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시박사님, 긴급 핼프요청을 승락해주신것을 감사합니다. 대치하던 수인과 인간모두 이미 공멸했습니다만 복구과정에서의 부상자 발생에 대비하기 위해 좀 더 머물러 주실 수 있나요?"
딱딱한 군모룰 덮어 쓴 군인이 처참한 주위에 일체의 감정도 느끼지 않고 요청을 듣자마자 당장 짐을 싸서 찾아온 메르시에게 말했다.
여기저기 격렬한 공방이 졌는지 매캐한 연기가 매워 눈을 찔끔 찡그리던 메르시는 거기에 어떤 불만도 표하지 않았다.
이번에 싸움이 일어난 지역은 시베리아호랑이수인중에서도 희귀한 백두산 호랑이들이 인간과 공존하던 지역으로 전쟁의 원인은 흔하디 흔하게도 인간과 공존을 택한 수인들에게로의 보복이었다.
힘이나 체력이 월등한 반면 그 수가 현저히 적은 호랑이들은 물량공세에는 이기지 못하고 덮쳐온 적들과 공멸하고 말았다.
"네. 하지만 제가 같이 복구작업 현장을 둘러보아도 될까요? 혹시 살아남은 수인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현장의 사람들은 외부인이 드나드는건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박사님이 그러고싶으시다면 막지는 않겠습니다."
몹시 탐탁치 않은 반응을 보고 메르시는 방해만 되오고 도저히 도움이 되주질 않는 자신의 금빛갈기와 사자귀를 없애고 깊은 충동에 시달렸다.
수인과 사람.
두 종족의 공존을 위해 활동한다는 데에서 많은 사람의 존경도 받지만 수인과 직접 싸우는 군인들에게 메르시는 종족을 배반하고 인간한테 붙었으면서 동정심인지 뭔지로 수인을 돕는 박쥐같은 존재였다.
"네. 방해는 하지 않도록 할게요. 안내부탁해도될까요?"
군인은 매우 귀찮은 표정이었지만 자신의 의무는 잊지 않았는지 메르시에게 이쪽이라며 발을 떼었다.
살아남은 사람이나 수인이 있다면 일분 일초가 급한 상황이었지만 재촉해봤자 달라지는게 없다는걸 이미 아는 메르시는 속상한 속만 애써 달랬다.
수인과 인간이 공존하던 경계지역은 그 애매한 위치와 관계에 공격적인 수인집단이나 테러리스트에게 잘 노려지곤 했다.
빠른 대처에 중재가 가능 할 때도 있지만 이처럼 늦어서 중재자로써 전혀 도움이 안될때도 있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서로의 오해나 견해의 차이 때문이란걸 잘 알지만 앞서 걷는 군인처럼 메르시를 박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처럼 인간사이는 수인이 정착하기 쉽지 않았다.
의사 자격을 따내는 데에 얼마나 많은 차별의 시선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메르시는 이 길을 갈 수 밖에 없었고 싫어하지 않았다.
이런 열악한 취급에도 메르시는 인간사이에 뛰어들어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존재했다.
반짝반짝 황금빛깔로 빛나는 갈기와 양성이라는 점은 보통의 암사자라면 분명 가지지 않았어야 할 돌연변이의 상징이었다.
인간과 달리 수인은 이변, 돌연변이같은 다른것에 극도의 적개심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메르시가 운이 없었던 것은 사자무리의 숫사자는 일찌감치 사자무리에서 내쫓긴다는 습성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쫓긴 금빛갈기의 사자는 홀로 이리저리 떠돌다 그나마 차별은 받을지언정 '어린'이라는 타이틀에 관대한 인간사이에 끼어들어갔다.
거기서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공부한 결과가 지금의 이 자리이지만 이런 취급에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글을 배우고 의학을 익힌 메르시는 오늘같이 중재자로써 불리는 일도 있지만 직업은 수인의사였다.
수인과 인간의 거주지역은 나눠져 있지만 이 지역과 같이 수인과 인간이 섞인 곳에선 메르시같은 수인의사는 귀중한 존재였다.
수인도 인간도 차별없이 대한다는 지침 하에 활동해 온 메르시는 여기저기 파괴된 이 공간이 어떤 노력으로 만들어졌는지 잘 알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직도 수인과 인간사이의 융합은 진행 도중이었다.
"끼잉...깽..."
묵묵히 군인의 뒤를 따라 걷던 메르시는 무너진 건물잔해의 더미들 사이에서 사그러들어가는 목숨의 잔향을 들었다.
귀가 좋은 수인인 메르시와 달리 인간의 평범한 청각은 그 소리를 감지하지 못했는지 군인은 뒤를 돌아보는 기미가 없었다.
"여기! 빨리 사람들을 데리고 와주세요. 살아있는 수인이 있어요!"
"네? 하지만 여긴 격전지랑은 떨어진곳인데.."
"한시가 급해요. 빨리!"
갑자기 소리친 메르시에게 군인은 당황했는지 많은 말은 하지 않고 사람들을 부르러 달려갔다.
콘크리트 잔해를 치우려면 꽤 많은 사람들이 필요할듯했다.
틈새에는 어째서 보지 못했나 싶은 선명한 주황과 검은 무늬의 꼬리가 눈에 들어왔다.
움찔움찔 꼬리는 아직 이 아래의 수인이 어리고.. 아주 약하지만 살아있다는걸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운이 좋았는지 피가 흐른 자국은 없었다. 콘크리트 기둥이 서로를 지지해서 깔리지 않고 오히려 다른 조각들에게서 아기호랑이를 지켜준걸로 보였다.
"데려왔습니다! 잠시 비켜주세요. 어이! 공구 빨리 가져와!"
지렛데와 장정들로 구성된 무리는 금새 콘크리트를 치우고 그속의 아기호랑이를 구조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구하지 못하고 늦었다는데에 그들도 메르시 못지 않게 분함을 느꼈었었는지 다들 필사적이고 신속하게 잔해를 깨끗이 치웠다.
뿌연 콘크리트 가루에 덮여 본래의 털색을 잃었지만 메르시가 관찰했던데로 핏자국은 볼 수 없었다.
"이런.. 누가 이런짓을.."
끼잉끼잉
눈을 꾹 감고 신음을 흘리는 아기 호랑이수인은 다친곳은 없지만 죽어가고 있었다.
치사량을 넘는 수면제가 투여됐는지 깨어날 낌새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악몽이라도 꾸는지 온통 찌푸린 얼굴로 신음을 흘려대었다.
"흔한 일입니다. 싸우는데 아기를 데려갈 수 없어서 부모들이 수면제를 투여하거나.. 아니면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적어도 아프지 않게 죽으라거나.."
"불법적인 거래를 위해서 어디 도망 못가게 적들이 그런 처치를 하기도 하지요. 고칠 수 있을까요?"
냉정한 말들과는 다르게 한손가락으로 조심조심 털을 쓸어보는 모양새가 이들도 간절히 아기호랑이의 생존을 바란다는걸 보여줬다.
"할 수 없어도.. 해내야죠. 전 그러기 위해서 여기 왔으니까요."
쓸일이 없겠구나 싶어 괜히 가져왔다 생각한 진료기구들을 꺼내들며 메르시는 마음을 굳건히 했다.
다행히 메르시가 빨리 발견해내어 생존의 가능성이 있었다.
게다가 아기호랑이도 살고싶어하고 있는듯 내성이 약해 빈사상태면서도 캐액캐액 토해내려고 하고 있었다.
버텨낼 체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메르시, 치료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온갖게 부서져 콘크리트 가루와 먼지에 둘러쌓인 공간에서 메르시는 조그맣지만 생의 의지가 넘치는 작은 생명을 살려내었다.
그 관계가 어떻게 언제까지 이어질지 살아날 수 있는지조차 확신이 없었던 메르시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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