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격렬한 전투로부터 1년, 야만신사상 사상 최소규모의 피해를 낸 프피스토의 존재는 이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무리도 아니었다.
프피스토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야만신이 된 기억을 가졌전 특이 케이스였기에 인적이 드문 축축한 동굴 안에 스스로릉 봉인했었기 때문이다.
비록 존재 자체가 위협을 주는 야만신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풀려난 요마가 한마리도 없었기에 프피스토가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그날의 일기예보 정도밖에 없었다.

"정말로 부대장은 떠나는거야? 대장도 은거해버렸는데 그럼 이 부대는 어떻게 돼?"

상습이가 불안한 눈으로 느르흐에게 물었다.
느르흐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꽤나 고참멤버이고 사정을 아는 인물임에도 느르흐는 앞으로가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허무 할 정도로 변함없는 에오르제아와는 다르게 연성부대는 프피스토 사건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백오의 분투와 증거인멸로 연성부대를 노린 누명은 무산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 사건으로 분명 이 부대에서 중요한것이 사라졌다.

"이를테면 신뢰라거나.. 그래, 부대의 존재 의의 자체에 의심이 가게 된 거겠지. 가엽게도 오래도록 묶여 있었으니까."

곰방대를 피며 아르가유라가 말했다.
요요하게 흩어지는 보랏빛연기에 과거를 회상하는지 조금 멍한 눈빛이 전의 아르가유라 같진 않아서 상습이는 조금 불안해졌다.
이러한 눈빛을 한 사람들은 전부 어딘가 사라지거나 완전히 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아르님도 모두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거에요. 여기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을텐데.. 불안감만 심고 있는거라구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걸 스스로도 아는 느르흐는 그나마 가능성이 있을 텐데도 방치하는 아르가유라에게 화를 냈다.
엉뚱한 화풀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러지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다.

"사람 마음은 결국 그 사람 본인의 거야.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해서 될 일이 아니지. 백오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체셔쿤이 떠나갈 때도 붙잡지 않았지."

묘지기가 되어 순수하게 연주의 기능 밖에 없는 하프를 든 체셔쿤은 이제 활과 화살을 들지 않는다.
그 입에서 흐르는 노랫소리는 이제 누군가를 애도하는 의미 이상을 가지지 않았다.

"너굴씨는 그걸로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해."

문을 열고 백오가 들어왔다.
아까까지 백오에 대해 이야기 하던 상습이와 느르흐가 깜짝 놀라 바라보았다.

"원래부터 낚시와 음악을 즐기던 사람이잖아. 우리야 이미 화살을 든 너굴씨가 처음이라지만 싸움을 좋아하는 모습은 아니었잖아?"

그리고 이미 체셔쿤이 프피스토의 한쪽 눈을 쏘는 그 때에 백오는 예감 했었다.

"그렇다면 백오는! 백오는 뭐 때문에 떠나는거야? 모두가 의지하고 있다는걸 알고 있잖아!"

느르흐가 외쳤다.
그 눈에 흐르는건 많은 싸움을 함께 해 온 파트너 힐러에게로의 원망이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백오는 여기에 자신이 남아있는게 아무 도움도 안된다고 결정지어버렸고, 가루렌이 자리를 비운 지금 백오는 모든 서류에 스스로 인장을 찍을 수 있었다.
아무도 백오를 막을 수 없었다.

"그게 바로 이 부대의 문제야. 나는 연성부대를 올바르게 이끌 책임이 있어. 모두는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해나가는 힘을 길러야해."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게 말이지..
툭툭 담뱃재를 털어내며 아르가유라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니까 너의 뒤를 이을 사람도 안 뽑고 가는 건가?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될 뿐이니까.."

백오는 이 부대의 부부대장이라는 직책의 존재의의에 의문을 표했다.
원래부터가 서로 돕기 위해서 만들어진 부대에 권위자가 필요한지, 정리 뿐이라면 대장 한명으로도 충분하다.
백오는 서기 정도로 밖에 할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 토론을 하든 투표를 하든. 서로 돕기 위해서라면 함께 생각해야했어. 나 혼자 해결하려한 결과가 이거야. 그렇다면 차라리 없어져 버리는게 낫잖아?"

백오는 짐을 챙겨들고 일어섰다.
자신의 답에 납득이 갔다면 좋겠지만 여전히 아르가유라 빼고는 당장이라도 붙잡고 싶어보였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이 없어져도 서서히 괜찮아질 것이다.
백오가 프마언니에게 그랬듯이.




프피스토의 변이 전 존재인 프마의 무덤이란 존재 할 수 없었다.
공식적으로라도 연성부대는 프피스토와 프마의 공통존재에 부정을 표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프마는 행방불명 처리이다.
죽은게 아니니 무덤이 있을리가.

"안녕, 백오. 오늘 날씨가 좋지?"

하지만 백오는 몰래 프피스토의 뿔 두개를 훔쳐내었다.
그 장소에 있던 파티원들조차 모르게.

"안녕 너굴씨. 그러게, 햇빛이 좀 따가울정도야."

디리링
하프를 연주라는 체셔쿤의 옆에 백오가 앉았다.
그 손에는 하늘색의 작은 꽃들을 엮은 꽃다발이 있었다.

"나는 백오가 떠나는걸 오히려 좋다고 보고 있어."

하프에서 흐르는 선율에 귀를 기울이던 백오가 깜짝 놀라 손에 들고있던 꽃다발을 놓치곤 체셔쿤을 바라보았다.
그때의 우울해하던 체셔쿤은 지금은 매우 편안해보였다.

"너는 원래 어디에 묶이는걸 싫어하잖아. 그리고 모험을 좋아하지, 서류로 가득찬 집무실은 적성엔 맞는지 몰라도 네가 원하는건 아니었어."

작고 귀여운 꽃들이 마치 프마같은 꽃다발을 집어들어 이름없는 묘비 앞에 놓아준 체셔쿤이 조금 단정짓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맞아. 난 이런 자리 원하지 않았어. 그리고 무엇에도 붙들리지 않는 자유를 원했지.. 누군가를 지키지도 못하는 직책따위 필요없었다구.."

프피스토의 등장부터 지금까지 자그마치 1년동안이나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백오는 진정한 의미로 프마를 보내주고 있었다.

"누군가를 속이지 않으면 구할 기회조차 없다니 엄청나게 부자유스런 자리잖아. 그런게 존재할 의미가 있어?! 이미 뒤틀려서 부대를 만든 의미조차 바래버렸었다구."

"맞아. 부대를 위해 부대원이 필요하게 된 시점에서 잘못됐지."

엉엉 우는 백오의 등을 토닥이며 체셔쿤이 위로하였다.
자신조차 이 작은 등의 짐이었을테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니까 이제, 네가 원하는데로 날아가. 뒤는 생각하지 말고."

체셔쿤 나름의 있는 힘껏의 응원이었다.


"이걸로 정말 괜찮겠어요? 정말 소중하게 여기던 장소잖아요."

담하온이 걱정스럽게 백오의 얼굴을 보았다.
우는 모습은 처음이어서 체셔쿤이 백오를 넘겨주었을때 담하온은 안절부절 못하며 받아들어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고 반복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걸로 괜찮아요.. 이제 제가 없어도 그곳은 괜찮으니까.. 저는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거에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닌 내가 바라는 곳으로.

그 말에 납득이 간 담하온은 싱긋 웃고는 자신이 몰랐던 울보 언약자를 안아올린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오가 바라는 곳에 그녀의 행복이 있기를 기도하며.

'파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완벽주의  (0) 2017.11.29
극 프피스토 토벌전 (하)  (0) 2017.07.15
극 프피스토 토벌전 (상)  (0) 2017.06.29
Posted by 백오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