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읍..!"
새벽녘, 아직 새도 울지 않는 시간에 벨레스는 숨을 들이켜며 경직된 채로 잠에서 깨어났다. 식은땀이 흐르는 이마를 쓸면 손가락 끝이 놀랍도록 차가웠다. 심장이 뛰기 시작한 이후로 온기를 잃은 적이 없는 신체가 이렇게 한기를 띄는건 요새들어 부쩍 늘어난 일이었다.
그럴때마다 벨레스는 꿈 속의 이야기가 조금씩 자신을 침범해오는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풀어발해지지 않았다고, 모든 것은 착각이라는듯이. 너는 인간은 아닌 다른 무언가라고 말하는것 같았다.
"으음...선생님..?"
"....엘."
깨워버려서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전에 에델가르트는 벨레스를 끌어안아 토닥여줬다. 두근두근..일정한 박자로 뛰는 고동소리가 벨레스를 달래줬다.
며칠째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으므로 에델가르트는 놀란 기색은 아니었다. 제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느라 이 시간에 깨버리는것은 분명 치명적일텐데 에델가르트는 결코 피곤한 기색도 내보이지 않으려고 했다.
"선생님..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도대체 어떤 꿈을 꾸는지 알려줄 수 있어? 나라도 선생님의 고민을 나누어 받고 싶은데."
신경써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닌 에델가르트에게 벨레스는 도움이 될지언정 조금의 부담도 주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걱정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용병의 삶에 의한 영향도 적지 않았고 무엇보다 언제까지나 벨레스에게 에델가르트는 지켜줘야 할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황제가 된 에델가르트는 이제 벨레스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몰랐지만.
그렇기에 더욱 벨레스는 말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무너뜨릴 수 밖에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것이 도리어 걱정을 불러일으킨다면 자신의 감정은 사소한 문제였다. 말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보다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에델가르트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어떤것이라도 이미 끝났다. 그러니까 말하든지 말하지 않든지 변할것은 없을것이다.
"엘. 만약.. 만약에, 시간을 돌리는 힘이 있는 사람이 한사람을 구하기 위해 몇번이나 세상을 되돌려버렸다면..용서받을 수 있을까."
"...글쎄. 만약 내가 되돌려진 세상에 살던 사람이라면.. 원망하려나. 노력도, 괴로워도 참고 견딘 인내의 시간도. 전부 없었던것이 되버리는거니까."
신을 저버리고 인간의 시대를 연 황제다운 말이었다. 단 한번의 삶, 제한된 시간을 살기에 필사적일 수 있고 실력과 노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이 땅의 주인이다.
그러므로 벨레스가 아는 에델가르트였다.
그러니까 자신은 옆에 있을 자격이 없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자신은 순진하게 그 옆을 차지해버렸지만 그래서는 안됐었다. 비록 아무도 몰라도 죄는 처벌받아야하고 죄인은 빛 아래에 설 수 없다.
그렇다면 벨레스는 차라리 자신의 반려이자 최대의 피해자. 사랑하는 에델가르트에게 처단 받고 싶었다. 그것이 벨레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라고 믿으니까.
"어떤 사람이 있었어. 태어날때부터 울지 않고 웃지도 않고, 감정이 없는것 뿐 아니라 심장까지 뛰지 않았지."
"선생님..?"
에델가르트는 갑자기 시작된 이야기의 서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이 누구를 가르키는것인가 모르지 않았기에 잠자코 벨레스의 말을 기다렸다.
"이윽고 자란 그 사람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악마가 되었다. 동정하지 않아도 돼. 그 말을 들어도 악마는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았거든. 슬프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자랑스럽지도 않았어."
잿빛악마.
에델가르트의 머릿속에 단어가 떠올랐다.
그때는 나름 유명한 용병이 선생님으로 들어왔네 정도였지만 생각해보면 악랄한 비방이다.
학교에서의 행적을 생각해보면 벨레스는 죽이지 않을 수 있었다면 절대 그런 행동을 할 인물이 아니다. 일로써 죽였다면 병사가 하는 일과도 다름없었다.
용병도 병사도 무기도 매한가지. 잘못 쓴 사람이 잘못한것이지 명령을 들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하는것은 이 어찌나 얕은 생각인지.
"우연한 기회로 악마는 힘을 얻었어. 잘 쓰기만 한다면 어떤 싸움도 절대 질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 ...시간을 되돌리는 힘."
"?!"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벨레스다. 벨레스의 과거이야기는 본인이 잘 말하지 않으므로 우연히 흘리듯 나오는 정보로 밖에 알 수 없지만 뛰지 않는 심장, 잿빛악마로 충분히 유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벨레스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위인이 아닌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에델가르트라도 이게 정말 사실인가 의심 할 이야기였다.
납득은 갔다. 에델가르트가 아는 한 벨레스는 한번이라도 진적이 없다. 압도적 전력차라도 최소한의 손해로 무조건 이기는 그 모습은 바야흐로 패왕의 날개.
전장의 지휘를 잡아본 사람들은 전부 의문을 안을 수 밖에 없었을 정도로 갑작스런 매복이나 안개 속 적까지 벨레스는 미리 알고 있었던듯 모두를 이끌었다.
말 그래도 모두 미리 알았다면..
"그 힘은 최초.. 악마가 도적의 도끼로부터 한 아이를 구할때 쓰였다. 어리석게도 사람을 구한건 좋았지만 그 도끼에 악마가 죽을뻔 했거든. 감정이 없으니 제 목숨이 소중한지도 몰랐던거야."
"선생님..그건..."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그때 분명 벨레스는 담담한 표정으로 도끼를 검으로 날려버렸다. 압도적이었다...로 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사실은 거기서 벨레스가 죽을 뻔 했어...? 에델가르트는 살짝 한기가 들었다.
"그 뒤로는..그 공적을 높게 사 선생으로 고용되었지. 거기서 제자들을 만나고 점점 악마는 사람이 되어갔다. 꽃도 기르고 낚시도 즐기고 다과회에서는 상대와의 대화에 온 신경을 기울였지. 점차 웃기도 했어."
갈라설 미래를 생각하며 괴로웠지만 행복했기에 더욱 잃는것을 두려워했다. 에델가르트에게도 무엇보다 소중했던 추억이다.
"...하지만 이 손으로 제자를 베었다. 그래야한다고 생각했지. 선생님을 하고 있었지만 악마는 용병이었어.고용된 이상 고용주를 따라야했다. 그리고 모든것이 그 제자가 악마의 적이라고 가리켰어."
"베었...다..?"
기억과는 전혀 달랐다. 모든 상황과 조건이 전부 에델가르트와 벨레스의 길이 다르다고 말해왔는데도 벨레스는 그 순간 동족에게 등을 돌렸다.
"전쟁이 일어나고, 악마가 5년의 잠에 들고. 깨어나서. 사람을 죽이는데에 특출난 악마는 이겼다. 그 힘이 있는 한 실수도 없었으니 질 방법이 없었지. 결국 전쟁을 일으킨 제자의 목을 베었지."
"..."
몇번이고 생각했던 끝이었다. 벨레스와 다른길을 걷는다면 이럴지도 모른다고 정말 셀 수 없이 많이 생각했었다. 있었을지 모르는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정말 있었던 길이다.
"여기까지라면 아직. 악마라고 말 할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그때는...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주위에 휩쓸려서, 목숨을 위협받고..피해자였지."
"맞아. 아마 나는.. 선생님이 날 처단했다면 납득했을거야. 진다면.. 선생님에게 지는게 나을거라고 생각했을거야.."
"엘.. 너는 나를 너무 믿고 있어. ..그 이후에 악마는 인간으로써의 길을 벗어났다. 진정 그 몸의 힘과 일체화했는지 주변의 모두가 죽어도 악마는 죽지 않았어. 본능적으로 아마 앞으로도 죽지 않을거란걸 알았어. 어쩌면 영원히."
에델가르트는 저절로 레아, 세테스, 흐렌을 떠올렸다. 그들은 기나긴 세월을 늙지않고 살아갔다. 누가 죽이지 않으면 영원히 살지도 모른다.
신의 힘을 잃은 지금도 벨레스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가끔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일대 다수라도 검 하나로 아무렇지 않게 이겨냈다.
"그 영원의 시간동안 악마는.. 공허했다. 눈을 감으면 여전히 제자를 처단한 그 순간을 떠올렸지. 그때는 불가능했지만 완벽히 힘과 일체화 한 지금이라면 어떨까? 부족한가...그래, 되돌리는 시간 안에서 스스로를 유지하는 힘까지 더하면..악마는 되돌아갔다. 자기 자신까지."
아마 다른 사람의 심정따위 생각하지 못했을거다. 스스로에 대한 감정도 잘 모르는데 타인이 이 결정을 어떻게 생각할지 깊게 생각했을까? 이기적인 선택이었지.
읊조리는듯한 회고는 어느세 다시 끝으로 향하고 악마는 두번이나 더 제자의 목을 베버렸다. 스스로의 기억조차 되돌아가버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목적을 모르는데 어떻게 이루겠는가.
다 끝나고 혼자남으면 악마는 꿈으로 기억을 되찾았다. 그 전 세상보다 더 시간이 흐른뒤에. 자신의 힘이 미치지 않은 미래의 시간에서. 도박이 실패한걸 깨달은 악마는 다시 되돌아가는 시간속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이번은 빨랐어. 힘을 잃었기 때문일까? 그게..내가 악몽을 꾸는 이유야, 엘. 이 손으로.. 난 세번이나 너를 죽이고. 세번이나 세상을 지워버렸어."
가만히 에델가르트를 바라보는 벨레스의 표정은 지극히 담담했다. 어떤 비난이라도 받아들이겠다는 처연함이 느껴졌다.
에델가르트는 참을 수 없어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정할 생각도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비난의 감정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자신과 같은 길을 걷기 위해 벨레스가 한 일들이 환희의 감정을 일으켰다.
이성은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한 벨레스를 다그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벨레스가 아니라면 이런 결말은 이룰 수 없었다는걸 감사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해?"
"...엘만 괜찮다면 이 모든 일의 책임을 지게 해줘. 아무도 이 이야기를 믿지 않겠지만 사실이 없어지진 않아. 나는..처벌받는다면 엘, 네가 좋다."
스륵 감긴 눈매는 각오로 단단하게 닫혀있었다. 비록 이미 힘을 잃어 사람이 되었다지만 그 어떤 여신의 권속보다 중대한 대죄를 지었다. 에델가르트는 충분히 그 목숨을 거둘 권리가 있었다.
그런 벨레스의 뺨을 에델가르트는 손끝으로 스륵 쓰다듬었다. 말라붙은 눈물자국이 선연했다. 얼마나 고통받고 있을까? 에델가르트 자신을 위해 저지른 죄악에.
"선생님은 고작 목숨으로 이 모든걸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해?"
"...무엇이라도 하겠어. 힘은 사라졌지만 이 몸에는 대사교가 진행한 시술의 흔적이 있어. 태어나자마자 심장이 뛰지 않은 아이가 살아났을 정도다. 연구의 가치는 있겠지."
스스로를 연구자료로 쓰라는 말에 그 고통을 저에게 들어 모르지 않을 벨레스가 그만한 각오를 표하고 있다는것은 알지만 자신을 한없이 가볍게 취급하는 말이 거슬렸다.
"그런것은 이 제국에도 나에게도 필요하지 않아. 사라져야 할 것들이니까."
"..그렇다면, 어느 사지로든 출전시키면 된다. 네가 바란다면 기꺼이 이 목숨이 끊어질때까지 적들을 베어낼 수 있어."
천부적인 지휘능력을 제외해도 벨레스는 그 혼자서 왠만한 적들은 종잇장처럼 해치울 수 있었다. 소모를 신경쓰지 않는다면 그만한 전략병기도 없을 것이다.
"제국은 이제 선생님이 필요할 정도로 적이 많지 않아. 최대의 적도..전부 배제했으니까. 브리기트와 팔미라도 지금은 교역이 활발할 정도로 관계가 개선되었어."
"...에델가르트. 나도, 내가 가진것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걸 알고있어. 네 옆에 있을 권리도 기억을 되찾은 지금 없어져버렸지. 그런 내가 너에게 처벌을 바라는것은 사치라는걸 알고 있다. ...네 눈앞에 영원히 나타나지 않겠어. 허락한다면 멀리서나마 널 돕고 싶었지만, 욕심이었군."
고개를 떨군채로 벨레스는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용병생활이 긴 벨레스는 별다른 짐도 필요없었다. 옷가지와 검만 챙기면 바로 궁을 나갈 생각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제 손으로 에델가르트의 목을 베고 나서 그렇게 괴로웠는데 에델가르트에게 같은 아픔을 주려고 했다니 어리석었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죄였다. 그렇다면 스스로 처벌하는 수 밖에.
"기다려!"
일어나 떠나려는 벨레스의 팔을 에델가르트가 다급히 잡았다. 급한 마음에 힘조절도 하지 않았는지 아픔이 느껴질 정도였다.
"엘..?"
순간 이제는 에델가르트라고 불러야할까..고민했지만 벨레스는 이제 그 이름으로 불러 줄 사람이 남지 않을텐데 마지막까지 불러주는게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뒤돌아본 에델가르트의 얼굴은 당혹감으로 물들어 기분탓인지 조금 울상이었다. 무심코 죄인을 만류해서일까? 유일한 안식처에 배반당했으니 그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벨레스의 마음이 죄책감으로 바늘에 쑤시듯 아파왔다.
"어째서 선생님은 그렇게 자신의 가치를 몰라? 제국에도, 군대에도 선생님을 대체할건 수없이 많지만 나한테는 선생님이 전부인데.. 선생님만 있으면 되는데..."
"엘....."
"벌을 받고 싶으면 영원히 내 옆에서 갚아. 궁이 답답해서 떠나고 싶어져도, 죄악감에 무너져 그만두고 싶어져도. 진정 날 위한다면 선생님이 나한테 그만한 존재인것을 자각해. 모른다면 이해하려고 노력해."
에델가르트라고 모르는것이 아니었다. 감정에 미숙한 벨레스가 자신을 선택한것은 나이 어린 아이가 첫사랑에 빠져 미래의 가능성을 버리는것과 같다. 벨레스는 그날 그때에 처음 태어난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더욱 자신만큼 필사적이게 애타길 바라고 다른 누구에게 잠시라도 시선을 두면 불안했다. 혹시라도 벨레스의 감정이 성장하기에 따라 이것이 착각이라거나, 더 좋아하는 사람을 찾았다고 한다면 이번에야말로 에델가르트는 폭군이라고 불릴 일을 저지를지도 몰랐다.
"하지만 엘...나에게 그런 자격 따위 없어. 나는 너 뿐만 아니라 모두를 기만하고 배반했다. 어떻게 네 곁에 있을 수 있지? 나는 행복해선 안돼. 너를 구하기 위한 선택 때문에 대신 죽어버린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이 세상에 도달하기까지 살았던 자가 죽고, 죽었던 자가 살았던 경우를 벨레스는 여러차례 봤다. 시간을 돌리는 힘은 만능이 아니다. 없는 경우의 수를 만들어낼 수는 없고 희생은 제로가 될 수 없다.
대표적으로는...그래, 푸른 사자의 왕은 이제는 없다.
"선생님도 모르는게 있구나. 나도 선생님이랑 같은 길을 걸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어. 무엇보다도 바라지만...절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건 누가 정하는거야? 죽은 전사자들? 아니면 그 가족? 신을 믿던 신봉자들?"
"..그 모두가 아닐까."
에델가르트는 그만 푸훗 웃어버렸다. 그들이 누군가를 원망해야 한다면 절대 벨레스는 아니었다. 그들이 죽은 이유는 벨레스가 시간을 돌려서가 아니었다.
전부 에델가르트가 패도를 걷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이것만큼은 벨레스도 결코 바꾸지 못했다. 어느 세상에서도 에델가르트는 전쟁을 일으켰으니까. 수 많은 경우의 수에서 어느 에델가르트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시체의 산을 쌓기로 결정했다. 벨레스는 말려든것이다.
아마도 벨레스는 말하지 않은게 있다. 이야기 속에서 모든것이 끝났을때라고 흐리멍텅하게 축약했지만 에델가르트가 죽은 세상은 분명 벨레스가 에델가르트에 대해서만 괴로워 했을 정도로 후회없이 평화로웠던것이다.
에델가르트의 패도가 틀렸는지 아닌지는 아직 보지 않은 미래의 후손들이 평가할테지만 적어도 에델가르트의 패도가 실패한 길은 스승이 보기에 적어도 실수는 아니었다.
"승자의 의무를 지켜 벨레스. 승자는 패자의 몫까지 행복해야해. 전쟁이 아무 의미가 없었다고 생각되지 않도록. 그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게 아무 의미가 없는것이 되지 않도록."
"...전쟁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
"아니, 남아. 남도록 해야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이 모든게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걸 잊지 않고 그 피웅덩이 위에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야해."
그리고 에델가르트의 행복을 위해 벨레스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반려였다.
벨레스에게 그렇듯이.
"사랑하는 사람 옆에 있을 자격은 다른 누가 주지 않아. 바로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에게 주는거지. 그러니까 벌을 받고 싶다면 시간을 돌린것 때문에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되새기며 내 옆에서 행복하도록 해."
이것이 억지라는건 에델가르트라도 알고 있다. 죽을때까지 살기로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 복수에 불타는 왕이 자신의 삶을 대가로 에델가르트가 행복하길 바랄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래선 모두가 불행하다. 살아남은 사람은 나름대로 자신이 납득할 변명을 지어내며 살아가야한다.
야비하고도 기만적인 방식이지만 죄악감에 붙들려만 있으면 발전이 없지 않은가.
"정말...그래도 되나..? 하지만, 내 손은 네 피에 물들었는데.."
"그러니까 벌로써 선생님은 절대 내 곁에서 떠나면 안된다니까. 자, 이걸로 이 이야기는 끝. 오늘도 일이 많으니까 조금이라도 더 자두고 싶어."
망설이는 벨레스를 꼭 끌어안고 에델가르트는 그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해 다가붙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사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은 아무도 모를 이야기였고. 에델가르트는 벨레스가 자신에게 한 사랑의 고백을 누구에게도 말해줄 생각이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