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를 흐르는 구슬땀을 손으로 스윽 닦은 체셔쿤은 마당에 가지런히 쌓인 마호가니 목재를 훑어 상품의 미비는 없는지 재확인하고 있었다.
비가 적게 내리지만 과도하게 건조한 울다하의 날씨는 습기가 많은 라노시아에서 자라는 마호가니원목을 말리면 쩍쩍 갈라져서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다 마른 원목을 가공하여 장기간 보관할때는 호조건을 가지고있었다.
만약 이 목재를 부탁한 백오가 사는 검은장막숲이었다면 이렇게 마당에 놔뒀다간 곰팡이가 슬어서 못쓰게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백오도 참.. 갑자기 재료를 산더미로 줘도 놔둘데가 없다고 했었는데.."
아사부대와는 달리 연성부대는 여러명이 사는 생활공간이었다.
비공정을 제작한다고 여기저기 재료를 쌓아둬도 불평할 사람이 없는 그곳과 달리 체셔쿤은 통행이 불편하다고 쓴소리를 들은 참이었다.
급히 목재의 주인을 불러내 가져가라고는 했지만 바쁜 모양이었는지 오늘에서야 찾아간다고 전해들었다.
"목수 경험을 쌓아주고 싶다고 캐다가 너무 즐거워져버린거 아냐? 누가 안말리면 멈출 줄 모르잖아."
프마는 아직 깎지 않은 원목들이 쌓인 더미 위에 걸터앉아서 책을 읽다가 한숨을 쉬었다.
백오는 항상 처음엔 누구를 위해서 채집한다고 도끼를 들고 나가서는 우편함이 넘치도록 과하게 모아버리는 것이다.
"으으, 한번에 모두 가공하려 했다간 정신병이라도 생길지 모르겠어. 하루종일 톱질만 해서 내가 기계라도 된 줄 알겠다니까?"
지금이라면 다른 어떤 일이라도 재미있게 느껴질거라며 체셔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침부터 줄곧 톱질을 했지만 남은 원목이 한가득이었다.
마침 쨍쨍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에 야외작업은 한계에 가까웠고 배도 고팠던 체셔쿤은 꼴도 보기 싫은 원목은 미래의 자신에게 맡기고 점심이나 먹어야겠다며 목에 걸쳐뒀던 수건으로 땀에 절은 얼굴을 북북 닦아내곤 일어섰다.
"좋은 생각이야. 더 일하려했다간 일사병에 걸릴거라구. 음.. 이 목재들 다 모그리가 옮길 수 있으려나.."
이만 정리하고 들어가려는 체셔쿤의 뒤를 따라 프마는 원목더미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상당히 높이 쌓여있었지만 라라펠은 자신의 키보다도 높게 점프를 할 수 있는 종족이었기에 딱히 문제는 없었다.
"가자. 점심 만들어줄게. 지금 목재가 아닌 다른걸 만들고 싶은 기분이거든.."
"와! 식료품 뭐 있더라?"
일을 뒤로 미뤄서 당장은 마음이 편해진 체셔쿤은 제철인 식재료를 하나하나 읊으며 집에 들어갔다.
방치된 원목에 무슨 일이 일어날줄도 모르고..
앞서 말했듯이 연성부대는 아사부대에 비해 부대원이 많았다.
사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수가 많은 덕에 가끔 정보전달이 되지 않기도해서 부대밭에 무얼 심었는지, 비공정 제작 진행은 어디까지인지 관심이 없는 사람은 알수없을때도 있었다.
이번같은 사고도 언젠가는 일어났었을 일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뭐야!! 쌓아뒀던 원목이 사라졌잖아!"
완성된 목재들이 모그리들이 전부 들고 갈 수 없는 양이어서 할 수 없이 아사부대에 직접 들고 간 체셔쿤은 금고에 들어가지 않아 마당에 쌓아뒀던 나머지의 원목이 사라진걸 발견하였다.
타 부대집에 쌓인 물건을 누군가가 가져가기엔 여기는 치안이 확실한 모험가들의 거주구였다.
누가 무엇을 부탁하든 들어줘버리는 호구들의 집합소에서 도둑질은 보통 일어나지 않아 놔두고 갔다 온 것인데..
"어라. 무슨 일 있나요? 체셔님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시다니.."
마침 부대집에서 쉬고 있던 느르흐가 밖에 나왔다.
평소 누군가를 놀리긴해도 이러한 고성을 지르진 않는 체셔쿤의 목소리가 문을 닫은 안에서도 들리다니 보통일이 아니라고 생각한것이다.
"느르흐, 여기 있던 원목들 못 봤어요? 백오가 부탁한 소중한 원목인데.."
"네? 그거라면.. 금고 정리하고 남는 자리가 있길래 집어넣어버렸죠. 마당에 둔게 체셔님이셨군요? 부대금고가 꽉 찼다구 방치하지 말아주세요.."
하여튼 자신이 안하면 정리가 안된다고 느르흐가 투덜거렸다.
체셔쿤은 잃어버린게 아니라 다행이라 안심의 한숨을 쉬었다.
하여튼 샤드값가지 받고 맡은 이 원목들을 잃어선 백오에게 면목이 서질 않을것이다.
뭐, 써버렸데도 그럼 어쩔 수 없다고 하겠지만..
"가서 확인해볼래요? 남김없이 넣긴 했는데 중간에 분실되었을수도 있고.. 음.. 생각해보니 백오가 준것치곤 이상하긴 했던거같네요."
"이상했다고요?"
느르흐가 흐음.. 고민하는 소릴 내더니 어디선가 장부를 꺼내었다.
금고관리와 함께 물품 갯수도 정리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하긴 직각삼각형이 신경쓰여 안절부절 못할만큼 정리와 각재기엔 철저하니 숫자라도 마찬가지이리라.
"아, 여기를 보세요. 이슈가르드에서부터 추위때문에 밀도가 높아 목재 만들기에는 원목이 5개씩 들어가는거 아시죠? 그것때문에 가격이 높은편이고요."
"네, 수요도 많고.. 몬스터들의 레벨도 높아 채집이 쉽지 않으니까요."
가격변동이 크지 않으면서 원예가들의 채집물중에 비교적 가격이 비싼 원목들은 그들이 돈을 버는 수단 중에 하나였다.
"백오는 흐뀨 부스레기라던가, 애매한 99+1같은걸 매우 싫어해서 나머지가 나오면 팔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폐기해버릴 정도로 거기에 대해선 극도로 신경질적이에요.. 우리끼린 농담삼아 백오 앞에서 한뭉 플러스 1개의 실수를 하면 목이 뎅강 잘릴것이다하고 웃을정도로.."
무서운 이야기이지만 백오가 전사를 시작한 지금은 우스갯소리가 아닌 현실로 다가온다.
체셔쿤의 머릿속에는 해적같은 전사의 복장이 아닌 왠지 갈론드 채집옷을 입은 백오가 루미스라이트 낫을 들고 참수를 날리는 광경이 떠올랐다.
실제로 일어날거 같은게 더욱 소름이 돋을만큼 섬뜩했다.
"그..그렇기는 한데, 그래서 원목숫자랑 무슨 관련이 있나요?"
"자작나무원목이..325개에요."
휘이이잉
건조한 바람이 두명의 사이에 불었다.
"몇..개라고요?"
"325개요. 다른 원목은 정확히 다 495개인데 자작나무만 325."
"아..아닛... 부족하잖아!!"
시퍼런 안색으로 체셔쿤은 장부를 손가락으로 훑고있는 냉정한 느르흐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무려 원목이 170개나 사라진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가장 비싼 자작나무원목이.
"네, 상당히 부족하네요? 이거 다 직접캣다고 했으니 한정자원인 자작나무면 백오도 참 시간도 노력도 많이 들었을거같네요~."
"이사람이, 남의 일이라고!! 아아.. 아무일도 아니라고 괜찮다 해버릴거 같아서 더 부담되!!"
주는 사람이 아무렇지 않다지만 받는측은 그렇지도 않다는것이다.
백오는 다소 그런점이 재밌어서 재료폭탄을 체셔쿤에게 보내는 면이 있었다.
"하하하하. 오히려 이거 가지고 원목을 더 보내는거 아닐까요? 또다시 495개라던지!"
"으으으....."
털썩
이제 더이상의 원목은 싫은 체셔쿤은 무릎을 꿇고 좌절감을 맛보았다. 마호가니도 겨우 다 끝냈는데 추가라니..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터업
"잠깐 어딜가는거지..? 방치한 내가 잘못하긴 했지만.. 정리했던 느르흐가 빠뜨리지 않았다는 확정도 없잖아요..?"
실컷 웃었겠다 떠나려던 느르흐의 어깨를 붙잡은 체셔쿤의 얼굴이 서늘함을 넘어 무서웠다.
순간 느르흐는 너무 놀렸나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일단 범인을 찾는건 아무 목격자도 없는 지금, 불가능에 가까워. 그렇다면 백오의 자작나무를 보충하는게 제일 빠른 해결책이겠지."
원목 170개.
힘들긴 하겠지만 불가능한 숫자는 아니고 사람이 두명이나 있으니까 그렇게 많은 숫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자작나무 원목이... 우리가 캘 실력이 안될정도의 채집물이라는거지."
"아~ 그냥 사요. 비싸긴하지만 돈을 모으면 되잖아요? 샤드값도 엄청 받으셨다면서.. 몰래 사서 추가해두면 백오도 모를거라구요."
의욕이 제로에 가까운 느르흐가 소파에 늘어져서 대충 대꾸했다.
홧김에 불러세운건지 체셔쿤은 느르흐에세 책임을 묻는것은 아니지만 풀어주지도 않고 부대집에 묶어두었다.
"느르흐가 몰라서 그래요. 게시판에 팔려고 대충 내놓은 자작나무와 백오가 손수 캐온건 매우 다르다구요! 분명 백오도 눈치챌겁니다."
괜히 신경쓰는거 아닌가.. 안줘도 신경안쓸텐데 무슨..
질렸다는 표정으로 느르흐는 그냥 가만히 있기로 하였다.
"게다가 우리한테 무슨 돈이 있다구요? 샤드값을 충분히 받았긴하지만 이건 원목가공하는데 드는 샤드를 충당할 돈이에요."
"중요한 그 원목이 없잖아요. 우리가 캐려면 한참걸릴걸요?"
여하튼 연성부대원들은 채집에 적극적이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부유하지도 않고..
"샤드라면 우리가 캘 수 있잖아요? 아니면.. 누구 부탁 할 사람이라도 있어요?"
".....한사람.. 우리부대에서 캘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뜻밖의 광명을 찾았다는듯 체셔쿤이 벌떡 일어섯다.
이 치욕적인 실수를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자주 부대에 놀러오는 백오의 목재는 언제 완성되~?라는 물음에 더한 죄책감을 느끼게 되어 양심상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것이다.
"프마, 프마를 찾아! 프마가 해결해줄거야..!"
조그마란 라라펠 앞에 무릎 꿇은 장신의 루가딘과 엘레젠은 그야말로 비일상의 한장면이었다.
항상 왕래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림사의 시장이 한순간 텅비어 보일정도로 그 공간을 중심으로 반경 100m는 1라라펠조차 지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보고 자작나무원목을 170개나 캐오라고?"
"응..부탁 할 수 있을까..?"
에오르제아 온갖 곳을 뒤졌던 고생은 무엇인지 프마는 림사로민사 한복판에서 발견되었다.
뜬끔없이 나타나더니 다리에 매달려 애원하는 그들을 억지로 떼어내어 에테라이트 주위보단 사람이 적은 시장으로 왔지만 이렇게 대중 앞에서 무릎을 꿇을 줄 알았다면 부대집으로 가는게 나았을것 같았다.
"뭐 자작나무원목이면 못캐는건 아닌데.."
"제발.. 백오가 직접 캐왔던 원목을 시장바닥에 아무렇게나 방치되던걸로 대신 할 수는 없잖아! 그만큼의 길은 느르흐씨랑 내가 줄테니까!"
"네?! 제가 왜요?!"
찌릿
매서운 체셔쿤의 눈총에 벌떡 일어섰던 느르흐는 다시 침울하게 무릎꿇었다.
단지 정리한것뿐인데 이 무슨 봉변인지 모르겠다.
"알았어..그렇게 간절히 부탁하니까 뭐.. 하지만 자작나무원목 근처에 몬스터들이 많다구. 쫓기면서 캐는건 싫어."
"내가 가서 파수꾼해줄게. 느르흐도 같이 갈거야. 그렇죠?"
"저 무아스랑 약소..네..가겠습니다.."
슬며시 한손을 들고 일정을 고하려던 느르흐가 다시 손을 내리고 의기소침해졌다.
무아스에겐 어떻게 말해야하지..
"흐으음.. 뭐어.. 그럼 어쩔 수 없네! 오랜만에 채집하러 갈까~."
잔뜩 장난스런 얼굴로 이쪽을 보면서 건들건들 프마는 도끼를 꺼내들었다.
취미가 채집일 정도인 백오의 도끼만큼은 아니지만 과연 자작나무원목을 채집 할 정도 숙련된 원예가의 도끼인지라 예기가 남달랐다.
"그전에! 내가 너희 부탁을 들어주니까 내 부탁도 들어줘야겠어! 길을 보상으로 준다고 했지? 먼저 이딜샤이어에서 고문서 쇼핑이나 가보자구."
짐꾼이 두명이나 생겼네~
부려먹을 생각이 만연한 행동에도 체셔쿤과 느르흐는 잠자코 그 뒤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어쨋든 저들은 을이었고, 부탁을 들어주건 말건 상관없는 프마 앞에서 무릎까지 꿇었는데 쇼핑이 어려울리 없었다.
뭐, 쇼핑만으로 끝나지 않겠지만..
그 뒤로 다리를 주무른다든지, 어깨를 두드려준다던지, 실험에 필요한 에테르측정을 돕거나 마물의 신체부위를 모으는 일까지 수많은 허드렛일에 부려먹힌 체셔쿤과 느르흐는 쌓인 자작나무원목과 함께 부대집 마당에 널려있었다.
가공이 끝난것이 아니니 할일은 남았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럴 의욕이 들지 않았다.
"어라? 지금 마당에서 뭐하는거야? 일광욕인가..?"
백오가 정문을 두고 당당히 담을 뛰어 넘어왔다.
뭐 어차피 정문은 폼으로 두고 부대원들 모두 담을 넘어다니므로 별다른 일도 아니었지만.
그런데, 이제와서이지만 체셔쿤은 딱히 원목을 잃어버린것에 대해서 백오에게 숨길 생각같은건 없었다.
오히려 제대로 복구 한 다음에 확실히 잘못을 말 할 생각이었다.
체셔쿤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고 싶지 않았지만 일어나 앉았다.
"뭐야. 일광욕이 아닌거야? 하긴.. 흙바닥에 누워서 일광욕을 할리가 없지."
그것도 그렇게 긴 옷을 입고 할리가 없지.
무엇이 재밌는지 푸하핫하고 웃으며 여전히 엎드려 쓰러져있는 느르흐의 등을 쿡쿡 손가락으로 찔렀다.
"...백오. 사실은 말이야.. 네가 부탁했던 자작나무원목을 잃어버렸었어."
말을 꺼내기도 조심스러운듯 꺼림칙하게 표정을 찡그리고 체셔쿤이 말하였다.
"흐음? 너굴언니가 그런 실수를 하다니 별일이네.. 뭐. 경험쌓기겸, 부족한 목재도 채울겸이었는데. 자작나무 목재는 충분히 있으니까.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
예상대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태도로 백오는 줬던 자작나무원목을 없는걸로 쳐버렸다.
미리 구해두지 않았다면 괜찮다고 전부 사양했겠지.
"아니아니. 다시 다 구했으니까. 느르흐씨 장부, 장부 좀 꺼내봐."
"으으...더..더는 안돼...."
큰 덩치에 반해 학자인 느르흐는 체셔쿤만큼의 체력이 없었는지 잠에 들어버렸다.
체셔쿤은 흔들어 깨우는건 너무 과혹한 취급이라 생각하고 느르흐의 상의에서 장부를 직접 찾아내었다.
"자, 여길 봐. 딱 495개! 목재 99개분이야!"
흐흥!
아무래도 체셔쿤도 피곤하긴 했는지 평소라면 하지 않을 뽐내는 자세를 취했다.
헤쳐온 고난이 그의 머릿속에 흘러가며 감격까지 느끼게 했다.
"어라~? 495개라고?"
이상하다며 백오는 그 장부를 폴짝 뛰어 낚아채 확인했다.
설마..부족한건가?!
들리지도 않을텐데 느르흐가 꿈틀꿈틀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다.
"왜..왜그래.. 혹시 자작나무 목재는 198개가 필요해서 495개가 아니라 990개라도 보냈었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빌었다.
"아니~반대야! 나 그날 토벌전을 참여 한 뒤라서 너무너무 졸렸거든. 어둠밤나무원목까진 다 캣는데 자작나무를 캐는 도중 졸다가 초코보에서 떨어질뻔하기까지 했어서 여우가 말리길래 325개만 보냈었어."
"뭐...라고...?"
버엉
입을 크게 열고 체셔쿤이 굳어버렸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한 고생은 다 뭐였던거지..? 쌓여있는 원목의 무게만큼 허탈감이 덮쳐왔다.
"뭐어.. 비싼 원목이니까 연성부대 재정엔 꽤나 도움이 되고.. 헛수고는 아닌거잖아? 좋게 생각하자구."
그 등을 토닥이려다 작은 키에 좌절한 백오가 체셔쿤의 다리를 토닥였다.
분명 잘못한건 없는데 제가 엄청 큰 죄를 지은것만 같았다.
"그래...뭐.. 좋은게 좋은거지.."
털썩
결국 체셔쿤은 흙바닥에 앉아버렸다.
서 있을 기운이 없었다.
"그래그래~. 팔아서 부족하다던 샤드나 사라구~."
끄덕끄덕
나름 결론이 났다고 생각하는지 백오는 만족스러워보였다.
그러고보면 백오는 무슨 일 때문에 온 걸까?
놀러온건가 싶지만 프마는 방에 연구하러 가버렸고 아르가유라는 소란을 예측했는가 싶을만큼 보이지 않는데다가 느르흐와 자신은 피곤해서 놀아줄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백오 놀러온거라면 오늘은 나랑 느르흐 둘 다 쉬어야 할거 같은데. 다음에 오지 않을래?"
"으응~? 아니! 용건이 있어서 온거야."
마치 놀아달라 재촉하는 아이같이 취급하지 말라구 백오는 체셔쿤의 정강이를 미처 차진 못하구 툴툴댔다.
"뭐? 지금 쌓인 원목도 많아.. 더이상은 보관못한다..?"
"아냐! 날 뭘로 보는거야! 그냥. 마호가니 목재가 한번에 안왔길래 모그리가 못들어서 그런줄 알고 직접 가지러 온거라구!"
방방 뛰며 화를 내는 모습이 영락없이 아니라서 무심코 웃던 체셔쿤이 바짝 굳어버렸다.
우편함에 가져다 넣은건 자신이므로 완성된 목재는 전부 들고갔으며, 마호가니원목은 분명 더 끝냈었다.
아..안돼.
그러고보니 완성한 목재.. 몇개더라..?
분명...분명.......
"77개만 왔더라고. 마호가니 원목도 목재를 99개 만들만큼 보냈는데 말이지~?"
체셔쿤의 눈 앞이 깜깜해져갔다.
비가 적게 내리지만 과도하게 건조한 울다하의 날씨는 습기가 많은 라노시아에서 자라는 마호가니원목을 말리면 쩍쩍 갈라져서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다 마른 원목을 가공하여 장기간 보관할때는 호조건을 가지고있었다.
만약 이 목재를 부탁한 백오가 사는 검은장막숲이었다면 이렇게 마당에 놔뒀다간 곰팡이가 슬어서 못쓰게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백오도 참.. 갑자기 재료를 산더미로 줘도 놔둘데가 없다고 했었는데.."
아사부대와는 달리 연성부대는 여러명이 사는 생활공간이었다.
비공정을 제작한다고 여기저기 재료를 쌓아둬도 불평할 사람이 없는 그곳과 달리 체셔쿤은 통행이 불편하다고 쓴소리를 들은 참이었다.
급히 목재의 주인을 불러내 가져가라고는 했지만 바쁜 모양이었는지 오늘에서야 찾아간다고 전해들었다.
"목수 경험을 쌓아주고 싶다고 캐다가 너무 즐거워져버린거 아냐? 누가 안말리면 멈출 줄 모르잖아."
프마는 아직 깎지 않은 원목들이 쌓인 더미 위에 걸터앉아서 책을 읽다가 한숨을 쉬었다.
백오는 항상 처음엔 누구를 위해서 채집한다고 도끼를 들고 나가서는 우편함이 넘치도록 과하게 모아버리는 것이다.
"으으, 한번에 모두 가공하려 했다간 정신병이라도 생길지 모르겠어. 하루종일 톱질만 해서 내가 기계라도 된 줄 알겠다니까?"
지금이라면 다른 어떤 일이라도 재미있게 느껴질거라며 체셔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침부터 줄곧 톱질을 했지만 남은 원목이 한가득이었다.
마침 쨍쨍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에 야외작업은 한계에 가까웠고 배도 고팠던 체셔쿤은 꼴도 보기 싫은 원목은 미래의 자신에게 맡기고 점심이나 먹어야겠다며 목에 걸쳐뒀던 수건으로 땀에 절은 얼굴을 북북 닦아내곤 일어섰다.
"좋은 생각이야. 더 일하려했다간 일사병에 걸릴거라구. 음.. 이 목재들 다 모그리가 옮길 수 있으려나.."
이만 정리하고 들어가려는 체셔쿤의 뒤를 따라 프마는 원목더미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상당히 높이 쌓여있었지만 라라펠은 자신의 키보다도 높게 점프를 할 수 있는 종족이었기에 딱히 문제는 없었다.
"가자. 점심 만들어줄게. 지금 목재가 아닌 다른걸 만들고 싶은 기분이거든.."
"와! 식료품 뭐 있더라?"
일을 뒤로 미뤄서 당장은 마음이 편해진 체셔쿤은 제철인 식재료를 하나하나 읊으며 집에 들어갔다.
방치된 원목에 무슨 일이 일어날줄도 모르고..
앞서 말했듯이 연성부대는 아사부대에 비해 부대원이 많았다.
사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수가 많은 덕에 가끔 정보전달이 되지 않기도해서 부대밭에 무얼 심었는지, 비공정 제작 진행은 어디까지인지 관심이 없는 사람은 알수없을때도 있었다.
이번같은 사고도 언젠가는 일어났었을 일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뭐야!! 쌓아뒀던 원목이 사라졌잖아!"
완성된 목재들이 모그리들이 전부 들고 갈 수 없는 양이어서 할 수 없이 아사부대에 직접 들고 간 체셔쿤은 금고에 들어가지 않아 마당에 쌓아뒀던 나머지의 원목이 사라진걸 발견하였다.
타 부대집에 쌓인 물건을 누군가가 가져가기엔 여기는 치안이 확실한 모험가들의 거주구였다.
누가 무엇을 부탁하든 들어줘버리는 호구들의 집합소에서 도둑질은 보통 일어나지 않아 놔두고 갔다 온 것인데..
"어라. 무슨 일 있나요? 체셔님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시다니.."
마침 부대집에서 쉬고 있던 느르흐가 밖에 나왔다.
평소 누군가를 놀리긴해도 이러한 고성을 지르진 않는 체셔쿤의 목소리가 문을 닫은 안에서도 들리다니 보통일이 아니라고 생각한것이다.
"느르흐, 여기 있던 원목들 못 봤어요? 백오가 부탁한 소중한 원목인데.."
"네? 그거라면.. 금고 정리하고 남는 자리가 있길래 집어넣어버렸죠. 마당에 둔게 체셔님이셨군요? 부대금고가 꽉 찼다구 방치하지 말아주세요.."
하여튼 자신이 안하면 정리가 안된다고 느르흐가 투덜거렸다.
체셔쿤은 잃어버린게 아니라 다행이라 안심의 한숨을 쉬었다.
하여튼 샤드값가지 받고 맡은 이 원목들을 잃어선 백오에게 면목이 서질 않을것이다.
뭐, 써버렸데도 그럼 어쩔 수 없다고 하겠지만..
"가서 확인해볼래요? 남김없이 넣긴 했는데 중간에 분실되었을수도 있고.. 음.. 생각해보니 백오가 준것치곤 이상하긴 했던거같네요."
"이상했다고요?"
느르흐가 흐음.. 고민하는 소릴 내더니 어디선가 장부를 꺼내었다.
금고관리와 함께 물품 갯수도 정리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하긴 직각삼각형이 신경쓰여 안절부절 못할만큼 정리와 각재기엔 철저하니 숫자라도 마찬가지이리라.
"아, 여기를 보세요. 이슈가르드에서부터 추위때문에 밀도가 높아 목재 만들기에는 원목이 5개씩 들어가는거 아시죠? 그것때문에 가격이 높은편이고요."
"네, 수요도 많고.. 몬스터들의 레벨도 높아 채집이 쉽지 않으니까요."
가격변동이 크지 않으면서 원예가들의 채집물중에 비교적 가격이 비싼 원목들은 그들이 돈을 버는 수단 중에 하나였다.
"백오는 흐뀨 부스레기라던가, 애매한 99+1같은걸 매우 싫어해서 나머지가 나오면 팔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폐기해버릴 정도로 거기에 대해선 극도로 신경질적이에요.. 우리끼린 농담삼아 백오 앞에서 한뭉 플러스 1개의 실수를 하면 목이 뎅강 잘릴것이다하고 웃을정도로.."
무서운 이야기이지만 백오가 전사를 시작한 지금은 우스갯소리가 아닌 현실로 다가온다.
체셔쿤의 머릿속에는 해적같은 전사의 복장이 아닌 왠지 갈론드 채집옷을 입은 백오가 루미스라이트 낫을 들고 참수를 날리는 광경이 떠올랐다.
실제로 일어날거 같은게 더욱 소름이 돋을만큼 섬뜩했다.
"그..그렇기는 한데, 그래서 원목숫자랑 무슨 관련이 있나요?"
"자작나무원목이..325개에요."
휘이이잉
건조한 바람이 두명의 사이에 불었다.
"몇..개라고요?"
"325개요. 다른 원목은 정확히 다 495개인데 자작나무만 325."
"아..아닛... 부족하잖아!!"
시퍼런 안색으로 체셔쿤은 장부를 손가락으로 훑고있는 냉정한 느르흐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무려 원목이 170개나 사라진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가장 비싼 자작나무원목이.
"네, 상당히 부족하네요? 이거 다 직접캣다고 했으니 한정자원인 자작나무면 백오도 참 시간도 노력도 많이 들었을거같네요~."
"이사람이, 남의 일이라고!! 아아.. 아무일도 아니라고 괜찮다 해버릴거 같아서 더 부담되!!"
주는 사람이 아무렇지 않다지만 받는측은 그렇지도 않다는것이다.
백오는 다소 그런점이 재밌어서 재료폭탄을 체셔쿤에게 보내는 면이 있었다.
"하하하하. 오히려 이거 가지고 원목을 더 보내는거 아닐까요? 또다시 495개라던지!"
"으으으....."
털썩
이제 더이상의 원목은 싫은 체셔쿤은 무릎을 꿇고 좌절감을 맛보았다. 마호가니도 겨우 다 끝냈는데 추가라니..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터업
"잠깐 어딜가는거지..? 방치한 내가 잘못하긴 했지만.. 정리했던 느르흐가 빠뜨리지 않았다는 확정도 없잖아요..?"
실컷 웃었겠다 떠나려던 느르흐의 어깨를 붙잡은 체셔쿤의 얼굴이 서늘함을 넘어 무서웠다.
순간 느르흐는 너무 놀렸나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일단 범인을 찾는건 아무 목격자도 없는 지금, 불가능에 가까워. 그렇다면 백오의 자작나무를 보충하는게 제일 빠른 해결책이겠지."
원목 170개.
힘들긴 하겠지만 불가능한 숫자는 아니고 사람이 두명이나 있으니까 그렇게 많은 숫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자작나무 원목이... 우리가 캘 실력이 안될정도의 채집물이라는거지."
"아~ 그냥 사요. 비싸긴하지만 돈을 모으면 되잖아요? 샤드값도 엄청 받으셨다면서.. 몰래 사서 추가해두면 백오도 모를거라구요."
의욕이 제로에 가까운 느르흐가 소파에 늘어져서 대충 대꾸했다.
홧김에 불러세운건지 체셔쿤은 느르흐에세 책임을 묻는것은 아니지만 풀어주지도 않고 부대집에 묶어두었다.
"느르흐가 몰라서 그래요. 게시판에 팔려고 대충 내놓은 자작나무와 백오가 손수 캐온건 매우 다르다구요! 분명 백오도 눈치챌겁니다."
괜히 신경쓰는거 아닌가.. 안줘도 신경안쓸텐데 무슨..
질렸다는 표정으로 느르흐는 그냥 가만히 있기로 하였다.
"게다가 우리한테 무슨 돈이 있다구요? 샤드값을 충분히 받았긴하지만 이건 원목가공하는데 드는 샤드를 충당할 돈이에요."
"중요한 그 원목이 없잖아요. 우리가 캐려면 한참걸릴걸요?"
여하튼 연성부대원들은 채집에 적극적이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부유하지도 않고..
"샤드라면 우리가 캘 수 있잖아요? 아니면.. 누구 부탁 할 사람이라도 있어요?"
".....한사람.. 우리부대에서 캘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뜻밖의 광명을 찾았다는듯 체셔쿤이 벌떡 일어섯다.
이 치욕적인 실수를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자주 부대에 놀러오는 백오의 목재는 언제 완성되~?라는 물음에 더한 죄책감을 느끼게 되어 양심상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것이다.
"프마, 프마를 찾아! 프마가 해결해줄거야..!"
조그마란 라라펠 앞에 무릎 꿇은 장신의 루가딘과 엘레젠은 그야말로 비일상의 한장면이었다.
항상 왕래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림사의 시장이 한순간 텅비어 보일정도로 그 공간을 중심으로 반경 100m는 1라라펠조차 지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보고 자작나무원목을 170개나 캐오라고?"
"응..부탁 할 수 있을까..?"
에오르제아 온갖 곳을 뒤졌던 고생은 무엇인지 프마는 림사로민사 한복판에서 발견되었다.
뜬끔없이 나타나더니 다리에 매달려 애원하는 그들을 억지로 떼어내어 에테라이트 주위보단 사람이 적은 시장으로 왔지만 이렇게 대중 앞에서 무릎을 꿇을 줄 알았다면 부대집으로 가는게 나았을것 같았다.
"뭐 자작나무원목이면 못캐는건 아닌데.."
"제발.. 백오가 직접 캐왔던 원목을 시장바닥에 아무렇게나 방치되던걸로 대신 할 수는 없잖아! 그만큼의 길은 느르흐씨랑 내가 줄테니까!"
"네?! 제가 왜요?!"
찌릿
매서운 체셔쿤의 눈총에 벌떡 일어섰던 느르흐는 다시 침울하게 무릎꿇었다.
단지 정리한것뿐인데 이 무슨 봉변인지 모르겠다.
"알았어..그렇게 간절히 부탁하니까 뭐.. 하지만 자작나무원목 근처에 몬스터들이 많다구. 쫓기면서 캐는건 싫어."
"내가 가서 파수꾼해줄게. 느르흐도 같이 갈거야. 그렇죠?"
"저 무아스랑 약소..네..가겠습니다.."
슬며시 한손을 들고 일정을 고하려던 느르흐가 다시 손을 내리고 의기소침해졌다.
무아스에겐 어떻게 말해야하지..
"흐으음.. 뭐어.. 그럼 어쩔 수 없네! 오랜만에 채집하러 갈까~."
잔뜩 장난스런 얼굴로 이쪽을 보면서 건들건들 프마는 도끼를 꺼내들었다.
취미가 채집일 정도인 백오의 도끼만큼은 아니지만 과연 자작나무원목을 채집 할 정도 숙련된 원예가의 도끼인지라 예기가 남달랐다.
"그전에! 내가 너희 부탁을 들어주니까 내 부탁도 들어줘야겠어! 길을 보상으로 준다고 했지? 먼저 이딜샤이어에서 고문서 쇼핑이나 가보자구."
짐꾼이 두명이나 생겼네~
부려먹을 생각이 만연한 행동에도 체셔쿤과 느르흐는 잠자코 그 뒤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어쨋든 저들은 을이었고, 부탁을 들어주건 말건 상관없는 프마 앞에서 무릎까지 꿇었는데 쇼핑이 어려울리 없었다.
뭐, 쇼핑만으로 끝나지 않겠지만..
그 뒤로 다리를 주무른다든지, 어깨를 두드려준다던지, 실험에 필요한 에테르측정을 돕거나 마물의 신체부위를 모으는 일까지 수많은 허드렛일에 부려먹힌 체셔쿤과 느르흐는 쌓인 자작나무원목과 함께 부대집 마당에 널려있었다.
가공이 끝난것이 아니니 할일은 남았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럴 의욕이 들지 않았다.
"어라? 지금 마당에서 뭐하는거야? 일광욕인가..?"
백오가 정문을 두고 당당히 담을 뛰어 넘어왔다.
뭐 어차피 정문은 폼으로 두고 부대원들 모두 담을 넘어다니므로 별다른 일도 아니었지만.
그런데, 이제와서이지만 체셔쿤은 딱히 원목을 잃어버린것에 대해서 백오에게 숨길 생각같은건 없었다.
오히려 제대로 복구 한 다음에 확실히 잘못을 말 할 생각이었다.
체셔쿤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고 싶지 않았지만 일어나 앉았다.
"뭐야. 일광욕이 아닌거야? 하긴.. 흙바닥에 누워서 일광욕을 할리가 없지."
그것도 그렇게 긴 옷을 입고 할리가 없지.
무엇이 재밌는지 푸하핫하고 웃으며 여전히 엎드려 쓰러져있는 느르흐의 등을 쿡쿡 손가락으로 찔렀다.
"...백오. 사실은 말이야.. 네가 부탁했던 자작나무원목을 잃어버렸었어."
말을 꺼내기도 조심스러운듯 꺼림칙하게 표정을 찡그리고 체셔쿤이 말하였다.
"흐음? 너굴언니가 그런 실수를 하다니 별일이네.. 뭐. 경험쌓기겸, 부족한 목재도 채울겸이었는데. 자작나무 목재는 충분히 있으니까.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
예상대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태도로 백오는 줬던 자작나무원목을 없는걸로 쳐버렸다.
미리 구해두지 않았다면 괜찮다고 전부 사양했겠지.
"아니아니. 다시 다 구했으니까. 느르흐씨 장부, 장부 좀 꺼내봐."
"으으...더..더는 안돼...."
큰 덩치에 반해 학자인 느르흐는 체셔쿤만큼의 체력이 없었는지 잠에 들어버렸다.
체셔쿤은 흔들어 깨우는건 너무 과혹한 취급이라 생각하고 느르흐의 상의에서 장부를 직접 찾아내었다.
"자, 여길 봐. 딱 495개! 목재 99개분이야!"
흐흥!
아무래도 체셔쿤도 피곤하긴 했는지 평소라면 하지 않을 뽐내는 자세를 취했다.
헤쳐온 고난이 그의 머릿속에 흘러가며 감격까지 느끼게 했다.
"어라~? 495개라고?"
이상하다며 백오는 그 장부를 폴짝 뛰어 낚아채 확인했다.
설마..부족한건가?!
들리지도 않을텐데 느르흐가 꿈틀꿈틀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다.
"왜..왜그래.. 혹시 자작나무 목재는 198개가 필요해서 495개가 아니라 990개라도 보냈었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빌었다.
"아니~반대야! 나 그날 토벌전을 참여 한 뒤라서 너무너무 졸렸거든. 어둠밤나무원목까진 다 캣는데 자작나무를 캐는 도중 졸다가 초코보에서 떨어질뻔하기까지 했어서 여우가 말리길래 325개만 보냈었어."
"뭐...라고...?"
버엉
입을 크게 열고 체셔쿤이 굳어버렸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한 고생은 다 뭐였던거지..? 쌓여있는 원목의 무게만큼 허탈감이 덮쳐왔다.
"뭐어.. 비싼 원목이니까 연성부대 재정엔 꽤나 도움이 되고.. 헛수고는 아닌거잖아? 좋게 생각하자구."
그 등을 토닥이려다 작은 키에 좌절한 백오가 체셔쿤의 다리를 토닥였다.
분명 잘못한건 없는데 제가 엄청 큰 죄를 지은것만 같았다.
"그래...뭐.. 좋은게 좋은거지.."
털썩
결국 체셔쿤은 흙바닥에 앉아버렸다.
서 있을 기운이 없었다.
"그래그래~. 팔아서 부족하다던 샤드나 사라구~."
끄덕끄덕
나름 결론이 났다고 생각하는지 백오는 만족스러워보였다.
그러고보면 백오는 무슨 일 때문에 온 걸까?
놀러온건가 싶지만 프마는 방에 연구하러 가버렸고 아르가유라는 소란을 예측했는가 싶을만큼 보이지 않는데다가 느르흐와 자신은 피곤해서 놀아줄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백오 놀러온거라면 오늘은 나랑 느르흐 둘 다 쉬어야 할거 같은데. 다음에 오지 않을래?"
"으응~? 아니! 용건이 있어서 온거야."
마치 놀아달라 재촉하는 아이같이 취급하지 말라구 백오는 체셔쿤의 정강이를 미처 차진 못하구 툴툴댔다.
"뭐? 지금 쌓인 원목도 많아.. 더이상은 보관못한다..?"
"아냐! 날 뭘로 보는거야! 그냥. 마호가니 목재가 한번에 안왔길래 모그리가 못들어서 그런줄 알고 직접 가지러 온거라구!"
방방 뛰며 화를 내는 모습이 영락없이 아니라서 무심코 웃던 체셔쿤이 바짝 굳어버렸다.
우편함에 가져다 넣은건 자신이므로 완성된 목재는 전부 들고갔으며, 마호가니원목은 분명 더 끝냈었다.
아..안돼.
그러고보니 완성한 목재.. 몇개더라..?
분명...분명.......
"77개만 왔더라고. 마호가니 원목도 목재를 99개 만들만큼 보냈는데 말이지~?"
체셔쿤의 눈 앞이 깜깜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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