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튼다.

오쿠사와 미사키는 눈을 깜빡였다. 점차 밝은 빛을 투영하는 얇은 커텐을 멍하니 바라보다 제 품에 얌전히 잠든 연인의 머릿결에 얼굴을 묻었다. 최고급 시트에 은하수처럼 늘어진 빛깔이 어여쁘다. 멈추고 있던 숨을 천천히 내쉬기 시작했다.

미사키는 계단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정확히는 밀쳐지는 꿈을 꾸었다. 밀친 사람의 얼굴을 떠오르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은 미사키가 일부로 잊어버린 유일한 것이었다.

 - 누가 네 허황된 꿈에 자발적으로 어울려주겠어?! -

오랜만에 꾸는 꿈이라, 더욱 선명했다.

 - 앞으로도 평생 나타나지 않을거야!! -

아직도 난 당신이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모른다. 어떤 머리를 했는지, 어떤 외형이었는지, 어떤 얼굴이었는지. 다만 반복되는 꿈에서 그 사람이 했던 것은 내 목표에 대한 부정.

 날카롭게 찢어지는 분노는 화살로 변해 제 심장을 찔렀고, 모자이크 된 그 사람은 꼼짝도 못하는 내 어깨를 밀쳤다. 중심을 잡지 못한 나는 계단 밑으로 느리게 떨어졌다. 당신은 비명을 질렀던가. 꿈은 항상 떨어져 부딪히는 순간 끝이 났다.

눈을 뜨면 벅찰 정도로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막연히 기뻐서 이루고자 했던 목표는 맹목적이 되어 내 목을 졸랐다. 이유는 몰랐다.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이 웃음을 지으면 즐겁고, 행복하고, 반짝반짝거린다는 원 이유가- 무언가를 덮어 가리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무언가를 항상 외면해왔던 오쿠사와 미사키는 몇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게 무언지 직시할 수 있었다.

 " 우응... "

이름도, 얼굴도- 이젠 떠오르지 않는 가장 친했던 내 친우.
 난 네 말을 부정할 이유를 찾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미사키는 몸을 꾸물거리며 제 품에 더욱 안겨오는 코코로의 등을 천천히 쓸어주었다.

네게선 깨끗하게 빤 빨래를 햇볕에 말린 향이 났다. 들판에 화려히 피며 뽐내던 꽃의 향도 났다. 불편한지 이불을 걷어내는 몸짓에 미사키는 좀 더 꼼꼼히 코코로에게 덮었다. 아, 더운걸지도. 계속 끌어안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미사키는 그녀가 느끼는 불편함을 모른 척 하기로 했다. 살짝 찌푸려진 미간에 입을 맞춘 미사키는 살짝 미소지었다.

 " 으응... 아. "

 " 잘잤어, 코코로? "

네 말이, 네가 틀렸어.
 뭐든 이루어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어.

 " ... 나 언제부터 잠든 걸까. "

 " 응, 코코로가 내게 세번째로 사랑한다고 했을 때? "

 " ... ... "

 이런 나라도 좋아해준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어.

몽롱한 눈을 비비던 코코로가 몸을 딱 굳히곤 제 품에 얼굴을 묻었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귀가 새빨갛다. 잠들기 전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걸지도. 미사키는 심술궂게도 보이는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걸쳤다. 

 " 코코로는 하늘 높이 붕 뜬 기분일때밖에 사랑한다 해주지 않았으니까, 확실하게- 읍. "

 " ──아아아아! 말하지 않는 매너라는 걸 모르는 걸까, 미사키는! "

코코로가 제 입을 막으며 왁, 하고 소리쳤다.
대리석처럼 하얀 피부가 페인트칠을 한 것처럼 붉다. 미사키의 눈꼬리가 사르르 휘었다. 제 입을 덮은 손등 위로 내 손을 덮어 깊숙히 어여쁜 손가락 위에 키스한다.

코 끝 가득 사람의 냄새가 가득했다. 청회색 눈에 애정이 뚝뚝 흘러 넘쳤다. 이불 속 어렴풋 보이는 코코로의 어깨에 잇자국과 가슴팍에 선명히 남겨진 제 흔적에 가슴이 뭉클했다.

입을 열어 지금 느끼고 감정을, 가득 넘쳐 흐르는 애정을 말하려던 미사키는 데구르르 눈을 굴리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반쯤 뜬 눈꺼풀 아래 코코로를 담은 눈이 사랑스러운 듯 깜빡여진다.

 " ... 좋아한다는 말까지, 말하지 않고 눈으로 표현하라는 소리는 아니었으니까. "

심통난 얼굴로 화난 기색 없이 속닥이는 목소리가 무척 달았다. 입 안 가득 초콜릿과 사탕- 설탕을 뿌린 과자를 잔뜩 머금어 삼킨 것 같았다.

머릿속이, 세상이 행복으로 가득 찬다면 이런 기분일까. 미사키는 확답을 내리지 못한 채 코코로의 손을 끌어내리고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떨어트렸다.

 " 그치만 참을 수 없는 걸. 무엇을 해도 받아주고 어울려주는 코코로가 나빠. 마음을 확인한지 하루만에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다니 너무해. "

넌 내 신뢰였고, 그 사람의 말을 부정할 근거였으며, 길 잃은 나의 길잡이였다.
 무엇보다 내 가장 특별한 사람이라.

표현하지 않고선 버틸 수 없다. 끓어 넘기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게 만든 건 너니까.

 " 그런식으로 말하는 건 치사하네. 미사키야말로 잔뜩 나를 어리광 부리게 한 주제에. "

 " 흐응,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

 " 모른 척이겠지? "

업악적이게 눈썹을 찌푸린 코코로에게, 미사키는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주체할 수 없는 행복한 기분에 휩싸여서 코코로를 꼭 안고 그녀의 체향을 한껏 들이마셨다.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기색이 느껴졌지만 곧 크게 숨을 내쉬며 껴안아왔다. 아직 맨몸인 상태라 피부가 부드럽게 스쳤다.

그러자 결국 누운 상태로 화들짝 놀란 코코로의 고개가 급히 멀어졌다. 찬 기운이 그 사이를 메꾸었다. 한 차례 눈을 깜빡인 미사키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코코로를 볼 수 있었다.

 " 왜 그래? 혹시 어디 아파? "

 " 아, 아니... 아니... 아.. "

코코로는 끙끙 앓았다.

 " 말해줘. 나는 의사가 아니지만 그냥 보고만 있기에는 괴로운 걸. "

코코로가 결국 이불보에 얼굴을 파묻었다. 난감한 기색으로 잠시 앓던 코코로는 그녀가 잠들었을 때부터 쭉 베개로 사용하고 있던 팔을 조심스레 잡아왔다.

 " 정말로, 단순한 근육통이니까. "

 " 아. "

잠시 침묵을 지키던 미사키는 천천히 근육통이란 단어를 받아들였다. 평소보다 무리한 운동을 했을 때 오는 근육의 통증. 무리한. 무리한? 아주 오랫동안 그 단어가 미사키에게 통용되지 않았으니 떠올리는 게 느릴만도 했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체력의 차가 미사키를 조금 위축시켰다. 무언가의 충격받은 개처럼 표정을 굳히던 미사키는 급박하게 몸을 일으켰다. 덮고 있던 이불이 스르르 내려간다.

 " 미사키?! "

 " 코코로, 잠깐만 기다려. 적신 수건이랑 같이 마사지하면 금방 나아질거야. "

 " 아니 잠시만... "

 " 코코로의 검은옷 사람들에게 온습포가 있는지 물어봐야겠어. 오늘 학교에 가니까 휴식할 틈이 없잖아? 붙이고 가면 도움이 되겠지. "

우선 수건부터.
쭉 자신의 경험과 언젠가 찾아본 치유방법을 떠올리며 중얼거리던 미사키는 코코로가 말릴새도 없이 침대에서 빠져나가 문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 넓디 넓은 저택에서 검은옷 사람들을 찾아나설 작정은 아니었다. 그 정도로 무식하게 행동하기엔 안 될 일이 더 많다는 걸 여러가지 경험으로 깨닫고 있다. 그 사람들은 항상 코코로의 주변을 맴도니까 그냥 부르면 나올지도 모른다.

만약에 나오지 않는다면.

 " 아, 정말...! "

이어지던 생각이 멈추고, 등 뒤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등에 무언가가 부딪혔다. 의아한 얼굴로 뒤를 돈 미사키는 바닥에 떨어진 베게와 씩씩거리며 얼굴을 붉힌 코코로를 볼 수 있었다.

 " 갈거면, 옷, 입고가! "

아.

 
.


바닥에 잔뜩 구겨진 잠옷들을 서둘러 주워입은 미사키가 나가려다 말고 던져버린 베게를 주워 옆에다 놓아주고 콧잔등에 입 맞춰주며 다녀오겠다는 말에, 한없이 풀어지려는 얼굴을 베개에 꼭 묻고 굴러다니다 침대에서 떨어져버린 건 작은 헤프닝이었다.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 이불을 똘똘 말았다. 그러자 급히 다녀온건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온 미사키는 품 안 한가득 무언가를 안고 있었다.

 " 검은옷 사람들을 만났는데. 어쩐지, 아무말도 안했는데 가득 챙겨줬어. "

검은옷 사람들, 전부 알고 있다는 걸 이런식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될텐데.

침대 가까이로 다가온 미사키는 하나씩 물건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대야와 수건, 갈아입을 속옷과 교복. 붕대와 습포 파스 같은 것들. 붕대를 내려놓았을 때 코코로의 시선이 무심코 미사키에 목 근처에 머물렀다.

어제보단 확실히 멍이 빠진 것 같지만, 그럼에도 그냥보면 시선을 돌리기 힘들 정도로 파랗다.

 " 미사키. 오늘 학교 가는 걸까나? "

 " 응? 코코로가 빠지고 싶다면 같이 빠질건데. "

 " ... 그런 얘기가 아니야. "

의아스럽게 고개를 기울인 미사키는 대야에 물을 받아와 수건을 적셨다. 능숙하게 수건을 짜고 머리만 빼꼼히 나와있는 코코로의 팔을 밖으로 빼낸다. 살짝 뜨끈할 정도의 수건이 팔을 감싸, 그 위로 상냥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주무른다.

집중하는 눈에 괜시리 잠들기 전의 기억이 떠올라 혼자 부끄러워졌다. 미사키의 리벤지 1차전은 정말 배운대로 느낀대로 행동해 보내버리더니, 쌩쌩한 얼굴로 2차전을 시작해버렸다.

미사키의 눈은 어두운 빛깔을 띠면서도 한없이 맑아서, 들여다보면 무엇을 담고 있는지 선명히 보였다.

 " 목 말이야. "

계속, 계속 뭉근히 애정으로 풀어진 눈 안 속에서 쾌락에 허덕이며 갈구하는 츠루마키 코코로가 보여서 부끄러움에 힘들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어느덧 3차전까지.

손목에서 어느덧 어깨까지 오른 미사키가 아주 잠깐 멈추었다. 모양새가 꼭 지금에야 알아챈 것 같았다.

 " 확실히, 다른 애들이 보면 무서워할지도. "

그건 아니지 않을까.
 반박이 바로 떠올랐지만 코코로는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당신이 해주는 마사지가 의외로  굉장히 기분이 좋은 것도 있고, 실제로 물어봤을 때 정말 다른 애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는 것도 있었다.

나른히 눈을 감은 코코로는 반대쪽 팔을 잡는 미사키에게 순순히 몸을 돌려 팔을 내어주었다.

 " 근육통 많이 움직이기 힘들어? "

 " 걸려본 적 없는 사람처럼 말하네 미사키. "

 " 오래되서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어. "

 " 항상 미셸 안에 들어가 있거나 격렬한 퍼포먼스도 하면서, 정말로? "

정말로.
 조금 끊어 말하는 것처럼 어눌한 목소리에 코코로는 눈을 떴다. 골몰이 생각하는 기색으로, 그럼에도 끊임없이 팔을 주무루는 언밸런스한 모습에 꽤 다른 사람의 시중에 능숙하다는 생각을 막을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또 이런 정성스런 간호를 한 걸까. 삐죽- 하고 튀어나오려는 까만 감정을 나중으로 미뤄둘 생각으로 우선 꾹꾹 눌러담았다.

 " 땀투성이가 될 정도로 더워서 끈적끈적해서 지치거나 힘들거나 하긴 하지만. 다음날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아픈 건 없어. "

 " 그 말, 어쩐지 당신이 초인이라고 말하는 거랑 뭐가 다른걸까 싶은데. "

 " 설마. "

난 이미 쓰러지고도 남을 체력차인 것 같은데.

 " 만약 정말로 내가 초인이었다면 코코로는 이미 병원이었을거야. 이렇게 마사지를 하는 것보단 병원에 가서 의료적 찜질을 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거라구? "

 " 업고 가겠다는 말일까? 미사키라면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

 " 할 수야 있겠지만, 승차감이 불편한 걸. "

그게 어떻게 들리는지 알고 있을까.
옆으로 누워있던 코코로는 미사키가 갑작스레 이불을 들춰 내리는 것에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이불보를 꼭 잡고 다리를 움츠렸다. 미사키의 움직임이 멈췄다.

 어째서? 내려다보는 미사키의 눈이 집요해서 코코로는 결국 제 몸 전부를 이불에 감췄다.

이성을 차리고 생각해보자면, 어제는 심하게 분위기를 탔던 경우고. 이제와 이렇게 밝은 곳에서 몸을 보이는 건 굉장히 부끄럽다. 상대방이 그런 의도는 없다고 해도.

 " ... 코코로? "

 " 아... 그 꼭 들출 필요는 없잖아...? "

 " 그치만 전체적으로 아픈 게 아니었어? "

아픈 건 아픈거고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니까!

이불에 덮혀 까맣게 변한 시야에서, 미사키의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코코로, 코코로~. 하며 목소리를 길게 늘어트려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도 들렸다. 꿋꿋하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있던 코코로는 어느순간 모든 소음이 멈췄다는 걸 알아챘다.

아무리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해도, 이 정도면 미사키도 포기하겠지.

조심조심 머리 위까지 끌어올린 이불을 내리던 코코로는 갑자기 제 위를 덮치는 무게에 작게 비명을 질렀다. 무겁지 않은 무게가 제 옆구리 위에 내려앉아 있다. 눈을 크게뜨고 아래를 내려다본 코코로는 몸을 베게 삼아 대 자로 누워버린 미사키와 눈이 마주쳤다.

 " ... ... 뭐하고 있어? "

 " 에. 코코로가 탈피를 하고 나를 봐주길, 하고 기다리고 있었어. 지금 당장은 마사지도 사양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우선 잠이라도 잘까 하고. "

그리 말하며 웃는 미사키는 퍽 사랑스러웠다.

그래, 나쁜 생각으로 가득 차서 부끄러워 하는 건 나뿐이겠지. 어쩔 수 없단 생각으로 가득차서, 이불 밖으로 손을 꺼내 미사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감각이 좋은지 눈을 감으며 내맡긴다. 그 경계없음에 따스함이 물씬 올라왔다.

커텐 사이로 밝은 빛이 투영되어 침대 근처를 방황한다. 그게 손에 잡힐듯 선명했다.

코코로는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막지 않았다. 고요한 숨소리와 작은 웃음소리가 같은 공간에서 퍼져나갔다.

아, 그래. 코코로는 인정했다. 지금 시간이 더없이 만족스럽고 행복했다. 모든 색체는 반짝거리고, 침대 옆 화분의 꽃 향기가 달하며, 평범하게 지내오던 츠루마키 코코로의 방이 아주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 모든 게 당신 덕분이란 걸 알아. 지금 이 시간이 특별한 이유가 오로지 당신에게 있었다.

내게서 모든 색을 내리쬐어준 당신과 둘이서 보내는 나른한 월요일의 아침. 그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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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공책님(@Fox_nullnote)님이 써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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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오판다
,
"카논씨 당신을 좋아합니다! 사귀어주세요..!"

하구미를 통해서 불려진 써클의 대기실에서 카논은 새빨간 얼굴의 미사키에게 고백의 말을 들었다.
멍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먼저 간다고 했던거 아니었나?라든가 갈아입는 도중인거 같은데 조금 이따가 올게~라는 말들을 떠올리는 중에 미사키가 다시 소리쳤다.

"대답은 언제라도 좋으니까요! 그럼, 오늘 라이브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선 미사키는 허둥지둥 옷을 걸치곤 의자에 걸쳐둔 모자를 한손에 들고 사라져버렸다.
오늘 같이 못간다고 미리 카논의 귀가길을 카오루에게 부탁해둔건 이런 예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라고 아직도 이것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되는 카논은 생각했다.

"이런.. 카논 아무래도 이 상황이 혼란스러운 모양이군.. 집으로 돌아가는건 조금 시간이 지난 후가 좋을까?"

마치 짜여있던 전개같이 카오루가 나타났다.
아니, 여태껏 혼자서 하로하피의 라이브일정을 정해오던 미사키이다.

우연이라기보단 정말로 계획되어있던 등장인것이겠지.

"으응.. 대답은 정해져 있으니까. 카오루씨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잘부탁해."

"흠? 그렇군. 자, 가볼까."

상냥하게 내밀어진 손을 잡고 일어선 카논은 대답에 대해서 조금의 흥미도 나타내지 않는 카오루의 모습에 안도를 느끼면서 당연하게 정해져버린 답에 의문을 느꼈다.

'어째서 나.. 듣자마자 거절할 말부터 고민한거지?'



미사키는 항상 그런건 안된다던가 못한다던가 하는 현실적인 말을 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려고 노력해버리는 착한 후배였다.

핼로,해피 월드의 멤버들이 통제불능이라 카논 자신조차 아무것도 못할때 유일하게 의지되는 밴드의 수호신.
그것이 미사키의 밴드 내 위치이다.

"좋아하지만.. 사귀고 싶은가 묻는다면.."

확실히 카논은 미사키와 자주 대화하고 같이 행동할 정도로 서로 신뢰하고 친한 친구이다.
하지만 카논은 사귀자는 말에 곤란하다고 느꼈던것이다.

분명 미사키랑 밴드를 하는 매일은 즐거운 나날이었지만 카논은 그 이상으로 바뀌는걸 바래본적이 없었다.

지금도 충분히 그 전까지 상상해본적 없을 정도로 즐거운 나날. 충분하지 않은가.

"딱히 매일 만나는것도 아니고 학년도 다른걸. 하로하피가 아니었다면 대화 할 일도 없었을거야. 그런데 이렇게 친해지다니 충분하잖아."

그렇게 카논은 자신을 납득시켜갔다.
미사키가 자신의 사이에는 그런 관계가 될 무언가가 없다.
미사키는 핼로해피에서 카논만이 자신을 인지해주는것 때문에 착각한 것이다.

카논으로써는 당연한 배려일 뿐이었다.
항상 자신을 격려하거나 하로하피의 폭주를 막아주거나 하는 미사키에게로의 감사의 기분을 나타낸것일 뿐인데 저런 과분한 애정을 받을 리 없다.

"미사키짱은 이해가 빠르니까 분명 알아줄거야. 그리고 빨리 잊어버리겠지. 고백한것도 핼로해피멤버들이 억지로 시킨걸수도 있고?"

때마침 나타난 카오루라던가 대기실에 가보라던 하구미라던가 뭘 하고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분명 코코로도.

평소 미사키가 휘둘리던 모습을 생각하면 멋대로 짜여진 각본에 투입된 익살꾼취급이었데도 이상하지 않다.
여객선에서 카논에게 갑작스레 고백하는 연기를 하게 됐던것처럼.

"앗! 그럼 혹시 그거 그냥 연기였을지도? 하긴 미사키짱이 나에게 고백 할 리가 없지! 후우.. 거절하러 갔으면 더 난처해졌을지도 모르겠다."

고민이 해결된 카논은 활짝 웃으며 내일 어디서 만나 대답을 하겠다라고 보내려던 메시지를 그냥 지워버렸다.
하로하피멤버에게 휘둘린 미사키에게 추격타를 먹일뻔 한 것을 방지한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조금 칭찬을 하고 내일 만나면 자연스레 인사를 해야지.

"후후 그래도 연기 연습을 많이 한걸까? 저번보다 더 두근두근했지.. 그래! 내일 만나면 연기가 엄청 발전했다고 말해주자. 미사키짱 여객선때의 일 신경쓰는것 같으니까."

정말 믿음직한 후배이지만 이런 부분은 귀여웠다.

외모를 꾸미는데에는 관심이 없지만 땀냄새를 신경쓴다던가 하는 귀여운점과 스스로의 용무도 있는데 타인을 먼저 챙긴다든가하는 그런 세심한 부분들이 매력인 후배가 역시 자신에게 진심으로 고백할리가 없다.

하여튼 자신은 1년도 넘게 다닌 길을 잃어버리는 극심한 길치인데다가 작사를 돕는다고해도 금방 패닉에 빠져 결국 응원하는데서 그치는 의지할 수 없는 선배다.

하지만 그런 후배한테 장난이지만 그래도 고백의 대상으로 선택된것은 조금이지만 자신이 매력있다는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아니, 많이 기뻤다.





미사키는 어째서 일생일대의 고백이 사실 장난이라고 치부당하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코코로에게 부추겨진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곰인형탈을 뒤집어쓴것도 아니고, 3인방이 준비한 로메오의상이라도 거절하고, 가면이나 역할따위에 의지하지 않은 진심의 고백이었는데..

역시 무언가 부족한게 있었던걸까..아니면 나는 고백의 대상이 되지 못 할 정도로 의식되지 않는 사람이라던가?
우스갯소리로 치부된다던가 정말 너무한데..

"역시 고백하지 말았어야했나.."

"으음.. 그건 아닐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미사키. 일생일대라곤 하지만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엉망진창인 계획을 전부정 당하고 삐져있던 코코로가 미사키의 회한이 찬 쓴소리를 부정했다.
방과후의 교실.
반성회겸 작곡의 시간이었다.

"뭐? 난 이번엔 거짓말도 꾸민 모습도 아니었다고. 더이상 뭘 어떻게해야 했단 말이야?"

"그럼 도망갈길은 왜 만든거야? 먼저 간다고 하고선 하구미에게 부르게해서 혹시 안올지도 모르고, 바로 거절당해도 괜찮게 카오루에게 바래다주게 하고. 혹시 미사키는 차이고 싶었어?"

"그럴리가 없잖아! 으윽.. 확실히 다른사람에게 의지한다던가.. 하면 안됐었지.."

그것도 하로하피멤버.. 확실히 오해 할 만한가..

"하지만 이번엔 카논도 잘못했단 느낌일까! 그러니까 나는 미사키를 응원할거야!"

"뭐? 의외네.. 네가 내 말을 순순히 듣는건 처음아니야?"

혹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는거 아닌가 불안하단 눈으로 불신을 보내는 미사키를 상큼하게 무시하고 코코로는 티켓을 두장 꺼냈다.

색색의 해파리가 그려져있는 수족관티켓.
코코로치고는 평범한 선택일까?

도와준다고 또 여객선같은걸 부르면 미사키의 심장이 남아나지 않았을것이다.

"실은 이번에는 배가 아니고 비행기로 해외라도 갈까 했지만 여권은 역시 준비가 필요하니까 여기로 했어."

다행이다!

"아아.. 하긴 카논씨 여권있는지 모르겠고 만들라고 하려면 이유가 필요하니까.."

"일단 언제 해외 라이브 갈지도 모르니까 다음 하로하피 회의때 건의할거지만 그건 나중으로 하고. 자, 미사키에게 선물! 당신 이유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행동하지 못하니까."

결국 여권은 만드는거냐!

나름 신경써서 준비해준 코코로가 웬일로 기특하니까 미사키는 태클을 걸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미셸 안에서도 쾌적할만한 나라를 미리 선정해주기로 하였다.

영국이라던가.. 열대우림에 간다고 하면 미셸에 곰팡이라도 필지 모르고.. 설마 사막? 안돼, 진짜 열사병으로 죽는다고..

"티켓은 감사히 받겠는데.. 설마 3인방 따라오는건 아니지? 도와준다고 막 코트에 선글라스 쓰고 변장했다고 튀어나올건 아니지?"

"우-. 생각하지 않았던건 아니지만 카오루가 반대해서 말이야! 그냥 조금 즐거운것을 준비해뒀을 뿐이니까."

카오루씨 고마워!

마음의 조금이 진짜 조금일지는 지금 현재 아무것도 모르지만 일단 말릴려고 해준 카오루씨에게 감사하자.

이런 소재에 대해서는 정말 의지가 되는 사람이다. 하로하피에 대해서도 좀 의지 할 수 있게 된다면 더 좋겠지만 그건 무리겠지.

"후후후..지금 그런 걱정을 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미사키. 데이트의 권유는 자신있구나!"

"윽.. 노력해볼테니까. 해피니스 해피매지칼-."

놀릴기분 가득한 코코로를 두고 서둘러 교실을 나선다.

이시간이라면 당번이라던 카논씨는 아직 하교하지 않았을수도 있으니까 교실에 가면 만날 수 있으려나?

이제와서 거절당한다던가 하지 않겠지.
부담스러우려나..

많은 생각이 머리에 스치지만 어차피 고백이라고도 생각해주지 않는데 의식되고 있지 않을 수 조차 있다.

이런 걱정은 사치가 아닌가. 걱정도 여지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앗. 시라사기선배. 안녕하세요. 혹시 카논씨는 벌써 하교했나요?"

"어머. 오쿠사와씨. 우연이구나 지금부터 만나러가려고 했는데. 목적인 카논이 아니라 미안하지만 일지를 선생님께 가져다주러 갔으니까 잠시만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우왓.. 이 선배 좀 거북한데.. 평소 잘 피해다녔는데 이런데에서 붙잡힐 줄은 몰랐다.
이치가야씨 도와줘-.

"그.. 여기서 가능한 용건인가요? 아님 자리를 옮겨야?"

"다른사람이 들어도 상관없다면 딱히 여기서도 괜찮을까."

"혹시 무슨 말을 하시려는.."

"오쿠사와씨 카논에게 고백했다며?"

"우와아악!!"

재빨리 치사토의 손을 잡고 뛰어서 미사키는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최근 곰인형탈을 쓰고 DJ하는, 하나사키가와의 이공간 코코로의 친구란 타이틀을 달아서 안그래도 눈에 띄는데 더 소문의 중심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코코로가 언젠가에 준 별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쓰라던 옥상열쇠를 남용해서 문을 연다.

그때는 천문부라지만 이렇게 열쇠를 막 뿌려도 되냐고 돌려주려했지만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뭐, 이런 일에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옥상열쇠는 츠루마키씨가? 꽤나 많이 친한가보네."

"네에네에. 이제와서 부정할 생각도 없어요. 코코로랑은 밴드하면서 이런저런 일도 있었고 지금은 뭐.. 친구라고 못할것도 없죠."

"흠. 솔직하지 못한 성격. 저기 카논의 어떤 부분을 좋아해서 고백했어?"

"네..넷?! 그..그러니까..상냥한부분이랄까..뭐..그런.."

"부끄러움이 많고.. 사귀면 뭘 하고 싶은데?"

"그럼.. 손잡고 데이트라던가.. 좋아하는 카페에서든지 수족관이라던지.. 하?! 그러고보니 시라사기선배 지금 뭘 하시는거죠!"

유도심문?!
아니.. 이 경우에는 취조가 맞는 말일까.
정말 무서운 선배다.. 조금도 방심 할 수 없는 느낌.

틈을 보이면 코코로랑은 다른 의미로 영혼을 털릴것 같았다.

"뭐. 대충 합격선일까. 적어도 바람을 핀다던가 하는 불성실한짓은 하지 않을것 같고.. 저기, 고백말이야. 카논 말대로 정말 장난으로 한거야?"

The 직구.

카논씨 아무리 친해도 그런것 말하시는건 너무하지 않나요.

고백한 당사자는 장난취급인데 그 친구는 취조를 한다니 진짠가..

하지만 왜인지 여기서 하는 대답이 이후로의 연애전선에 많은 영향을 줄것을 은연중에 깨달을 수 있었다.

갑자기 불려온것은 어쨋든 이 사람은 카논씨의 아마도 제일 친한 친구. 밉보여서 좋을 일은없겠지.

"아니요. 진심입니다. 일생일대의 고백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선지.."

"그럼, 장난으로 치부되었으니 포기할거니?"

"아뇨! 리벤지 할 생각이니까요. 저, 이래봬도 정말 카논씨를 좋아하니까..."

아니, 왜 나 시라사기선배한테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말하는걸까.

무언가 시라사기선배에게서 사실만을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오오라같은게 솟아오르는것 같았다.
카오루씨가 이 사람에게 약한것도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짝짝짝

"좋아, 좋아. 일단은 합격일까. 오쿠사와씨 그렇게까지 말할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의외로 열정적인 사람인걸까나? 조금은 도와줄 생각이 들었어."

"네에.."

역시 시험받고 있었던 모양이다.

카논씨에게 제일 친한 친구인만큼 시라사기선배도 카논씨가 소중한것이겠지.

이해가 되니까 화낼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거. 카논이 자주 가는 수족관의 티켓이지? 이번에 각국의 해파리를 전시한다던가. 한장 줘봐."

"아.. 조금이란 그런거였나.. 카오루씨 힘냈네-. 여기요. 하긴 티켓에 왠지 해파리가 그려져있더라니.."

시라사기선배도 관심이 있는 걸까 티켓을 들고 한참을 쳐다보더니 응 하고 수긍하고는 본인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핫?! 그거 카논씨랑 같이 가려는 티켓이니까요?"

"알고있어. 하지만 그 아이 이미 티켓 가지고 있었으니까. 일자까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완전히 똑같은표."

"네에.. 권유했으면 얼마나 썰렁했을까.."

코코로 검은옷의 사람들도 있으니까 이미 알고서 저지른건지 아닌지 파악이 힘들다.

아니, 계기라고 했으니까 카논씨가 표를 가지고 있든 아니든 내가 권유할 건수만 있으면 됐다고 생각한걸까? 기본적으로 코코로가 짠 계획은 대략일때가 많으니까.

"좋아. 오쿠사와씨. 수족관에서 12시에 만나도록하자. 옷차림은 평소보다 신경썼으면 하는데."

그렇게 말하고 시라사기선배는 가버렸다.

붙잡을 틈도 없이 폭풍같은 일방적인 말들을 해두고 벙쪄버린 나는 상관없다는 듯이.

"결국 티켓도 들고가버리셨어.. 결국 뭐였던거지.. 하아.. 준비해준 코코로에게는 미안하지만 뭐.. 카논씨 이미 티켓가지고 있다잖아.."

실망해서 축처진 내 뒤로 한심해. 미사키 티켓따위 구실에 불가하잖아? 하는 환청이 들려올정도다.

딱히 사실이니까 반론의 여지도 없다..
일단 평소보다 신경쓰고 오라니 어겼을때 튈 불똥이 무서우니까 당일 입고 갈 옷이나 정해둘까-.

워낙 휘둘리는 일이 많아서인지 거의 이야기해 본 적이 없는 치사토의 강제적인 데이트에도 미사키는 아-. 시라사기선배가 혼내지 않을만한 옷이 있던가하고 빠른 순응을 보였다.

뭐, 카논씨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좋으려나~.

그렇게 의욕을 잃은 미사키는 한가지를 간과하게 되버린다.
카논이 가지고있던 티켓은 같은 일자였다는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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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카논)옆자리  (0) 2018.07.22
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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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과 동시에 마지막인사도 짧게 끝마칠 수 밖에 없을만큼 재빨리 품안에 가둬져버린 나는 코코로가 말한대로 정말 내가 바라는것은 전부 얻을 수 있는, 누군가가 본다면 부럽다고 생각할 환경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목걸이가 걸쳐져 항상 코코로만을 보도록 끌어당겨지는 생활은 짖무르고 덧나서 조금씩 조금씩 수렁화 할것은 예상 할 수 있어서 행복하게 자는 코코로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대로는 좋지 않다는 결론을 냈다.

상처입히길 바라지 않는만큼 나는 네가 행복하길 바랄때는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둘러싸인 검은옷의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그 낌새가 보인다면 코코로에게 전해져서 조금 더 강력한 무언가로 묶여버릴지도 모르지만 내가 바라는건 그저 나를 통해서 코코로의 세상이 넓어질 수 있길 바라는거니까.

"그러니까 탑에 갇힌 공주님. 이 밖의 세계도 관심을 가지게 도와줄테니까. 나를 좀 믿어주면 좋겠는데."

코코로는 언제나 믿음이 조금 격렬한면이 있는게 아닐까.

결혼은 일단 인생 최대급의 사랑고백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걸로도 안된다니 욕심도 많고 의심도 많아져버린것 같았다.

자고 있을때마저 안심이 안돼는지 배에 꽉 둘러진 팔은 소중하고 소중한 보물을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신의 비밀장소에 숨겨 보이고 싶지도 않은 어린아이의 독점욕같지만 하고 있는 일의 스케일이 남다르니까 문제였다.

"..하로하피의 활동이 재개되면 어쩔 수 없이 코코로도 사전교섭역인 내가 다른사람이랑 접하는걸 막지 못할테니까 결국 이 새장의 끝은 정해져있는거나 마찬가지인데."

내가 코코로를 상처입힐까봐 망설이는것처럼 코코로는 내가 바라는것을 막지 못하고 그저 애원할 뿐이다.

끝이 정해져있는 유토피아에 집착하는건 그것밖에 꿈을 이룰 방법이 없기 때문일까?

코코로가 바라는건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확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확신이 없으니까 안락하고 평온한 안식처를 만들어, 둘밖에 없는 세계를 만들어 내가 자신의 손밖에 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려고했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코코로의 손을 놓치않을거라는건 어떻게 하면 전할 수 있지. 하아.."

나도 빨리 자지 않으면 몇년사이에 실력이 얼마나 유지됐는지 한번 5명이서 맞춰보기로 한 연주에서 장렬한 실수를 할지도 모른다.

안그래도 요새 코코로가 점점 옛날의 체력괴물로 돌아가는 중이라서 피곤한 몸인데 어서 쉬고 어차피 한가해서 넘쳐날 시간에 마저 고민해보기로 정했다.




눈을 뜨면 어쩐지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사랑스러운것들에 둘러싸여있었다.

실제로 구름에 촉감이 있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둥실둥실한 느낌의 구름카페트의 위를 걸어 여긴 어디인지 둘러보면 천장으로부터 매달린 별들은 장미향이 감도는 쿠키로 만들어져있는것 같다.

자꾸자꾸 앞으로 나아가면 어쩐지 본 기억이 있는 토끼의 인형은 마리-안드로메다의 봉제인형에, 손을 잡은 곰인형은  폭신캐 결정전에서 썼던 단추로 눈을 만든 미셸의 데포르메일까?

하늘을 날아다니는 해파리인형은 두둥실 무게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라고 손을 흔들며 응원하는 두마리..일지 두개의 인형을 뒤로하면 양모펠트와 형형색색의 인형들에 어울리지 않은 모던한 흑백의 테이블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안녕. 오랜만이구나, 미사키. 이곳은 마음에 드니?"

"어쩐지 익숙한것 투성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기분일까.. 그립고 따듯한 기분이 드는걸."

눈 앞에 앉아있는 등신대 크기의 분홍곰, 미셸은 아마 이 세상은 꿈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해주었다.

가지각색 라이브용 옷들과 여러 모자를 가지고 있을 미셸이지만 오늘은 미셸은 한번도 쓴적이 없을 미카엘의 가면을 오른쪽의 귀에 비스듬히 걸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미사키는 지금 매우 행복하단거구나. 하지만 이 공간은 어떻게 생각해?"

인형이 안내해주지 않았다면 이곳을 발견하진 못했을거라고 생각 할 정도로 테이블 위에서 은은한 불을 피우는 은제촛대가 아니라면  이곳은 매우 어두웠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 이유는 명확해져서 하늘에는 어느새 별도, 달도 없어져서 햇님조차 보이지 않았다.

"외롭고.. 무서운게 아닐까? 딱딱하고 가시돋힌 기분이 드는걸."

"그렇다면 미사키는 매우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있구나. 원인은 사라져버린 태양인걸까? 하지만 자, 자세히 보면 사라지지 않았어."

미셸은 언제 꺼내들었을지 모르는 등불이 매달린 지팡이를 번쩍 들어 하늘을 비추었다.

바닥을 이루는 폭신하고 하얀구름과는 다른 어두운 검은구름으로 감싸인 햇님은 언젠가 코코로가 만든 태양의 양모펠트를 닮아있었다.

"이 장소는 혹시 내 심상이라거나 그런거야? 그러니까 미셸도 미카엘도 살아있고 코코로도 원래대로 밝게 돌아올거라고 바라는게 반영된건가."

그렇다면 저 검은 구름이 혹시 나라든가.

냉정하게 생각하면 처음부터 나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코코로는 여전히 모두가 특별하고 모두가 소중해서 웃음을 잃는다는 슬픈 일도 없이 세상을 미소로 만들기 위해서 활력적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저렇게 태양을 가려버린 구름이 자신이라는 일도 납득이 가능해서 그래도 저렇게 둘러싸고 싶을 정도로 지금의 나는 떠난다는 일은 생각도 하기 싫었다.


"비슷하지만 이 장소는 달라. 반대방향을 보고있던 코코로와 미사키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뒤돌아보면서 마주잡은 손과 같이 겹친 공간이랄까? 그래서 두명은 마주보게 됐지만 여전히 보는곳은 반대이니까 이렇게 되어버렸지."

태양이 떠있는데 밤과 같이 어둡고 달이 떠있는데도 낮과 같이 밝은 이상한 뒤죽박죽인 공간은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이것저것이 반대로 바뀌어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아무것도 없잖아. 저쪽에는 이것저것 잔뜩 있어서 어지러울 정도였는데."

"왜 없다고 생각해? 봐봐. 나도, 미카엘도 미사키도 있어. 그리고 저쪽과 여기는 이어져있으니까."

내가 걸어온 어두운길은 찾기 어렵지만 확실히 거기에 존재하고 있었다.

게다가 자세히 살펴보면 미셸의 지팡이 끝에 달린 등불로 밝아진 주변에는 같이 갔던 아름다운 해변의 모래를 담아왔던 작은 유리병이라던가 둘이서 나눠서 끼고 음악을 들었던 이어폰같은것들이 바닥에 널려있었다.

"자꾸 자꾸 흘러들어오고 있어. 하지만 태양이 스스로를 감싼 구름을 걷어내지 않는 한 이것들을 볼 수 없겠지. 자, 이제 답을 알아내는건 미사키의 몫이야."

언제나 웃는얼굴의 미셸은 인형탈이라 스스로 온기를 가질리가 없는데도 안아주는 품은 확실히 체온을 품고있어서 따뜻했다.

역시 아직 미셸과 미카엘은 없어지지 않고 세상을 웃는얼굴로 만드는 활동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더 용기를 얻어 힘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강제라고는 말해도 코코로는 언제나 나에게 애원하고 있을 뿐이다.

계속 이대로 내가 주는 사랑만을 받으며 나만을 봐달라는 간절한 사랑고백은 본질은 결코 달라지지 않은 부끄럼쟁이의 나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직통으로 가슴을 울리니까 나는 계속 이대로는 안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도 결국 잡은 손을 잡아당기지도 놓을수도 없이 머물렀다.

우는 코코로의 얼굴이 그것이 본심이 아닌것을 알려주더라도.

"미사키님, 혼자 밖을 돌아다니는것은 곤란합니다. 지금은 츠루마키가에 속하신 몸이니 SP를 한명이라도 대동하시는게.."

"그냥 카논씨랑 찻집에서 만나는데도 필요해요? 하아.. 그럼 어쩔 수 없지만.."

눈치채지 못하게 숨어서 경호하는것은 그냥 근처에 서서 경호하는것보다 신경을 써야하는 일이겠지만 검은 정장차림의 사람들을 대동하고 상점가를 걷는 일은 주변의 시선이 대단해서 암울할 정도니까 부탁했다.

코코로랑 같은 정도로 지켜지게 된것은 어쩔 수 없다는걸 알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않는다.

딸랑이는 입점의 종소리와 함께 그다지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찾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절부절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카논씨가 보였다.

"카논씨, 많이 기다렸지? 코코로가 꽤 놓아주지 않아서 늦어버렸네."

만나러가는 사람이 카논씨라고 몇번이나 말해도 상당히 경계가 심했다.

순순히 붙잡혀서 꼼짝도 안하고 있던 내가 평소랑 다른 행동을 했다는것 만으로 이정도니까 왜 이렇게 믿음을 잃었나 고민해도 고등학교 시절에 무엇이든 이뤄진다고 생각했던 코코로가 처음 잃은게 나이니까 그럴만도 했다.

"으응. 그다지 기다리진 않았어. 그런데.. 상담할게 있다고 했었지?"

커피와 오늘의 추천메뉴를 시키고 맞은편 자리에 앉으면 흠칫흠칫하는 느낌으로 카논씨는 용건을 물어왔다.

카논씨의 마음에 드는 가게인것 같은 이곳은 안타깝게도 그날 나를 잡혀가게 하는게 일조해버린 죄책감 가득한 기억때문에 오늘 이때까지 다시 온적이 없다는듯 하다.

하지만 누구라도 보통 그런식으로 순수한 호의로 도운 일이 범죄에 협력하게 될거라고 알수있을리 없을것이다.

"음. 코코로와 관련된 일인데 말이야. 카논씨가 보기에 지금 코코로가 제일 무서워하는게 뭐라고 생각해?"

내가 없어지는것을 불안해하는건 이해하지만 츠루마키가의 당주가 된 이상 예전과 달리 내가 코코로를 피해 은둔하는 일이 성공하는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한다.

나도 모르는새에 저번에는 코코로의 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모양이라 그때의 코코로라도 손댈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은퇴해서 여가를 즐기시는 중인 코코로의 아버지는 곤란한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셨지만 저번같은 일은 불가능할거라 넌지시 말해줬다.

말하자면 내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만에 하나 생기더라도 할 수 없는 환경이니까 굳이 이정도로 경계를 할 필요가 없다는것이다.

그렇다면 코코로가 진짜로 불안하고 두려워하는건 다른걸지도 모른다.

"코코로짱이 무서워하는것? 글쎄.. 미사키짱이 다시 없어져버리는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간단한 답을 원하는건 아니지?"

당연하게 그런 말을 들으면 역시나 부끄러워진다.

코코로의 팔불출상은 저번에 하로하피의 밴드연습날에 이미 널리 알려져버린것 같아서 그 이치가야씨조차 능글능글한 웃음으로 축하한다고 놀려올정도다.

"단한번을 빼고 저는 한번도 코코로가 원하는것을 어긴적이 없는데다가 이제는 그럴수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을텐데 심할 정도로 의존하고 있어. 게다가 착각이 아니라면.. 하로하피에조차도.."

내가 바란다면 계속 꿈을 꿔주겠다는 말이 진심일거라고 생각 할 수 없었다.

세상을 모두 웃는얼굴로 만들고 싶다는 코코로의 꿈이 이렇게 가볍게 져버리는것은 아무리 코코로라도 용납 할 수 없었다.

나의 삶의 가치관까지 바꿔버릴 정도로 강렬한 영향을 남겼을 만큼 코코로의 열망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는데 단한순간에 엉망으로 무너졌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미사키짱, 그때는 미처 말 할 시간이 없어서 전하지 못했지만 그날 미사키짱이 커피를 마시고 내 눈앞에서 쓰러져 잠들었을때에 코코로짱은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었어."

어렴풋이 그러한 말이 들린것 같았지만 카논씨가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달랐던것 같았다.

그보다 코코로가 그 이후에 나에게 했던 행동들을 생각하면 뜻밖의 일이었다.

"사실은 코코로짱은 이러고 싶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래야만 했던 이유는 있는거지. 나는 그게 코코로짱이 스스로를 믿지 못해서가 아닐까하고 생각해."

"어째서요?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던 코코로인데.."

"길을 잃은 내가 항상 그런 얼굴을 하니까. 코코로짱은 지금 자신을 제일 믿을 수 없어. 그러니까 미사키짱이 정해주길 원하지만 그래선 안된다는것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어. 그러니까 자신을 속이는게 아닐까?"

그것은 마치 정말로 예전의 나처럼 되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아닌가하고 생각 할 수 밖에 없는 말이었다.

아니, 사실 코코로는 외로움을 느끼는것 같은 말을 한 적도 있고 하로하피 밴드를 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별로 없었던것 같았으니까.. 게다가 날 잊던 것도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면 납득이 된다.

코코로는 카논씨가 하로하피에서 제일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던적이 있으니까..그건 자신도 용기를 잃을때가 있다는걸 말하는거겠지.

"코코로는 제가 갑자기 사라져서, 자신에게서 떠나버린 그 이유가 스스로이기 때문이란걸 아니까.. 그러니까 바라는 것에 거짓말을 해서 잊고 싶은걸지도 모르겠네요."

그야말로 예전의 나였다.

거꾸로 돌아서버린 코코로는 아직도 같은 꿈을 꾸고 있지만 예전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스스로가 나를 상처입히지 않을까 걱정하는거겠지.

나랑 코코로는 정반대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매우 닮아있었다.

"카논씨, 오늘은 상담해주셔서 고마워요."

"후후, 아니야. 그러고보니 그때 코코로짱이 한 부탁을 이번에 들어준셈이 됐네? 이번에는 도움이 됐을까?"

평소에는 자주 여기저기 휘둘릴것처럼 보여도 강단이 있는 카논씨는 내가 주체를 못 할 때에는 나서서 용기를 주는 사람이었다.

예전에도 줄곧 격려를 받아왔고 지금이라도 나와 코코로 두명이 서로 엇나갈때에 제3자의 도움이 필요하단 결단에 제일 먼저 생각난건 카논씨였다.

이래저래 한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도 인생의 선배는 선배인지 이번에도 중요한 실마리를 남겨주셨으니까 나머지는 내 노력 나름이겠지.

"물론이죠. 이정도면 충분해. 나는 스스로를 믿지는 못하지만 남을 위할 때에는 전력을 다할 수 있는것 같거든."

어쩐지 매우 쑥쓰러운 말을 해버린것 같아서 무심코 버릇처럼 모자챙을 내려 얼굴을 숨긴다.

제멋대로 달려나가는건 원래 코코로의 특기였지만 움츠러들어 슬픈표정의 하로하피를 웃는 얼굴로 만드는건 항상 내가 하는 일이었으니까.

이번은 그 방법이 조금 내가 지나치게 제멋대로가 되어서 돌아선 코코로의 손목을 강제로 잡아당겨 이쪽을 바라보게 하면 되는거니까.

이미 내쪽의 소중한것들이 조금씩 흘러들어가고 있으니까 언젠가는 변하겠지하는.. 그런 느긋한 방법으론 세상을 웃는얼굴로 만들겠다는 너의 터무니없는 동화를 이룰 시간이 부족해질테니 어쩔 수 없다.

"미사키짱은 미셸에 들어가있어도 미셸이 아닐때도 언제나 하로하피의 수호신이었어. 가까이서 지켜봐 온 내가 말하는거니까 틀림없다구?"

상쾌한 웃는 얼굴로 한손을 흔들며 개찰구 너머로 사라지는 카논씨에게 마주 인사한 뒤에 생각보다 늦어져버려 해가 지고 있는 하늘을 바라본다.

코코로는 이미 본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잊어버린걸까?

아니면 미안하다는 그 말을 아직도 속에서 되새기고 있는걸까.

들렸을지도 모르는 그 말에 실은 수많은 감정을 전부 알수는 없겠지만 단 한가지 확실한것은 나는 사과해주길 바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버리고 간 것들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때 전부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쓰라린 부분은 여전히 모른체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고등학생때의 나라도 혼자서는 나아갈 수 없었으니까. 절대로 불가능할거라고 생각하고 포기했던 코코로도 옆에 있는데 이제 나한테 불가능한게 뭐가 있겠어?"

지금의 나라면 할 수 없는건 존재하지 않는게 아닐까라고 생각될 정도로 솟아오르는 용기는 거짓말로 숨겨져있어도 변함없는 너는 아직 존재하고 있을거라는 실감 때문일것이다.

지금도 나쁘지는 않다.

사랑받는 기분은 확실히 따뜻하고 포근해서 마음응 충족시켜주고 계속 머물고 싶어진다.

하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미래는 더욱 더 즐거울텐데 지금으로 만족하는건 너무 아깝지 않을까?

그래서는 브레멘에 도착하기도 전에 정착해버린 동물들의 이야기하고 달라지지 않는다.

이대로도 충분한 해피엔딩. 누구나 납득할만한 훈훈한 동화.

"몇년동안 포기하고 갈망하고 있었던 굶주린 내가 이정도로 만족한다고? 그럴리가 없지. 아직 보여주지 못한게 얼마나 많은데, 반년정도로 충분할리가 없잖아. 아직도 승부의 대가는 끝나지 않았어."

이유는 그걸로도 충분.

전심전령의 정면승부에 이긴 대가로 반년은 너무나도 짧지 않은가?

고작 받아들인게 모래가 든 유리병과 같이 들은 노래정도라니 주고싶고 보여주고싶고 들려주고싶은건 온세상에 가득가득한데 좁은 새장에 갇혀있는건 너무나도 아깝다.

세상모두를 웃는얼굴로 만들자고 하는 꿈을 숨기기에는 너와 나는 고개를 돌리기만 해도 같은 방향을 볼 수 있는 같은 위치에 서 있으니까 숨기려고해도 무리이다.

저택에 돌아가면 하로하피의 파격적인 데뷔를 계획하자.

네가 원하는대로 우선은 내 꿈인것처럼 꾸며서 이것저것 즐거운것은 전부 구겨넣어버리자.

그래서 네가 이제는 못어울리겠다고 지친다고 화를 내며 뒤돌아보면 거기는 이미 내가 보여주고 싶은 온갖 즐거운것들이 펼쳐진 세계이겠지.

나와 네가 꿈꾸는 세계를 같이 바라볼 그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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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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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덮쳐누른채로 고개를 숙이고 뚝뚝 눈물을 흘리는 코코로를 처음으로 느껴보는 생소한 감각에 젖어 둔해진 팔을 들어올려 꽉 힘을 주어 껴안았다.

몸에 남은 상처의 하나, 하나마다 그때 느꼈던 무력함이 새겨져있어서 미사키는 상처자체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아도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길 바라지 않았다.

그래도 코코로의 앞에서 드러내는것은 오히려 조금 해방감을 느낄 수 있어서 알아준다는 느낌에 안심하고 몸을 맡길 수 있었지만 고통에 공감해서 울어버리는건 보고싶지 않았었다.

"울지마 코코로. 그때는 정말로 혼자인게 쓸쓸하고 할 수 없었던게 너무 많았지만 그런일들이 있어서 지금이 있을 수 있는 거잖아?"

잔혹하지만 그때에 그런 경험들이 없었다면 자신이 코코로를 밴드에 이끌 일도 없었고 이렇게 코코로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줄리도 없었겠지.

나의것. 나의 코코로라고 말하고 있지만 미사키는 여러가지 경험들로 상식적인 일도 알고있어서 원래라면 두명이 이런 사이가 될 가능성은 없었다는 냉정한 결론에도 이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모두 if의 이야기로 남은 상처의 자국만큼 노력하고 이해하고 상냥해질 수 있었던 미사키는 자신만의 히어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윽..흑..바보같은 말인건 아는데..그래도 그때 옆에 있던 사람이 나였다면..흑...그랬으면.."

눈물지으면서 상처자국을 쓸어내리는 코코로도 미사키가 보기에는 모든게 지루해질 정도로 즐거운것들을 외면 할 만큼 안보이는 상처가 가득한데 그것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도 자신이 지금 사랑받고 행복한 기분이 들어서 상처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녹아가는 기분을 전하는 방법을 조금 배웠으니까.

멈춰버린 코코로가 더이상 할 의지가 없다면 지금까지 받은 행복의 기분만큼 코코로도 함께 느껴줬으면해서 등에 팔을 돌려 꾸욱 안은 그대로 코코로와 자신의 위치를 반전시켰다.

폭신폭신한 상질의 매트리스는 충격도 거의 느껴지지 않게 두명의 무게를 받아들여줘서 깜짝 놀란바람에 우는걸 멈춘 코코로의 얼굴에는 다행히도 지금 상황에 대한 당황밖에 담겨있지 않았다.

"그때는 모르겠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건 코코로뿐이고 옆에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면 코코로밖에 생각나지 않게 되어버렸는걸. 하지만 코코로는 과거의 나에게 밖에 관심없는걸까."

생각해보니 조금 심술이 나서 긴장해서 서툴렀던 코코로보다 아주 느린 속도로 단추를 풀어 내려간다.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할지 알고있는 코코로는 마치 이런일이 일어날 줄 몰랐다는듯 당황하는것을 숨기지 못하고 내 아래에서 몸을 바르작거렸다.

단추를 절반정도 끌러내려 드러난 새하얀 목줄기를 덥썩 물면 코코로의 몸이 움찔 떨리고 쭈욱 혀로 훑으면 부들부들한 살갗의 내음이 마음의 깊은속까지 충족감으로 가득차게 만들었다.

"그, 그런건 아니지만.. 저기 미사키? 모르는거 아니었어? 이거..."

말을 흐리는 코코로의 금빛 폭포수같은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귓불이 새빨갛게 물든게 공연히 사랑스러워서 무심코 입술로 머금어버렸다.

감촉이 마음에 들어서 이로 자근자근 살살 깨물어보면 코코로가 못참겠다는듯 팔로 밀어서 나를 옆으로 치우려고 해서 한손으로 그 두손을 머리위로 고정해주었다.

"으음..몰랐지만 코코로가 알려줬으니까? 그런데 왜 막으려고 하는거야. 나도 기분 좋았으니까 코코로에게도 해주고 싶은데."

쓸쓸히 아래로 내려가는 내 눈썹에 흠칫 표정을 굳힌 코코로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두 손을 고정하고 있던 손을 놓아도 이제 밀어내지는 않았지만 어디에다 둬야할지를 망설이는것 같아서 내 등뒤로 팔을 넘겨주면 꽉 껴안지는 않았지만 힘을 빼서 느슨히 팔을 걸쳐주었다.

"그거.. 왠지 부끄러운데.. 내가 가르쳐서 나에게 하게 만든다니 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채로 모로 돌린 코코로의 단추를 마저 풀어내리고 쇄골에 이를 박으며 단추가 풀려 어깨에 걸쳐있을뿐인 잠옷을 그러내렸다.

그대로 코코로가 해줬던것처럼 해도 상관없었겠지만 좀 더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 맨살로 꽉 안아붙고 싶은 마음으로 한 일이 코코로에게는 좀 더 부끄러운 일이었는지 쭉쭉 잠옷을 잡아담겨도 허리를 들어올려주지 않아서 벗길수가 없었다.

아쉬운대로 그대로 안아붙어서 울어서 붉어져 조금 부은 코코로의 눈가를 입술로 지분거렸다.

"무언가 나보다 동요하지도 않고 능숙해서 분한데.. 역시 거짓말한거 아니야?"

울상지은 얼굴로 노려보는것까지 사랑스러워서 조금전의 코코로의 흉내를 내 늑골을 따라 손가락으로 선을따라 기어내려보면 허리에 걸쳐있던 손에 힘을주어 안아온다.

저항하지 않고 끌려가 안기면 가로막는 천 한장도 없는 나보다 굴곡있는 가슴에 귀를 기대어 심장소리를 듣는다.

두근두근 평소보다 빠르게 느껴지는 고동소리가 나의것인지 코코로의 것인지 헷갈리게 될정도로 가만히 기분좋은 울림에 포옹을 하고 있으면 초조하게 하고 있다고 착각했는지 등을 강하지 않은 힘으로 툭툭 두드려왔다.

"거짓말은 아닌데 코코로와 껴안고 있으면 행복해져서 긴장보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 둥실 떠오르는 기분이 드는것 같아. 그런데, 좀 더 달라붙고 싶은데.."

옆구리를 쓸어내리던 손으로 다시 한번 잠옷의 옷자락을 쭉 이끌어보면 관념했는지 코코로는 곤란한 웃는 얼굴로 움츠러든 몸짓으로 허리를 띄워 옷가지를 벗길 수 있게 해주었다.

"미사키도 벗어야 공평하지않아? ...나도 좀 더 달라붙고 싶으니까 벗어줬으면 좋겠는데."

쑥쓰러워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린채로 말하는 코코로는 그 말 한마디에 몸을 온통 긴장시켰었는지 단번에 추욱 힘이 빠져버렸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그런 같은 기분이라는 말을 해주는 코코로를 보면 하로하피 라이브를 대성공시킨 후의 주체못할 흥분감과 비슷한 하지만 어딘가 질척한 감정에 휩싸여 나로써도 드물다고 생각하는 심술궃은 얼굴이 되어버렸다.

오늘은 처음 느끼는 감정에 여러모로 휘둘리는 날인것 같으니까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것도 즐거울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코코로가 벗겨줄래? 그래야 공평하잖아?"

당황하여 찡그려진 코코로의 얼굴이 굉장히 귀엽게 느껴져서 꽉 있는 힘껏 끌어안고 싶지만 그래서는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대로 허리를 일으켜 기다렸다.

내 안에서 이런 흉포한 감정이 날뛰는지 미처 모를 코코로가 미약하게 떨리는 손으로 내 팔에 걸쳐있는 잠옷을 잡고 스르륵 끌어당겼다.

툭 하고 침대시트 위에 떨어지는 잠옷의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리는것 같았다.

상처투성이의 내 몸과 그리스 조각상처럼 하얗고 매끄러운 코코로의 몸이 대비되어 예술품을 감상하는것 같은 감동마저 느껴졌다.

열기를 띈 호흡이 질량을 가지고 짖누르는 착각을 일으킬때쯤에 가만히 바라만 보고있는 나를 참을 수 없는지 코코로가 마주앉아 내 어깨위로 팔을 걸쳐 목을 당겨 입을 맞추었다.

"읏...음.. 하아.. 코코로, 정말 아름다워. 예쁘다..? 귀여워.. 무슨 말을 해도 부족한 느낌이 들어.."

좀 더, 좀 더 마음을 울리는 단어가 있을텐데 뜨거운 감정에 익어버린 뇌에서는 지금 내가 코코로를  표현 할 수 있는 단어는 한조각도 튀어나오지 않아서 평소에 작사를 하던 경험은 다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나 하는 실없는 생각을 떠올렸다.

울렁이는 감정을 담아 지금 이 허공에 떠 있는 손에 힘을 담아버리면 연약하고 가녀린 하얀지체를 산산히 부수어버릴것 같아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행여나 넘어지지않게 다치지않게 여러 사람들의 손에서 아껴져 지켜져온 코코로는 자신의 에고로 많은 사람을 휘말리게 해 온 내 투박한 손에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차갑고 외로운 생각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럴까..? 내 눈에는 미사키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노력해 온 증거가 남은 몸이 좀 더 아름답다고 느껴지는데. 안타깝고 울고 싶어질 정도로 멋져."

안심하라는듯 툭툭 등을 두드려주는 코코로의 손에 안심해서 어느새 있는 힘껏 꽉 쥐고 있어서 손톱자국이 남은 주먹을 풀어 코코로를 마주 안았다.

걱정과 달리 곧게 라인을 그리는 코코로의 몸은 전혀 가늘기만하지도 나약하지도 않아서 끌어안아도 부서지지 않고 따뜻하고 부드럽게 나를 감싸안아주어서 이대로 누우면 기분좋은 꿈을 꿀 수 있을것 같았다.

"코코로랑 같이 있으면 지금까지 고통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언제든 즐거운 기분이 되버려. 이까 고백을 받았을때 이보다 기쁜 일은 없을거라고 최고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까보다 더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어."

두근두근 서로 겹치는 고동소리로 이 방안이 가득 찬 것 같았다.

고작 천으로 만들어진 옷가지 하나를 내던져버린것 뿐인데도 포옹하는것이 언제나와는 전혀 달라서 조금씩 조금씩 체온이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등을 쓰다듬는 코코로의 손이 척추를 따라서 손가락을 내리그으면 숨까지 가빠져와서 체력측정의 오래달리기를 단숨에 뛴 직후같이 기분이 들떴다.

더이상 한올의 틈도 없는데 좀 더 꽉 달라붙어 한몸이 되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서 코코로의 목에 얼굴을 묻고 부볐다.

아쉽지만 이 이상의 행복을 전해줄 방법을 아직 나는 몰랐으니까 결국 이후의 일은 코코로에게 노력해주길 부탁하는 수 밖에 없었다.

"지금 두근두근하고 사랑한다는 기분을 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을래? 코코로를 사랑하고 싶은데 이 이상을 도저히 모르겠어. 꽉 끌어안고 사랑의 말을 하고 키스를 해도 부족해."

어딘지 실망한듯한 아쉬운 눈빛의 코코로를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으면 이마에 쪽 키스를 해주었다.

울어버려 흐름이 끊기는 바람에 의지를 잃었던 코코로도 내가 확실히 똑같은 마음에다가 강청할 정도로 바라고 있다고 전해서인지 아까의 무모함이 느껴지던 기세를 되찾은 모양이었다.

오히려 아까보다 힘이 넘쳐보이는건 착각일까?

마치 맹수같은 눈을 하고서 마주보던 자세 그대로 뒤로 밀치는것을 버티지 않고 순순히 넘어가 기대의 눈빛을 보낸다.

좀 더 행복한 기분이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면 이번에는 내가 코코로를 행복하게 해줄테니까 모르는것은 가르쳐준다면 다음에는 할 수 있게 될테니까.

"그러니까 가르쳐주세요. 선생님."

어느새 심술궃은 기분이 날아가고 기대어서 의지하고 싶은 미셸 속의 내가 튀어나와 웃는얼굴로 만들어줄 나만의 히어로에게 숨기지 않고 부탁의 말을 보낸다.

그러면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조금 부끄럼쟁이인 히어로님은 평소의 곤란한 미소를 띄우며 다시금 사랑을 전하는 깊은 키스를 해주었다.

"가끔 미사키는 좀 치사하게 다 알고있으면서 일부러 그러는건 아닌가하는 행동을 하지.."

그런점도 귀엽지만하고 무심코 가감없는 본심을 말해버렸는지 허둥지둥 다르다고 외치려는 코코로는 이내 내 앞에서 숨겨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슬그머니 다리의 사이에 스스로의 몸을 끼어들게 했다.

무심코 다리를 움츠리려고해도 사이에 기어들어가 있는 코코로의 몸이 방해를 해서 낯간지러운, 초조한, 긴장감이 드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도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잠옷의 아래로 들어나있는 내 발목에 슬쩍 손가락으로 빙글 원을 그리는 코코로는 잠옷바지의 틈새로 손을 집어넣어 마사지라도 하는것처럼 주물렀다.

근육이 풀리는 기분에 무심코 힘을 집어넣고 있었다는걸 깨닫는다.

"우읏.. 코코로. 조금. 간지러운거 같은.. 부족한 느낌인데.."

힘을 집어넣어 꾹꾹 지압하는것과는 다르게 미지근한 자극은 근육을 풀려는 마사지와는 어딘가 다른 기분이 들었다.

참을 수 없다는 기분이 들어서 등에 돌린 손에 힘이 들어가자 코코로가 아픈지 몸을 움찔 떨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서 악물린 잇새로 숨을 헐떡일 수 밖에 없었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인형탈 속에 들어가 있을때처럼 탈진감과 함께 미쳐 빠져나가지 못하는 열기가 뱃속을 부글부글 끓게 만들어서 속에서 계속 참을 수 없다는 기분만이 부풀어오른다.

"미사키? 괴로우면 끌어안아도 어깨를 깨물어도 상관없으니까 그렇게 괴로운 표정으로 참지 말아줘."

걱정스런 얼굴의 코코로도 괴로워 보이는 표정이라 조금 안심했다.

하지만 아까 쓰다듬는것 만으로 느낄 수 있는 부드럽게 녹을거같은 코코로의 몸에 그런짓을 했다가는 상처가 생길지도 모르고 푸른 멍이 들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거친 숨소리는 참을 수 없지만 어깨를 깨문다는 발상을 할 수는 없어서 연신 쪽쪽 립음을 내는 자잘한 키스로 기분을 달래려고 했다.

안타깝게 저려오는 감각이 식지는 않았지만 꽉 안아붙으면 불안함은 사라지고 생소한 감각에도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바지를 잡아 내리기 전 열오른 눈으로 승낙의 시선을 확인한 코코로의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모든게 황홀한 기분에 잠기게 만들었다.
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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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에 가득 노란빛이 일렁였다.

이미 난 너의 것인 걸. 

 입이 막혀 완전히 끝맺지 못한 말이 나오지 못하고 입속을 돌아다녔다. 서로의 것처럼 빈틈없이 맞물린 입술에 몸 속 어딘가 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워서 어정쩡히 벌리고 있던 팔을 굽혀 코코로를 꽉 끌어안았다.

 머릿속을 울리는 쿵쿵 소리가 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키스는 처음이야. 정확히 말하면, 네가 해주는 입맞춤 자체가. 그저 맞물리고 있던 코코로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걸 깨닫고 미사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많은 생각을 했다. 같이 밤을 보내자는 그 말에.

같이 재밌는 카드 게임을 할까, 오래도록 이야기를 할까, 창밖으로 밤하늘을 보는 것도 좋겠어.

그 반대의 이면 속.

널 내 품에 끌어안고, 달콤한 향을 맡아, 진득하게 눈을 맞추고, 사랑스러운 네 이름을 부르고, 그렇게 잠에 들어싶어. 생각만 해도 놀라우리만치 달았다.
그러나, 잘 모르겠지만 코코로가 그 이상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건 알았다.

코코로. 내 코코로. 나의. 나의.
 나만의. 오쿠사와 미사키는 치사한 욕심쟁이가 되어, 너를 독차지하고 싶었다. 마음 속 가득 들어찬 황금나비가 아름다운 날개를 뽐내며 비행하고 있다.

미사키는 아주 작게 눈을 떴다. 긴장으로 굳은 그녀의 등을 느리게 쓸어내렸다. 이대로 영원히 입을 맞추고 밤을 지새워도 완벽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네가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을 것 같았기에.

 " 응... "

오물거리는 그녀의 입술을 충동적으로 입을 벌려 삼켰다. 코코로가 말하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여자들의 스킨십은 모르겠어. 내겐 너무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으니까 알아볼 생각은 없었다.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가장 가까이서 끌어안아.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어떻게 하면 좋아할거야?

코코로의 옆에 있는 미사키와 미셸은 이성적인 척 하면서, 항상 감정에 휘둘리고 있었다. 애초에 이성적이었던 적이 드물었다. 단추를 푸르려 하는 작고 고운 손이 계속 헛손질을 하는 걸 알아, 코코로의 손을 덮어 정확하게 하나씩 같이 풀어갔다.

 " 하아... "

전부 풀어 헤친 단추에 숨통이 트이듯 숨을 뱉어냈다. 코코로가 몸을 떨었다. 미사키는 기묘한 갈증에 허덕이며 떨어지려는 코코로의 뒷목을 살짝 눌러 다시 입을 맞붙였다. 

응석을 부리듯 여린 살끼리 부벼, 살짝 부어오른 그녀의 입술을 할짝였다. 목이 말라, 코코로.

 " 잠, 미사... "

코코로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입을 벌린 그 잠깐 사이로 혀가 들어서 치아를 건드렸다. 고른 치아를 쓸어, 뾰족한 송곳니에 스치듯 밀고 들어가 그녀의 살덩이를 붙잡았다. 매끄럽고 작고, 소름끼치도록 연약해. 

미사키는 충동의 괴물이 제 머릿속을 끊임없이 노크하고 있는 걸 알았다. 날 이성적이지 못하게 만드는 그것. 날 괴물로 만들게 하는 그런 것.

그나마, 아직도 코코로가 무엇을 하려는지 모른다는 게 일종의 브레이크였다.

코코로의 얇은 살덩이를 간지럽히다 입술을 아프지 않게 물며 거리를 두었다. 제 앞섬을 구겨지도록 붙잡고 제 어깨에 기대는, 목에 닿아오는 거칠어진 그녀의 숨이 등허리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 하, 하아... 당신, 진짜. "

숨을 고르는 코코로의 등을 느리게 쓰다듬어, 그 행위에 놀랐는지 그녀는 한 차례 몸을 떨었다.

 " 또 내게... 거짓말했지, 미사키. "

 " 에. 그렇게 말해도. 오늘은 전부 사실대로만 말했는 걸. "
 
 " 거짓말. "

 " 진심이야. "

힘겹게 고개를 든 코코로는 잔뜩 억울한 얼굴로, 붉은 피부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 눈물에 정말 제 자신이 저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을수도 있겠다고 생각해버린다. 등을 쓸어내리는 손에 스치는 황금빛 머릿결을 문득 손에 쥐었다. 의심어린 시선은 여전했고 미사키의 눈이 슬쩍 옆으로 향했다 다시 되돌아온다.

 " 정말인데. 혹시 뭔가 거짓말 같았어? "

 "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으면서 지나치게 능숙한 건 알고 있는걸까?! "

왁, 하고 소리친 코코로는 비틀비틀 고개를 숙여 제 목에 얼굴을 묻었다. 그 황금자락에 입을 맞추고 미사키는 나지막이 소리내 웃었다.

 방금 전의 키스를 말하고 있는 걸 알았다.

몇 번이나 본 적이 있는 걸 따라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리미와 같이 보는 공포영화에서도 진득하게 키스하는 러브씬은 있었고, 어머니가 보는 드라마에서도 단골처럼 나오는 행동이었다.

다만, 이렇게까지 감정에 잡아 먹힐 것 같은 느낌을 몰랐다.

 " .... 아. "

흣. 울렁이는 가슴을 관조적으로 느끼다 돌연 코코로에게 목이 물린다. 상대적으로 약한 피부에 전해져 오는 따끔함에 흠칫 몸을 떤 미사키는 가만히 그녀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코코로의 손이 제 몸을 휘감았다. 아까의 제 행동을 따라하듯 뒷목을 가만히 누르다 옷 안으로 집어 넣은 손이 등을 쓸어내렸다.

뭘 하려는거야? 의문을 밖으로 꺼내는 일은 없었다. 뭘 하든 좋아하지만.

선명히 느껴지는 잇새와 숨이 뜨거웠다. 빨아들이는 힘과 소리가 적나라하게 머릿속을 파고 든다.
 너의 향, 너의 체온, 너의 애정. 네가 주는 모든 것들.

 " 읏, 응... "

아찔했다.

몽롱한 기분에 사로잡혀 코코로의 잠옷자락을 붙들었다. 쪽쪽, 하고 분명 일부로 내는 소리일 게 분명한 소음에 발가락이 움츠러들었다. 해소하지 못한 무언가가 응어리져 뱃속에 가득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뜨겁지 않은 곳이 없어. 멍한 머리로 너를 안고 있는 탓일까 생각했다.


.


꿈에서조차 상상해본 적 없던 현실이란 이리도. 

코코로는 맹세컨데 미사키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거라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관계가 될 수 있으리라조차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의 상처, 당신의 과거, 당신의 행동하는 의미.
 모조리 파헤쳐서 낱낱이 들춰내 보고싶다고 갈망하는 건 이상한 일일까나.

끙끙거리며 내게 매달리는 당신의 모습에 더할나위 없는 만족감이 빠듯이 차오른다. 어깨에 걸쳐진, 당신이 입은 내 잠옷을 목깃을 잡아 끌어내렸다. 미사키의 목덜미에 새긴 제 증거가 선명했다.

미사키의 등줄기를 따라 올라간 손이 목을 감싸듯, 제것이란 증거에 손가락을 짚었다.

 " 여기에, 미사키는 내 것이라는 증거를 새겼어. "

 " ... 증거? "

 " 응, 키스마크. "

평소라면 부끄러워 꺼내지 못할 말을 거리낌없이 뱉을 수 있는 건 당신의 정열적인 키스를 받은 탓일지도 모른다. 

오쿠사와 미사키는 무엇도 하지 못하고 외면하기 바쁜 현실을 단번에 꿈과 동화같은,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비현실적인 세상으로 바꾸는 재주가 있었다. 

 그건 기적과 같은 마법이었고, 미사키는 마법사였다.

당신 스스로를 희생해 일으키는 누군가의 세계를 바꾸는 처절한 마법. 미사키의 드러난 몸을 바라보는 코코로의 눈이 일렁였다.

 " 코코로. 너무 뚫어지게 보면 부끄러워... "

 " ... 그치만 미사키의 몸, 굉장히 엉망진창인 걸. "

이런 분위기에서, 이런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는 말이란 걸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고선 버틸 수 없었다.

하얀 면 속옷 아래로, 크고 작은 흉터가 한 가득. 곤란한 듯 웃는 당신의 마법같은 삶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몸이 안타까웠다. 방치해 남은 아주 자잘한 흉을 눈으로 더듬다, 가슴 아래 도드라진 갈비뼈를 손으로 훑었다. 접촉에 놀란 몸이 한차례 떨린다.

 " 저기, 여긴 어떻게 생긴 상처야? "

잘못보면 튼 걸로 착각할지도 모를 기다란 상흔이었다. 갈비뼈 사이를 가로지른. 주시하고 있던 몽롱한 청회빛이 기억을 더듬듯 잠겨든다. 제 잠옷을 꼭 잡고 있던 손에 스르르 힘이 풀리는 게 뻔히 느껴졌다.

안 돼, 미사키. 날 잡아야지.

 침대로 떨어지려는 손을 붙잡아 머리 위로 올려 내리 누른다. 의아하게 깜빡이는 눈에 내려앉듯 버드키스를 한 코코로는 미사키의 반듯한 콧잔등에, 불그스름한 뺨에, 부어오른 입에, 마른 턱에 차례대로 입술 세례를 쏟았다.

간지러운지 작게 웃음을 터트린 미사키는 한없이 무방비해서 빈약한 인내심이 한없이 짧아져간다.

당신 지금 무슨 꼴인지는 알고 있어? 웃음꽃으로 들썩이는 몸은 미사키의 마른 선을 부각시킨다. 툭 튀어나온 쇄골은 만지면 뼈가 고스란히 느껴질 것 같다. 위로 향한 팔 사이로 단정한 얼굴이 한없이 풀어져 있어서 위기의식으라곤 전혀 없다.

 " 아, 생각났어. 초등학교 고학년 때 고아원에 봉사활동을 갔었어. "

평이하게 나오는 어조가, 그럴 생각 만만인 건 나 혼자인 것만 같아 괴씸해졌다.

 올려다보는 눈이 잔잔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자존심에 자그마한 스크래치가 간 코코로는 허리를 숙여 쇄골 밑에 존재하는 작은 흉터에 입을 맞췄다. 말이 멈췄다. 숨마저 멈춰버린 건지, 미사키의 몸이 미동도 없었다. 고개를 살짝 드니 눈을 크게 뜨고 놀란 얼굴의 미사키가 보였다.

 " 응, 그래서? "

 " 어, 아니. 코코로...? "

 " 계속 얘기해줘 미사키. "

잠시 입을 달싹거린 미사키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 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들어온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애가 자주 울었었어. "

지금은, 중학생인 아이야.
덧붙이는 말엔 이유를 알 수 없는 애정이 들은 것 같아, 코코로는 손에 힘을 주어 그녀의 늑골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쓸어올렸다. 허리가 살짝 떠, 옆으로 휘었다.

코코로는 딱히 멈추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입에 댄 흉터를 진득하게 빨아올려 잇새로 간질인다. 헛바람을 집어 삼키는 소리와 함께 배에 힘이 들어갔다.

 " 아, 그, 그러니까... 우니까 달래, 주고 싶어서... "

미사키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았다. 꼼지락 꼼지락, 내리 눌렀던 손을 어쩌지도 못한 채 제 손을 몇 번이고 건드려오는게 사랑스러워. 사실 당신의 힘이라면 지금 이 못된 짓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텐데.

참을 수 없는 기분으로 고개를 좀 더 내려, 부드럽게 부푼 언덕을 짓씹었다.

 " 아! 으... 그치만, 잘 안되서... 밀쳐, 져서... 책상에엣... "
 
 " 그렇구나. "

문답이 계속 된다.

쇄골 밑의 상처. 어깨에 작은 화상자국. 골반에 짓물린 흔적. 날개뼈를 가로질러 꿰맨 커다란 상흔.

 미사키의 순진한 반응은 꼭 스스로가 범죄자가 된 기분을 맛보게 했다. 어디서 솟아난건지 모를 의지가 꺼져갈 때마다 미사키는 칠칠치 못한 얼굴로 상반신을 굽혀 키스해왔다.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질 때마다 막연하게, 아주 막연하게 코코로는 미사키의 입을 막고 싶었다. 자기가 물어본 주제에. 나름 필사적으로 이어지는 흉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마법사가 마법을 일으키는 대가로 얻은 것이었다. 얄궂은 일이었다.
 너무 얄궂어서 분명 동화책 소재로도 써먹지 못한다.

그렇구나.

여섯번째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을 때 가까스로 뱉어낸, 덤덤해야할 목소리가 볼품없이 떨렸다. 몸에 남은 마법의 흔적들에게 하나하나 정성스레 입을 맞췄다. 이건 어떻게? 저건 어떻게? 모든 흉터들의 이유를 알아볼 것처럼 집요하게 물어봤다. 미사키는 생소한 감각에 몸을 떨면서도 착실하게 답을 풀어주었다.

미사키는, 어느새 자유를 되찾은 손으로 이불보를 그러쥐고 있었다. 눈가가 붉었다.

코코로는 어리석은 생각임을 알면서도 오쿠사와 미사키를 더 빨리 만났더라면, 하는 상상을 했다.

 -왜.. 다들 지금까지 아무도 그렇게 말해준적이 없는데 코코로는 나를 웃는 얼굴로 만들려고 하는거야?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도 꿈을 같이 이뤄나갈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바보같은 생각이라고 나를 버리고 갔는데.. 그리고 누구보다도 내가 나 자신을 믿지 않는데.. -

당신은 누구도 의지할 수 없는 이유로 그렇게 둘러댔지만, 그건 그저 마지막 결정타였다는 걸 알아버렸다.
 상처 하나하나가 믿음에 대한 누군가의 배반이었다. 밀쳐지고, 거부당하고, 외면받고, 떨어지고, 구르고, 속임당하고. 미사키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저 바보같을 정도로 원대한 목표가 있을 뿐이었다.

당신을 좀 더 빨리, 만났더라면.

 " 코코로. "

좀 더 빨리, 당신의 편이 될 수 있었다면.

 " 울지마. "

밀쳐져서 책상에 살결이 찢어지고. 거부당해 계단에서 구르고. 외면받아 외톨이의 기분을 느끼고. 구하려고 뛰어들어도 의심받고. 속임당해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그 모든 게 남아 있었다. 잊을 수 없게 선명히도.

당신이 살아온 삶을 제 흔적으로 덮을수록 눈물이 앞을 가려서 무엇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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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공책님(@Fox_nullnote)님이 써주셨습니당!
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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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을 해치워버리면 그 다음은 망설임도 조금씩 사라지는지 틈만나면 나를 요구해오는 코코로의 유혹에 결혼식을 계기로 그나마 남아있던 인내의 이유도 사라져버렸으니까 정말 하루하루가 방탕해져버렸다.

특히 아르바이트나 대학교에 갔다와야 하는 일이 있었을때는 돌아온 나를 애처롭게 올려다 보니까 이런 코코로의 얼굴을 보고도 거절 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부디 노하우를 가르쳐줬으면 한다.

"미사키. 키스마크는 어떻게 남기는거야?"

오늘도 아르바이트 후에 늦게 돌아온 나를 코코로가  부추겨서 씻기도 전에 짐승이 되버린 바람에 지쳐서 코코로가 추욱 늘어진 사이에 급하게 씻고 온 참이었다.

희미해져가는 붉은 흔적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또 덧쓰여진 부위를 사랑스럽다는듯 웃으며 쓰다듬던 코코로가 나에게 물어봐왔다.

"어라. 코코로 모르고 있었던거야? 왠지 잇자국은 이렇게 많이 남기면서 그런건 하나도 안보인다는 생각은 했지만.."

별로 그런 자국을 남기는데 집착이 없는건가 생각했지만 그렇지도 않은것 같다고 일부러 남겼다는게 티가 나는 코코로의 고른 치열이 그대로 찍힌 자국을 보면서 생각했지만 잇자국이 취향이 아니라 키스마크를 남기는법을 모른거였다니..

하긴 내가 떠나버렸던 반작용으로 무시무시한 질투심을 학습한 코코로는 내가 말도 하지 않고 어딘가에 가는것조차 싫어하니까 나보다도 독점욕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게 자연스럽겠지.

"이렇게.. 쪽.. 하아. 빨아들이면 남아. 내출혈이 일어나서였던가? 잘 모르겠네."

머리카락을 말리느라 화장대 앞에 서 있던 나는 침대의 근처에 있는 코코로에게 다가가서 그 손을 잡아 하얀 팔에 내 소유욕의 흔적을 하나 늘린다.

그것을 반짝반짝한 눈으로 보던 코코로가 갑자기 확 내쪽으로 안겨와서 받아들이며 그 충격에 뒤로 주춤 물러나다가 침대 위로 쓰러져버렸다.

"나도 할래! 미사키만 잔뜩 남기니까 간사하다고 생각했거든. 처음은.. 그래. 여기가 좋을것 같아."

코코로가 자주 코를 박고 숨을 들이쉬는 목의 오른쪽부분을 스윽 손가락으로 가볍게 쓸어서 간지러움에 움찔 몸을 떨었다.

스카프라도 하지 않는 한 남들에게 다 보일 위치이지만 뭐, 어쩔 수 없다.

이름까지 츠루마키로 바뀌었는데도 코코로는 아직도 내가 없어지지 않는가 항상 걱정하고 계속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것을 알고있으니까 나도 항상 거절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코코로 오늘치 일은 다 끝냈어?"

지쳐서 나에게 온몸을 의지하고 있는 코코로를 껴안고 침대의 등받이에 기대앉아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마치 고양이가 애교를 부리듯 얼굴을 부벼온다.

내가 집에 없을때에 가져온 일을 처리하고 있는지 아니면 신혼이라고 배려를 받고 있는지 코코로가 내 앞에서 일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일할때에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지고는 했다.

"으음-. 급하다는건 전부 처리했으니까 나머지는 나중에 천천히 해도 괜찮아. 그보다 미사키는 오늘 대학교에서 어땠어? 저번에 말한 그 취업제한에 대해서 거절하고 온다고 했었지."

노골적인 대화주제 회피는 언제나와 같이 코코로가 일 할때에 대해서 나에게 말해주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알게해준다.

아무래도 여전히 코코로는 내가 옆에 없을때는 다른 사람이 말했던 냉정한 코코로로 돌아가는 모양이라서 그런 모습을 간접적으로 밖에 접할 수 없었던 나는 궁금해서 여러번 훔쳐보려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몇년 사이에 발달해있던 눈치와 철두철미하게 계략을 짤 정도의 지능은 도저히 옛날의 코코로라고는 생각 할 수 없어서 번번히 실패하고는 했다.

"응. 거절하고 왔어. 내 능력을 높히 사준것은 좋지만 졸업하면 코코로랑 세상을 웃는얼굴로 만들기로 했잖아. 적당히 선택한 전공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게까지 미련도 없고.."

그때는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하기보다 여러가지 한계직전인 스스로를 통제하는데 힘껏이었어서 아무 회사라도 취업 하려고 경영학과로 정해버렸었는데 나쁘진 않았다.

뭐, 공부보다 다른 활동에 집중한 느낌이 들지만 대충하지도 않았으니까 성적은 그럭저럭 유지했다.

"후후후. 그럼 졸업하면 계속 함께인거네. 미사키가 대학교에 갈때마다 너무 외로웠어."

그래봤자 몇시간도 되지 않는데다가 집에 있는 코코로가 언제나 돌아온 나에게 울상을 지으며 달려드니까 최대한 빨리, 다른데에 들르지도 않고 돌아오니까 외로워 할 정도는 아닐텐데.

말하면서 그 기분이 떠올랐는지 의지하고 있던 몸을 일으켜서 코코로가 나에게 매달리듯 마주 끌어안는다.

항상 내가 하는측이어서 그렇게 눈에 띄지 않지만 역시 몇년사이에 내 키를 추월해버린 코코로가 덮쳐 눌러오면 의미 모를 박력이 느껴진다.

"아-. 그래도 전부 기대는건 싫으니까 하로하피가 활동재개하고 적응했다 싶으면 일본에서 일자리를 찾아볼 생각인데."

내 어깨에 턱을 올려두고 즐겁게 콧노래를 부르던 코코로가 돌연 멈췄다.

숨이 헉 내뱉어질 정도로 끌어안는 힘이 강해졌다.

"미사키는 이제 츠루마키 당주의 아내이니까 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기댄다고 생각하지 말아줘. 그래! 다른 부부들 중에서도 전업주부란게 있잖아. 미사키 전업주부가 되는게 어때?"

숨쉬기 힘들정도로 조여오던 힘이 돌연 풀리더니 코코로가 양손으로 내 얼굴을 잡아 눈을 직시했다.

반론은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듯 나보다 큰 키 때문에 내려다보는 코코로가 무서운건 처음이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려고 하면 손아귀의 힘이 강해졌다.

"저..전업주부라니. 츠루마키저택에는 메이드도 있고 집사도 요리사도 있잖아. 청소도 빨래나 요리도 다른 사람이 해주지 않아?"

실제로 고등학교시절 집에 놀러가면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모든게 미리 준비되어서 작곡을 하느라 며칠 묵을때에 이러다가 여기에 익숙해지면 내가 나태한인간이 되어버릴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말하자면 츠루마키저택에 전업주부가 할 일은 하나도 없다는 소리이다.

"우리가 살 방의 청소나 내가 먹을 식사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미사키는 하로하피의 작곡으로 바쁠 예정이니까 다른데에 취직하면 일정조정이 힘들거야."

속닥속닥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이것만큼은 생각을 바꿀 마음이 없다는듯 모든 반론을 쳐부수어오는 코코로의 목소리가 강압적인 내용과는 달리 달고 은은하게 귓가에 속삭여진다.

스르륵

이불이 미끄러져 내려가는것도 붙잡지 않고 허리를 일으킨 코코로가 정체를 알수없는 무언가에 두려워하며 눈을 휘둥그레 뜬 나에게 키스한다.

"미사키가 졸업하는걸 기다려 달라고해서 나, 기다렸어. 어쩔 수 없다는걸 아니까 싫어도 아르바이트나 대학교에 혼자 가는거 막지 않았는데. 그래도 참을 수 있었던건 기다리면 미사키가 졸업하고 계속 내 옆에 있어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야."

내가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마다 나를 통째로 집어 삼킬것같은 키스를 해서 아무말도 하지 못하게 하고서 자신의 말만 늘어놓는 코코로는 평소라면 내가 힘으로 이겼을텐데 떼어놓을수가 없다.

배려없이 실린 무게에 짧은 숨을 쉴 수 밖에 없어져서 깊게 혀를 비집어 넣어오는 키스를 할때마다 조금씩 정신이 혼미해져온다.

모른척하려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던 아직 해결하지 않고 방치해왔던 문제가 떠올라온다.

"미사키를 따라 미국에 왔으니까 이번은 미사키가 내 말을 들어주는게 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무데도 가지 말고 내 옆에 있어. 좋아하는 양모펠트를 해도 되고 테니스장도 저택에 만들어줄게.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초대해도 괜찮아."

채찍을 쳤으면 다음은 당근이라도 준다는건지 선심쓰듯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전부 이뤄주겠다고 바라는걸 말하라고 재촉한다.

숨을 몰아쉬는 나의 볼을 매만지며 애정이 듬뿍담긴 눈으로 쳐다보지만 여전히 찍어누른채로 비켜줄 생각은 없어보인다.

다리조차 코코로의 가는 다리와 뱀처럼 얽혀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마치 안보이는 밧줄에 꽁꽁 묶여서 사자 앞에 내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기껏 미사키가 내 옆에서 떠날 수도 있는 이유를 줄였는데 다시 다른 장소를 만드는건 안돼. 미사키가 소중히 여기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것은 없애버리면 미사키가 슬퍼할테니까 할 수 없지만 더이상 늘어나면.. 나, 참을 수 없을지도 몰라?"

사실은 미사키의 전여자친구나 동아리의 친구, 매니저같은 내가 모르는새에 생긴 사람들도 전부 마음에 들지 않는다구.

미사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바뀐점이 있다는것도 싫어.
내가 모르는부분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간단하게 질투라고 정의했던게 실은 그렇게 가벼운 정도가 아니라서 당황스러워진다.

코코로는 그날 우리가 화해를 했을때에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 사이의 승부에서 졌으니까 한번만 보류해준거겠지.

여전히 수갑을 채워 날 묶어서 가두고 싶은 지독한 불안감과 독점욕같은 기분을 켜켜히 쌓아가고만 있었다.

코코로의 세계에는 마주보고있는 나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것이다.

여전히 일할때에는 냉정하다고 했던 검은옷의 사람의 말을 허투루 흘려듣지 않았어야했는데.

"그건.. 그건 안돼, 코코로. 그런 의존같은건 좋지않아.."

하나사키가와의 이공간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신 밖에 없는 세계에 있던 코코로가 그 세계에 발을 들이게 한건 여전히 나뿐이었다는걸, 행복감에 절여져 마비된 신경이 좋을대로 해석해버리고 있었다.

"왜 좋지 않다는거야? 미사키가 옆에 있으면 나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기분이 되는걸. 미사키라도 내가 옆에 있으면 행복하다고 했으니까. 그러니까 계속 옆에있어 달라고 하는게 나쁜걸까?"

기이하게 번뜩이는 시선이 육식동물에 노려지는 기분이 들게 했다.

세상을 웃는얼굴로 만들러 가자는 말도 지금의 코코로는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걸 깨달았다.

그러고보면 한번도 즐거운것을 찾으러가자는 말을 듣지 못했다.

코코로가 부르는 콧노래도 전부 나에게 전하는 사랑의 기분만 가득 차 있었고 여행지에서 누가 슬퍼하던지 기뻐하던지 신경쓰지도 않았었다.

코코로의 세계에 코코로 혼자만이 있었을때는 스스로를 볼 순 없으니까 밖을 내다 볼 수 밖에 없었지만 코코로의 세계에 코코로와 나, 둘만이 남게되자 나밖에 보지 않게 되어버린것이다.

"미사키가 바라면 세상을 웃는얼굴로 만들러가자던 꿈도 계속 꾸는척 해줄 수 있어. 바뀌지 않은 모습만 보여줄 수도 있어. 그런데 미사키. 나는 이미 그때 그대로가 아니야. 미사키가 사라진 순간에 내 세상이 회색이 되어버렸을때 나는 타인의 웃는얼굴보다 미사키와 내가 중요해졌어."

내게 특별한건 당신뿐이야.

저주와 같이 계속 코코로의 말이 메아리친다.

죄책감이 가슴을 꽉 조여들게 하는데 코코로의 손이 눈가를 매만진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맺힌 눈물을 슥 닦은 새하얀 손가락을 핥은 코코로의 눈이 요사스럽게 빛난다.

"미사키가 없으면 모든게 보잘것없어진다는건 미사키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말이잖아? 슬픈 얼굴을 하는걸 보고 싶지 않다던 미사키의 말을 다시 말하면 웃는얼굴로 만들고 싶다고 할 수 있는것과 같아."

정신적으로 지쳐버려서 반항할 의지가 사라져버린 내 신체를 그래도 불안한지 위에서 비키지는 않은채로 자유로운 손만을 움직여 코코로가 애무하며 내려간다.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로 나와 같은 움직임을 따라하는 모습은 코코로의 말과 겹쳐 코코로의 세상에 나밖에 없다는 말을 되새기게 한다.

"그러니까 미사키가 그 꿈을 계속 꾸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나도 진심으로 같은 꿈을 꿀테니까. 아하! 그렇다면 나는 세상 모두를 웃는 얼굴로 만들자는 꿈을 계속 꾸고 있다는게 되네. 하지만 나의 꿈은 이미 이뤄졌어."

미사키와 내가 웃으면 내 세상은 이미 전부 웃는얼굴이잖아?

행복하게 웃는 코코로의 얼굴은 정말 아름답고 가면처럼 꾸민 가짜 웃음도 아니었다.

진짜로 진심으로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거다.

"미사키가 다른 사람을 신경쓰고 곤란하다면서도 도와버리는 부분도 전부 좋아하니까 막을 수 없지만 그래도 미사키에게 소중한게 너무 많아져서 그쪽을 나보다 중요하게 여겨버리면 어떻게 해?"

뚝뚝 눈물을 떨어뜨리면서도 멈추지 않는 손은 다른 누군가를 위로한 적이 있음에도 끝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던 연정 때문에 아무에게도 허락한적이 없는 내 몸을 가차없이 유린해간다.

느껴본적이 없는 감각의 폭풍우가 온몸을 휩쓸어서 바다를 둥실둥실 떠다니는 해면체가 되어버린 느낌이 들고 저항 할 기분도 녹아서 사라져가버린다.

"흣..코코로가 나를 사랑하는만큼 으웃..나도..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잖아.."

숨이 끊어질듯 말듯 하면서도 쾌락에 침울해지려는 몸에 채찍을 쳐서 조금이라도 불안해하는 코코로를 안심시키려고 한다.

언제나와는 다른 구도에, 바뀐 코코로의 분위기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방의 풍경마저도 다르게 보여온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지만 반항 할 수 없는 기분으로 몰려지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미사키의 사랑은 나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떠날 정도로 너무 욕심이 없단 말이야. 나처럼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가지고 싶어서 필사적이지 않는걸."

무엇을 희생해서라도 내걸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랑은 너무 달라.

그렇게 말하는 코코로는 너무나도 괴로워보여서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공감해주고 싶어서 꽉 끌어안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조차 지금의 코코로는 저항의 표시라고 생각했는지 어깨를 꽉 붙들어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한 채로 깨물다란 귀여운 수준이 아닌 피가 날정도로 송곳니를 박아넣었다.

쾌락에 젖은 사고가 일순간으로 번쩍 새하얘질 정도의 충격을 느끼고 이성을 되찾는다.

이대로는 안된다는걸 알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소중한게 너무 늘어나면 상냥한 미사키는 나랑 소중한것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때 어느쪽도 포기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희생하겠지. 그런데 나는 미사키의 소중한것이 모두 사라지더라도 미사키가 내 옆을 떠나지 않았으면 하니까. 허락 할 수 있는건 여기까지야."

흥분을 주체 못하는 나와는 달리 어디까지나 냉정한 눈빛으로 철저하게 나를 아무생각도 할 수 없는 쾌락의 바다로 이끄는 모습은 내가 코코로의 진정한 금선에 접했다는걸 알려줬다.

코코로가 송곳니를 박아넣었던 부위에서 질척하게 붉은 피가 흘러나와서 하얀 시트를 물들인다.

이대로 괜찮지 않아?

그런 생각이 마비된 사고를 물들여간다.

너도 이 집착이 기분 좋다고 생각하잖아.
바래왔던게 아니었어?

너는 항상 코코로에게 필요로해지길 바랬으니까 그러니까 네가 코코로를 상처입혀서 버려지는걸 두려워해서 도망가버렸지.

자업자득이네.

"좋아.. 좋아해.. 사랑하고 있어 코코로.."

흐리게 탁해져버린 욕망에 찬 목소리로 그러니까 좀 더 나를 필요로 해주길 바래버린다.

내 시야가 온통 코코로 뿐으로 채워져버린다.

이제 아무것도 다른것은 필요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중독되어 버린다.

폭력적인 사랑이 쐐도해서 부딯친 몸이 뿔뿔히 사라지는것 같은 기분을 느껴서 결국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처음 느껴보는 쾌락에 휘둘려 정신을 잃어버린채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놓쳐버리고 코코로가 준비한 안락한 요람에 기대어버린 나는 어디까지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약한 인간으로 상처입히지 않길 바라니까 잘못된 길에서 돌려보내줄 수 없다.

여기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알고 있어도 상처받은 얼굴을 하는 코코로를 보자마자 자연히 그 눈물을 달래려고 껴안아서 등을 토닥이고- 금새 휘말려들어가서 깨달으면 쏟아져 내려오는 키스를 받아들이고 있다.

꽉 마주잡은 손은 여전히 기분 좋아서 위기감을 느끼고 사이렌을 울리고 있는 이성을 무디어지게 만든다.

이대로도 괜찮지 않은가?

새장에 가두어져버린 새가 행복하다면 하늘을 날 수 없어도 철장사이로 보이는 하늘만으로 만족한다면 그곳이 그 새에게는 천국이 아닐까.

"미사키, 사랑하고 있어."

하지만 이렇게 강압적으로 나를 안을때마다 마지막에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 너를 보면 도저히 이대로 좋다고 생각 할 수 없어서 절정에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축축한 눈매를 쓸어주자마자 다시 기절하듯 잠들어버린다.

나도 사랑한다고 대답해주고 싶은데 언제나 아무말도 못하게 입을 막아오는 코코로는 거절의 말이 나올까봐 무서워하고 있는거겠지.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괜찮을리가 없잖아. 하지만 이렇게 되버린건 전부 내 잘못인걸. 애초에 나에게 무엇이 가능하다는거야.

이미 미셸도 미카엘도 할 일을 끝내고 어딘가로 떠나버려서 남아있는것은 아무 갑옷도 걸치지 않은 오쿠사와 미사키 뿐.

나는 내가 널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한다.
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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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어질것만 같은 고혹적인 분위기는 갑자기 일어서버린 미사키로 인해 산산히 부수어져버렸다.

이쪽은 긴장에 허리가 풀려 꼼짝도 못하고 있는데 그럼 씻고나서 치료해줄게라니 내가 모르는것뿐 미사키는 상당히 이런 경험이 많은 것일까?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온통 흔들어놓고서 태연한 얼굴로 욕실에 가버린 미사키가 원망스럽지만 오히려 씻지도 않고 해버렸으면 다음에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처지가 되는건 나였을테니까 순순히 나도 준비된 다른 욕실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대로 씻고 방에 돌아가면.. 진짜 해버리는거잖아? 괜찮은거야? 사귄지 하루도 안되서 당일날 바로 저지른다니..?"

빨리 씻고 돌아가는것도 무언가 안달난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니까 일부러 자주 하지도 않는 거품목욕까지 해버리는것은 과연 너무했나 싶지만 도저히 바로 돌아가면 고개를 들지도 못할거 같아서 과열된 머리를 식힐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도 미사키가 핥은 다리의 상처가 아픔과는 다른 느낌으로 찌릿찌릿 저려오는거 같아서 괜히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의식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서 미사키가 나에게 시선을 향하는것만으로 얼굴이 빨개지는거 같고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려는걸 참느라 힘들었다.

"그런데.. 미사키는 학교에서도 상점가에서도 꽤나 인기가 많았지.. 역시 나말고도 예전에 사귀었던 사람이라든가 있는걸까.. 저런.. 부끄러운짓도 서슴없이 해버리는걸."

학교에서 곤란한 사람은 누구든 도우니까 이용해먹기 좋은 사람 취급을 당할때가 있지만 고백을 받았다는 소문을 들은적 있을 정도로 인기는 있는 편이다.

카오루씨만큼은 아니지만 미사키의 단어선정도 로맨티스트의 그것인데다가 성격도 남을 웃는얼굴로 만든다는 꿈에 걸맞게 상냥하다.

게다가 힘도 쎄고 사전교섭에도 능숙한 모습은 어른스러움을 느끼게 하는데다가 작사, 작곡에 디제잉까지.. 이정도면 미셸 인형탈을 쓰고 다니지 않았다면 카오루씨처럼 여성팬들을 홀리고 다니지 않았을까 심히 걱정이된다.

"아니, 미셸 인형탈에서 이미 아웃이지. 정신차려라 나.. 사귄다고 벌써부터 콩깍지에 씌이면 하로하피 회의에서 미사키가 내는 터무니없는 제안들을 전부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수중 라이브라던가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방수가 되는 기타나 디제잉세트가 존재하나?

수중이면 소리전달은 어떻게 하는거지.. 관객들은 노래를 못듣는거 아닌가..

그런것을 고민하는것부터 이미 늦었다는 자각도 없이 뜨거운 물에 체온이 올라 머리가 아파질때까지 버티다가 너무 늦게까지 기다리게 했다는걸 알아채고 허겁지겁 욕실 밖으로 나섰다.

"코코로, 꽤나 오래 걸렸네? 아.. 좋은향기가 나는걸. 그런데 머리카락을 덜 말렸잖아. 그러고 자면 감기에 걸릴지도 모른다구."

미사키의 손짓에 따라서 그 앞에 앉으면 보드라운 수건으로 머리칼을 조심스레 말려오는 손길이 기분이 좋았다.

동생이 여럿 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이렇게 능숙한걸까.

흘끔 방 한켠에 걸려있는 거울에 비친 미사키와 나를 보면 미사키가 평소에 입는 어두운계열의 옷과는 다른 나의 잠옷은 의외로 어울리고 있었다.

"이정도면 되려나. 자, 이쪽으로 돌아봐."

"응? ..마주보란거야?"

받아든 수건을 대충 옆에 던져두고서 뒤를 돌아보면 검은옷의 사람들에게라도 요청한건지 어느새 구급상자의 뚜껑을 열어서 연고와 밴드를 꺼내고 있는 미사키가 보였다.

씻고 나서 치료해주겠다고 하더니 새심한 손길로 소독약까지 꺼내드는 모습은 방에 도착하자마자 그런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긴장감을 다 날려버릴 정도로 평온했다.

다리를 내밀라는 미사키의 말대로 침대 위에서 한쪽 다리를 내주면 앉아있는 자신의 다리에 올려두고서 소독한다.

"다행히 그렇게 큰 상처는 아니네. 약을 바르고 밴드만 붙여놔도 금방 나을거야."

아프지않게 살살 연고를 펴 바르고 밴드를 깔끔히 붙이는 모습이 매우 익숙해보였다.

"동생들이 다치면 미사키가 자주 치료해주는거야? 관절부분인데 헐겁지도 않게 밴드 잘붙이네."

"으음.. 아니. 이래저래 내가 다친적이 많아서.. 테니스부도 하고 있고 지금은 자제하지만 옛날에는 무모한 일도 많이 했거든."

숨기지 말아달라고 했던 내 부탁을 생각해서인지 미사키는 망설이면서도 얼버무리지는 않았다.

내가 시선을 보내면 고민하는 표정을 하면서도 소매를 걷어올려 오른팔을 보여줬다.

"이건 그냥 예전에 놀이터에서 좀 무모하게 놀던 애가 있어서 정글짐에서 떨어지는걸 구하느라 골절한거고. 이거는 넘어져서 다쳤던가.."

크고 작은 상처가 여럿 있는 팔은 지금까지 미사키가 혼자서 세상을 웃는얼굴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흔적과 마찬가지였다.

나처럼 검은옷의 사람같은 지켜주는 사람도 없었고 어린동생도 여러명이니 부모님도 미사키를 항상 챙겨주지 못했을테니까 스스로 다친것을 치료하다보니 익숙해진걸까.

게다가 전력으로 터무니없는짓들을 저지르고 다녔을테니까 여기저기 다치고 상처받았을것이다.

"어라.. 코코로, 울어?"

이제와서 내가 미사키를 동정한다고하서 바뀌는 일이 있을리가 없지만 어리석지만 그래도 바래버린다.

재력과 권력, 어른들의 기대의 시선에 뭉개질것 같아서, 그런 내 말 한마디에 누군가는 생계수단을 잃거나 재기불능이 되어버릴수도 있다는걸 알아서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되버린 대신에 모든게 지루해져버렸던 어린시절의 나와.

아무것도 가진것 없이 스스로의 터무니없는 꿈만을 의지로 보답을 바라지도 않고 세상의 모두를 웃는 얼굴로 만들려고 다치고 상처받아 웃을 수 없게 되버린 네가.

지금 서로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사귀게 된것도 기적이라고 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만났으면 좋았을거라니.

"미사키. 각오해야할거야. 앞으로 나랑 사귀게 되었으니까 이런 상처같은걸 만든 날에는 나을때까지 내가 보살필거니까. 난 손재주도 없으니까 꽤 아프게 치료할거라구?"

그야말로 저택에 전속의가 있는 집안의 영예인데다가 넘어지려고 하면 순식간에 나타나서 지지해주는 유능한 보디가드도 있어서 구급상자가 저택에 존재한다는것도 지금 처음 알았다.

기세좋게 말해버렸지만 솔직히 다친 미사키 본인이 치료하는게 훨씬 빠르고 정확한 솜씨를 보여줄거라고 확신한다.

"후후후. 그거, 기대되는데? 하지만 그러면 코코로가 또 울지도 모르니까 최대한 조심할게. 그래도 다쳤다면 그때는 부탁할테니까. 그러니까 이만 잘까? 시간도 늦었고 더이상 깨어있다가는 내일 일어나기 힘들지도."

어라..? 상황을 인식하기도 전에 미사키의 품에 폭 안겨서 푹신푹신한 침대에 눕혀졌다.

게다가 등을 일정한 박자로 도닥여오는 손길은 기대했던 분위기랑은 전혀 다른 명백히 재우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팟하고 이불을 박차고 발끈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면 미사키는 본인이 자초한 일이면서 왜 그런 눈으로 내려다보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금 그냥 자려는거야? 실컷 기대하게 해놓고 미사키라도 그럴 마음으로 자러 온거 아니었어? 아니면 뭐야.. 또 쓸데없는 걱정으로 사양하려는건가."

여전히 의아한 표정으로 상반신만을 일으킨 미사키를 원망스럽게 쳐다본다.

쑥쓰러워서 안달난것처럼 보일까봐 아무말도 못한것은 내 잘못이지만 실컷 기대하게 만들어둔 주제에 나만 두근거리게 만들어두고 이제 슬슬 자는게 어떻냐고?

놀리려는 심술인지 진심인지 몰라도 이대로 잘 수 있는 정신력을 가졌으면 미사키의 향기나 온기에 기분이 온통 휘저어지는 일도 없었을것이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럴 마음이라니.. 아. 혹시 껴안고 자는건 싫었어? 답답한게 별로라던가.. 아니면 그래, 기껏 초대했는데 벌써 자는게 마음에 안들었다던가!"

머리 위에 백열전구가 빛나는 환영이 보일정도로 이거다!하는 표정을 하고 있지만 전부 아니니까 기고만장해지지 말아줬으면 한다.

연기력도 출중하신 미셸님이시니까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숨기려고하면 캐내기는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 말려들어가면 주도권을 놓치는건 순식간이다.

"같이 밤을 보내자고 한거 말이야! 우리 이제 사귀는 연인사이잖아? 서로 사랑한다고도 말했는데 이제와서 뭐가 문제인거야."

"응? 그래서 같이 밤을 보내고 있잖아?"

진심으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보는 미사키를 이해한 순간 사실 내가 엄청난 착각으로 혼자 멋대로 기대한건 아닌지 의혹이 들었다.

아니, 설마. 미사키라도 고등학생이니까 저 말의 의미를 모를리 없잖아?

당신 꽤나 책 읽는거 좋아하니까 이런것보다도 현학적인 표현 많이 알고있잖아!

"코코로가 바라는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코코로가 말한대로 우리는 연인사이니까 사양하지 않고 말해도 되는데. 뭘 하고 싶은거야?"

순수한 얼굴로 나에게 말하도록 재촉하는 미사키는 사귀었던 사람이 있었을지 모른다든가 이런거에 경험이 많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했던 자신이 바보같을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것처럼 보였다.

이상한 곰인형탈을 쓰고 터무니없는 꿈을 꾼대도 평범한 가정의 보통 고등학생이 모른다는걸 믿을수가 없다.

미사키보다 특수한 상황인 대부호의 영애인 나도 이런 어디서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회에서 그러한것도 있다는걸 알고있는데 경악할만한 천연기념물이 눈앞에 있었다.

"...미사키 혹시. 혹시나해서 물어보는데 연인사이에 깊은 관계를 가질때 스킨쉽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

부끄러움이고 뭐고 충격이 이겨버려서 정색한 목소리로 과감하게 물어봐버렸다.

설마 연인이 된 첫날에 이런 생생한 화제를 꺼내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지금 이 충격에 무너진 이성일때 물어보지 않는다면 다음 여정은 더 고달플것이다.

"키스라던가..? 학교에서 기본적인 성교육은 다같이 받으니까 남녀사이는 알겠지만 여자끼리는 그것밖에 못하는거 아니야?"

애매할 정도로만 지식이 있어서 더 곤란했다.

아무래도 아예 모르는것은 아닌것같은데 학교 교육으로 배운 딱 그정도까지가 전부인것 같은 미사키는 중요한 나와 미사키의 사이의 일은 하나도 모른다는것이다!

이때까지 야살스럽다고 생각한 미소나 일부러 날 자극한다고 생각한 접촉도 전부 나의 과도한 해석이었을 뿐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허탈감이 찾아온다.

심지어 앞으로의 교제를 생각하면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미사키에게 가르쳐야 하는건 내가 아닐까..

"왜 그런 생각을 못했지.. 미사키가 능숙해보이게 착각시켜서 깨닫는게 느렸지만 내가 해도 되잖아?"

이미 대타격을 받아서 산산이 무너진 이성이 일하지 않는 머리는 발상의 전환이라고 의심치 않고 저질러버린다.

미사키가 모른다면 알고있는 내가 하면 되지 않는가.

상반신만을 일으키고 있어서 힘이 들어가기 힘든 미사키를 덮쳐누르듯 올라타면 미사키는 아무 의심도 없이 다시 껴안으려고 팔을 벌린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지금 내가 어떤 기분인지 무엇을 하려는지 경계하지도 못하고 미사키는 지금 완벽한 무방비였다.

"응? 안아주라는거 아니었어? 무엇을 하려는건데 단추를 푸는거야. 아.. 혹시 팔의 상처말고도 궁금하다면 내가 벗을.."

"아니. 내가 벗길게. 미사키는 가만히 있어줘."

완벽히 폭주하고 있는 나는 이젠 반대로 새하얀 도화지 같은 미사키를 나쁜것에 물들인다는 이 상황에 흥분하디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다.

나 말고도 특별했던 다른 사람이 몇명이나 있는 경우보다 훨씬 마음에 든다.

"미사키. 지금와서 이런말로 허락받는게 매우 간사한 일인건 아는데. 미사키의 전부 나에게 줄래?"

"응? 코코로가 바란다면 전부 줄 수 있어."

끝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미사키가 수긍할것을 이미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대답을 전부 듣기도 전에 나는 그 입술을 막아버리기로 했다.
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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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원해주는 히어로, 어두운 밤을 밝히는 나의 태양, 미아가 되어버린 나를 이끄는 찬란한 북두칠성(길잡이).

이 세상 대부분의 것이 너였다는 걸 깨닫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않았다. 

모든 빛들이 너에게로 모여 나를 밝혔을 때 속절없이 무릎꿇어 감싸이고, 신의 세례를 받은 것처럼 내 세상이 달라졌다. 세상이 온갖 색채로 물들고, 감고 있던 눈이 떠져서 빛나는 새 세상을 갈증을 해소하듯 받아들였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에 시멘트 도로가 깔리고, 메마른 사막에 천막이 쳐진 오아시스가 발견되고, 온통 새하얀 눈밭에 한 길로 발자국이 새겨진다. 

코코로. 믿겨져? 모두 한 순간이었어.

네가 내 히어로였다는 걸 알아챈 순간, 네가 내 가면에 입맞춤한 순간, 마법이 풀린 순간.

 끝을 향해 쉼없이 달려가는 땅은 뒤집히고 물이 솟구쳐 올라 바다를 만들며 화산이 폭발했다. 저 혼자만 존재하던 세상이 순식간에 뒤흔들려 변화해갔다. 지구에서 몇 세기 동안 일어난 일들이 눈깜빡 할 새에 지나갔다.

그리고, 그리고...

너를 내 품 가득 안았을 때.

황폐한 땅에서 식물들이 살아나고 동물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숨을 쉬고 각자의 방법으로 소통하고 초원을 뛰어다녔다. 네가 뒤흔들어, 네가 일궈낸 나의 세계였다.

나에 대한 호기심, 호감, 신뢰 같은 것들. 겁쟁이인 너는 정면으로 부딪히고 도망치면서도 마지막엔 내 눈을 마주봐 주었기에 화려히 피어나게 만드는.

내 세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네게도 잔뜩 보여주고 싶어. 이 아름답고 찬란한 내 세계에 너를 초대하고 싶어.

사랑 이상의 단어를 알지 못하기에, 나는 이걸 사랑이라고 표현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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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디 단 대화를 나누다 마침내 문 안으로 들어서서 언젠가 보았던 검은옷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거대한 홀을 지나 코코로의 손에 이끌린 채 기다란 복도를 걸어 방에 도달했다.

스테인드 글라스에 달빛이 들어오던 걸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다 코코로의 방문을 닫았다. 코코로의 방. 이제껏 지나왔던 호화스러운 분위기와 다른 방은 그녀의 성격을 그대로 투영한 것처럼 느껴졌다.

커다랗지만 꾸밈이 없고, 고급스러우나 과하지 않았다.

 " 시간이 좀 늦었으니까 집 구경은 내일 하도록 하자. 괜찮아? 욕실이나 화장실은 안에 있으니까 옷은 그 사이에 가져다 놔줄게. "

 " 정말 고마워. 아, 옷은 코코로의 옷이야? "

 " ... 아마도? 싫다면 검은옷 사람들이 새로 사올텐데. "

 " 응... 괜찮아. 이 밤에 다녀오긴 힘드실거야. 그리고 코코로의 옷이라면 입어보고 싶어. 코코로의 향 정말 좋아해. 네게 안긴 기분이 날지도 몰라. "

정말 그렇다면 좋을텐데.

 드레스룸을 살피러 가던 코코로의 발이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문고리를 잡은 그대로 모든 게 멈춘 코코로가 이상해서 가까이 다가가면 그녀가 천천히 얼굴을 쓸어 내렸다. 피곤한 걸까. 코코로의 얇은 허리에 팔을 둘러 껴안아 어깨에 턱을 괴었다. 한 순간 떨린 코코로의 몸을 깨닫는다.

 " ... 미사키, 당신 갑자기 이상할 정도로 솔직해졌네.  "

 " 미셸이랑 여객선 때 빼고는 항상 솔직했는 걸. 확신범 같은 느낌이었지만... 아, 그래도 역시 코코로가 숨기지 말라고 해줬기 때문인지도. "

 " 알고는 있었구나. 그나저나 숨기지 말라 했다고 이렇게나, 응석 부리는거야? "

코코로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맑고 높은 웃음소리가 너무 예뻐서 그녀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머리가 쓰다듬어진다.

이상하다면 이상할지도.

 방 전체에서, 바로 가까이에서 코코로의 체향이 가득해서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다. 태양이 내리쬐는 해바라기 밭에 왔다면 이런 기분일까. 빛이라곤 천장에서 빛나는 멋드러진 샹들리에뿐일 텐데도 그랬다.

돌연 코코로가 제 품에서 빠져나와 정면으로 마주선다. 단번에 불퉁해진 얼굴로 저를 빤히 노려보는 것에 영문을 몰라 고개를 기울였다.

 " 안 아픈거야, 미사키? "

손을 뻗을까 말까 고민하는게 눈에 보였다. 눈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아챈 순간 미사키는 조금 쓰게 웃었다. 제 목이었다. 한 곳만 집중적으로 푸를 피부.

네가 나를 걱정해주는 게 이렇게나 기분 좋다니, 간사하고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좋아.

 계속해서 아득해지려는 정신으로 미사키는 코코로의 손을 붙잡고 아주 조금, 정말 조금 힘을 주었다. 그리고 느리게 끌어당겨 제 목에 대었다.

그런 생각을 했다. 네가 내 목을 조르는 상상.
 그게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건 이상한 일일까. 손목의 도드라진 뼈를 뭉근히 매만지다 좀 더 올려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손 마디, 손 끝, 손등. 한 차례 한 차례 진득하니 입을 맞추고 엄지를 깨물고서야 떨어졌다.

코코로의 손은 제 손보다 작았다. 손가락 마디의 길이도 그랬고 손바닥의 크기도 그랬다.

 " ... 미사키? "

 " 코코로. "

그러한데도 저보다 훨씬 가늘어서 더 힘을 줘버리면 부러질지도 모른다. 그게 좋았다.
 알고서도 제게 맞기는 그 손이.

의아함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돌아보며 담는 눈이 너무 좋아. 붉어진 얼굴도, 내 앞에서만 그랬으면 좋겠어. 미사키의 눈이 진득하니 가라앉아, 기묘한 소유욕을 담고 일렁였다.

코코로가 푹 파묻혀 잠에 들 침대가, 숙제나 다른 일을 하며 앉아있는 책상도, 수십 이상의 옷이 들어차 매번 고민에 빠질 드레스룸도, 부드럽게 밟힐 벨벳 쿠션이, 빛을 받아들여 눈을 찡그릴지도 모르는 커다란 창문도.

 " 이상해질 정도로, 너무 좋아. "

너의 일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방이.

얼굴이 풀어지는 걸 알았다. 코코로가 숨을 들이키는 것까지 선연했다. 그러나 어떻게 풀어지지 않고 베길 수 있겠어. 언제까지도 선명하게 네 말을 기억해. 전력으로 전해오던 고백. 그리고, 물어보기도 전에 말하는 걸 폐라고 생각하지 말라던.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말을.

내 코코로, 너만이.

분명히 스스로도 너무 들떠서 어쩔 줄 모른다는 걸 알지만,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져 내려오지 못한다는 것도 알았다. 숨기지 말라 한 건 너였다.

몇 차례 입을 달싹인 미사키는 부드럽게 낮아진 목소리로 귀 바로 옆에서 조곤조곤 속닥거렸다.

 " 방 이곳저곳에 코코로가 한가득이야. 나, 인테리어나 가구를 잘 볼 줄은 모르지만. 코코로가 쓰는 방이라고 생각하니까 이제껏 본 방 중 최고라고 느껴져버렸어. "

 " 네네... 간지러우니까. 부끄러운 말도 그만. "

 " 그렇지만 코코로에게밖에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야? 코코로가 받아주지 않는다면 곤란해. "

정적인 받아침에 코코로는 얼굴을 감쌌다. 앓는 소리가 그녀의 흥얼거림과 엇비슷하게 달콤했다. 그 사이로 보이는 귓가가 사정없이 달아올라 있어서, 미사키는 무심코 코코로의 귓볼을 쓸어보았다.

 " ... ...흣!! "

홧, 하고 튀어오르는 몸에 무심코 한 발자국 물러선 미사키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코코로는 제 귀를 감싸고서 물러났다. 덜덜 떨리는 동공이 곧바로 보였다.

 그게 길 잃은 어린애처럼 처연한 동시에 사랑스러워서, 심장이 징징 거리며 울려댔다.

 손가락이 닿은 작은 살결의 감촉이 선했다.

많은 감정들이 솟아올랐다. 너를 품에 안고 싶어. 껴안고 애정을 표하고 많은 말들을 속삭이고. 무심코 몇 번이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한 미사키는, 코코로의 무릎에 나있는 상처를 발견했다. 크게 쓸려 흘러내린 핏줄기가 왜 몰랐나 싶을 정도로 하얀 피부 위에 확연하다.

 언제?

 느리게 시간을 되짚어보던 미사키의 머릿속에서 그녀의 정열적인 고백이 떠올랐다. 충동에 복받쳐 한심하게도 그녀를 넘어트린 자신마저. 뿌연 시야 속에서 홀로 선명하던 너를.

나였구나. 내가.

 " 저, 저기 미사키. 음... 아까, 그런 말을 하긴 했고 미사키도 수긍했지만 역시 너무 갑작... "

내가 널 다치게 했어, 내 힘으로.

 순신간에 창백해진 안색으로, 여전히 귀를 막고 서있는 코코로에게 다가선다. 코코로가 무심코 뒷걸음질쳤다. 미사키의 발걸음이 멈췄다.

진정해. 처참히 구겨지는 심정에 소리없이 제게 속삭였다.

 치졸한 어린애처럼 굴지마. 그치만 어떻게?

 네 옆에만 있으면 난 세상에서 제일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나의 히어로. 심지어 넌 내가 바라는 건 모두 이뤄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지.

 미사키는 다시 움직였다. 천천히, 천천히. 미사키의 발걸음에 맞춰 뒷걸음 치던 코코로는 침대에 걸려 뒤로 넘어갔다. 시야가 휙 돌아, 정신을 차리면 미사키가 제 다리 사이에 차지하고 뒷통수를 받치고 있었다.

검은 머릿결이 볼을 간지럽혔다.

 " 도망가지마. "

다정할 목소리가 긁힌 것처럼 튀어나와, 귓속에 들어서 스크래치를 남기고 빠져나간다.

커다란 동물이 으르렁 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약하게 일그러진 미간이 코코로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천천히 풀어져간다. 내려가는 눈꼬리가 본인의 무해함을 표현하는 것 같아, 조금 기가 막혔다.

이런 자세로, 그런 목소리를 냈으면서 저런 얼굴을 하는거야?

허벅지에 닿은 온기가 생소해서 살짝 떨어지려고 몸을 움직이니 미사키의 손이 단단히 허벅지를 잡아왔다. 굳은살의 단단한 느낌에 코코로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맨 피부에 닿은 온기가 뜨거웠다.

어딘가 터질 거 같았다. 이미 터졌을지도 몰라. 그치만 정말로? 고이는 침을 꿀꺽 삼켜 미사키와 시선을 마주했다.

 " 나, 씻지도... 않았는데. "

 " ... 알고 있어. 그치만 해주고 싶어. "

 " 아니아니. 처음이고, 그러니까... 만반의 준비를, "

 " 준비가 필요한 일이었어? "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인 미사키를 마지막으로 코코로는 결국 눈을 꾹 감아버렸다.

이불자락이 스치는 소리, 허벅지에서부터 무릎까지 쓸어올리는 감각. 눈을 감으니 더 선명한 것들에 정신을 차릴 새 없이, 무릎에 물컹한 것이 닿는 즉시 쓰라림에 코코로는 번쩍 눈을 떴다.

당신.

샹들리에의 불빛이 반짝이고, 제 시야에서 청회색 눈을 내리뜬 채 오쿠사와 미사키는 의식할 수 없었던 코코로의 상처를 핥고 있었다.

 잠깐, 대체.

고운 입술에서 야살스레 튀어나온 얇은 혀가 상처 위를 머물렀다. 부드럽고 정성스런 행위가 오히려 더 자극적이었다.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어. 쓰라림에 허리가 움찔 떨려 소리가 새려는 입을 꾹 다물고 코코로는 간신히 미사키의 머릿결 사이로 손을 비집어 넣었다. 미사키의 눈이 데구르르 굴러갔다.

 " 당신, 대체... 읏. "

왜? 그 눈이 그런 의문을 담는 걸 모를 수 없었다.

악취미다. 의도한건지 실수인건지 쓸린 상처를 헤집는 행위가 지독스레 집요했다.

허벅지와 발목이 붙잡힌 채 허리가 뜨는대로 뒤로 물러나니, 등에 벽이 닿아 있었다. 이상하고 경험한 적 없는 체험에 어쩔 줄 모르고 바르작 거리며 미사키의 머리를 헤집었다. 오싹하니 어깨가 떨린다.

당신의 눈은 계속 나를 향해 있었다. 능숙히 움직이는 혀만큼이나 집요하게. 그 눈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미사키, 미사키, 미사키. 난 널 아직도 모르겠어.

당신은 내 손에 눈을 느리게 감고는 쪽, 소리와 함께 살며시 떨어졌다.

행위가 멈췄다.

멈췄다는 걸 자각한 순간 스스로가 굉장히 헐떡거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어디 하나 뜨겁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정작 이 모든 걸 행한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게 붉은 입술을 혀로 쓸고 있는데.

이상해.
 시야에 들어온 당신의 웃음이 너무 야살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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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공책(Fox_nullnote)님이 써주셨습니다.
여우공책님 한마디:수없이 몰아치는 글에 정신이 가출했습니다.
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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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렁그렁 눈물을 매단채로 올려다보는 코코로는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때보다도 연약하게 보였다.
건드리기만 해도 바스러질거 같은 아름다운 유리공예품처럼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거친 입술을 지분거렸다.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부디 들리지 않기를 바랬지만 코코로의 시선이 향하는곳이 어디인지 뜨거울 정도로 느껴져서 숨기는건 무리라고 알아챘다.

"미사키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줬으니까 우리는 연인사이인거지?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거야..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면 행복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가 싫어졌다는 말이야? 아니면.. 다시 잊고싶다는.."

가슴이 꾹 조인다는 이유로 이름조차 잊혀졌던 옛날이 생각나서 눈앞이 하얘져버렸다.

다시 그런일이 일어난다면 마음의 한자락이 아닌 전부를 줘버린 지금은 스스로 일어나 떠나버리는것조차 할 수 없을것 같았다.

"그럴리가 없잖아! 나는 이제 미사키를 잊는건 상상 할 수도 없어. 미사키가 없으면 웃을수조차 없는걸! 하지만 미사키는 다르잖아."

뚜욱 뚜욱 결국 수위를 높여가던 코코로의 눈물샘이 무너져서 서러움을 터뜨려버렸다.
웃는 얼굴만 보고 싶은데 어째서 이렇게 나는 너를 슬프게 하고 힘들게하는 감정을 가르쳐버리는걸까.

"미사키는 다른 사람이라도 괜찮은거지? 그러니까 내 대신이 될 사람을 찾은거잖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거잖아. 나는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사키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땀으로 축축한 옷의 가슴팍부분을 붙들려 끌어 당겨져서 노려보는 코코로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목이 졸린것도 아닌데 마른숨만 들이키고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왜 나를 두고 다른 사람이랑 사귄거야? 그 사람에게도 어젯밤 나에게 한것같은 녹아버릴것처럼 달콤한 눈으로 키스를 했어? 아니면 나랑도 하지 않은 더 깊은 관계도 가진거야? 말해줘 미사키.."

코코로는 질투를 하고있다.

질투를 해주고 있다.

떨어지지 말라고 꽉 필사적으로 옷자락을 쥐고 있는 손이 새하얗게 변할정도로 힘을 주고서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을 보고 있다.
지금 코코로의 세상에는 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험악한 분위기인데도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을 수 없었다.
우울하고 슬프고 괴로운 여러가지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있던 판도라의 상자에는 질투조차 들어가 있어서 그것이 나의 독점욕을 충족시켜주고 있었다.

보물을 발견한것 같았다.

"무엇을 말해줄까? 고백받은 횟수? 아니면 사귀었던 다른 사람의 숫자? 키스라던가 밤을 보낸 기분이 어땟는지? 뭐든 말해줄 수 있지만 그걸로 코코로는 만족 할 수 있는거야?"

숨겨져 있던 소유욕이 솟구쳐서 옷자락을 쥐고 있는 코코로의 손목에 자국이 남도록 꽉 힘주어서 잡았다.

평소에 부러지지 않을까 상처받지 않을까 내심 긴장하면서 살살 힘을 빼서 손을 잡던것과 확연히 다른 그 악력에 당황한 코코로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런데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어? 결국 무슨 방법을 써도 어디로 도망쳐도 잊을 수 없었는데. 계속. 계속 코코로만을 원했어. 가질 수 없는것을 바라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을텐데.."

적당히 보통이 최고라고 스스로에게 몇번이고 되뇌이던 무기력한 자신을 데일 정도로 강렬한 열기에 휩싸이게 한 주제에 스스로가 무슨짓을 했는지 모르다니.

굶주리고 목마른자에게 함부로 손을 뻣으면 어떻게 되는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거야?

코코로의 손목에 남은 붉은 손자국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가 그대로 키스마크를 남겼다.

사실은 이런 시계를 채우면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마킹이 아니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노골적인 장소라도 남기고 싶지만 나는 아직도 코코로가 무서워서 싫다고 거절하는걸 두려워했다.

"그러면 전부 가져버리면 되잖아. 엉망진창 누구라도 미사키의 것이라고 알도록 한군데도 빠짐없이 바래도 괜찮아. 나는 내 모든것을 미사키에게 줘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걸."

내려다본 코코로는 꾸욱 입을 다물고 걱정과는 달리 전혀 겁을먹은 기색이 없이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참을 필요가 없는것이 아니냐는 유혹적인 울림이 뇌리에 퍼져나간다.

어느새 잡은 손목을 그대로 코코로의 머리위로 찍어누르고 숨결이 다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다시 코코로를 응시했다.

한계까지 자극당한 이성이 그르르 목울림을 내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게 될거야. 소중히 아껴주려고 했는데 그럴 수 없을거 같거든. 지금이 아니면 절대 멈출 수 없을테니까."

그러니까 얼른 예의도 없는 짐승을 떠밀어버리라고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너에게 심장이라도 빼줄 수 있는 나라면 한마디 말만으로 통제 할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허락의 말이 떨어지면 향기로운 살결도 비단처럼 고운 머리칼도 앙증맞은 입술까지 전부 남김없이 탐내기 전까지 멈출 수 없겠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을때라면 달콤함을 모르겠지만 한입이라도 먹는 순간 멈출 수 없는 극락의 과실을 마다 할 자제력이 나에게 존재했더라면 내가 나 스스로를 경계해서 미국으로 떠날 일도 없었을것이다.

"멈추지 않아도 좋아. 소중히하지 않아도 나는 없어지거나 부서지지 않으니까 힘껏 사랑해주면 좋겠어. 아플정도로 꽉 껴안고 숨이 막힐정도로 깊게 키스해서 미사키말고는 아무것도 생각 할 수 없게 해준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것 같아."

굶주려서 가죽밖에 남지 않은 늑대가 눈앞에서 침을 흘리며 눈을 번뜩이는데 붙잡힌 가엽은 공주님은 그것이야말로 바랬던것이라고 눈을 빛내며 활짝 웃었다.

눈꼬리에 남은 질투의 잔재인 투명한 눈물방울을 입술로 훑어 없애버리면 남은것은 해피엔딩을 기다리는 아가씨의 웃는얼굴.

참지 못하고 사랑스러운 말을 하는 그 입술을 막아버려 마음껏 들이마시면 끊어져버린 이성에 뇌세포까지 이상을 일으켰는지 미쳐버린 미각으로 달콤하다는 착각을 하는 혀가 녹아버릴것 같았다.

고른 치열을 따라서 자극을 하면 코코로가 숨을 들이키는게 느껴졌다.

츠루마키가의 당주가 되기 위해서 후계자 수업에 매진한 코코로와 디제잉과 테니스, 여행같은 아웃도어인 활동을 한 나와의 사이에 폐활량의 차이가 생겼는지 입술을 떼어내자마자 허억허억 숨을 들이쉬는 코코로는 그것만으로 추욱 힘이 빠져버렸다.

"벌써 지친거야 아가씨?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이러면 큰일인데.."

숨을 몰아쉬는 코코로의 목에 얼굴을 묻고 향기를 맡는다.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살살 이로 자극을 가하다가 살갗을 빨아들여 누구라도 보이는 장소에 이 손에 닿지 않을거 같았던 아가씨가 내거라는 증거를 남겨둔다.

하나로는 만족 할 수 없어서 두어개를 더 남기고서 어차피 힘으로는 나를 이길 수 없는 코코로는 도망갈 수 없을테니까 손목을 놓고서 조금 떨어져서 내가 만든 작품을 감상했다.

조금 살이 그을린 나랑은 달리 햇빛에 타지 않은 코코로의 하얀 피부에 남은 붉은 자국이 시리도록 눈에 박혀들어온다.

"좀 더 해주지 않는거야? 카스미랑 히나에게 듣기로는 이게 끝이 아닌거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부추긴건 그쪽에서 정보를 얻었기 때문인가.. 안그래도 멈출 생각은 이미 없으니까."

소파의 좁지도 넓지도 않은 불안정한 넓이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꽉 안아붙을 수 밖에 없다.

소파와 코코로사이의 비좁은 틈 사이로 손을 비집어 넣어서 옆구리를 더듬으면 낯간지러운지 몸을 비튼다.

눈꺼풀에 연신 키스를 해주면 코코로가 후후후 웃음을 흘리며 등 뒤에 팔을 돌려 힘껏 자신쪽으로 끌어당겼다.

버티려면 끌려가지 않을 힘이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 나는 무게가 코코로에게 실리지 않도록 한쪽 팔을 소파의 등받이 부분에 의지한채로 가까워졌다.

"그런데 나도 미사키를 가지고 싶으니까 가만히 주기만 할 생각은 없는걸. 아무것도 모른다고 방심하면 미사키가 먹힐지도 몰라? 나는 금방 배우는 사람인데다가 몇년동안 염원했던건 나라도 마찬가지이니까."

그러고보니 밖에서 돌아온 뒤에 씻지도 못하고 이런 상황이 되버린 바람에 여름의 후덥지근한 공기랑 흘린 땀으로 끈적한 옷 그대로였다.

이제와서 신경이 쓰이는 자신의 행색에 꼼짝도 못하는 사이에 옷사이로 들어온 코코로의 손이 등을 매만지다가 옆구리를 지나서 배를 매만진다.

"미사키의 배는 조금 단단하고 복근이 있네. 내가 옆에 없는 사이에도 노력하고 있었다는걸 알 수 있어."

"뭐, 몸 움직이는건 싫어하지 않으니까.. 그보다 코코로 나 땀을 엄청 흘렸는데.. 기분나쁘지 않아?"

돌연 찾아온 이성이 소중히 아껴주려고 했던 상대의 처음을 불안정하게 비좁은 소파에서 취하려고 했다는걸 깨닫게 했다.

내가 코코로가 가진 값진것보다 더 좋은걸 줄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결혼식장의 예약부터 초대장까지 척척 준비해서 완벽하게 치장한 행복을 선물로 주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상한건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는다는거였다.

자신의 겁쟁이인 부분까지 전부 코코로를 사랑하는걸 멈추고 싶어하지 않다고 외치고 있었다.

"기분 나쁠리가 없잖아. 미사키가 노력하는 모습도 흘린 땀도 전부 좋아해."

꽈악 끌어안아 밀착한 코코로가 목에다가 코를 묻고 숨을 쉬는게 느껴져서 간지럽고 부끄러웠다.

이럴줄 알았으면 땀을 닦고 제한제도 뿌린 다음에 코코로를 맞이하러 갈걸.

이럴줄 알았으면 좀더 행색이 괜찮을때에 코코로를 안을걸.

이제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것들은 귓바퀴를 따라 혀를 굴리는 코코로의 진득한 애무에 허공으로 날라가버렸다.

"그러니까 좀 더 꽉 안아줘. 미사키."

나도 몰랐던 약점인 귀에 애정과 유혹이 잔뜩 담긴 낮은 목소리로 불린 이름은 그 자체로 심장에서 흐르는 혈류를 빠르게하는 미약과도 같아서 몸 전체를 울리는 박동에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결국 해버렸나- 하고 깨달았을때는 아직 어스름하지만 해가 떠오르는게 어렴풋이 느껴지는 새벽과 아침의 사이였다.

마주보는 자세로 무릎위에 앉아서 내 어깨에 턱을 올려둔 상태이던 코코로는 커텐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나의 눈의 색이라고 흐리게 웃고는 그대로 지쳐서 잠들어버렸다.

코코로는 처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나는 질투심과 사랑의 증거를 가지고 싶다는 코코로의 부추김에 있는 힘껏 휘둘려서 그만이라던가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에도 전혀 멈추지 않았다.

"바보같을 정도로 푹 빠져있으니까 말이지.. 아아.. 정말로 앞으로 어떻게 하지.."

하얀 피부의 여기저기에 온통 키스마크 투성이여서 사랑을 받았다기보다 이정도면 어딘가 안타까울 정도인 코코로는 행복한 표정으로 자고있는데 나는 이걸로도 만족하지 못했다.

한번도 하지 않았을때는 아껴주자고 웃으며 생각했는데 한번 하자마자 이정도라니 정말 나약한 정신력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고 자조하면서 잠든 코코로를 꽉 끌어안았다.

"..코코로가 일어나면 뭐라고 말하지? 좋았다고? 아니면 그냥 평범하게 인사? 아름다웠다든가 귀여웠다던가하는 칭찬의 말을 해야하는건가.. 나, 처음도 아니면서 뭐라고 해야할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아.."

이때까지 꽤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이렇게 두근거린적도 뭐라고 말을 해야하나 고민한적도 없었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격렬하게랄까.. 지치지 않는 정도로 상대가 만족하게하는 행위만 적당히 해치운 이제와서는 왜 욕을 먹지 않았나 싶은 의욕이 없는 사람인 자신이 했다고 믿을 수가 없지만 떠오르는 여러가지 밤의 기억이 부정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보다 처참한건 내 독점욕으로 가득한 코코로의 몸뿐만이 아니라 지금 앉아있는 소파도 마찬가지였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어느새 새걸로 교체되거나 아니면 깨끗히 청소가 될거라는건 알고있지만 정사의 흔적이 남에게 보인다는건 견딜 수 없을만큼 부끄러울것 같았다.

뭐, 소중한 츠루마키가의 당주가 언제 어느때 위험상황에 처할지 모르니까 이 방에 도청기같은게 설치되어있을 가능성은 높아서 했다는거 자체는 이미 들켰겠지만..

"하여튼 일단은 잠들어버린 코코로를 씻기고.. 침대에 눕힌 다음에 치우자.."

불타오를 정도로 빨개진 얼굴을 아무도 못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가능한 코코로의 맨몸을 응시하지 않으면서 욕실로 향한다.

점점 밝아오는 하늘과 함께 보이는 코코로의 몸을 응시할 수 없다니 어젯밤에 그렇게 질리도록 키스하고 쓰다듬고 껴안으면서 눈을 감아도 기억할 정도면서 한심한 일이다..

직접 보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씻기지?하는걸 깨달은건 욕실에서 샤워스펀지에 거품을 내었을때였다.





일어나자마자 기지개를 펴는데 온몸이 뻐근하고 당겨서 무심코 움츠러들었다.

침대에서 멀리 떨어진 화장대의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목에 붉은 반점이 매우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손가락으로 만져보려고 팔을 들어올리면 어느새 갈아입혀진 잠옷은 난처해하던 미사키와 같이 샀던 2개가 세트인 커플잠옷이었다.

부끄럼쟁이 미사키가 이렇게 온통 독점욕과 소유욕으로 얼룩진 키스마크와 잇자국, 손자국투성이인 자신을 남의 시선에 노출되게 놔둘리가 없으니까 내가 잠든 후에 직접 씻기고 옷을 입힌걸까?

고뇌한 흔적인지 잠옷의 단추가 어긋나게 잠겨있어서 조금 웃음이 났다.

어긋난 단추를 다시 제대로 잠그려고 풀어내려가면서 옆을 바라보면 색만 다른 잠옷을 입은 미사키가 이쪽 방향으로 몸을 돌려서 자고 있었다.

"정말 아직도 나는 모르는것 투성이네. 어째서 어제는 그렇게 부글부글 끓고 꾸욱 조이면서 찢어질듯 아팠던 기분이 이렇게 포만감이 들 정도로 행복하게 바뀌어버린걸까."

미사키가 살던 방과 달리 넓은 이 집에는 방이 몇개나 있으니까 처음 둘러볼때에 각자의 방을 정하려던 미사키에게 고집을 부려 같은 방을 사용한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지쳐서 움직일 힘이 없을 정도로 실컷 사랑받은 다음날이라도 아침에 눈을 떳을때에 옆에 미사키가 없다면 이런 행복한 기분보다는 불안함이 앞섰을지도 모른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걱정을 하는건 나쁜 습관이라고 미사키를 다그쳐왔지만 지금은 미사키보다 내가 훨씬더 자주 겁쟁이가 되버린다.

"미사키가 이렇게 계속 옆에 있어주면 좋을텐데.. 테니스동아리랑 아르바이트.. 또 대학교도 졸업학년이지만 가끔은 직접 가야 할 일도 있다고 그랬어."

단추를 채우면서 옆을 돌아보면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표정을 찡그리고 있는 미사키가 보여서 손을 꽉 잡아주면 무의식적으로 꾸욱 힘을주어 잡아오는 미사키의 손과 미간의 주름이 풀리고 희미하게 웃는 표정이 강한 충족감을 일으켰다.

"코코로.."

웃으면서 내 이름을 부르는 미사키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어지고 달콤하게 낮은 목소리로 이름이 불리는것만으로 두근거려서 참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미사키의 품에 파고들었다.

"음....아. 코코로..지금 몇시야?"

내가 품에 비집고 들어가는걸로 잠에서 깨버렸는지 낮게 긁힌 목소리로 시간을 물어보면서 미사키가 팔을 돌려 안아주었다.

미사키가 노력해서 흘린 땀의 냄새도 좋아하지만 같이 살면서 나랑 같은 샴푸의 향기와 섞인 체향도 좋아한다.

눈이 부신지 한쪽 눈만을 가늘게 뜨고 있는 미사키의 목에 코를 박고 향기를 맡으면 푸흐흐하고 낯간지러워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미사키는 나를 떼어놓지 않고 등에 돌리고 있던 한손을 올려 나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어주었다.

"아직 6시밖에 안됐으니까 더 자도 괜찮아. 그러니까 이대로 조금 더 있어도 될까?"

"얼마든지. 그런데 코코로 몸은 괜찮아? 나.. 코코로가 처음인데도 너무 가감없이 해버린것같은데.."

확실히 움직일때마다 멈칫거리게 될 정도로 허리가 아프고 근육통에 걸린것 같았지만 적당히 하지 못할 정도로 미사키가 나에게 열중했다는 증거니까 오히려 이 통증마저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걱정스레 꾸욱꾸욱 등 뒤를 지압하는 미사키의 입술에 쪽 뽀뽀를 하면 순식간에 빨간얼굴이 되어버려서 그 얼굴의 이곳저곳에 좀 더 뽀뽀를 해줬다.

"아니, 아니. 코코로 그만 좀 해봐. 으앗. 그런데 왜 단추는 절반이나 풀려있고 속옷도 안입은거야?! 앗...아...속옷은 내가 못입혔지.."

크으으..하고 신음을 내면서 스스로의 얼굴을 한손으로 가리는 미사키는 귀가 붉게 익어있어서 어제 그렇게 집요하게 나를 울것같을 정도로 기분좋게 강요해오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어째서 한군데도 빠짐없이 만지고 키스했으면서 부끄러워 하는거야? 이렇게 키스마크까지 듬뿍 남겼으면서.."

슬쩍 잠옷의 자락을 들추면 도대체 언제 이렇게까지 남겼는지 모르겠는 숫자로 붉은 자국들이 점점이 찍혀있었다.

"...이래저래 복잡한거야. 으윽.. 어젯밤의 나 너무 폭주했잖아.."

푹 배개에 얼굴을 처박은채로 부들부들 떠는 미사키의 등을 토닥여줬다.

이해할 수 없지만 미사키가 부끄럽다니까 배개에서 얼굴을 들기 전에 단추는 스스로 채워두기로 했다.
Posted by 백오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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