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코로짱, 생각해 둔 건 있어? "
 " 아니, 없어. "
 " ... 엑? "
 " 그치만, 그 녀석이 어떤 거에 약한지 잘 알고 있으니까 문제없는 걸. "

츠루마키 코코로는 자존심이 강했다. 실패는 용납할 수 없고, 지는 건 더더욱 참을 수 없다.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고, 나름의 평범함을 좋아하지만 한 번 마음먹은 걸 밀고나가 끝내 이루도록 교육받았다.

그러니까, 코코로는 멈출 수 없었다. 멈추고 싶지 않았다. 내 목표는 결국 너의 웃음임을 인정했다.



.




커다란 문이 열리고 거대한 호화 극장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화려한 무대 위에서 밝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미카엘은 그저 서 있었다. 마왕을 토벌하러 가는 것처럼 위풍당당한 옷을 껴입은 우리들을 보았을 텐데도 미카엘은 미동도 없었다.

 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까만 곰 가면 속에서 무슨 얼굴을 하고 있는거야?

무대의 스포트라이트에 가까이 다가섰을 때 미카엘은 고개를 들어 이쪽을 주시했다. 어설픈 곰 가면이 웃고 있었다.

한참을 이쪽을 주시하던 미카엘이 고개를 기울였다. 아슬아슬히 걸쳐진 삐에로 모자가 기울었으나, 솜털 장갑이 요령좋게 캐치해 제 자리로 돌려 놓는다.

이번에야말로 내 턴이야, 미사키.

 "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인 걸, 미카엘. "

 " ... 응. 공주님은 나한테 도망쳐서 무사히 안전귀가 했잖아? 그런데 왜 다시 온거야? 모두의 품으로 돌아갔으니까 해피엔드ㅡ일텐데. "

 " 이상한 소문을 들었거든. "

 이곳은 화려한 스테이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동화같은 이야기, 주연은 이 곳에 있는 모두가 주연, 오로지 주연들을 위한 관객 없는 공연.

연극은 스테이지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 이 스마일 호에 잠입해 나를 납치해 모두를 놀라게 한 극악무도한 마왕이, 의문의 저주를 받아 마왕으로 변해버린 사람이었다는 말이야. "

 " 헤? ...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 걸~. 나는 처음부터 마왕이었어! "

 " 하지만, 하구미도 들었는걸! 미카엘이 사실 나랑 동갑의 여자아이였다는 거! "

하구미의 말에 미카엘은 그 어떤 대꾸도 못했다. 코코로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코코로는 알았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오쿠사와 미사키는 갑작스러운 애드리브에 약했다. 당신이 지난 3일동안 코스프레 카페에서 하염없이 카운터만 봤던 걸 모를리가.

 " 만약에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해도, 대체 어쩌려고? 난 지금 이렇게나 흉악하고 사납고 포악해. "

가면의 입모양을 손가락으로 따라 그린 미카엘이 끝내 입꼬리 끝을 점찍었다.

코코로가 한 발짝 내딛었다. 붉은 드레스가 허공을 나부꼈다. 미카엘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하얀 천조각이 발걸음을 따라 구겨졌다.
어떠한 감정에 물든 금안이 빛처럼 반짝였다. 그건 의지였고, 목표였으며, 그녀 그 자체였다.

 " 저주를 풀거야. "

 " ... ... "

 " 우리만 해피엔드인 이야기는 마음에 안 들어.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해피엔드 이야긴 이제 신물날 만큼 많이 들었어. 지금부터 이어나갈 이야기는... 그래, 배멀미가 심한 우리들의 동료가 말하는 모두가 웃음으로- 같은 이야기가 좋겠어. "

그러니,

 " 그런 엉망진창 겉모습을 벗는 것부터야! "

미카엘은 움직이지 않았다. 코코로는 그 사이 몇 걸음 더 움직였다. 한 발짝, 두 발짝.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멈춰서서 자신감 있게 웃고 있었다. 가면 속 안개낀 하늘이 격렬히 흔들렸다. 미카엘은 두툼한 솜털장갑으로 무장한 손을 들어 제 얼굴을 가렸다.

 " 싫어. "
 " 어머나, 마왕님. 당신의 거부가 소용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더없이 단호한 어조였다. 코코로는 손을 뻗었다. 얼굴을 감싸는 손을 잡아 내려 단호히 눈을 마주쳤다.
 " 저주를 푸는 방법은 사랑의 고백이야. 납치되고 도망쳐서 동료들을 모아 당신에게 닿아. 이젠 깨달을 때가 됬지 않았을까나? 용사들이 마왕을 무찌르고 행복해졌습니다ㅡ 같은 구질구질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야. "

장르는, 이미 달라진지 오래라고.



그녀가 속삭이는 목소리가 선명히 닿아왔다. 미사키는 자신이 한 방 먹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마일 호의 공주님이 너무 눈부셔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직접적인 선전포고에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팔목을 잡고 있는 손이 뜨거워서 화상을 입을 것 같아. 도망치고 싶어. 그렇지만 이대로 도망쳐서, 당신들이 실망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 자, 마왕. 당신의 저주를 풀 시간이야. "

그녀의 연기는 뜨겁게 타오르다 부드러운 바람처럼 변칙적이었다. 타오르고 있던 것 같은 손목이 놓아져, 살짝 비켜선 코코로를 대신해 그 자리를 하구미가 차고 들어선다.

안녕, 우리의 스마일 캡틴.
하구미는 긴장한 기색으로 굳어진 얼굴로 솜과 천따위로 무장한 손을 꼭 잡아왔다.

 " 저기, 하구미 이런 거 해본 적 없어서 어색하지만! 마왕군이 웃어준다면 계속 할 수 있어! 하구미, 당신을 무척 좋아해!! 저주가 풀리면 같이 놀자. 무척 즐거울 거야! "

 세상 모두에게 전염시킬 정도로 환하고 맑은 너의 웃음을 나도 좋아해. 무한한 신뢰는 우리에게 힘이 되고 깨끗한 마음은 나아가는 용기가 되어.

앗, 하는 사이 하구미의 손으로 인해 가볍게 장갑이 빠져버렸다. 저항하지도 못했다.

땀에 절어 쭈글거리는 손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이곳저곳 굳은살에 생채기가 잔뜩 새겨진 손은 가면처럼 엉망이다. 무서워보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더니 하구미는 제 손마저 잡아왔다.

 " 와!! 마왕군의 손, 어른의 손이구나! "

파문이었다.

카오루씨에게 등이 떠밀리듯 하구미 옆에 선 카논씨는 얼굴이 새빨게진 채 우물쭈물 했다. 미사키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뇌는 움직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아무리 해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망연했다.

 " 미, 미사... 미카엘짱. 다, 당신을... 조, 조, 좋아합니다...!! "

카논씨는 계속 손에 쥐고 있는, 그녀가 선택했던 웃는 얼굴의 가면의 뒤로 부끄러운 듯 숨어버렸다.

 " 흐, 흐에에... "

 " 자, 카논. 더 할 말이 있겠지? "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카오루씨가 카논씨의 어깨를 짚으며 앞으로 나왔다. 시야의 세 명이 들어찼다. 그들만의 색채로 가득찬다.

 카논씨는 얼굴을 가리던 가면을 내렸다. 물빛 머리카락 아래로 잔뜩 붉어진 얼굴로, 카논씨는 간신히 귀를 기울여야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 무슨 옷을 입던, 어떤 얼굴을 하던... 미카엘짱의 노력은 퇴색되지 않아. 전해준 용기는 사라지지 않아. 힘들거나 어려울 때, 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항상 힘을 보태고 싶어. "

 ... 당신은 그 자체로 위안이 되요. 카논씨의 안정된 특별함을 좋아해요. 주변을 살피는 눈은 모두의 웃는 얼굴에 더욱 가까이 할 수 있게 해주고 있어요.

카논씨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재빠르게 다가와 이젠 그저 두르고만 있는 하얀 천을 벗겨갔다.

딱히 신경쓰지 않은 후줄근한 후드티와 반바지가 드러났다. 잡아당긴 작용으로 한바퀴 빙글 돈 미사키는 혼란스러웠다. 카논씨의 말이 머릿속을 징징 울렸다. 무슨 옷을 입던, 어떤 얼굴을 하던.

 잔잔한 물결 위의 파문에 돌덩이 하나가 던져진다.

 " 셰익스피어는 말했지. 정직만큼 풍요로운 것은 없다... 라고. "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카오루씨는 휘청이던 몸을 잡아주고, 삐에로 모자에 엉킨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풀어주었다.

번거로울텐데도 상냥한 손길은 변하지 않는다. 풀어지는 머리카락이 단정히 아래로 내려앉았다. 카오루씨는 완전히 저와 분리된 삐에로 모자를 가슴에 품었다.
.
 " 아, 얼마나 덧없는가. 아기고양이, 이런 우스꽝스런 모자 없이도 충분히 아름답구나. 그 어떤 꽃들도 그대만큼 가녀린 동시에 강직하지 못할거야. 꾸며낸 거짓말들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어 결국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구나. "

 카오루씨, 당신의 배려와 화려함을 사랑하고 있어. 모두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외모는 내 시선마저 끌어들이고 앞으로도 화려하게 빛날 걸 장담해.

돌덩이의 울렁임이 어느순간 파도가 된다.
 진심이 아닌 것들이 없어서, 저주가 점점 풀려가 이내 가면만 남았다. 그리고 손목이 잡혀 몸이 돌려진다. 뜨거워.

태양의 표면처럼 그녀의 눈은 울퉁불퉁히 빛이 났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순식간에 다가온 코코로는 가면의 옆면을 잡아채 웃고있는 가면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눈앞에 별이 튀어, 그대로 일렁이는 파도는 해일이 되어 저를 덮었다.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 했던 말들이 어지러히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진심이 담긴 사랑의 고백은 말없는 행위로도 충분한 듯 가면은 손쉽게 벗겨졌다.

드러난 미사키의 얼굴은 곤란함이 가득한 채 일그러져 있었다. 항상 생각했던 것들이 토해낼듯 가득해졌다.


모두를 웃는 얼굴로 만들자.
모두가 즐거워 웃는다면 울지 않아도 돼.
서글픈 일은 떨쳐내고 일어날 수 있을거야.
세상 모두가 히어로니까.
용기를 나눠줄테니 하고 싶은 걸 해줘.
세상은 이렇게나 반짝이는 것들로 넘치고 있어.
당신들도 이렇게나 반짝이는 걸.


 - 이 사실을 전달하려면, 나부터 웃지 않으면 안되겠네. -

 " 자, 저주가 풀렸어. 마왕님. "

 " ... ... "

 " 네 웃는 얼굴을 보고싶어. "

 " ... ... "

 " ... 미사키? "

 " 잠시만. 잠시만, 아주 잠시만 기다려줘. "

화려한 스마일 호의 아름다운 공주님과 용사들, 모두의 마법에 의해 사람으로 변한 오쿠사와 미사키는 그 얼굴 그대로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이쪽을 빤히 바라보는 찬란한 눈을 가려버리고 말았다.

코코로는 벗긴 가면을 들고 가만히 있었다. 그게 꼭 마네킹 같아서, 미사키는 무심코 앞으로 흘러내린 옆머리를 손가락만으로 모양 좋은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귓바퀴에 스친 손가락에 코코로의 몸이 흠칫 떨린다. 아, 넌 내 앞에 살아있어.

막연한 느낌에서 깨어나 굳은살이 박힌 손으로 생채기가 날까 조심스럽게 닫힌 눈꺼풀을 쓸었다. 이상하게 목이 막혔다. 하고 싶은 말이 식도에 꽉 걸려 튀어나오지를 않았다. 해일이 덮친 탓이었다. 덕분에 숨까지 막혔다.

당신은 여름이고, 너무 뜨거워서 정신을 차릴 수 없어. 해일이 내 몸을 식혀주면 좋으련만.

어디서부터인가 존재했던 충동이 몸을 가득 부풀려 곧 터져버릴 것 같았다. 미사키는, 더 이상 그걸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코코로의 엷은 눈을 닫아 제 엄지 위로 입을 맞췄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목마른 자의 우물처럼 환희와 절망이 동시에 차올랐다.

나의 여름, 나의 태양, 나의 광활한 해바라기 꽃밭. 가장 강렬히 타올랐다 밤이 되듯 숨어버리는 겁쟁이 아가씨.

미사키는 깨달았다. 그 순간 막아둔 댐이 터지듯 눈물이 났다. 일그러져 있던 얼굴엔 엉망인 웃음도 났다. 무대의 나무바닥 색이 변하는 동시에 미사키의 구름도 걷혔다. 짙푸른 청색의 눈이 선명히 그들을 시야에 담는다.

모두가 웃고 있었다. 네 덕분이야.

 " 공주님, 당신이 나를 구해주었어. "

모두가 특별한 세상 속, 내게 가장 특별한 북두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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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공책(@Fox_nullnote)님께서 써주셨습니다.
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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