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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7.06.29 극 프피스토 토벌전 (상)

완벽주의

파판 2017. 11. 29. 01:39
이마를 흐르는 구슬땀을 손으로 스윽 닦은 체셔쿤은 마당에 가지런히 쌓인 마호가니 목재를 훑어 상품의 미비는 없는지 재확인하고 있었다.
비가 적게 내리지만 과도하게 건조한 울다하의 날씨는 습기가 많은 라노시아에서 자라는 마호가니원목을 말리면 쩍쩍 갈라져서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다 마른 원목을 가공하여 장기간 보관할때는 호조건을 가지고있었다.
만약 이 목재를 부탁한 백오가 사는 검은장막숲이었다면 이렇게 마당에 놔뒀다간 곰팡이가 슬어서 못쓰게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백오도 참.. 갑자기 재료를 산더미로 줘도 놔둘데가 없다고 했었는데.."

아사부대와는 달리 연성부대는 여러명이 사는 생활공간이었다.
비공정을 제작한다고 여기저기 재료를 쌓아둬도 불평할 사람이 없는 그곳과 달리 체셔쿤은 통행이 불편하다고 쓴소리를 들은 참이었다.
급히 목재의 주인을 불러내 가져가라고는 했지만 바쁜 모양이었는지 오늘에서야 찾아간다고 전해들었다.

"목수 경험을 쌓아주고 싶다고 캐다가 너무 즐거워져버린거 아냐? 누가 안말리면 멈출 줄 모르잖아."

프마는 아직 깎지 않은 원목들이 쌓인 더미 위에 걸터앉아서 책을 읽다가 한숨을 쉬었다.
백오는 항상 처음엔 누구를 위해서 채집한다고 도끼를 들고 나가서는 우편함이 넘치도록 과하게 모아버리는 것이다.

"으으,  한번에 모두 가공하려 했다간 정신병이라도 생길지 모르겠어. 하루종일 톱질만 해서 내가 기계라도 된 줄 알겠다니까?"

지금이라면 다른 어떤 일이라도 재미있게 느껴질거라며 체셔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침부터 줄곧 톱질을 했지만 남은 원목이 한가득이었다.
마침 쨍쨍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에 야외작업은 한계에 가까웠고 배도 고팠던 체셔쿤은 꼴도 보기 싫은 원목은 미래의 자신에게 맡기고 점심이나 먹어야겠다며 목에 걸쳐뒀던 수건으로 땀에 절은 얼굴을 북북 닦아내곤 일어섰다.

"좋은 생각이야. 더 일하려했다간 일사병에 걸릴거라구. 음.. 이 목재들 다 모그리가 옮길 수 있으려나.."

이만 정리하고 들어가려는 체셔쿤의 뒤를 따라 프마는 원목더미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상당히 높이 쌓여있었지만 라라펠은 자신의 키보다도 높게 점프를 할 수 있는 종족이었기에 딱히 문제는 없었다.

"가자. 점심 만들어줄게. 지금 목재가 아닌 다른걸 만들고 싶은 기분이거든.."

"와! 식료품 뭐 있더라?"

일을 뒤로 미뤄서 당장은 마음이 편해진 체셔쿤은 제철인 식재료를 하나하나 읊으며 집에 들어갔다.
방치된 원목에 무슨 일이 일어날줄도 모르고..


앞서 말했듯이 연성부대는 아사부대에 비해 부대원이 많았다.
사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수가 많은 덕에 가끔 정보전달이 되지 않기도해서 부대밭에 무얼 심었는지, 비공정 제작 진행은 어디까지인지 관심이 없는 사람은 알수없을때도 있었다.
이번같은 사고도 언젠가는 일어났었을 일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뭐야!! 쌓아뒀던 원목이 사라졌잖아!"

완성된 목재들이 모그리들이 전부 들고 갈 수 없는 양이어서 할 수 없이 아사부대에 직접 들고 간 체셔쿤은 금고에 들어가지 않아 마당에 쌓아뒀던 나머지의 원목이 사라진걸 발견하였다.
타 부대집에 쌓인 물건을 누군가가 가져가기엔 여기는 치안이 확실한 모험가들의 거주구였다.
누가 무엇을 부탁하든 들어줘버리는 호구들의 집합소에서 도둑질은 보통 일어나지 않아 놔두고 갔다 온 것인데..

"어라. 무슨 일 있나요? 체셔님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시다니.."

마침 부대집에서 쉬고 있던 느르흐가 밖에 나왔다.
평소 누군가를 놀리긴해도 이러한 고성을 지르진 않는 체셔쿤의 목소리가 문을 닫은 안에서도 들리다니 보통일이 아니라고 생각한것이다.

"느르흐, 여기 있던 원목들 못 봤어요? 백오가 부탁한 소중한 원목인데.."

"네? 그거라면.. 금고 정리하고 남는 자리가 있길래 집어넣어버렸죠. 마당에 둔게 체셔님이셨군요? 부대금고가 꽉 찼다구 방치하지 말아주세요.."

하여튼 자신이 안하면 정리가 안된다고 느르흐가 투덜거렸다.
체셔쿤은 잃어버린게 아니라 다행이라 안심의 한숨을 쉬었다.
하여튼 샤드값가지 받고 맡은 이 원목들을 잃어선 백오에게 면목이 서질 않을것이다.
뭐, 써버렸데도 그럼 어쩔 수 없다고 하겠지만..

"가서 확인해볼래요? 남김없이 넣긴 했는데 중간에 분실되었을수도 있고.. 음.. 생각해보니 백오가 준것치곤 이상하긴 했던거같네요."

"이상했다고요?"

느르흐가 흐음.. 고민하는 소릴 내더니 어디선가 장부를 꺼내었다.
금고관리와 함께 물품 갯수도 정리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하긴 직각삼각형이 신경쓰여 안절부절 못할만큼 정리와 각재기엔 철저하니 숫자라도 마찬가지이리라.

"아, 여기를 보세요. 이슈가르드에서부터 추위때문에 밀도가 높아 목재 만들기에는 원목이 5개씩 들어가는거 아시죠? 그것때문에 가격이 높은편이고요."

"네, 수요도 많고.. 몬스터들의 레벨도 높아 채집이 쉽지 않으니까요."

가격변동이 크지 않으면서 원예가들의 채집물중에 비교적 가격이 비싼 원목들은 그들이 돈을 버는 수단 중에 하나였다.

"백오는 흐뀨 부스레기라던가, 애매한 99+1같은걸 매우 싫어해서 나머지가 나오면 팔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폐기해버릴 정도로 거기에 대해선 극도로 신경질적이에요.. 우리끼린 농담삼아 백오 앞에서 한뭉 플러스 1개의 실수를 하면 목이 뎅강 잘릴것이다하고 웃을정도로.."

무서운 이야기이지만 백오가 전사를 시작한 지금은 우스갯소리가 아닌 현실로 다가온다.
체셔쿤의 머릿속에는 해적같은 전사의 복장이 아닌 왠지 갈론드 채집옷을 입은 백오가 루미스라이트 낫을 들고 참수를 날리는 광경이 떠올랐다.
실제로 일어날거 같은게 더욱 소름이 돋을만큼 섬뜩했다.

"그..그렇기는 한데, 그래서 원목숫자랑 무슨 관련이 있나요?"

"자작나무원목이..325개에요."

휘이이잉

건조한 바람이 두명의 사이에 불었다.

"몇..개라고요?"

"325개요. 다른 원목은 정확히 다 495개인데 자작나무만 325."

"아..아닛... 부족하잖아!!"

시퍼런 안색으로 체셔쿤은 장부를 손가락으로 훑고있는 냉정한 느르흐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무려 원목이 170개나 사라진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가장 비싼 자작나무원목이.

"네, 상당히 부족하네요? 이거 다 직접캣다고 했으니 한정자원인 자작나무면 백오도 참 시간도 노력도 많이 들었을거같네요~."

"이사람이, 남의 일이라고!! 아아.. 아무일도 아니라고 괜찮다 해버릴거 같아서 더 부담되!!"

주는 사람이 아무렇지 않다지만 받는측은 그렇지도 않다는것이다.
백오는 다소 그런점이 재밌어서 재료폭탄을 체셔쿤에게 보내는 면이 있었다.

"하하하하. 오히려 이거 가지고 원목을 더 보내는거 아닐까요? 또다시 495개라던지!"

"으으으....."

털썩
이제 더이상의 원목은 싫은 체셔쿤은 무릎을 꿇고 좌절감을 맛보았다. 마호가니도 겨우 다 끝냈는데 추가라니..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터업

"잠깐 어딜가는거지..? 방치한 내가 잘못하긴 했지만.. 정리했던 느르흐가 빠뜨리지 않았다는 확정도 없잖아요..?"

실컷 웃었겠다 떠나려던 느르흐의 어깨를 붙잡은 체셔쿤의 얼굴이 서늘함을 넘어 무서웠다.
순간 느르흐는 너무 놀렸나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일단 범인을 찾는건 아무 목격자도 없는 지금, 불가능에 가까워. 그렇다면 백오의 자작나무를 보충하는게 제일 빠른 해결책이겠지."

원목 170개.
힘들긴 하겠지만 불가능한 숫자는 아니고 사람이 두명이나 있으니까 그렇게 많은 숫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자작나무 원목이... 우리가 캘 실력이 안될정도의 채집물이라는거지."

"아~ 그냥 사요. 비싸긴하지만 돈을 모으면 되잖아요? 샤드값도 엄청 받으셨다면서.. 몰래 사서 추가해두면 백오도 모를거라구요."

의욕이 제로에 가까운 느르흐가 소파에 늘어져서 대충 대꾸했다.
홧김에 불러세운건지 체셔쿤은 느르흐에세 책임을 묻는것은 아니지만 풀어주지도 않고 부대집에 묶어두었다.

"느르흐가 몰라서 그래요. 게시판에 팔려고 대충 내놓은 자작나무와 백오가 손수 캐온건 매우 다르다구요! 분명 백오도 눈치챌겁니다."

괜히 신경쓰는거 아닌가.. 안줘도 신경안쓸텐데 무슨..
질렸다는 표정으로 느르흐는 그냥 가만히 있기로 하였다.

"게다가 우리한테 무슨 돈이 있다구요? 샤드값을 충분히 받았긴하지만 이건 원목가공하는데 드는 샤드를 충당할 돈이에요."

"중요한 그 원목이 없잖아요. 우리가 캐려면 한참걸릴걸요?"

여하튼 연성부대원들은 채집에 적극적이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부유하지도 않고..

"샤드라면 우리가 캘 수 있잖아요? 아니면.. 누구 부탁 할 사람이라도 있어요?"

".....한사람.. 우리부대에서 캘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뜻밖의 광명을 찾았다는듯 체셔쿤이 벌떡 일어섯다.
이 치욕적인 실수를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자주 부대에 놀러오는 백오의 목재는 언제 완성되~?라는 물음에 더한 죄책감을 느끼게 되어 양심상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것이다.

"프마, 프마를 찾아! 프마가 해결해줄거야..!"



조그마란 라라펠 앞에 무릎 꿇은 장신의 루가딘과 엘레젠은 그야말로 비일상의 한장면이었다.
항상 왕래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림사의 시장이 한순간 텅비어 보일정도로 그 공간을 중심으로 반경 100m는 1라라펠조차 지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보고 자작나무원목을 170개나 캐오라고?"

"응..부탁 할 수 있을까..?"

에오르제아 온갖 곳을 뒤졌던 고생은 무엇인지 프마는 림사로민사 한복판에서 발견되었다.
뜬끔없이 나타나더니 다리에 매달려 애원하는 그들을 억지로 떼어내어 에테라이트 주위보단 사람이 적은 시장으로 왔지만 이렇게 대중 앞에서 무릎을 꿇을 줄 알았다면 부대집으로 가는게 나았을것 같았다.

"뭐 자작나무원목이면 못캐는건 아닌데.."

"제발.. 백오가 직접 캐왔던 원목을 시장바닥에 아무렇게나 방치되던걸로 대신 할 수는 없잖아! 그만큼의 길은 느르흐씨랑 내가 줄테니까!"

"네?! 제가 왜요?!"

찌릿
매서운 체셔쿤의 눈총에 벌떡 일어섰던 느르흐는 다시 침울하게 무릎꿇었다.
단지 정리한것뿐인데 이 무슨 봉변인지 모르겠다.

"알았어..그렇게 간절히 부탁하니까 뭐.. 하지만 자작나무원목 근처에 몬스터들이 많다구. 쫓기면서 캐는건 싫어."

"내가 가서 파수꾼해줄게. 느르흐도 같이 갈거야. 그렇죠?"

"저 무아스랑 약소..네..가겠습니다.."

슬며시 한손을 들고 일정을 고하려던 느르흐가 다시 손을 내리고 의기소침해졌다.
무아스에겐 어떻게 말해야하지..

"흐으음.. 뭐어.. 그럼 어쩔 수 없네! 오랜만에 채집하러 갈까~."

잔뜩 장난스런 얼굴로 이쪽을 보면서 건들건들 프마는 도끼를 꺼내들었다.
취미가 채집일 정도인 백오의 도끼만큼은 아니지만 과연 자작나무원목을 채집 할 정도 숙련된 원예가의 도끼인지라 예기가 남달랐다.

"그전에! 내가 너희 부탁을 들어주니까 내 부탁도 들어줘야겠어! 길을 보상으로 준다고 했지? 먼저 이딜샤이어에서 고문서 쇼핑이나 가보자구."

짐꾼이 두명이나 생겼네~
부려먹을 생각이 만연한 행동에도 체셔쿤과 느르흐는 잠자코 그 뒤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어쨋든 저들은 을이었고, 부탁을 들어주건 말건 상관없는 프마 앞에서 무릎까지 꿇었는데 쇼핑이 어려울리 없었다.
뭐, 쇼핑만으로 끝나지 않겠지만..



그 뒤로 다리를 주무른다든지, 어깨를 두드려준다던지, 실험에 필요한 에테르측정을 돕거나 마물의 신체부위를 모으는 일까지 수많은 허드렛일에 부려먹힌 체셔쿤과 느르흐는 쌓인 자작나무원목과 함께 부대집 마당에 널려있었다.
가공이 끝난것이 아니니 할일은 남았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럴 의욕이 들지 않았다.

"어라? 지금 마당에서 뭐하는거야? 일광욕인가..?"

백오가 정문을 두고 당당히 담을 뛰어 넘어왔다.
뭐 어차피 정문은 폼으로 두고 부대원들 모두 담을 넘어다니므로 별다른 일도 아니었지만.
그런데, 이제와서이지만 체셔쿤은 딱히 원목을 잃어버린것에 대해서 백오에게 숨길 생각같은건 없었다.
오히려 제대로 복구 한 다음에 확실히 잘못을 말 할 생각이었다.
체셔쿤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고 싶지 않았지만 일어나 앉았다.

"뭐야. 일광욕이 아닌거야? 하긴.. 흙바닥에 누워서 일광욕을 할리가 없지."

그것도 그렇게 긴 옷을 입고 할리가 없지.
무엇이 재밌는지 푸하핫하고 웃으며 여전히 엎드려 쓰러져있는 느르흐의 등을 쿡쿡 손가락으로 찔렀다.

"...백오. 사실은 말이야.. 네가 부탁했던 자작나무원목을 잃어버렸었어."

말을 꺼내기도 조심스러운듯 꺼림칙하게 표정을 찡그리고 체셔쿤이 말하였다.

"흐음? 너굴언니가 그런 실수를 하다니 별일이네.. 뭐. 경험쌓기겸, 부족한 목재도 채울겸이었는데. 자작나무 목재는 충분히 있으니까.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

예상대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태도로 백오는 줬던 자작나무원목을 없는걸로 쳐버렸다.
미리 구해두지 않았다면 괜찮다고 전부 사양했겠지.

"아니아니. 다시 다 구했으니까. 느르흐씨 장부, 장부 좀 꺼내봐."

"으으...더..더는 안돼...."

큰 덩치에 반해 학자인 느르흐는 체셔쿤만큼의 체력이 없었는지 잠에 들어버렸다.
체셔쿤은 흔들어 깨우는건 너무 과혹한 취급이라 생각하고 느르흐의 상의에서 장부를 직접 찾아내었다.

"자, 여길 봐. 딱 495개! 목재 99개분이야!"

흐흥!
아무래도 체셔쿤도 피곤하긴 했는지 평소라면 하지 않을 뽐내는 자세를 취했다.
헤쳐온 고난이 그의 머릿속에 흘러가며 감격까지 느끼게 했다.

"어라~? 495개라고?"

이상하다며 백오는 그 장부를 폴짝 뛰어 낚아채 확인했다.
설마..부족한건가?!
들리지도 않을텐데 느르흐가 꿈틀꿈틀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다.

"왜..왜그래.. 혹시 자작나무 목재는 198개가 필요해서 495개가 아니라 990개라도 보냈었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빌었다.

"아니~반대야! 나 그날 토벌전을 참여 한 뒤라서 너무너무 졸렸거든. 어둠밤나무원목까진 다 캣는데 자작나무를 캐는 도중 졸다가 초코보에서 떨어질뻔하기까지 했어서 여우가 말리길래 325개만 보냈었어."

"뭐...라고...?"

버엉
입을 크게 열고 체셔쿤이 굳어버렸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한 고생은 다 뭐였던거지..? 쌓여있는 원목의 무게만큼 허탈감이 덮쳐왔다.

"뭐어.. 비싼 원목이니까 연성부대 재정엔 꽤나 도움이 되고.. 헛수고는 아닌거잖아? 좋게 생각하자구."

그 등을 토닥이려다 작은 키에 좌절한 백오가 체셔쿤의 다리를 토닥였다.
분명 잘못한건 없는데 제가 엄청 큰 죄를 지은것만 같았다.

"그래...뭐.. 좋은게 좋은거지.."

털썩
결국 체셔쿤은 흙바닥에 앉아버렸다.
서 있을 기운이 없었다.

"그래그래~. 팔아서 부족하다던 샤드나 사라구~."

끄덕끄덕
나름 결론이 났다고 생각하는지 백오는 만족스러워보였다.
그러고보면 백오는 무슨 일 때문에 온 걸까?
놀러온건가 싶지만 프마는 방에 연구하러 가버렸고 아르가유라는 소란을 예측했는가 싶을만큼 보이지 않는데다가 느르흐와 자신은 피곤해서 놀아줄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백오 놀러온거라면 오늘은 나랑 느르흐 둘 다 쉬어야 할거 같은데. 다음에 오지 않을래?"

"으응~? 아니! 용건이 있어서 온거야."

마치 놀아달라 재촉하는 아이같이 취급하지 말라구 백오는 체셔쿤의 정강이를 미처 차진 못하구 툴툴댔다.

"뭐? 지금 쌓인 원목도 많아.. 더이상은 보관못한다..?"

"아냐! 날 뭘로 보는거야! 그냥. 마호가니 목재가 한번에 안왔길래 모그리가 못들어서 그런줄 알고 직접 가지러 온거라구!"

방방 뛰며 화를 내는 모습이 영락없이 아니라서 무심코 웃던 체셔쿤이 바짝 굳어버렸다.
 우편함에 가져다 넣은건 자신이므로 완성된 목재는 전부 들고갔으며, 마호가니원목은 분명 더 끝냈었다.

아..안돼.
그러고보니 완성한 목재.. 몇개더라..?
분명...분명.......

"77개만 왔더라고. 마호가니 원목도 목재를 99개 만들만큼 보냈는데 말이지~?"

체셔쿤의 눈 앞이 깜깜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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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오판다
,
그 격렬한 전투로부터 1년, 야만신사상 사상 최소규모의 피해를 낸 프피스토의 존재는 이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무리도 아니었다.
프피스토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야만신이 된 기억을 가졌전 특이 케이스였기에 인적이 드문 축축한 동굴 안에 스스로릉 봉인했었기 때문이다.
비록 존재 자체가 위협을 주는 야만신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풀려난 요마가 한마리도 없었기에 프피스토가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그날의 일기예보 정도밖에 없었다.

"정말로 부대장은 떠나는거야? 대장도 은거해버렸는데 그럼 이 부대는 어떻게 돼?"

상습이가 불안한 눈으로 느르흐에게 물었다.
느르흐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꽤나 고참멤버이고 사정을 아는 인물임에도 느르흐는 앞으로가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허무 할 정도로 변함없는 에오르제아와는 다르게 연성부대는 프피스토 사건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백오의 분투와 증거인멸로 연성부대를 노린 누명은 무산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 사건으로 분명 이 부대에서 중요한것이 사라졌다.

"이를테면 신뢰라거나.. 그래, 부대의 존재 의의 자체에 의심이 가게 된 거겠지. 가엽게도 오래도록 묶여 있었으니까."

곰방대를 피며 아르가유라가 말했다.
요요하게 흩어지는 보랏빛연기에 과거를 회상하는지 조금 멍한 눈빛이 전의 아르가유라 같진 않아서 상습이는 조금 불안해졌다.
이러한 눈빛을 한 사람들은 전부 어딘가 사라지거나 완전히 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아르님도 모두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거에요. 여기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을텐데.. 불안감만 심고 있는거라구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걸 스스로도 아는 느르흐는 그나마 가능성이 있을 텐데도 방치하는 아르가유라에게 화를 냈다.
엉뚱한 화풀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러지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다.

"사람 마음은 결국 그 사람 본인의 거야.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해서 될 일이 아니지. 백오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체셔쿤이 떠나갈 때도 붙잡지 않았지."

묘지기가 되어 순수하게 연주의 기능 밖에 없는 하프를 든 체셔쿤은 이제 활과 화살을 들지 않는다.
그 입에서 흐르는 노랫소리는 이제 누군가를 애도하는 의미 이상을 가지지 않았다.

"너굴씨는 그걸로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해."

문을 열고 백오가 들어왔다.
아까까지 백오에 대해 이야기 하던 상습이와 느르흐가 깜짝 놀라 바라보았다.

"원래부터 낚시와 음악을 즐기던 사람이잖아. 우리야 이미 화살을 든 너굴씨가 처음이라지만 싸움을 좋아하는 모습은 아니었잖아?"

그리고 이미 체셔쿤이 프피스토의 한쪽 눈을 쏘는 그 때에 백오는 예감 했었다.

"그렇다면 백오는! 백오는 뭐 때문에 떠나는거야? 모두가 의지하고 있다는걸 알고 있잖아!"

느르흐가 외쳤다.
그 눈에 흐르는건 많은 싸움을 함께 해 온 파트너 힐러에게로의 원망이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백오는 여기에 자신이 남아있는게 아무 도움도 안된다고 결정지어버렸고, 가루렌이 자리를 비운 지금 백오는 모든 서류에 스스로 인장을 찍을 수 있었다.
아무도 백오를 막을 수 없었다.

"그게 바로 이 부대의 문제야. 나는 연성부대를 올바르게 이끌 책임이 있어. 모두는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해나가는 힘을 길러야해."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게 말이지..
툭툭 담뱃재를 털어내며 아르가유라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니까 너의 뒤를 이을 사람도 안 뽑고 가는 건가?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될 뿐이니까.."

백오는 이 부대의 부부대장이라는 직책의 존재의의에 의문을 표했다.
원래부터가 서로 돕기 위해서 만들어진 부대에 권위자가 필요한지, 정리 뿐이라면 대장 한명으로도 충분하다.
백오는 서기 정도로 밖에 할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 토론을 하든 투표를 하든. 서로 돕기 위해서라면 함께 생각해야했어. 나 혼자 해결하려한 결과가 이거야. 그렇다면 차라리 없어져 버리는게 낫잖아?"

백오는 짐을 챙겨들고 일어섰다.
자신의 답에 납득이 갔다면 좋겠지만 여전히 아르가유라 빼고는 당장이라도 붙잡고 싶어보였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이 없어져도 서서히 괜찮아질 것이다.
백오가 프마언니에게 그랬듯이.




프피스토의 변이 전 존재인 프마의 무덤이란 존재 할 수 없었다.
공식적으로라도 연성부대는 프피스토와 프마의 공통존재에 부정을 표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프마는 행방불명 처리이다.
죽은게 아니니 무덤이 있을리가.

"안녕, 백오. 오늘 날씨가 좋지?"

하지만 백오는 몰래 프피스토의 뿔 두개를 훔쳐내었다.
그 장소에 있던 파티원들조차 모르게.

"안녕 너굴씨. 그러게, 햇빛이 좀 따가울정도야."

디리링
하프를 연주라는 체셔쿤의 옆에 백오가 앉았다.
그 손에는 하늘색의 작은 꽃들을 엮은 꽃다발이 있었다.

"나는 백오가 떠나는걸 오히려 좋다고 보고 있어."

하프에서 흐르는 선율에 귀를 기울이던 백오가 깜짝 놀라 손에 들고있던 꽃다발을 놓치곤 체셔쿤을 바라보았다.
그때의 우울해하던 체셔쿤은 지금은 매우 편안해보였다.

"너는 원래 어디에 묶이는걸 싫어하잖아. 그리고 모험을 좋아하지, 서류로 가득찬 집무실은 적성엔 맞는지 몰라도 네가 원하는건 아니었어."

작고 귀여운 꽃들이 마치 프마같은 꽃다발을 집어들어 이름없는 묘비 앞에 놓아준 체셔쿤이 조금 단정짓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맞아. 난 이런 자리 원하지 않았어. 그리고 무엇에도 붙들리지 않는 자유를 원했지.. 누군가를 지키지도 못하는 직책따위 필요없었다구.."

프피스토의 등장부터 지금까지 자그마치 1년동안이나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백오는 진정한 의미로 프마를 보내주고 있었다.

"누군가를 속이지 않으면 구할 기회조차 없다니 엄청나게 부자유스런 자리잖아. 그런게 존재할 의미가 있어?! 이미 뒤틀려서 부대를 만든 의미조차 바래버렸었다구."

"맞아. 부대를 위해 부대원이 필요하게 된 시점에서 잘못됐지."

엉엉 우는 백오의 등을 토닥이며 체셔쿤이 위로하였다.
자신조차 이 작은 등의 짐이었을테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니까 이제, 네가 원하는데로 날아가. 뒤는 생각하지 말고."

체셔쿤 나름의 있는 힘껏의 응원이었다.


"이걸로 정말 괜찮겠어요? 정말 소중하게 여기던 장소잖아요."

담하온이 걱정스럽게 백오의 얼굴을 보았다.
우는 모습은 처음이어서 체셔쿤이 백오를 넘겨주었을때 담하온은 안절부절 못하며 받아들어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고 반복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걸로 괜찮아요.. 이제 제가 없어도 그곳은 괜찮으니까.. 저는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거에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닌 내가 바라는 곳으로.

그 말에 납득이 간 담하온은 싱긋 웃고는 자신이 몰랐던 울보 언약자를 안아올린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오가 바라는 곳에 그녀의 행복이 있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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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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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인공의 행차시네. 백오 목소리가 너무 컸던 모양이야."

그래도 필요했던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르의 말에 질책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사실을 서술했을뿐의 아르의 말과 함께 모두는 긴장했다.

시커먼 독기가 가득한 핏물을 뚝뚝 흘리는 프피스토는 기괴하게 씨익 웃었다.
진한 요기가 프피스토의 모습을 왜곡할만큼 흘러넘치는 모습은 이것이 결국은 재앙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는걸 보여주고 있었다.

"어서와. 기다리고 있었어. 체셔도 백오도 렌도 모두 다 어디 다친데는 없구나."

요기가 섞여 파장공격과도 같은 목소리가 모두를 뒤흔들었다.
요마가.. 프피스토가.. 이성은 물론 기억까지 가졌다는건..

"백오,렌,체셔 듣지마! 요마가 매혹과 혼란기술을 쓸수도 있다는건 다 아는 사실이잖아!"

여우가 프피스토의 시선을 본인에게 돌리기 위해서 도발을 쓰며 말하였다.

"맞아.. 저건 매혹. 모두의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야. 넘어가지마!"

담하온이 그 뒤를 이어 도끼를 번쩍 들고 달려가며 소리쳤다.

"저렇게 요기가 넘쳐흐르는데 뭘 멍때리는거야? 그러다 혼란걸려서 죽기라도 하면 난 딜 1위라서 불만없지만-"

에크네페가 애써 개구진 미소를 보이며 창을 들고 달려갔다.

"뭐, 한번쯤 싸워보고 싶은 상대였어. 대장이나 백오 때문에 말싸움정도로 끝냈는데.. 좋은 기회네?"

흑마문을 깔며 아르가 씨익 웃었다.

"이건.. 내 의무이자.. 마지막 전별 인사니까."

체셔쿤이 활을 당기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 전개전술도 할 틈이 없다니 너무한거 아닌가요?"

느르흐가 투덜대며 적은 시간 극대를 띄워보겠다고 고무격려를 걸고 있었다.

"비록 나이트나 암흑기사는 아니지만.. 지키겠어..!"

가루렌이 각오를 다졌다.

"프마언니.. 내가 책임지고 끝을 내줄게."

백오는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지팡이를 휘둘러 스톤라스킨을 걸며 프피스토를 노려보았다.

이제껏 한번도 향해질 일이 없던 백오의 냉혹한 눈을 보고 프피스토는 이 상황의 이상함을 알게 된거 같았다.
느껴지는 사악한 기운과는 다르게 다소 천진난만함이 포함된 웃음에도 그런 의아함이 드러나고 있었다.

"모두, 왜 그래..? 주변의 요마 때문이야? 이것들이 풀려날까봐 그러는거야?"

프피스토의 펼친 팔 뒤에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여기를 위협하는 지옥견이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절규를 지를 것 같은 망령과 짙은 비웃음을 띈 서큐버스가 있었다. 진한 독기를 풍기는 살덩어리, 백눈깔이가 있었다.

그 뒤로도 보이드에서 이쪽으로 넘어오려는 수많은 가고일과 마물이 살기등등한 시선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이것들이 모두를 공격할까봐 그러는거구나. 괜찮아! 자, 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얘들은 내 말을 잘들어! 봐봐.."

당장이라도 뛰쳐나와 공격하려던 지옥견이 내밀어진 프피스토의 손을 핥고 있었다.
분명 방금까지 보이던 흉포함은 없었다.

"어라.. 그런데 왜지? 이녀석들 분명.. 분명 어디선가 봤어..응..?"

한손으로 지옥견을 어르던 프피스토가 문득 의아함을 느꼈는지 머리를 긁으려다가 딱딱하게 돋아난 염소같은 뿔에 손을 부딪히곤 표정이 굳었다.

"어라..뭐지? 뭐... 잠깐 이 녀석들 보이드의 요마잖아.. 왜 날 따르는거야..? 왜.. 나 뿔이..흐윽...윽...으아아아!!"

얼굴 가득 의아함을 담던 프피스토가 돌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표정을 싸하게 굳힌 여우가 방패와 검을 들어올렸다.

"내 눈.. 아파아아악! 나는 모두를 지키려고했는데애애!!"

프피스토의 절망으로 절규가 보이드의 요기를 더욱 진하게 풍기자 여우가 방패를 던지고 뛰쳐나갔다.

"어째서..! 어째서! 요마.. 요마가 나쁜거야.."

퐈앙!

강렬하게 터진 빛덩어리에 붉디 붉어 검게까지 느껴지는 프피스토의 눈이 향한다.
그 눈에 담겨있는 것은 이지가 아닌 증오와 분노 뿐.. 무엇이 계기인진 모르겠지만 아까까지의 이성이 남아있던 프마는 이제 없다고 정면으로 마주대하고있는 여우는 판단했다.

"갑자기 출발이라니 너무하네요. 마인의 진혼곡을 부를 시간 정도는 주시죠."

갑작스런 상황변화 때문이란건 알지만 체셔구리가 불평을 늘어뜨렸다.
찡그린 표정과 다르게 그 손이 빠르게 마인의 진혼곡을 연주하였다.

번뜩 프피스토가 여우를 향하던 증오깊은 눈을 흐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어..어. 애기. 아직 애기를 소환하지 못했는데.. 너굴이가 마인을 연주했는데.."

요마를 소환하는데 통상의 마법서는 전혀 필요가 없었을것이다.
무의식이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이미 비어있는 옆구리의 책을 더듬어 찾느라 프피스토의 움직임이 잠시 흐트러졌다.

"역시 기억이 남아있는거 아님까!"

칼을 휘두르던 가루렌이 확인차 캐스터에게 물어보았다.
이러한 지식은 몸싸움에 자신있는 근딜보단 캐스터가 자신있는 종목일것이다.

"보이는대로겠지. 기억이 남아있긴 하지만 조금 혼동하는걸까? 뭐, 요마가 되는 과정에 훼손이 되었을수도 있고.. 아니면 그당시 생각한 감정이 극단화 된걸수도 있지."

지키기 위해 요마가 되어 도리어 침입하는 것을 모두 배제하게 될수록 융통성이 없는 학문이다.
게다가 본인에게 적용할것도 아닌 누군가를 음모에 빠뜨리기만을 위한 방법이었을테니 배려가 담겨있을리 없는 난폭한 수단.
그곳으로인한 부작용 한둘쯤은 예상할 수 있는 범위였다.

"으으으..백오..렌.. 체셔.. 요마가..요마가..!"

보라색의 칙칙한 안개가 프피스토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독과도 같이 느껴지는 색깔에 백오와 느르흐는 당장이라도 디버프를 해제하려고 무기를 들었다.

"소용없어 이거 풀리지않아..! 디버프는 아닌거같아.."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광역대미지에 백오는 메디카라를 외치며 상황을 분석하였다.

"그냥 공격기라면 바이오라가 아닐까? 요마가 되었어도 소환사가 아니게 된건 아니니까.."

느르흐는 백오의 마나 압박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지 불요불굴을 써가며 프피스토를 주시했다.
만약 이 앞으로 오는 공격들이 전부 소환사가 쓰는 기술이라면 이곳에선 느르흐가 가장 잘 알것이다.

"몬스터가.. 이렇게 많이.. 어떻게하면.."

괴로워하며 고개를 휘휘 젖는 프피스토의 눈에서 검붉은 액체가 눈물처럼 뚝뚝 떨어져내려 메마른 다날란의 땅에 요기와 함께 자국을 남기고 푸르지만 어딘가 보랏빞이 섞인 장판으로 나타났다.

"쉐도우 플레어..! 모두 저 장판을 장시간 밟으면 안돼!"

느르흐는 기염법을 외치다가 놀라서 모두에게 충고했다.
하지만 근처 일대가 전부 파랗게 물들어서 에크네페도 가루렌도 물러설 순 없었다.
소환사인 적의 특성상 전투 시간을 오래 끌수록 힘들어질 뿐이다.

"미안! 물러설 수 없어! 힐 조금만 더 빡빡하게 넣어줘!"

여우는 방패로 프피스토가 휘두르는 손톱을 막으면서 백오에게 사과했다.
프피스토의 뒤에 몰려있는 요마는 프피스토를 중심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서 여우가 자리를 옮긴다면 주박이 풀려나 공격해올지도 몰랐다.

"그렇게 말 안해도 알고 있다고!"

백오의 자존심에 부탁하고 싶지않았지만 이대로는 음유시인의 현자의 담시에 기대야 할지도 몰랐다.
모두를 압박해오는 지속딜은 기세를 더해가고 있었다.

"으으..우우우....아아아악!"

점점 이성을 잃어가는지 이제 프피스토의 입에서는 언어라고 칭해야할 의미있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괴로워 허덕이는 목소리가 확실히 대미지를 받고있다는걸 알려줄 뿐이었다.

"소환사에게 이성을 빼앗으면 제대로 힘을 발휘못하는건 당연하지.. 오히려 약화한거나 마찬가지야."

체셔구리가 날카로운 눈으로 그런 프피스토를 노려보았다.
여전히 뚝뚝 흘리는 검붉은 액체는 요기를 띄고 있었지만 쉐도우 플레어는 사라져버렸다.
힐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는지 백오가 프피스토를 향해 에어로가를 외치는게 보였다.

"이건..! 조심해요! 요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담하온이 서둘러 힐어글에 끌려가는 지옥견의 머리에 도끼를 휘두르며 말했다.
머리를 움켜쥐고 웅크린 프피스토의 뒤에서 요마들이 들끓어올랐다.
대미지를 입은 프피스토와 함께 요기는 줄어들었을텐데 요마는 오히려 이쪽을 향해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거기를 맡아줘! 으윽.. 무슨 팔힘이 이렇게 쎄!"

마법은 쓸 수 없게 된 모양이지만 불끈 솟아오른 푸른 힘줄과 날카로운 손톱이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방패를 할퀴어오는 힘은 확실히 강해져있었다.
게다가 기분탓인지 거친 숨결이 내뿜어지는 입에선 송곳니가 길어지고 있었다.

"느르흐 부탱쪽을 맡아줘! 딜은 적당히 하고!"

요마들이 쏟아져 나오자마자 바이오라 걸기 바쁜 느르흐에게 불끈 화가 난 백오가 소리치곤 여우에게 스톤스킨을 감기 시작했다.
으르르소리가 들려오는게 심상치 않아 미리 대비를 해본것이었다.

"카아악!"

프피스토의 입에서 화르륵 불길이 쏟아져나왔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여우가 눈을 찌푸렸지만 다행히 스톤스킨이 늦지않았는지 돌조각이 흩어지면서 대미지를 경감시켰다.

"좀 더 조심하라고 바보야!"

무사히 넘겨낸것에 흥분한 백오가 여우를 타박했다.
귀를 번쩍 치켜든게 완전히 전투에 취해 날카로워져있는 모양새였다.

"알았다고! 나참.. 갑자기 불을 뿜을 줄 누가 알았냐고.."

겉모습이 드래곤이라거나 괴조라거나 했다면 방심하지 않았을테지만 상대가 프마라서 불을 뿜는다는건 예상치 못 한 공격이었다.
뿔같은 외형적인것 뿐 아니라 속에있는 내장까지 서서히 요마화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다행히 몸에 익숙치 않은 다른 수단을 쓰기 때문인지 불을 뿜을때에 프피스토는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숨을 들이키는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이 요마들.. 전부 망자의 궁전에서 보이던 녀석들이에요!"

많은 요마들을 상대하던 담하온이 외쳤다.
갑작스레 덥쳐올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으나 확실히 슈가 많은것뿐 망자의 궁전에 떠돌던 몬스터였다.
프피스토가 요마화 한 장소를 생각하면 이상할 것은 없었으나 보이드 요계에서 소환된 것이 아니라면 이 기분 나쁠 정도의 보랏빛 요기는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

"기세에 비해 약해빠진 녀석들이잖아? 망자의 궁전 밖이라면 우리가 훨씬 쎄다고."

그저그런 몬스터들은 망자의 궁전이라는 특수한 장소가 아닌 밖에서는 모험자들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광역범위 공격에는 취약한편인 에크네페는 영 힘쓸것도 없이 스러져가는 몬스터들에게 몹시 불만에 찬 신음을 냈다.
화살비와 화염마법이 마른 대지를 뒤덮을때마다 무서울수록 몰려들던 몬스터의 기세가 죽고 프피스토의 뒤에서 노려보던 무리는 티끌이 되어 사라져갔다.

"크르흐흐흑... 아파... 왜..?"

돌연 프피스토의 격노에 찼던 표정이 일변해 울것처럼 찡그려졌다.
주변을 덮은 보랏빛기운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해. 백오, 느르흐 조심하도록해!"

활시위를 당기던 체셔쿤이 외쳤다.
점점 요기의 구름은 거두어져가 사람들의 기감을  어지럽히던 것들이 사라지자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보랏빛으로 물들던 요기가 어디로 사라지고 있는지를.

"왜..나를 공격하는거야..? 나는 모두를 지키려고 했을 뿐인데.."

우두둑...뚜둑..

프피스토의 구부러진 작은 등 위로 소름끼치는 검은 무언가가 솟아 오르고 있었다.
잘 다듬어진 칼날들 같은 칠흑의 검은 깃털들의 표면에 검붉은 방울이 한줄기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어째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아무도 죽이지 않았잖아!"

촤악!

활짝 펼쳐진 새카만 날개가 프피스토의 몸을 점차 공중읋 띄웠다.
오른쪽눈은 여전히 재생되지도 않고 피눈물을 흘리는데 그 몸에서 흐르는 강대한 힘은 쓸데없는 낭비는 필요없다는듯 작은몸에 날개와 꼬리를 돋게 하였다.

"요기는 보이드같은데서 나온게 아니었던거야.. 그건.. 그건 프피스토가 아직 인간이어서 받아들이지 못했던 힘의 잔재..!"

상황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챈 아르가유라가 경악하여 외친다.
완벽하게 변이를 일으킨 프피스토의 주변에는 한점의 요기도 남지않고 모두 힘의 주인에게 흡수되었다.
진정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이성을 되찾은 프피스토는 그전까지 힘기술은 전부 거짓말이었던것처럼 다시 소환사의 힘을 꺼내쓰기 시작했다.
악질적이게도 소환수를 대체하기 위해 나타난 검은 그림자형체의 에기들은 망자의 궁전에서 빠져나온 졸개들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요마로 변함으로써 일개 소환사라는 힘의 한계를 깨버린 프피스토는 변질된 에테르의 애기들을 소환해낸것이다.

"완전히 다른 힘은 아니야. 봐봐 생김새가 기분나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가루다나 타이탄, 이프리트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형태가 여기저기 이질적으로 찌부러졌어도 확실히 본질적특성이 달라진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자연히 무엇부터 처리해야하는지는 정해져있었다.

"가루다에기부터야! 악화라도 써버리면 지금 이상으로 힐러들의 부담이 늘어날거야! 타이탄에기는 내가 맡을게."

여우가 타이탄에기에게로 방패를 던지며 뛰어갔다.
듬직한 체구를 하고 있는 타이탄에기는 체력이야말로 제일 많을테지만 그 몸집으로부터 나타나듯 탱커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죽이는데에 오래걸리지만 특별히 높은 공격력을 가지고있지는 않다는 말이었다.

"그럼 이프리트에기는 제가..!"

근접공격의 대가 이프리트에기가 힐어글에 끌려 힐러를 공격하기라도 하면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힐 가능성이 높았다.
담하온은 이프리트 에기를 끌고 힐러진이 모여있는 가운데에서 멀리 떨어졌다.

"프피스토가 무언가 큰 기술을 준비하고 있는거 같아. 최대한 빨리 모든 에기를 제거해야할거야."

탱커 두명에게 리제네를 걸어주며 백오가 추측하였다.
공중에 떠서 다가오지 않는 프피스토의 눈에는 격렬한 증오의 불길이 불타고있었다.
에기와는 따로 소환사도 공격마법을 쓰는게 당연한 그들의 전투방식이다.
가만히 지켜만보는것엔 마땅히 그럴 이유가 있을것이다.

"우앗! 저 푸르스름한 환영은 뭐야..? 나만 보이는건 아니지?"

에크네페가 화들짝 놀라 창과 함께 꼬리까지 치켜들었다.
그 말과 같이 프피스토의 등뒤로 푸르스름한 기운이 솟아오르고있었다. 마치.. 용의 날개와도 같은 형상을 띄고서.

"바하...무트..? 요기에다 바하무트 에테르까지 다루고있다는거야? 너무 불공평한데!"

느르흐가 바닥에 발을 쿵 구르고선 소리쳤다.
무자비한 힘의 파동이 여기까지 전해지는듯 지속대미지가 중첩되어져간다.
가루다에기는 광범위 바람속성 마법을 펼치고 얼마안돼 소멸했지만 백오는 지속대미지가 중첩되어 1초가 억겁처럼 느껴질 정도인 지금 상황에 이를 갈았다.
잠시라도 한눈을 판다면 누군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은 점점 백오를 피로하게 만들고있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요! 타이탄에기의 공격 대미지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구요!"



이마에서 흐르는 한줄기 식은땀도 미쳐 닦지 못한 채 담하온이 소리쳤다. 그녀가 상대하고 있는 이프리트 에기도 장판을 깔아 시급한 처리가 요구되긴 했으나 여유가 있었다면 여우가 맡은 타이탄에기는 그 이름답게 여우에게 물리대미지저항 감소 디버프를 중첩시키고 있었다.

"여차하면 교대해야할지도 모르겠는데? 이거.. 상당히 아파."

깡!
방패로 공격을 막으면서 여우가 냉정히 말했다.
비스마르크와는 다른 경우지만 서로 에기를 바꿔 상대하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즉석결단이 여우가 헤쳐온 전장을 말해주었다.

여우에게 물리저항감소가 3중첩 되자마자 서브탱커와 메인탱커는 눈을 마주치더니 한번 고개를 끄덕하고 서로의 상대에게 도발을 날렸다.
딜러를 배려한 모양인지 스쳐지나 자리를 바꾸는 모습이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었다.

"더이상 장판이 깔리면 서 있을 자리가 곤란해. 이프리트 에기부터 노려!"

벌써 2개나 깔린 장판을 양옆으로 두고 여우가 소리쳤다.
정면으로 화염을 발사하는 이프리트를 함부로 끌고 이동할 수도 없어서 내심 마음이 급했다.

"알고있어! 으으.. 바닥에 용암장판 조심해!"

에크네페가 훅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열기에 신음을 흘렸다. 찌릿찌릿할정도의 열기는 그 자체로 대미지를 줬다.

"이프리트토벌전에서 나오던 방식이야! 한번으로 안끝날거야 뛰어!"

갑자기 땅이 갈라진것처럼 쩍 벌어지는 이펙트를 눈치챈 백오가 휘두르던 지팡이를 멈추고 그 자리를 피하며 말했다.
베이스가 이프리트여서인지 성가신 스킬을 쓰기 시작했다.
불장판처럼 장시간 유지되는건 아니고 일회성이었지만 3연속으로 덮쳐오는 공격은 잠시동안 힐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으아악 불요불굴! 성전은 또 왜 안꺼져!!"

느르흐가 허둥지둥 기염법캐스팅을 캔슬하고 밀린 힐업을 보충하였다.
다행히 늦지 않은 모양이지만 상당히 당황한 모양인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의..다..! 좋아!"

이프리트에기가 소멸함과 동시에 여우가 다시 타이탄에기를 도발로 끌어들였다.
이미 물리저항감소가 없어진 여우에게 타이탄에기의 물리공격은 가벼운것들이었다.

그때 갑자기 타이탄에기가 손을 번쩍 지켜들었다.
불길하게 선이 얽히고 설킨 직선의 장판은 모두에게 친숙한 그것이었다.
야만신 타이탄급의 힘은 없는지 두줄밖에 되지 않았지만 하필이면 점프 타이밍이었던 가여운 용기사가 절규했다.

"어째서 에기 주제에 산사태를 쓰는거야?!"

울상인 목소리와 함께 에크네페가 밖과 전투장소를 차단하는 보라장막에 닿았다.
흉흉한 색깔의 보라장막은 순식간에 죽음에 이를 대미지를 가해왔다.

"다행히 밖과 이곳을 단절하는 용도인지 부활은 가능한거 같아. 내가 부활시킬게."

"부탁해."

어떤의미로 매우 흔한 사태였으므로 힐러 두명은 냉정한 얼굴로 사태를 처리했다.
한치도 방심할 수 없을텐데 무언가 평소와 같아서 백오는 조금 웃어버렸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 처리했네.. 하지만 저쪽도 준비가 끝난모양이야."

아르가유라가 정면에서 이쪽을 노려보는 프피스토를 보며 말하였다.
보다 형태가 명확해진 푸른 날개는 원래있던 검은 깃털날개와 함께 프피스토의 존재감을 더 크게 만들었다.
그냥 인간일 때보다 힘의 수용능력이 월등해진 프피스토는 정말 그 몸에 바하무트 자체를 융합시킨것과 같았다.
흐릿한 푸른형체가 아닌 그 몸에 직접 강림한 강대한 힘이 느껴져왔다.

"크아아아! 용서 할 수 없어어어!"

우우웅
주변이 저릿하게 힘의 분류를 예감시켜온다.
얼마나 강력한 공격이 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백오와 느르흐는 최대한 대비를 했다.
아직 대처방법도 몰랐던 에기들에 시간을 너무 끌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주 빠르게 처리해서 별거아닌 대미지가 들어올지도 모른다.
이제와서 미지의 영역이란것이 모두에게 공포감을 주고 있었다.

아크몬

번뜩 보인 시전바가 어째선지 백오에게 아주 싫은 예감을 주었다.
소환사에게 아크몬? 그것은..드래곤의...
우리는 준비할 시간을 너무 줘버린걸지도 모른다.
요기는 물론이고..프피스토가 용의 힘을 받아들일 그릇을 만들어낼 정도로...

"위험해! 비켜어!!"

누구보다 그 변화의 모습들을 같이 봐버린 여우가 뒤늦게 눈치채고 근처에있던 백오를 밀쳐냈다.
딱히 누구라고 생각한것도 아니고 해낸 보호행동은 이 메마른땅에 백오와 프피스토만을 남게 만들었다.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기분나쁜 포자가 날리던 동굴안이 텅비어 완전히 다른공간처럼 보였다.
벽면이 파헤쳐져 흑요석과도 같이 검푸른 암석이 드러난 이곳은 마치 괴물의 위장속같았다.
혹은..별하나 뜨지않은 암흑같은 밤같았다..

"우우우아악!! 아파아아아악!"

커헉.
프피스토가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요기와 드래곤의 에테르라는 전혀 다른 힘을 한번에 다룬 그 몸은 곡에서부터 갈기갈기 찢겨 4개의 날개는 힘을 잃고 축쳐져 프피스토는 바닥에 쾅하고 떨어져내렸다.
그리고 그 소리에 백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믿고 의지하던 동료들이 한자리에 모여 죽어있었다.

믿고 의지했던 프마언니의 잔재가 눈앞에 힘을 잃고 나동그라져있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힐러 한명밖에 안남은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힘을 잃었데도 금새 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야만신과 단한명의 힐러.
하지만 백오에게 이것은 기회였다.
아무도. 아무도 이 무거운것을 짊어지자 않아도 되었다.
그래, 이렇게 만들어버린 자신을 제외하고.

"프마언니. 나 여기 오기 전부터, 사실 프마언니가 이성을 가지고 있을거라고 예상했었어."

"흐..아?"

만면에 생긋 웃음을 띄운 백마도사가 지팡이를 빙글 한바튀 돌렸다.
휘오오 바람소리가 커지며 프피스토 주위를 감쌓다.

"화살을 쏘고 눈을 질끈 감아버린 너굴언니랑 다르게 나는 바로 프마언니를 붙잡으려고 절벽으로 달려갔는걸? 그 아래를 나는 봐버린거지."

"어..어째서..그럼...."

절벽바닥에 떨어졌어도 눈 한쪽을 제외하면 그다지 큰 부상은 아니었다.
힐러의 눈으로 본 백오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떨어질때의 안심한듯한 표정..그것은 분명..

"사람들는 언제나 내가 효율적인걸 선택한다고 생각하지. 그리고 공정하고 정의를 추구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실제는 어때? 나는 친한사람만 아니라면 누가 죽든 상관없고, 야비하고 잔인한 사람이야. 의뢰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살릴 수 있었던 딜러를 포기한 적도 많아."

"배...ㄱ오.."

"그리고 야비한 백오는 모두가 위험에 빠지는것보다 프마언니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데 중시했어. 모두를 위해 화살을 쏜 너굴언니에겐 미안하지만.."

그게 바로 내가 책임져야 할 일.

그 마음속처럼 시커먼 돌덩어리들이 날카롭게 벼려져 백오의 머리위에 모여갔다.

몸에 맡지않는 힘을 쓴 프피스토는 그저 그것을 눈앞에 두고 한방울 피눈물이 아닌 마음의 비를 흘렸다.

돌덩어리가 그 머리를 노렸을때.

백오의 착각이 아니라면 프피스토는 이미 눈을 감고 죽음을 받아들이고있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보이지 않게 꾹 다문 얼굴은 뿔만 아니라면 백오가 좋아했던 프마언니의 얼굴 그대로였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돌조각이 박힌 프피스토는 프마를 알던 사람들도 그 존재가 어디서 비롯된지는 알 수 없을것이다.
이걸로 더이상 연성부대를 압박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이제 다시는 프마언니를 볼 수 없을것이다.
추억할 무덤도 만들 수 없겠지.
백오는 적어도 거기에 프마언니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싶었다.

휙 휘두른 지팡이에서 쐐도한 바람마법이 프피스토의 양뿔을 베어냈다.
이정도라면 전리품이라고 둘러댈 수 있을것이었다.

"자, 그럼이제 모두를 살려 돌아갈까."

이기심이 아니었더라면 모두가 프피스토의 죽음과 함께 프마언니와 작별 할 수 있었겠지.
백오는 모두가 그 뇌리속에서 깔끔하게 프마언니에 대한 일을 완료하는걸 바라지 않았다.
언제나 미완으로.. 그 마음속에 잔생채기로 남길 바랬다.
이미 3단 리미트브레이크는 차 있었다.
살리지 않은건 백오의 모두에게로의 기만이었다.

멋대로인 책임감 뿐 아니라 이런 욕심투성이 속셈이라니 자신은 절대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백오는 스스로에게 자조하며 기도했다.
부디 이 모든 사실을 알게되면 날 용서하지 않기를.
그 주변을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하얀깃털들이 밝은 빛과 함께 축복처럼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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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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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날씨는 사막의 도시 다날란에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쨍쨍한 햇볓에 그을리던 바위언덕들이 보랏빛요기에 휩싸여 마치 이계라도 된듯한 환경을 갖추고있었다.
뭐, 틀린말은 아니었다.
지금부터 싸울 대상은 유명한 소환사로, 타락한 이후에는 보이드의 요마들이 이쪽으로 넘어오는 게이트같은 역할을 하게 되 버렸으니까.
지금 이곳은 보이드라고해도 무방하다.

"정말, 이 방법 밖에 없는 거야? 억지로 변형된거라면 다시 돌아올 방법도 있지 않은거냐고!"

바짝 치켜올라간 꼬리가 평소에는 담담하던 백오가 얼마나 흥분해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비교적 어린나이에 모험가가 된 백오에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백오가 에오르제아에 오게 되었던 계기인 가루렌은 그것을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친한사이였던 것을 여기있는 누구도 모르지 않았다.

"설령 그런 방법이 있더라도 찾을 시간이 없어. 우리는 책임을 져야해. 제일 잘 알고있잖아? 부대장."

홀로 창가에 앉아 전투를 준비하던 아르가 속삭이듯 말하였다.
일순간에 가라앉는 백오의 귀와 꼬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알고있어.. 알고있다구!"

연성부대는 너무 명성을 쌓아버렸다.
친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작은 규모의 부대로 시작한 이 부대는 친목을 위해 결성 되었으면서 야만족을 몇이라도 토벌할 정도로 커져버렸다.
그것이 눈에 거슬렸던거겠지.
무엇을 원했는지 부대의 일을 제일 잘 알고있는 백오는 알고 있었다.

"이건 견제야. 대장이나 부대장을 노리지 않은걸 보면 알수있지. 연성부대의 주요멤버이면서도 무너지진 않을 정도로만 타격을 주려던거겠지."

"거기에다 그 토벌을 우리에게 강제하다니.. 정말 악질적이군."

조용히 활을 정비하던 체셔쿤이 한숨처럼 내뱉은 말을 끝으로 모두 무기를 들고 일어섰다.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란것을 백오도 잘알고있었다.
잘 다듬어져 선명하게 은빛으로 빛나는 지팡이를 꽉 쥐면서 백오는 모두가 나간 연성부대 하우스를 휙 둘러보았다.

그날 아침에 급히 의뢰라면서 놔두고 간 프마언니의 책이 탁자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이딜샤이어의 장터에서 우연히 구한 고대서적이라면서 그토록 좋아했는데 끝까지 읽지 못하고 프마언니는 여기서 사라져버렸다.

"..내가 좀 더.. 부대를 잘 관리했어야 했는데.. 어째서 그런 함정에 걸려버린거야.."

프마언니가 요마의 피를 흡수해버릴 당시에 백오는 본직이 아닌 전사였다.
그것만으로도 백오는 강한편에 들었지만 돌발적인 상황에 대처가 가능했냐면, 그건 아니었다.
피투성이로 쓰러진 백오는 절벽으로 떨어져가는 프마언니에게 손을 뻗을 힘조차 없었다.

"다 나 때문이야.."

백오는 책을 덥썩 집어들었다.

"내가 해결해야해."

그 눈에는 죄책감과 격렬한 분노가 담겨있었다.
정말 상냥하고 착한 언니였는데.. 더 쓰다듬 받고 싶었는데..
적어도 그들의 손에 죽는건 안된다고 생각했다.

"프마언니를 편하게 만들어줄게."

내손으로.

부대원들은 프마언니를 매우 좋아했었다.
그들의 손에 피를 묻히는건 백오가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일이 이렇게 될때까지 방치해버린 자기 자신의 죄였다.
그 죄로 너굴언니는 프마언니에게 활을 쏠 수 밖에 없었다.
이 모든 사실이 손이 하얗게 질리도록, 입술에 피가나도록 백오를 압박하고 있었다.
반드시 마지막은 내 손으로.

"모두는 나의 잘못이야."

싸늘한 눈으로 백오는 부대집의 문을 닫았다.

.
.
.

"백오는 두고 가는게 어때? 대장."

벽너머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끊기자 아르가 가루렌에게 물었다.
확실히 평소의 냉정함이 사라진 백오는 위태로워보였다.
하지만, 연성부대에 빠질 수 없는 위치였다.

"안된다는걸 알잖슴까. 가혹하지만 저걸로 각오한거라고 생각함다. 백오의 대체는 없슴다."

연성부대에 힐러라곤 백오와 느르흐뿐이었다.
어떤 방법으로 상대가 공격해오는지 모르는 이상 힐러는 두명인게 좋았다.

"오히려 이게 끝을 맺기에 가장 좋을지도 모르죠. 이대로 놔두고 간다면 백오한테 이 일은 평생의 죄책감으로 남을거에요."

그리고 나에게도.

체셔쿤은 조용하게 다짐하듯 마음으로 되새겼다.
그때에 맞춘 한발의 화살로 체려쿤은 이미 지금의 프마를 다른 존재로 정의했다.
자신의 언약자이자 친우는 이미 사라졌다.
저건 그저 요마일뿐이다.

"그렇다고 저대로 놔둬? 뭐라도 다 부셔버리겠단 눈인걸. 토벌이 끝나면 배후는 전부 끝장나겠네."

한손으로 하품하며 나타난 여우는 친구의 표변한 모습에 쯧쯧 혀를 찼다.
뭐든 쌓고만 있으면 무너지는 법인데, 적당히 부대일을 나눠가지라고 했것만.

"다행인건 토벌한다는 방향에 이의는 없는거 같단거지. 저래봬도 판단은 확실히 하고 있는거야. 여기서 프마언니를 두둔하기라도 하면 연성부대는 이단으로 몰릴테니까."

그 뒤에서 에크네페가 튀어나왔다.
이번일에 도와줄 필요는 없다고 전했지만 개인적인 친분이지 부대 사이의 일은 아니라고 밀고 들어왔다.
백오 놀려먹는데에 1등공신이긴 하지만 그만큼 같이 다니는 일이 많은 여우였다.
그런 백오가 얼마나 프마언니를 따랐는지 모를리가 없었고 걱정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타부대의 일인데..하며 고민에 빠져있던 여우의 꼬리를 붙잡아 온건 에크네페였다.
힛부대도 연성부대도 아닌 친구의 일이라며 질질 끌고 오는 모습이 잠깐 연성부대의 음울한 분위기를 풀어준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것이다.

"이단? 우리가 한 일도 아니고 당한건데 왜 이단이에요?"

현상황을 잘 모르는 상습이는 당혹해선 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부대의 일이고 친하던 프마언니의 일이라고 준비하던 이번 토벌전 전투원들의 이야기를 염탐하러 왔다가 들켜 여기에 앉혀졌지만 아직 에오르제아에 익숙치 못한 상습이가 당황하는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원인이 뭐던간에 그쪽편으로 보여지면 안돼. 안그래도 우리는 위태로운 상황이니까. 힘을 축소시키고 싶다면 근사한 단어지, 이단은."

정말 악질이야.
아르의 푸념과 함께 새카만 요기가 넘실대듯 힘을 더했다.

"으윽.. 정말 독하네. 위치는 발견했어.. 그런데, 정말로 이 8명만으로 가는거야? 그다지 좁은 장소도 아니고 연합파티라도 문제없을텐데."

익숙치 않은 소환사의 소울크리스탈을 던져버리면서 텐더가 말했다.
소환사의 힘은 소환사가 더 잘 아는 법이다.
극만신에 익숙치는 않지만 돕고싶었던 텐더는 프마의 위치특정을 돕겠다고 손을 들었었다.

"고마워. 변질된 에테르라서 측정하기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해냈네."

살기등등한 눈으로 나갔던 백오가 한손으로 도끼를 들고 들어왔다.
한바탕 부대집 앞 나무인형에 화풀이를 하고 온것인지 꼬리끝까지 털이 바짝서고 송곳니는 날카로워져 있었다.
하지만 광폭화의 후유증을 남기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 눈은 침착하기 그지 없었다.

"전사로 가는건 아니지? 우리는 만전을 기해야해."

시간신의 찬미가를 읇조려주며 체셔쿤이 말하였다.
부족한 딜러자리를 채우기 위해 쌍검을 든 가루렌도 본직은 아니라지만 중요한 메인힐러 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

"그럴리가 없잖아. 나는 놀때랑 안놀때 정도는 구분하거든? 그냥.. 조금 답답한 기분을 풀려고 했을 뿐이야."

슬쩍 치켜든 지팡이와 함께 이프리트를 본뜬 새빨간 갑옷은 사라지고 그 얼굴을 까마귀가면으로 가린 백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서브탱커 자리는 하온님이 도와주기로 했어.."

그다지 탐탁치 않은 모습이었다.
이렇게 위험한 일에 도움을 청하고 싶진 않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이야기를 듣고 돕겠다고 나서주었다.
분명 엄청난 전력이 되겠지, 하지만 오지 않길 바랬는데.

"안녕하세요. 이미 다들 모여있었네요."

애써 연성부대의 침체를 지워보려는듯 밝게 웃어보이는 담하온을 보면서 백오는 그 앞에서 프마언니를 죽여야 한다는 것에 갑자기 부담감이 솟아올랐다.
항상 즐거운것만 같이 하길 바랬는데.
내가 동료였던 사람을 죽일 때에 과연 어떤 모습을 하는 걸까.

결과만 중시하던 백오에게 처음의 망설임이었다.

"자, 이제 다 모인것 같네.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있다는 보장은 없고 나도 한번 더는 못 할것같아. 어디까지나 학자니까 말이야.. 제촉하고 싶진 않지만 어서 출발하는게 좋을거야."

극심한 과부하에 망가져버린 에테르계측기를 우울하게 보면서 텐더가 말하였다.
빌렸던 물건이니 어떻게 변명해야할지 고민하는것 같았다.

"게다가 프마님은 본직이 소환사잖아? 역추적 정도는 가능할거라고. 설마라곤 생각하지만.. 이성까지 요마의 피에 잡아먹히지 않았다고 확증은 없으니까."

적극적으로 공격해 올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텐더는 연성부대원들에게 다짐시켰다.

"준비는 다 끝났지? 지금 가는 곳에 공략같은건 없어. 그리고 어떠한 정보도 없지. 하지만 끝은 하나야. 프마언니를 죽인다. 그것에 대해 각오가 없다면 지금 그만두는게 좋을거야."

백오는 위협을 섞어 파티원에게 말하였다.
전부 어떤 전장에서도 믿을만한 전우이지만 이번만은 특별했다.
실력만으론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러가는 것이다.

"뭐야, 백오. 내가 또 평소처럼 힐 하나도 안할거같아서 겁주는거야? 나도 할때는 한다고-."

그런거치곤 벌써 성전을 킨 파트너 힐러를 백오가 노려보았다.
그런 의미가 아닌걸 다 알고 있을텐데.

"에오르제아에 이런 일이 한두번도 아닌데, 뭘 걱정하고 그래?"

여우가 시시한듯 고개를 괴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맞아요. 물론 괴로운 일이긴 하지만.. 편하게 해주는 방법이기도 하잖아요..?"

긴장으로 빳빳히 굳은 백오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며 담하온이 말하였다.
주변도 잠깐 조용했던것뿐 어느새 손에 무기를 들고 농담을 하거나 떠들고 있었다.

일부러란걸 모르면 정말 이상한 부대일것이다.
아무도 우리가 동료를 죽이러 간다는건 모를만큼 웃음이 넘치고 있었다.
정말 시끄럽고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좋아. 이제 출발하자."

그러니까 백오는 거기에 응석부리기로 했다.
백오 자신이 힘든데 누군가를 챙길 여력은 없었기에 모두가 떠드는 와중에도 조용히 활을 다듬는 체셔구리를 모른척했다.
이것이 얼마나 자신의 책임을 방치하는것인지 앎에도 불구하고..


.
.


연성부대에 토벌하란 반강제 명이 내려오긴 했지만 사실 프피스토는 존재자체의 죄 이외에는 어떠한 죄도 짓지 않았다.
요기에 의해 불러모아지는 요마무리와 빨아드리는 어마어마한 에테르 이외에 어떤 해도 없는 요마를 울다하 사람들은 존재조차 모를것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요기가 흘러나온대도 참 느긋한 사람들이네."

"요기? 뭔가 기분나쁘긴한데.."

이질적인 힘에 표정을 찌뿌린 느르흐를 보면서 이러한 힘엔 서먹한 투사계열의 에크네페가 의아해했다.
아직 울다하 전체에 깔린 요기랑 별다른 밀도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텐더와 마찬가지로 소환사와 근본이 상통하는만큼 느르흐는 파티의 누구보다 일찍 깨달은 모양이었다.

"근데 왜 하필 울다하일까? 그것도 여기는.. 그다지 좋지 못한 끝이었는데."

에테르의 흔적을 추적해 모래의 집이 존재하전 저녁별 만에 도착한 모두는 이런 요기의 기운에도 여전히 장사 하고 있는 상인들을 보았다.
직접 시체를 수습한다는건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었고 그런것에 신경쓰지 않는다고해도 벽지의 이곳은 일부러 방문할 이유가 존재치 않는다면 보통 오지않는 곳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가는 방향은.. 그 칙칙하고 습기찬 동굴 안 아닌가? 그런한 장소에 어째서.."

걸으면서 고찰을 멈추지 않는 체셔구리의 목소리를 들으며 모두는 아무것도 변하지않은 주변을 살폈다.
전투가 일어난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은 좋은소식이자 모두에겐 나쁜소식이었다.

"프마는...내가 쏜 화살을 맞고 절벽에서 떨어졌어. 텐더님에게 추적을 부탁하기 전에 변질된 에테르의 흔적을 추출하기 위해 다시 간 절벽 아래에는 분명 대량의 피가 있었다."

"다행히 치유술이 강력해지진 않은 모양이네."

과거를 고찰하는 체셔구리의 말에 여우는 이것 다행이라고 적의 정보를 정리했다.
그렇다면 눈을 맞은 상처는 프피스토의 약점일것이다.

"다쳤다.. 그럼 왜 저런곳으로 간거지? 습한 환경은 상처에 좋지 않아."

목적이 불명해. 함정이라도 준비하는걸까?
이성이 있는 건가.
주민을 해치지않았다면 적의는 없다?

가설과 추측투성이의 고찰은 결론에 가까워질수록 모두의 마음에 커다란 돌덩어리를 내던지는것과 같았다.
무엇보다 주변의 환경이 증거였다.
적인 제국군조차 죽지 않고 정찰하고 있는 모습은 에테르 관측 결과가 아니라면 여기는 허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혹시.. 이성이 남아있다면.."

그땐 어떻게 할것임까..?

떨리는 목소리와 확장된 동공은 동료애가 깊은 가루렌의 동요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의 누구도 요기에 잡아먹힌 프피스토가 아직 시간이 지나지 않아 피해가 없었던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사역마도 아닌 요마가 사람에게  흉포함을 보이지 않은 사례는 없다.

"우리가.. 먼저 공격할 것임까..?"

결국은 우리가 죽이겠지만 아무도 공격해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프피스토를 상정하지 않았다.

"참 끝까지 바보같은 사람이네. 이성따위 놓아버렸다면 좋았을 텐데."

한탄이 섞인 아르의 말을 끝으로 모두의 의견은 일치했다.
프피스토는 몸과 에테르는 요마가 되버렸어도 이성만큼은 아직 잡아먹히지 않은 것이라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일 수 밖에 없다고.

"정말 끝까지 정떨어지는 녀석이야."


.
.
.

백오는 지극히 효율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동료애는 강함을 자부한다.
죽어도 부활 할 수 있는 에오르제아에서 스스로의 실수로 다쳐 죽기 직전의 딜러는 자연히 버려진다.
그것까지 멱살을 잡아올려 살려내는 무리한 힐업은 자주 주변에서 그럴필요 없다고 좀 더 비정해지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말하자면 백오는 요마에 잡아먹힌 프피스토를 돌려낼 방법을 찾아다녔었다.

정력과 요마의 힘은 상반되고 백마와 흑마의 전쟁역사만큼이나 기피되는 지식을 스스로 찾아 다니는 경험은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게다가 연성부대 대외적인 운영을 맡고 있는 백오가 집중적으로 마크되고 있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프마를 따라 가본곳이 처음인 이딜샤이어 장터의 고문서까지 전부 뒤진 끝에 만난 고블린은 굽신 거리며 백오에게 빌었었다.

"서로 거래로 맺어진 인연인만큼 그리 깊지는 않지만고브.. 그래도 같은 종족에게 박해받는 나에겐 친구였다고브."

귀를 잡아채진 경험 때문인지 짧은 팔을 뻗어 귀를 감싸안으면서도 그 고블린은 백오에게 간절히 바랬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들은 프피스토의 소문에 무서워하던 백오의 앞에 나타났다.

"너는 엄청 구두쇠라고 알고 있는데 애써 모은 책을 보여줘도 좋은거야?"

하나같이 금서지정에 가깝거나 금서인 요마에 관한 책들이었다.
펼치는것만으로 요마가 소환될거같은 소환서조차 있었다.

"상관없다고브. 이런건 팔지도 못하고 취미생활로 모은것뿐이다고브. 그러니까 꼭.."

하지만 그런 금서들조차도 프피스토를 돌려낼 방법은 없었다.
그러니까 이 파티에서 백오만큼은 이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에도 불구하고 목적을 잃지 않았다.
어쨋든 프피스토는 돌아올 방법이 없었다.
우리가 죽이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가 죽일 뿐..

"그게 뭐가 어쨋다고? 우린 죽여야만해.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이성이 있다는건 부가적인 사항이고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순 없다는거 알잖아."

백오가 큰 목소리로 어느새 주저않은 가루렌을 다그쳤다.
변하지 않는 현실에 바꿀 수 없는 과거, 지켜야 할 건 미래와 자신.
그리고 모두였다.
백오의 등에는 아주 무거운것들이 짊어져있었다.
거기에 무언가 하나가 추가되더라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시시한 동정으로 모두의 발목을 이끌 생각이야? 물론 동료였던 사람을 죽여야하는건 무섭고 힘든 일이지. 하지만 각오했잖아. 이제와서 무릎꿇는거야?"

이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백오의 펼친 팔 뒤에는 백오를 빼고 유일하게 태연해보이는 아르가유라나 뒤돌아서 표정은 안보이지만 무언갈 중얼거리며 여전히 고찰중인 체셔구리, 필사적으로 어떤거라도 좋으니 필요한 정보를 달라며 치유서를 뒤적이는 느르흐가 보였다.
대장이라는 이름 아래에 가루렌이 보호해야 할 동료들이었다.
이번 일이 실패하면 분명 연성부대는 해체되는건 당연하고 역적, 이단으로 몰려 평온한 일상은 과거의 꿈이 되겠지.

그리고 그 뒤로 안절부절 못하며 백오를 말려야하는지 고민중인 담하온, 무서운 표정으로 열변중인 에크네페와 미코테의 감정을 대변하는 꼬리조차 흔들지 않고 이야기하는 진지한 표정의 여우가 있었다.
친구를 돕는다고 찾아와준 가루렌의 소중한 지인들이었다.
부대간의 관계보단 친구라서 도우러왔다고 해줬지만 과정보단 언제나 결과인 냉혹함이 이러한 사실조차 덮어가려 이단까진 아니더라도 지탄을 받을것이다.

"힐러로써 사람 목숨가지고 효율을 따지라곤 하지 않겠어. 그런걸로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정말 그걸로 괜찮겠어?"

또 못지켜서 모험가를 그만둘 생각이야?
그렇게 후회하고 결국 다시 돌아왔으면서 다시 잘못을 반복할거야?

과거 한번 모험가를 그만뒀던 가루렌을 백오는 알고있다.
진심으로 후회하는 모습에 이 사람을 따라서 모험가가 될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더 잘못을 반복하는것은 백오는 용납 할 수 없었다.
이번에 희생될지 모르는 사람들은 백오가 모르는 누군가가 아닌 백오의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하.. 그렇슴다. 나에겐 지켜야 할 것들이 이렇게 많은걸 잠깐 잊어버렸슴다. 전부 제가 원해서 만든 관계였는데."

한순간이라도 전부 포기하면 안될까라고 생각해버렸다.
나이트였던만큼 튼튼한 몸이지만 마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지키기로했을때 그 마음도 철벽같아진다는 것을 백오는 알고 있다.

눈물을 벅벅 닦고 일어나는 가루렌의 손을 잡아주면서 백오는 진한 요기에 흠칫 반응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시뻘건 한쪽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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