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주인공의 행차시네. 백오 목소리가 너무 컸던 모양이야."
그래도 필요했던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르의 말에 질책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사실을 서술했을뿐의 아르의 말과 함께 모두는 긴장했다.
시커먼 독기가 가득한 핏물을 뚝뚝 흘리는 프피스토는 기괴하게 씨익 웃었다.
진한 요기가 프피스토의 모습을 왜곡할만큼 흘러넘치는 모습은 이것이 결국은 재앙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는걸 보여주고 있었다.
"어서와. 기다리고 있었어. 체셔도 백오도 렌도 모두 다 어디 다친데는 없구나."
요기가 섞여 파장공격과도 같은 목소리가 모두를 뒤흔들었다.
요마가.. 프피스토가.. 이성은 물론 기억까지 가졌다는건..
"백오,렌,체셔 듣지마! 요마가 매혹과 혼란기술을 쓸수도 있다는건 다 아는 사실이잖아!"
여우가 프피스토의 시선을 본인에게 돌리기 위해서 도발을 쓰며 말하였다.
"맞아.. 저건 매혹. 모두의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야. 넘어가지마!"
담하온이 그 뒤를 이어 도끼를 번쩍 들고 달려가며 소리쳤다.
"저렇게 요기가 넘쳐흐르는데 뭘 멍때리는거야? 그러다 혼란걸려서 죽기라도 하면 난 딜 1위라서 불만없지만-"
에크네페가 애써 개구진 미소를 보이며 창을 들고 달려갔다.
"뭐, 한번쯤 싸워보고 싶은 상대였어. 대장이나 백오 때문에 말싸움정도로 끝냈는데.. 좋은 기회네?"
흑마문을 깔며 아르가 씨익 웃었다.
"이건.. 내 의무이자.. 마지막 전별 인사니까."
체셔쿤이 활을 당기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 전개전술도 할 틈이 없다니 너무한거 아닌가요?"
느르흐가 투덜대며 적은 시간 극대를 띄워보겠다고 고무격려를 걸고 있었다.
"비록 나이트나 암흑기사는 아니지만.. 지키겠어..!"
가루렌이 각오를 다졌다.
"프마언니.. 내가 책임지고 끝을 내줄게."
백오는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지팡이를 휘둘러 스톤라스킨을 걸며 프피스토를 노려보았다.
이제껏 한번도 향해질 일이 없던 백오의 냉혹한 눈을 보고 프피스토는 이 상황의 이상함을 알게 된거 같았다.
느껴지는 사악한 기운과는 다르게 다소 천진난만함이 포함된 웃음에도 그런 의아함이 드러나고 있었다.
"모두, 왜 그래..? 주변의 요마 때문이야? 이것들이 풀려날까봐 그러는거야?"
프피스토의 펼친 팔 뒤에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여기를 위협하는 지옥견이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절규를 지를 것 같은 망령과 짙은 비웃음을 띈 서큐버스가 있었다. 진한 독기를 풍기는 살덩어리, 백눈깔이가 있었다.
그 뒤로도 보이드에서 이쪽으로 넘어오려는 수많은 가고일과 마물이 살기등등한 시선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이것들이 모두를 공격할까봐 그러는거구나. 괜찮아! 자, 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얘들은 내 말을 잘들어! 봐봐.."
당장이라도 뛰쳐나와 공격하려던 지옥견이 내밀어진 프피스토의 손을 핥고 있었다.
분명 방금까지 보이던 흉포함은 없었다.
"어라.. 그런데 왜지? 이녀석들 분명.. 분명 어디선가 봤어..응..?"
한손으로 지옥견을 어르던 프피스토가 문득 의아함을 느꼈는지 머리를 긁으려다가 딱딱하게 돋아난 염소같은 뿔에 손을 부딪히곤 표정이 굳었다.
"어라..뭐지? 뭐... 잠깐 이 녀석들 보이드의 요마잖아.. 왜 날 따르는거야..? 왜.. 나 뿔이..흐윽...윽...으아아아!!"
얼굴 가득 의아함을 담던 프피스토가 돌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표정을 싸하게 굳힌 여우가 방패와 검을 들어올렸다.
"내 눈.. 아파아아악! 나는 모두를 지키려고했는데애애!!"
프피스토의 절망으로 절규가 보이드의 요기를 더욱 진하게 풍기자 여우가 방패를 던지고 뛰쳐나갔다.
"어째서..! 어째서! 요마.. 요마가 나쁜거야.."
퐈앙!
강렬하게 터진 빛덩어리에 붉디 붉어 검게까지 느껴지는 프피스토의 눈이 향한다.
그 눈에 담겨있는 것은 이지가 아닌 증오와 분노 뿐.. 무엇이 계기인진 모르겠지만 아까까지의 이성이 남아있던 프마는 이제 없다고 정면으로 마주대하고있는 여우는 판단했다.
"갑자기 출발이라니 너무하네요. 마인의 진혼곡을 부를 시간 정도는 주시죠."
갑작스런 상황변화 때문이란건 알지만 체셔구리가 불평을 늘어뜨렸다.
찡그린 표정과 다르게 그 손이 빠르게 마인의 진혼곡을 연주하였다.
번뜩 프피스토가 여우를 향하던 증오깊은 눈을 흐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어..어. 애기. 아직 애기를 소환하지 못했는데.. 너굴이가 마인을 연주했는데.."
요마를 소환하는데 통상의 마법서는 전혀 필요가 없었을것이다.
무의식이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이미 비어있는 옆구리의 책을 더듬어 찾느라 프피스토의 움직임이 잠시 흐트러졌다.
"역시 기억이 남아있는거 아님까!"
칼을 휘두르던 가루렌이 확인차 캐스터에게 물어보았다.
이러한 지식은 몸싸움에 자신있는 근딜보단 캐스터가 자신있는 종목일것이다.
"보이는대로겠지. 기억이 남아있긴 하지만 조금 혼동하는걸까? 뭐, 요마가 되는 과정에 훼손이 되었을수도 있고.. 아니면 그당시 생각한 감정이 극단화 된걸수도 있지."
지키기 위해 요마가 되어 도리어 침입하는 것을 모두 배제하게 될수록 융통성이 없는 학문이다.
게다가 본인에게 적용할것도 아닌 누군가를 음모에 빠뜨리기만을 위한 방법이었을테니 배려가 담겨있을리 없는 난폭한 수단.
그곳으로인한 부작용 한둘쯤은 예상할 수 있는 범위였다.
"으으으..백오..렌.. 체셔.. 요마가..요마가..!"
보라색의 칙칙한 안개가 프피스토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독과도 같이 느껴지는 색깔에 백오와 느르흐는 당장이라도 디버프를 해제하려고 무기를 들었다.
"소용없어 이거 풀리지않아..! 디버프는 아닌거같아.."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광역대미지에 백오는 메디카라를 외치며 상황을 분석하였다.
"그냥 공격기라면 바이오라가 아닐까? 요마가 되었어도 소환사가 아니게 된건 아니니까.."
느르흐는 백오의 마나 압박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지 불요불굴을 써가며 프피스토를 주시했다.
만약 이 앞으로 오는 공격들이 전부 소환사가 쓰는 기술이라면 이곳에선 느르흐가 가장 잘 알것이다.
"몬스터가.. 이렇게 많이.. 어떻게하면.."
괴로워하며 고개를 휘휘 젖는 프피스토의 눈에서 검붉은 액체가 눈물처럼 뚝뚝 떨어져내려 메마른 다날란의 땅에 요기와 함께 자국을 남기고 푸르지만 어딘가 보랏빞이 섞인 장판으로 나타났다.
"쉐도우 플레어..! 모두 저 장판을 장시간 밟으면 안돼!"
느르흐는 기염법을 외치다가 놀라서 모두에게 충고했다.
하지만 근처 일대가 전부 파랗게 물들어서 에크네페도 가루렌도 물러설 순 없었다.
소환사인 적의 특성상 전투 시간을 오래 끌수록 힘들어질 뿐이다.
"미안! 물러설 수 없어! 힐 조금만 더 빡빡하게 넣어줘!"
여우는 방패로 프피스토가 휘두르는 손톱을 막으면서 백오에게 사과했다.
프피스토의 뒤에 몰려있는 요마는 프피스토를 중심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서 여우가 자리를 옮긴다면 주박이 풀려나 공격해올지도 몰랐다.
"그렇게 말 안해도 알고 있다고!"
백오의 자존심에 부탁하고 싶지않았지만 이대로는 음유시인의 현자의 담시에 기대야 할지도 몰랐다.
모두를 압박해오는 지속딜은 기세를 더해가고 있었다.
"으으..우우우....아아아악!"
점점 이성을 잃어가는지 이제 프피스토의 입에서는 언어라고 칭해야할 의미있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괴로워 허덕이는 목소리가 확실히 대미지를 받고있다는걸 알려줄 뿐이었다.
"소환사에게 이성을 빼앗으면 제대로 힘을 발휘못하는건 당연하지.. 오히려 약화한거나 마찬가지야."
체셔구리가 날카로운 눈으로 그런 프피스토를 노려보았다.
여전히 뚝뚝 흘리는 검붉은 액체는 요기를 띄고 있었지만 쉐도우 플레어는 사라져버렸다.
힐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는지 백오가 프피스토를 향해 에어로가를 외치는게 보였다.
"이건..! 조심해요! 요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담하온이 서둘러 힐어글에 끌려가는 지옥견의 머리에 도끼를 휘두르며 말했다.
머리를 움켜쥐고 웅크린 프피스토의 뒤에서 요마들이 들끓어올랐다.
대미지를 입은 프피스토와 함께 요기는 줄어들었을텐데 요마는 오히려 이쪽을 향해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거기를 맡아줘! 으윽.. 무슨 팔힘이 이렇게 쎄!"
마법은 쓸 수 없게 된 모양이지만 불끈 솟아오른 푸른 힘줄과 날카로운 손톱이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방패를 할퀴어오는 힘은 확실히 강해져있었다.
게다가 기분탓인지 거친 숨결이 내뿜어지는 입에선 송곳니가 길어지고 있었다.
"느르흐 부탱쪽을 맡아줘! 딜은 적당히 하고!"
요마들이 쏟아져 나오자마자 바이오라 걸기 바쁜 느르흐에게 불끈 화가 난 백오가 소리치곤 여우에게 스톤스킨을 감기 시작했다.
으르르소리가 들려오는게 심상치 않아 미리 대비를 해본것이었다.
"카아악!"
프피스토의 입에서 화르륵 불길이 쏟아져나왔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여우가 눈을 찌푸렸지만 다행히 스톤스킨이 늦지않았는지 돌조각이 흩어지면서 대미지를 경감시켰다.
"좀 더 조심하라고 바보야!"
무사히 넘겨낸것에 흥분한 백오가 여우를 타박했다.
귀를 번쩍 치켜든게 완전히 전투에 취해 날카로워져있는 모양새였다.
"알았다고! 나참.. 갑자기 불을 뿜을 줄 누가 알았냐고.."
겉모습이 드래곤이라거나 괴조라거나 했다면 방심하지 않았을테지만 상대가 프마라서 불을 뿜는다는건 예상치 못 한 공격이었다.
뿔같은 외형적인것 뿐 아니라 속에있는 내장까지 서서히 요마화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다행히 몸에 익숙치 않은 다른 수단을 쓰기 때문인지 불을 뿜을때에 프피스토는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숨을 들이키는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이 요마들.. 전부 망자의 궁전에서 보이던 녀석들이에요!"
많은 요마들을 상대하던 담하온이 외쳤다.
갑작스레 덥쳐올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으나 확실히 슈가 많은것뿐 망자의 궁전에 떠돌던 몬스터였다.
프피스토가 요마화 한 장소를 생각하면 이상할 것은 없었으나 보이드 요계에서 소환된 것이 아니라면 이 기분 나쁠 정도의 보랏빛 요기는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
"기세에 비해 약해빠진 녀석들이잖아? 망자의 궁전 밖이라면 우리가 훨씬 쎄다고."
그저그런 몬스터들은 망자의 궁전이라는 특수한 장소가 아닌 밖에서는 모험자들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광역범위 공격에는 취약한편인 에크네페는 영 힘쓸것도 없이 스러져가는 몬스터들에게 몹시 불만에 찬 신음을 냈다.
화살비와 화염마법이 마른 대지를 뒤덮을때마다 무서울수록 몰려들던 몬스터의 기세가 죽고 프피스토의 뒤에서 노려보던 무리는 티끌이 되어 사라져갔다.
"크르흐흐흑... 아파... 왜..?"
돌연 프피스토의 격노에 찼던 표정이 일변해 울것처럼 찡그려졌다.
주변을 덮은 보랏빛기운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해. 백오, 느르흐 조심하도록해!"
활시위를 당기던 체셔쿤이 외쳤다.
점점 요기의 구름은 거두어져가 사람들의 기감을 어지럽히던 것들이 사라지자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보랏빛으로 물들던 요기가 어디로 사라지고 있는지를.
"왜..나를 공격하는거야..? 나는 모두를 지키려고 했을 뿐인데.."
우두둑...뚜둑..
프피스토의 구부러진 작은 등 위로 소름끼치는 검은 무언가가 솟아 오르고 있었다.
잘 다듬어진 칼날들 같은 칠흑의 검은 깃털들의 표면에 검붉은 방울이 한줄기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어째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아무도 죽이지 않았잖아!"
촤악!
활짝 펼쳐진 새카만 날개가 프피스토의 몸을 점차 공중읋 띄웠다.
오른쪽눈은 여전히 재생되지도 않고 피눈물을 흘리는데 그 몸에서 흐르는 강대한 힘은 쓸데없는 낭비는 필요없다는듯 작은몸에 날개와 꼬리를 돋게 하였다.
"요기는 보이드같은데서 나온게 아니었던거야.. 그건.. 그건 프피스토가 아직 인간이어서 받아들이지 못했던 힘의 잔재..!"
상황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챈 아르가유라가 경악하여 외친다.
완벽하게 변이를 일으킨 프피스토의 주변에는 한점의 요기도 남지않고 모두 힘의 주인에게 흡수되었다.
진정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이성을 되찾은 프피스토는 그전까지 힘기술은 전부 거짓말이었던것처럼 다시 소환사의 힘을 꺼내쓰기 시작했다.
악질적이게도 소환수를 대체하기 위해 나타난 검은 그림자형체의 에기들은 망자의 궁전에서 빠져나온 졸개들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요마로 변함으로써 일개 소환사라는 힘의 한계를 깨버린 프피스토는 변질된 에테르의 애기들을 소환해낸것이다.
"완전히 다른 힘은 아니야. 봐봐 생김새가 기분나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가루다나 타이탄, 이프리트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형태가 여기저기 이질적으로 찌부러졌어도 확실히 본질적특성이 달라진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자연히 무엇부터 처리해야하는지는 정해져있었다.
"가루다에기부터야! 악화라도 써버리면 지금 이상으로 힐러들의 부담이 늘어날거야! 타이탄에기는 내가 맡을게."
여우가 타이탄에기에게로 방패를 던지며 뛰어갔다.
듬직한 체구를 하고 있는 타이탄에기는 체력이야말로 제일 많을테지만 그 몸집으로부터 나타나듯 탱커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죽이는데에 오래걸리지만 특별히 높은 공격력을 가지고있지는 않다는 말이었다.
"그럼 이프리트에기는 제가..!"
근접공격의 대가 이프리트에기가 힐어글에 끌려 힐러를 공격하기라도 하면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힐 가능성이 높았다.
담하온은 이프리트 에기를 끌고 힐러진이 모여있는 가운데에서 멀리 떨어졌다.
"프피스토가 무언가 큰 기술을 준비하고 있는거 같아. 최대한 빨리 모든 에기를 제거해야할거야."
탱커 두명에게 리제네를 걸어주며 백오가 추측하였다.
공중에 떠서 다가오지 않는 프피스토의 눈에는 격렬한 증오의 불길이 불타고있었다.
에기와는 따로 소환사도 공격마법을 쓰는게 당연한 그들의 전투방식이다.
가만히 지켜만보는것엔 마땅히 그럴 이유가 있을것이다.
"우앗! 저 푸르스름한 환영은 뭐야..? 나만 보이는건 아니지?"
에크네페가 화들짝 놀라 창과 함께 꼬리까지 치켜들었다.
그 말과 같이 프피스토의 등뒤로 푸르스름한 기운이 솟아오르고있었다. 마치.. 용의 날개와도 같은 형상을 띄고서.
"바하...무트..? 요기에다 바하무트 에테르까지 다루고있다는거야? 너무 불공평한데!"
느르흐가 바닥에 발을 쿵 구르고선 소리쳤다.
무자비한 힘의 파동이 여기까지 전해지는듯 지속대미지가 중첩되어져간다.
가루다에기는 광범위 바람속성 마법을 펼치고 얼마안돼 소멸했지만 백오는 지속대미지가 중첩되어 1초가 억겁처럼 느껴질 정도인 지금 상황에 이를 갈았다.
잠시라도 한눈을 판다면 누군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은 점점 백오를 피로하게 만들고있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요! 타이탄에기의 공격 대미지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구요!"
이마에서 흐르는 한줄기 식은땀도 미쳐 닦지 못한 채 담하온이 소리쳤다. 그녀가 상대하고 있는 이프리트 에기도 장판을 깔아 시급한 처리가 요구되긴 했으나 여유가 있었다면 여우가 맡은 타이탄에기는 그 이름답게 여우에게 물리대미지저항 감소 디버프를 중첩시키고 있었다.
"여차하면 교대해야할지도 모르겠는데? 이거.. 상당히 아파."
깡!
방패로 공격을 막으면서 여우가 냉정히 말했다.
비스마르크와는 다른 경우지만 서로 에기를 바꿔 상대하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즉석결단이 여우가 헤쳐온 전장을 말해주었다.
여우에게 물리저항감소가 3중첩 되자마자 서브탱커와 메인탱커는 눈을 마주치더니 한번 고개를 끄덕하고 서로의 상대에게 도발을 날렸다.
딜러를 배려한 모양인지 스쳐지나 자리를 바꾸는 모습이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었다.
"더이상 장판이 깔리면 서 있을 자리가 곤란해. 이프리트 에기부터 노려!"
벌써 2개나 깔린 장판을 양옆으로 두고 여우가 소리쳤다.
정면으로 화염을 발사하는 이프리트를 함부로 끌고 이동할 수도 없어서 내심 마음이 급했다.
"알고있어! 으으.. 바닥에 용암장판 조심해!"
에크네페가 훅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열기에 신음을 흘렸다. 찌릿찌릿할정도의 열기는 그 자체로 대미지를 줬다.
"이프리트토벌전에서 나오던 방식이야! 한번으로 안끝날거야 뛰어!"
갑자기 땅이 갈라진것처럼 쩍 벌어지는 이펙트를 눈치챈 백오가 휘두르던 지팡이를 멈추고 그 자리를 피하며 말했다.
베이스가 이프리트여서인지 성가신 스킬을 쓰기 시작했다.
불장판처럼 장시간 유지되는건 아니고 일회성이었지만 3연속으로 덮쳐오는 공격은 잠시동안 힐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으아악 불요불굴! 성전은 또 왜 안꺼져!!"
느르흐가 허둥지둥 기염법캐스팅을 캔슬하고 밀린 힐업을 보충하였다.
다행히 늦지 않은 모양이지만 상당히 당황한 모양인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의..다..! 좋아!"
이프리트에기가 소멸함과 동시에 여우가 다시 타이탄에기를 도발로 끌어들였다.
이미 물리저항감소가 없어진 여우에게 타이탄에기의 물리공격은 가벼운것들이었다.
그때 갑자기 타이탄에기가 손을 번쩍 지켜들었다.
불길하게 선이 얽히고 설킨 직선의 장판은 모두에게 친숙한 그것이었다.
야만신 타이탄급의 힘은 없는지 두줄밖에 되지 않았지만 하필이면 점프 타이밍이었던 가여운 용기사가 절규했다.
"어째서 에기 주제에 산사태를 쓰는거야?!"
울상인 목소리와 함께 에크네페가 밖과 전투장소를 차단하는 보라장막에 닿았다.
흉흉한 색깔의 보라장막은 순식간에 죽음에 이를 대미지를 가해왔다.
"다행히 밖과 이곳을 단절하는 용도인지 부활은 가능한거 같아. 내가 부활시킬게."
"부탁해."
어떤의미로 매우 흔한 사태였으므로 힐러 두명은 냉정한 얼굴로 사태를 처리했다.
한치도 방심할 수 없을텐데 무언가 평소와 같아서 백오는 조금 웃어버렸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 처리했네.. 하지만 저쪽도 준비가 끝난모양이야."
아르가유라가 정면에서 이쪽을 노려보는 프피스토를 보며 말하였다.
보다 형태가 명확해진 푸른 날개는 원래있던 검은 깃털날개와 함께 프피스토의 존재감을 더 크게 만들었다.
그냥 인간일 때보다 힘의 수용능력이 월등해진 프피스토는 정말 그 몸에 바하무트 자체를 융합시킨것과 같았다.
흐릿한 푸른형체가 아닌 그 몸에 직접 강림한 강대한 힘이 느껴져왔다.
"크아아아! 용서 할 수 없어어어!"
우우웅
주변이 저릿하게 힘의 분류를 예감시켜온다.
얼마나 강력한 공격이 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백오와 느르흐는 최대한 대비를 했다.
아직 대처방법도 몰랐던 에기들에 시간을 너무 끌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주 빠르게 처리해서 별거아닌 대미지가 들어올지도 모른다.
이제와서 미지의 영역이란것이 모두에게 공포감을 주고 있었다.
아크몬
번뜩 보인 시전바가 어째선지 백오에게 아주 싫은 예감을 주었다.
소환사에게 아크몬? 그것은..드래곤의...
우리는 준비할 시간을 너무 줘버린걸지도 모른다.
요기는 물론이고..프피스토가 용의 힘을 받아들일 그릇을 만들어낼 정도로...
"위험해! 비켜어!!"
누구보다 그 변화의 모습들을 같이 봐버린 여우가 뒤늦게 눈치채고 근처에있던 백오를 밀쳐냈다.
딱히 누구라고 생각한것도 아니고 해낸 보호행동은 이 메마른땅에 백오와 프피스토만을 남게 만들었다.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기분나쁜 포자가 날리던 동굴안이 텅비어 완전히 다른공간처럼 보였다.
벽면이 파헤쳐져 흑요석과도 같이 검푸른 암석이 드러난 이곳은 마치 괴물의 위장속같았다.
혹은..별하나 뜨지않은 암흑같은 밤같았다..
"우우우아악!! 아파아아아악!"
커헉.
프피스토가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요기와 드래곤의 에테르라는 전혀 다른 힘을 한번에 다룬 그 몸은 곡에서부터 갈기갈기 찢겨 4개의 날개는 힘을 잃고 축쳐져 프피스토는 바닥에 쾅하고 떨어져내렸다.
그리고 그 소리에 백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믿고 의지하던 동료들이 한자리에 모여 죽어있었다.
믿고 의지했던 프마언니의 잔재가 눈앞에 힘을 잃고 나동그라져있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힐러 한명밖에 안남은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힘을 잃었데도 금새 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야만신과 단한명의 힐러.
하지만 백오에게 이것은 기회였다.
아무도. 아무도 이 무거운것을 짊어지자 않아도 되었다.
그래, 이렇게 만들어버린 자신을 제외하고.
"프마언니. 나 여기 오기 전부터, 사실 프마언니가 이성을 가지고 있을거라고 예상했었어."
"흐..아?"
만면에 생긋 웃음을 띄운 백마도사가 지팡이를 빙글 한바튀 돌렸다.
휘오오 바람소리가 커지며 프피스토 주위를 감쌓다.
"화살을 쏘고 눈을 질끈 감아버린 너굴언니랑 다르게 나는 바로 프마언니를 붙잡으려고 절벽으로 달려갔는걸? 그 아래를 나는 봐버린거지."
"어..어째서..그럼...."
절벽바닥에 떨어졌어도 눈 한쪽을 제외하면 그다지 큰 부상은 아니었다.
힐러의 눈으로 본 백오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떨어질때의 안심한듯한 표정..그것은 분명..
"사람들는 언제나 내가 효율적인걸 선택한다고 생각하지. 그리고 공정하고 정의를 추구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실제는 어때? 나는 친한사람만 아니라면 누가 죽든 상관없고, 야비하고 잔인한 사람이야. 의뢰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살릴 수 있었던 딜러를 포기한 적도 많아."
"배...ㄱ오.."
"그리고 야비한 백오는 모두가 위험에 빠지는것보다 프마언니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데 중시했어. 모두를 위해 화살을 쏜 너굴언니에겐 미안하지만.."
그게 바로 내가 책임져야 할 일.
그 마음속처럼 시커먼 돌덩어리들이 날카롭게 벼려져 백오의 머리위에 모여갔다.
몸에 맡지않는 힘을 쓴 프피스토는 그저 그것을 눈앞에 두고 한방울 피눈물이 아닌 마음의 비를 흘렸다.
돌덩어리가 그 머리를 노렸을때.
백오의 착각이 아니라면 프피스토는 이미 눈을 감고 죽음을 받아들이고있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보이지 않게 꾹 다문 얼굴은 뿔만 아니라면 백오가 좋아했던 프마언니의 얼굴 그대로였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돌조각이 박힌 프피스토는 프마를 알던 사람들도 그 존재가 어디서 비롯된지는 알 수 없을것이다.
이걸로 더이상 연성부대를 압박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이제 다시는 프마언니를 볼 수 없을것이다.
추억할 무덤도 만들 수 없겠지.
백오는 적어도 거기에 프마언니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싶었다.
휙 휘두른 지팡이에서 쐐도한 바람마법이 프피스토의 양뿔을 베어냈다.
이정도라면 전리품이라고 둘러댈 수 있을것이었다.
"자, 그럼이제 모두를 살려 돌아갈까."
이기심이 아니었더라면 모두가 프피스토의 죽음과 함께 프마언니와 작별 할 수 있었겠지.
백오는 모두가 그 뇌리속에서 깔끔하게 프마언니에 대한 일을 완료하는걸 바라지 않았다.
언제나 미완으로.. 그 마음속에 잔생채기로 남길 바랬다.
이미 3단 리미트브레이크는 차 있었다.
살리지 않은건 백오의 모두에게로의 기만이었다.
멋대로인 책임감 뿐 아니라 이런 욕심투성이 속셈이라니 자신은 절대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백오는 스스로에게 자조하며 기도했다.
부디 이 모든 사실을 알게되면 날 용서하지 않기를.
그 주변을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하얀깃털들이 밝은 빛과 함께 축복처럼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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