
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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